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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37화 (137/150)

137화 영혼 (1)

“오랜만이네.”

“그래, 오랜만이야.”

나와 여신은 인사를 나눴다. 구면이니까. 여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그녀의 모습은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미의 기준이라고 할 정도로. 후광 때문에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너 때문에 한참 고생 좀 했어. 걔가 얼마나 달라붙던지. 한동안 치세에 신경을 못 썼다니까.”

“네가 무슨 치세를 해?”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거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내 팔목 하나가 그대로 부서졌다. 피가 퍽 하고 튀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팔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까. 라피테스 공작에게서 배운 수법이다.

“너 같은 돌연변이가 나오면 세상을 좀 다루기가 어렵거든. 자, 봐, 얼마나 괴물 같은가. 사람이 팔을 한 번에 복구하는 게 말이 돼?”

“너도 사람이잖아?”

“난 신인데?”

그녀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웃었다. 여신은 자신이 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건 기만 같은 게 아니었다.

“넌 신이 아니야. 그냥, 거대한 괴물 같은 거지.”

“이 아름다운 모습이?”

여신은 몸을 한 바퀴 돌았다. 환상적인 빛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렸다. 빛가루에 담긴 힘은 익숙했다. 내가 요정에게서 본 힘. 아이리, 마리나에게서 본 힘.

하지만 그 신성력은 훨씬 풍부하고, 순수하고, 파괴적이었다.

“어때, 지구에서 온 이방인들. 이렇게 강한 힘이 적대한다니 좀 무섭지 않아?”

여신은 채린이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그 빛 좀 줄여 봐, 눈부시니까. 얼굴은 까고 얘기해야지.”

“응? 아…….”

뜻밖의 대답에 여신이 살짝 당황했다. 여신은 지구의 사람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다. S급 헌터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해서 평균 석사 학위의 소유자들이었고, 거기다 강력한 힘까지 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성격은 결코 온순하지 않았다. 나야 친한 사람이니까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해도.

그래도 여신을 비호한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삐딱하게 나올 줄은 몰랐지만. 난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우리 친구인데, 그렇게 팔을 날리고 얘기하면 말이 통하겠냐?”

“그래. 참 못 배워 먹은 짓이군. 신이라면 일반 인간 이상의 도덕성이 필요할 터. 난 철인이나 위버멘쉬 같은 종류일 줄 알았더니.”

“흠, 이건 전형적인 독재자의 공포정치인데. 내 박사 논문에 어떤 게 나와 있냐면…….”

지구의 헌터들은 여신을 앞에 두고 별의별 학술적인 용어를 써 대며 분석을 했다. 난 그냥 평생교육원 출신이지만 이들 중 몇몇은 정말 엘리트였으니까. 갑자기 분석 대상이 된 여신은 멍하니 있었다.

“개별성을 파괴하는 건 뭐라 해도 독재지.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개별성의 존재야.”

“그렇다면 여신은 독재자인 게 맞아. 다만, 이건 우리 지구의 역사로 파악하면 안 돼. 여기는 우리로 따지자면 판타지 세계관과도 같은 곳이잖아?”

“내가 볼 때는, 독재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는 것 같아. 독재자에게 으레 엿보이는 심리적 불안감이 없어. 아마 혁명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이 학습이 많이 안 된 것 같아.”

갑자기 웬 학술적인 얘기들이 오갈까. 그들은 애초에 여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채린이도 듣고 있지 않다고 하자마자 쌍년이라고 했으니까. 어찌 됐든 적의감이 있는 건 맞는 것 같았다.

“이방인들아, 좀 못 알아듣는 얘기는 그만하고.”

여신이 결국 제지를 했다. 나도 이렇게 사람들이 나올 줄 몰라서 좀 당황했다. 아마 여신은 이런 사람들을 처음 볼 것이다.

왜냐하면, 여신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은 이 세계 사람들에게는 학습된 것이지만 지구 사람들에게는 그저 이상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마리나와 나 사이의 현실 감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난 여기서 도박 수를 던져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들은 지금 먼 존재였던 여신이 눈앞에 나타난 것만으로 그녀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의 여신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하나뿐인 기회였다.

나는 힘을 거둬들이고 팔을 쫙 폈다. 나에게는 어떤 확신이 있었으니까.

“뭐 하는 거야?”

“화생방 훈련 끝나고 나오는 자세 아니야?”

“그 군대 드립 좀 그만 치면 안 돼요?”

여신은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난 저들이 유머를 소비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S급 헌터들은 언제나 위기 상황이면 농담을 한다. 자신을 위해서, 파티원들을 위해서. 과도한 긴장은 움직임에 제약이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내가 팔을 펴자마자 어떤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여신에게는 당연히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것으로 보일 터다.

“너, 날 죽이지 못하잖아?”

“뭐? 난 신이야.”

“그럼 죽여 봐, 괜한 뻘소리 하지 말고.”

“뻘소리?”

여신의 표정이 순식간에 악귀처럼 변했다. 나는 그녀가 못 할 거란 걸 믿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따지면 난 골백번은 죽었어야 했으니까.

여신의 힘에는 분명히 제약이 있었다. 난 그 제약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아주 칼을 목에 들이대는구나.”

“넌 사람을 못 죽여. 왜 그런 줄 알아?”

“내가 왜 못 죽여?”

여신은 그렇게 말하고 스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로 스프리의 목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스프리는 뭐라 비명을 외칠 새도 없이 고꾸라졌다.

“이래도 내가 못 죽인다고 할 거야?”

“응.”

“현실도피야?”

“네가 하는 게 현실도피겠지.”

난 손바닥으로 자연의 힘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공중을 떠다니던 빛가루가 순식간에 창문 바깥으로 빨려 나갔다.

“어?”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목이 사라진 줄 알았던 스프리가 멀쩡히 서 있는 것이다. 스프리 또한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넌 그냥 비대해진 영혼일 뿐이야. 사람의 감각을 속이는 것만 할 수 있지. 왜냐하면 넌 실재하는 세계에 손을 댈 수 없거든.”

나는 여신의 표정이 변함에서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신했다. 사람과 신은 격의 차이였다. 사람은 신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여신을 연기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넌 꿈에 나다니는 망령에 불과해. 네가 말하는 신성력은 상상력과 다르지 않아. 그저 화려하기만 할 뿐이지. 넌 본질적으로 인간이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여신은 갑자기 나태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그녀는 빛을 모두 거두고 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옷을 바꾸었다.

“…그래. 뭐, 대충 눈치챌 건 알고 있었어. 너도 나랑 비슷한 힘을 이제 가졌잖아?”

여신이 말했다.

“그래도 말이야. 경력이라는 건 무시 못 해.”

여신의 옆에 갑자기 신수들이 나타났다. 방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모습이었지만, 난 그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분명히, 우리가 없앴던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였다.

“난 분명 직접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죽일 수 있는걸?”

“죽여 봐, 지금 내 앞에서.”

내가 눈에 불을 켰다. 여신은 몸을 멈칫했다. 리바이어던과 베히모스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서로 상반되는 명령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신은 아마 베히모스와 리바이어던을 움직이고 싶겠지만,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어서 그들의 행동에 제약이 걸린 것이다.

“…너,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연애하는 걸 보면 진짜 개병신이 따로 없던데.”

여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곧, 그녀의 말이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라피테스 공작과 대화할 때의, 그 거짓 없는 대화 느낌이었다.

- 만약 네가 몸을 되찾는다면 그 힘은 더 이상 못 쓰게 될 거야.

여신은 계속 내 머릿속에 말들을 넣었다.

- 너도 이 대화 방법 알고 있지? 이 말에는 틀림이 없어. 나도 솔직히 좀 골치가 아파. 왜 너 같은 놈이 나와 비슷한 힘을 가지게 됐는지.

-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 몸을 되찾으면 날 이기기 힘들 거라는 말이지.

순간 아무 말이 없어진 우리에게 채린이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아이리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녀는 나와 여신이 무언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이 신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지. 사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없어. 상상력이라는 건 간사해.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암시를 나한테 걸고 있거든. 그 상상력은 천 년을 넘어서 더욱 강해졌고. 물론 너도 그런 힘을 쓸 수 있어. 나랑 마찬가지야.

- 계속 말해 봐.

- 네가 사람들을 버리면 난 아무것도 안 할게. 아니면 나라를 나눠서 통치할 수도 있지. 우리는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단다.

여신이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 아름다운 웃음엔 사람을 매혹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하나 그 역시 그녀의 수작질일 뿐이었다.

이 거짓 없는 대화의 맹점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 물론 내가 이렇게 있으면 너와의 싸움에서 이기지도 지지도 못하겠지. 그건 나도 생각이 같았어.

- 똑똑해.

- 근데, 내가 사람이 다시 된다면 그 승패는 나뉘기 마련이야.

- 멍청하네.

여신의 평가가 한 번에 뒤바뀌었다. 그녀는 분명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진실을 숨겼을 뿐이지. 그녀는 분명 사람이라는 존재보다 망령의 존재로 더 많이 살아왔고, 그 방법에 더 익숙해 보였다.

- 네 본질은 바뀌지 않아. 넌 사람이야.

-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널 괴물로 만들어서 타고 다녀야지.

여신은 그렇게 말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는 나를 짜증 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 혼자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이곳에서 세계야.”

여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암흑만 남았다.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이 지하에 있는 암굴에서 하늘이 보일 정도로 구멍이 생겼다. 하늘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돌았고, 점점 거뭇해졌다.

“빨리 뭔가를 해야겠네요.”

스프리가 먼저 운을 뗐다. 나도 그것에는 동감이었다. 여신은 지금 무언가를 하려 했고, 아마 그건 제논 왕국의 사람들과 엮여 있을 터다.

여신이 실재적인 곳에 영향을 못 끼치는 이유는 당연했다. 나도 이 힘을 쓰고 있으면서 점점 인간과 멀어짐을 느끼니까. 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아이리가 없었더라면 난 진작 영향을 못 끼치고 여신과 같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리는 내가 사람임을 계속 자각시켜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람이 되러 갑시다.”

내 말에 스프리가 잠깐 멍하게 있다가 내 말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여기 온 이유가 그건데. 여신의 현신이 참으로 놀랐던 모양이다.

그는 우리를 이끌었다. 채린이를 비롯한 신성파의 사람들도 어쩌다가 우리에게 말려들어 쭐레쭐레 쫓아왔다.

“근데 몸을 만들 거면 이왕이면 더 잘생기게 하는 게 낫지 않아?”

채린이가 뜬금없이 딴지를 걸었다.

“왜, 그렇잖아. 그, 헌터들도 레이드 하다가 코뼈 부서지면 높여서 성형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안 돼요.”

아이리가 채린이의 말을 막았다.

“지금 그대로가 전 좋으니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채린이는 아니꼽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한테 염장질을 할 수 있다니. 참 장족의 발전이다. 나도 성형을 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스프리는 우리를 무슨 MRI 기계 같은 곳으로 인도했다. 그의 말로는 이게 영혼을 스캔해서 몸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근데, 무슨 전문가가 있어야 된다던데.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전문가가 있습니다.”

스프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커튼을 걷고 어떤 노인이 나왔다. 그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알레프… 였나?”

“오랜만입니다.”

알레프의 뒤로, 검은 무리의 사람들이 쫙 펼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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