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영혼 (2)
이 정도면 검은 무리가 전부 모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알레프를 비롯한 검은 무리는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모든 준비를 마쳐 두고 있었다.
“근데, 과정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냥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나오시면 됩니다. 영혼을 읽어 낸 다음에 신체를 생성하는 거니까요. 그 읽을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3D 프린터 비슷한 건가. 영혼을 읽어서 몸을 제작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 보면 알 것이다.
기계가 계속 윙윙거리고 있었다.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것도 아니면서 소리가 아주 웅장하기 그지없다. 하긴, 한 사람의 몸을 만들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아, 근데 칸나는요?”
“같이 들어가셔야죠.”
알레프는 내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난 저 반원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명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자리 같은데.
“저건 1인용 같은데요?”
“안으면 됩니다.”
“안 돼요.”
난 당황하며 말했다. 아이리는 의식적으로 안 봤다. 안 봐도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굳이 안아야 된다면, 뭐 괜찮아. 칸나는 친한 친구니까.”
뜻밖에 아이리가 말했다. 난 칸나와 아이리를 바라보았다. 칸나는 요즘 말이 좀 없어져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감이 좀 안 왔다.
“…뭐. 저도 상관없어요.”
“그래, 뭐. 그렇다면.”
칸나까지 그렇게 말하자 괜히 내가 칸나를 거절한 꼴이 되었다. 내가 뭐라고. 칸나도 나한테 과분한 사람인데. 나만 민망해졌다.
나는 먼저 그 반원형의 통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무슨 별의별 이상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이들이 그려 낸 스킬과 과학의 결정체이리라.
곧 칸나도 따라 들어왔다. 내가 아무리 안지 않으려고 해도 반원형의 통이 좁아 어떻게든 안게 되는 구조였다. 조금 전에 고백한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을 안는 장면이라. 내가 봐도 별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따뜻하네.”
느닷없이 칸나가 그런 말을 했다. 그 말의 의미를 묻기도 전에 반원형의 통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 * *
머릿속에서 계속 질문이 날아온다. 거짓 없는 뇌의 대화. 난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계속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과 대답은 본능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대답하기 어려운 건 없었다.
- 넌 사람이야?
- 응.
- 남자야, 여자야?
- 남자.
내 앞 어두운 곳에는 거울이 있다. 내가 대답을 하면 할수록 내 형상이 갖춰진다. 인간이라고 대답할 때는 태아의 형상이 되었고, 남자라고 말할 때 성기가 돋아났다.
질문은 계속 이루어졌다. 마치 게임 속에서 한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 하는 느낌이었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을 묻고, 어머니,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으며, 내가 어렸을 때 가진 꿈을 물었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태어났는지도 물었다.
질문은 끝이 없었다. 질문은 내 경험 속의 사건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점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날아왔다.
- 헌터가 해야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거기서 잠깐 생각했다. 내가 초급 헌터들에게 강의를 했던 내용은 아주 정석적인 것들이었다. 인명에 대한 책임, 마수 척살… 같은 것들. 하나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은 달랐다.
- 의뢰 수행.
내 뇌리에는 그런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난 여기서 거짓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난 인정해야 했다. 나를 지극히 포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런 포장은 어떨 때는 날 속이기도 했다. 내가 굉장히 정의감이 강하고 일생일대에 한 번 태어나는 영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었다.
- 슬슬 그만하면 안 될까?
내가 의사 타진을 해도 질문기는 가차 없었다. 어느새 거울 앞의 나는 대충 형체를 갖춘 사람이 되었다. 칸나도 이런 절차를 겪고 있는 걸까?
나는 어느 상황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건 어느 호텔의 한 자리였다.
호텔 안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었다. 잠깐 둘러봐도 꽤 비싼 방이었다. 하긴, 내 기억을 긁어모아 봤자 허름한 모텔은 나오지 않는다. S급 헌터가 되자마자 난 부자였으니까.
- 포항에서 S급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현재 모든 S급 헌터의 비상소집이 발령되었지만 해외 출장 중인 헌터가 많아…….
이제는 상황극인가. 이 질문들은 내 트라우마를 전부 터치하려고 마음먹은 모양이다. 어째 정말 내가 그 상황이라도 겪고 있는 듯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 당시처럼 열이 났고,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냥 하루만 쉬고 싶었다. 그게 내게 얼마나 부채감을 줬는지 아는데도, 막상 또 그 상황이 오니까 하기가 싫었다. 회귀하면 다 바뀐다는 건 어쩌면 거짓말이 아닌지.
- 아, 더럽게 하기 싫네.
내 질문기에는 이런 말들이 입력되고 있을 터였다. 정말 몸을 움직이려니 너무 무거웠다. 물 먹은 솜이 된 기분이다.
난 다른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영혼을 스캔한다고 치면 내가 그때 그 행동 그대로 해야 되는 게 아닐는지. 아니, 그건 전혀 상관없다. 이런 거 하나로 얼굴이 바뀌고 그런 건 아니겠지. 어쨌든 나는 나다.
변한 것도 나고, 난 오히려 변한 내가 마음에 든다. 어떤 선택이 정답일까. 지금 내 마음을 따라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 옳지. 잘했어.
질문기가 아닌데? 어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내 상황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 *
도대체, 이 질문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칸나는 지겨웠다. 자신은 거짓말도 하지 못했다. 속과 겉이 뒤집힌 느낌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건 그녀의 정체성 자체를 뒤집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본인이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귀족의 여식으로서 살며, 온갖 욕망들이 억제된 채로 살았고 그것이 진리인 줄 알고 살았다.
드러내는 것보다는 감추는 게 미덕이었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발현하지 못했다. 그건 그녀의 오래전부터 학습된 천성이었다.
- 난 안 그래!
뒤늦게 칸나가 수정을 요청해도 질문기는 답이 없이 다음 상황으로 그녀를 이끌고 갔다. 점점 그녀는 그녀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이고 거짓말쟁이인지.
어째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무너지는 걸 느꼈다. 처음부터, 그녀는 거짓말로 이루어진 사람인 것이다.
- 칸나, 넌 나를 따라서 기사가 되어라. 그게 귀족의 명예니까.
- 싫은데요?
과거의 행동과 자신의 생각은 완전히 반대였다. 분명 저 상황에서 자신은 응당 그래야 했으며, 자신도 그럴 생각이라고 했었다. 아버지 칼 카라모프의 당황스러운 모습과 함께 상황이 사라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일 당황스러운 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계속 된 질문 속에서 칸나는 느꼈다, 지금 자신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그녀는 언젠가부터 에퍼리와 아이리와 말을 잘 섞지 않았다. 그건 자신 나름의 배려였다.
그저 자신을 자책하면서 넘어가려고 했다. 그냥, 자신이 때를 놓친 것이려니 하면서. 하나 그건 지금 생각해 보면 질투를 키워 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부딪치지 않고 삭이는 마음은 앙금으로 남았고, 그건 점점 자신의 머리를 좀먹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과거를 전부 부정하는 게 애초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음을. 에퍼리와의 못 이루어진 사랑을 후회하면서, 자신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까지 나아간 거다.
- 이제 그만!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고 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 거울 속에는 이미 본인이 아는 자신과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있었다.
* * *
모든 것이 끝났다. 난 마치 취조실에서 몇 달을 취조당한 사람처럼 진이 다 빠져 버렸다. 끝이 났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 서서히 걸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건 칸나였다.
“칸나, 힘들었지?”
나는 뭔가 어색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왜? 많이 힘들었어?”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까이 붙자 저 반대편에서 빛이 보였다. 저기로 나가면 아마 우리는 반원형의 침대로 나아가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빛이 보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난 뭔가 걷기가 어색해져서 칸나의 옆에 잠시 서 있었다. 그때, 칸나의 목소리가 엷게 나왔다.
“내가 공녀님이었으면, 넌 내 손을 잡았겠지?”
“뭐?”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되물음이 나왔다.
“미안하지만, 난 이대로 나갈 수 없어.”
칸나는 내 손을 낚아채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녀를 뿌리치려고 했지만 도무지 뿌리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 거대한 상상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그녀를 뿌리치려는 상상을 하기 싫었다. 그녀에게 나는 친구였으니까. 난 친한 사람한테 상처를 입히기 싫었다.
그런 애매함이 문제가 된 것일까. 내 시야에서 빛이 점점 멀어짐과 동시에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칸나?”
“미안해. 나도 지금 내가 이상한 모습인 거 알아.”
“아니, 안 이상한데.”
내가 본 칸나의 얼굴은 그냥 표정이 좀 어둡긴 했지만 그대로였다. 그녀는 여전히 짧은 백금발에,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얼굴을 내게서 돌리고 숨기려고 했다. 그렇다고 가려지지도 않는 것을.
“이렇게 나가서는 안 돼.”
“왜?”
“지금 난 흉측해.”
그녀는 점점 날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습해지고 축축한 느낌이 난다. 우리는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놀랍게도 바로 마리나였다. 칸나는 마리나를 무시하고 깊은 곳으로 가려 했지만, 마리나는 우리를 강하게 묶어 놨다.
“오랜만이네?”
마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놓으시죠.”
“아니, 안 되지. 지금 내 계획의 마지막인걸. 지금 이렇게 시답잖은 사랑놀음을 할 때가 아니라고.”
마리나와 칸나가 갑자기 신경전을 벌였다. 마리나는 이곳에서 괜히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라는 듯 나와 칸나를 간단하게 떨어뜨려 놓았다.
“자, 너는 가. 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마리나가 칸나의 손을 잡았다. 칸나는 마리나의 손을 떼어 내려고 온 힘을 썼지만 안 되는 듯했다.
“갑자기 나와서 무슨 짓이야?”
“오랜만이라고 인사도 안 하네.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난다고 했잖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그녀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네가 칸나를 구하면 똑같은 과거를 반복하는 거야.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이런 조연들까지 다 붙들고 가기에는 너무 급박하다니까? 지금 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오랜만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난 알 수 있었다. 아까 영혼일 때 내게 조언을 해 준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나타날 기회를 살폈던 것 같다.
“어쨌든, 얘는 버리고 가. 별로 도움도 안 돼.”
나는 졸지에 빈손이 되었다. 저기 위를 바라보니 빛이 점처럼 보였다. 저기로 가면 아마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
“칸나는 어떻게 하게?”
“그건 네 알 바가 아니고. 여기 안 보이니? 지금 여기 있는 칸나는 네가 아는 칸나가 아니야. 완전히 이상하게 생겼잖아.”
마리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칸나의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없었다. 하나 칸나는 마리나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내게서 돌리고 필사적으로 얼굴을 안 내비치려고 했다.
“네가 지금 안 나가면 네가 사랑하는 아이리도 잃고, 세계도 잃고, 다 잃게 될 거야. 난 또 재미없는 회귀를 하고 연극을 해야겠지.”
마리나의 말에 난 멈칫했다.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체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미안하지만, 나는 마리나를 믿고 있다. 마리나는 분명히 말했다, 모든 이의 행복을 바란다고.
근데 지금 마리나의 행동은, 전혀 칸나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다.
마리나는 바로 칸나를 더 아래쪽으로 끌고 갔다. 난 무의식적으로 칸나의 반대편 손을 붙잡았다.
“너, 이거 실수하는 건데.”
어쩌면 이게 마지막 영혼의 테스트가 아닐까. 그렇다면 난 더욱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야 하리라. 난 적어도 마리나가 거짓말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믿음이, 칸나를 붙잡은 손의 힘을 더 강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