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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41화 (141/150)

141화 분노 (2)

어쩔 때는 살상용으로 제작된 검보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식칼, 곡괭이, 호미 따위가 더 스산하게 보인다.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과의 거리감이 순식간에 좁혀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폭탄 같은 날붙이를 가슴속에 품고 있었고, 그것의 격발은 그다지 정교한 트리거를 요하지도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일상적인 말다툼이었던 것 같다.

상인과 손님의 언쟁이었다. 그냥 이 물건이 저번에는 쌌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비싸냐는 식의 질문이었는데 그에 주인장이 칼을 빼어 든 것이다.

“저, 저게 뭐 하는 짓이야?”

“가서 막아!”

당연히 아이리와 채린이는 놀랐다. 그녀들이 무작정 뛰어가니 나도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 때문에 이러시오?”

우리가 그 상인과 손님의 주변을 둘러싸자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되물었다.

“우리끼리의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가시오. 실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아니, 지금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잖아요?”

“그게 뭐 어떻단 말이오? 나도 칼이 있는데.”

손님 역시 당연하게도 주머니칼을 포켓에서 꺼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 무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그건 상인과 손님의 날붙이를 구경하는 게 아닌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구경거리가 된다 함은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을 때일 것이다. 지금 그들에게 이런 날붙이는 일상이었고, 이를 말리는 우리는 일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장난해요? 어서 날붙이 내려놔요!”

“싫다면 어쩔 거요?”

아이리와 사람들의 무의미한 말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 실랑이는 내가 볼 때는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들은 여신에게 무언가를 조종당한 사람들이니까.

결국 아이리는 칼을 빼어 상인과 손님의 중간을 막아섰다. 아이리도 귀족이니만큼 이런 평민 두 명을 상대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리의 발도술만을 보고 바로 검을 내려놓았다.

“나 원 참, 별 어이없는 사람을 다 보는군.”

“아, 거참. 내리면 되지 않소.”

아이리의 매서운 눈빛에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칼을 집어넣었다. 손님은 오히려 상인보다 아이리를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손님은 그렇게 칼을 집어넣고 도망갔다. 상인은 그다지 감사해 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때, 저 반대편 길거리에서 흉측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이 날카로운 쇠붙이에 깊숙하게 파묻히는 소리, 피가 새어 나오면서 울려 퍼지는 몸의 비명과 신음성. 신기하게도 내가 막 바깥으로 나오면서 느낀 일상의 공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일상 속에 무덤덤하게 그런 흉측한 소리가 끼어든 것이다. 우리는 전부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난 적어도 헌터니까, 살기에 민감하다. 그런 눈빛과 느낌이 있다. 사람을 죽이려면 그만한 독기가 필요한데, 그 독기가 사람의 온몸 구멍 뚫린 곳에서 줄줄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많이 본 나니까 가능한 일이다.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막 살인을 저지른 그 사람은 마치 생선 토막에 칼을 들이대듯, 벌레의 날개를 떼어 내듯 천진하면서 순수하기까지 했다.

“이런, 미친 새끼!”

이번에도 먼저 달려든 건 아이리였다. 그녀는 득달같이 그 왜소한 남성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미 앞에 엎어진 중년 남성은 피가래를 몇 번 끓다가 절명하고 말았다.

“뭐가요?”

그 남자는 뭐가 잘못되었냐는 듯 아이리에게 물었다. 똑같다. 지금 우리는 다시 똑같은 상황에 있다. 같은 상황의 반복이고 같은 충돌이다.

“왜 제 멱살을 잡으시는 겁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리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건 빠르지도 않고 능숙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리는 하마터면 그 칼을 못 피할 뻔했다. 그야말로, 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칼을 예의 주시하다가 바로 손목을 쳐 버렸다. 내가 손목으로 칼을 치니 그는 두려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마치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나에게 항변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잘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지금 이 사람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는데?”

“저에게 욕을 했습니다.”

“무슨 욕을 했기에 그렇게 사람을 죽이냐?”

“나가서 일을 좀 하라고, 백수 새끼냐는 말을 했죠.”

나는 그 말에 흠칫했다. 아이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도 그 말을 이해했고 그녀도 그 말을 이해했다. 다만 차이는, 나는 머리로 이해했지만 그녀는 감각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자는 너희 아버지군?”

“맞아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는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눈이었다.

그러면서도 나한테 목숨을 비는 게 참 이율배반적이라고 느꼈는데, 그건 오롯이 나만의 감상이다. 언제나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니까. 그의 생각에 비추어 보면 단순하다. 아버지가 나를 짜증 나게 했고, 나는 그를 죽였다. 하나 내가 목숨을 잃는 건 또 다른 문제.

대체 어떤 심리적인 장치를 건드리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나도 비슷한 힘을 조종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대단히 놀라웠다. 여신은 인간에 대해 통찰이 깊은 사람이 아닐까 슬쩍 생각해 볼 정도였다.

“정신 차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일단 그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그녀 역시 같은 존속 살해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트라우마가 자극된 게 분명했다.

여신이 이런 아이리의 트라우마를 유도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여신은 그저 인간의 큰 레이아웃을 잠깐 바꿔 놓은 것뿐이었다.

하나, 그것이 아이리의 트라우마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은 꽤나 비극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꿈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

아동 학대와 다름없던 일상과 끝없는 고뇌, 자책감. 그녀는 그걸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살인을 정당화해 주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건 아주 작은 공통점이 보여도 그걸 동일시할 정도로 논리적인 회로가 약한 동물이다. 이를테면 이성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점에서 아이리는 이성의 훈련이 덜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성의 훈련은 보통 끔찍한 경험을 동반해야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이리, 정신 차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어 보였다. 트라우마는 마음속에 깊이 남은 앙금과도 같았다. 아무리 물을 가득 채우고 헹궈서 쏟아 내려 해도 밑바닥에 조금은 남기 마련이었다.

내가 아이리를 달래는 동안 왜소한 청년은 도망갔다. 난 일부러 도망가게 놔두었다. 내가 볼 때는 살인자라고 하기도 뭐했다. 굳이 말하자면 여신이 살인을 저지른 거겠지. 다만, 그의 손을 빌렸을 뿐이다.

“…우리는 거대한 존재와 싸우고 있구나.”

아이리 역시 여신이 무언가를 했다는 건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현실과의 괴리가 있었을 뿐.

“나도 저렇게 괴물같이 보였을까?”

“아니.”

“넌 안 봤잖아.”

“안 봐도 알아. 그리고 꿈에서 봤어.”

나는 확신했다. 아이리는 그저 내가 위로를 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곧 네가 저들과 다름을 알 거야.”

일단 그렇게 위로해 줄 수밖에. 아이리는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곧 내 가슴팍이 축축해졌다. 여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그저 그 빙산의 일각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최대의 피해자는 아까 아버지를 살해한 왜소한 체격의 남자일 것이다. 그가 평소에 효자였는지 아니면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를 평소에 때리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죽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아아아악!”

곧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은 사람도 억울해하지 않았고, 죽인 사람은 죄책감도 없었다. 오히려 죽인 사람이 더 두려운 표정이었다.

대다수가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 지옥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어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 살의를 내가 지워 주지는 못하니까.

난 당장 움직여야 할 필요를 느꼈다. 여신은 옌시를 약간 도외시하고 있다. 그녀의 힘이라는 스킬을 주지도 않은 곳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 지경인데, 제국의 대륙은 어떻게 되고 있을지 불 보듯 뻔할 지경이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말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칼춤은 누가 먼저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가 칼을 들었고, 피를 묻은 사람을 경계했으며, 누군가가 칼을 집어넣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상황에서 칼을 집어넣을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돼요. 다른 곳도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을 놔두고?”

아이리가 올려다보았다. 그녀도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온당치 않다는 건 알 것이다.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전부 감금해서 손발을 묶어 놓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여기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지금 칼을 빼 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더욱 이 지옥에 장작을 넣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지금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이미 난 인간으로 되돌아왔고, 영혼을 만드는 곳에서 내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에 간섭할 힘은 없었고, 설사 있었다고 한들 여신이 악의적으로 조작한 힘을 내 힘으로 바꾸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하지만 언젠가는 구할 겁니다.”

나는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 나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울부짖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분노. 그들의 울화처럼 쌓인 분노를 직시하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고, 그 논리는 곧 남에게도 적용된다.

남은 나를 쉽사리 죽일 수 있고, 나는 그에 대해서 방어를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미 거리는 피 칠갑이 되었다. 다른 도시라고 다를까. 지금 내가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더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큰 곳으로 향해야 돼요.”

이들의 목숨 역시 중요하지만, 지금 이 세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난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여기서 제국까지 달린다면 수없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야 혼자 빨리 달릴 수 있어도, 이들을 놔두지는 못한다.

이들도 이 광기 아닌 광기에 잡아먹힐 수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그리고 같이 가야 했다.

“알레프!”

난 바로 다른 생각을 꺼냈다.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들이 내 머리 안에서 차근차근 조립된다.

“네?”

“지금 당장 가토스 황자, 아니 알파튜러스 불러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사람을 동물 취급 하는 것에게, 한 사람의 역사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려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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