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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143화 (143/150)

143화 분노 (4)

한계속도를 벗어난 비행은 몸으로 맞는 것이 아닌 정신으로 하는 느린 유영처럼 느껴진다. 확실히, 저 밑에서는 인간의 이상한 마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과 마물의 공통점과 그 본질이 어디서 나왔는지 익히 알았던 터, 그것을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신에게 인구란 숫자에 불과했고, 이런 식으로 조절해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이리라.

“인간이 마물이 된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음, 충분히.”

나는 그것을 보았으니까. 아직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사실일 거다. 그들에게는 모욕적인 사실일 수도 있겠지.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할까? 난 인간과 마물이 공존할 수 있고 그게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르다.

마물을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배척해야 될 상대라고 생각하니까. 어쩌면 여신은 여기서도 교묘한 편가르기를 시전한 것이다. 확실히, 여신은 가뜩이나 불완전한 인간성을 더 훼손해 놓았다는 거다.

“여신은 대체 무슨 존재야?”

“미친년… 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어.”

그것보다 걱정되는 건 제국이었다. 제국과 리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리얀은 마리나의 간단한 암시로도 나를 사랑했다. 아직 그 암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게 의문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통한다는 점에서는 그녀도 안심하지 못했다.

반대로 그녀가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빨리 가서 정리를 해야 했다.

다만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운 건, 막 합류한 스프리 일당이었다. 그들 역시 어떤 수련 과정을 거친 건지 여신의 힘에 저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새를 붙여서 스프리의 옆으로 다가갔다.

“스프리.”

“아, 네. 말씀하십시오.”

“저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에퍼리 님을 믿는 신실한 신자들입니다.”

“…제가 종교예요?”

“종교라고 하기는 뭐하고, 행동 강령을 공유했죠.”

“무슨 행동 강령이요?”

내 물음에 스프리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자연스러운 동침이죠. 우리는 서로 똘똘 뭉쳐야 했습니다. 매일 밤 상대를 바꿔 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애무해 주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살폈습니다. 그 파트너가 다음 날 다른 사람에게 애무를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니까요.”

스프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을 쭉 둘러보니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갈래에 걸쳐서! 하나의 공동체에 집약된 사랑? 이런 사랑의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가족, 연인, 친구. 우리는 그것을 한데 모은 새로운 단위입니다.”

“아, 네.”

왠지 더 말을 걸면 피곤해질 것 같아서 나는 새를 잠깐 옆으로 옮겼다. 아이리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조금 민망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무슨 사이비 교주도 아니고, 이상한 행동 강령을 만들고 있어. 뭐, 그렇게 해서 그들이 편하다면 됐다. 내가 간섭할 바는 아니었다.

“모든 인간이 마물화가 되는 거야?”

아이리는 빠르게 지나가는 땅을 볼 수 없으니 내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가토스의 말대로 여신에게 무언가 기준이 있는 것인지, 마물이 된 인간도 있었고 아닌 인간도 있었다.

“…그래.”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아이리가 뭔가 석연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끊은 느낌. 그녀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내게 실토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나 해서.”

나는 그 말에 잠깐 고민했다. 내가 침묵을 한 탓인지 아이리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미안해.”

“아니야.”

그녀가 왜 머뭇거렸는지 알겠다. 나를 배려해 준 것이겠지. 그녀 역시 나만큼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고민하고 있어.”

“이미 마물이 됐는데 어떻게?”

사실 나도 고민 중이었다. 딱히 유별난 근거는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마물과 인간이 원래는 통합된 존재라는 것뿐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라면 어처구니없는 기적을 기대해도 괜찮잖아.”

“아무튼 준비한 건 없다는 뜻?”

“뭐, 그렇다면 그런데…….”

아이리가 허무하다는 듯이 웃었다. 뭐 내가 엄청 준비가 되어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믿는 구석은 없다. 엄청 불안하다, 내가 지금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괜찮아. 난 널 믿으니까.”

“그러면 됐고.”

적어도 그녀나 나나 믿는 건 똑같았다. 결국 사람이라는 거겠지. 살다보면 늘, 언제나 커다란 결론이나 진리는 단순하다는 걸 느낀다. 본질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겠지.

내 정답이 단순하고 초라해 보일 수는 있어도, 결론은 이렇게 나 버렸다. 이 이야기가 종점에 가까워졌다는 증거겠다.

* * *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제국은 옌시보다 개판이었다. 차라리 옌시는 호미나 낫, 칼을 들고 싸웠지, 제국의 사람들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주부들은 가정용으로 사용했을 불과 관련한 스킬을 쓰고 있었고, 남성들은 노동을 위해 단련했던 신체 강화 스킬을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그건 더 비극적인 광경이었다. 힘 조절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스킬을 쥐어짜 내서 사람들을 그야말로 파괴하고 있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비극이라는 건 알겠어.”

새들이 있는 상공까지 건물에 붙은 불의 연기가 올라올 지경이었다. 나는 굳이 그걸 묘사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여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난 아직 이 소요 사태에 대해서 모든 걸 파악한 게 아니었다.

“수도는… 어떻게 됐을까.”

아이리가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수도야말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이니 더 큰 사태가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리얀은 어떻게 되었을지.

그러나 곧 도착한 제국의 수도는 조용했다. 불길도 올라오지 않았다. 새들이 점점 하강했고, 곧 우리는 도시의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벽?”

먼저 아이리가 꺼낸 단어는 그것이었다. 그렇다. 벽. 모든 거리거리마다 높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 하늘에서 보니 마치 거대한 미로를 연상하게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리얀.”

난 간단하게 결론을 도출했다.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리얀이 이런 미로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바로 황궁에서 내렸다.

“황궁이 쑥대밭이 되었구나.”

우리가 전부 내리고 가토스가 한 말이었다. 예쁘게 정리된 정원들은 모두 흐트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사람들의 시체가 굴러다녔다. 대다수가 근위병, 시녀들이었다.

가토스는 멍하니 그걸 돌아보았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이 이렇게 엉망이 되니 회한이 드는 모양이었다.

“일단 우리는 상공에 있겠다. 알아서 부르도록 해라.”

“아, 네.”

가토스는 날개를 활짝 펴고 새들과 함께 날아갔다. 채린이가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우리는 리얀을 찾아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것이었다. 또 내가 볼 때는 가티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해 보였다. 내가 아는 확실한 예언가였으니까.

우리는 조용히 황궁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황궁 문을 수호하는 문지기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없었다. 깨진 창문, 불타서 까맣게 된 건물의 벽들만이 보였다.

“엄청 화려하네. 그, 옛날 문화유산 보는 것 같다.”

채린이는 성을 돌아보면서 얘기했다. 그때, 복도에서 누군가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뛰쳐나왔다. 하지만 채린이는 자연스럽게 그것의 팔을 꺾어 메친 다음 무릎으로 뒷목을 눌렀다. S급 헌터다운 빠른 움직임이었다.

낑낑 소리를 내며 제압당한 그건 마물이었다. 내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채린이는 무릎에 힘을 줘 그것의 목을 부러뜨려 버렸다. 목이 움푹해진 마물이 그제야 버둥거리던 팔다리를 멈췄다.

“무슨 좀비랜드야?”

그녀는 손을 툭툭 턴 뒤 팔을 펴서 일어났다. 나도 마물들을 이 세계에 와서 많이 죽였지만, 뭔가 저들의 본질을 알고 나서 죽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라 살짝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빠른 판단으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채린이에게 뭐라고 할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우리는 계속 리얀을 찾았다. 난 계속 생명의 반응을 찾아 나갔다. 황실은 넓은 만큼 사람도 많았다. 마물이 된 사람도 있었고,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최대한 침착하게 처리했다.

우리에게 덤벼드는 사람들은 그래도 차라리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불능 상태로 만들어놓을 수 있었지만, 마물들은 그렇지 못했다. 마물들은 자유로운 형태였다. 팔과 다리가 없으면 혀를 길게 빼어 창의 형태를 만들기도 했으니. 결국 나는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집무실로 가야겠지?”

“그래.”

아이리의 말대로 우리는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집무실은 비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황제의, 리얀 개인의 방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낭자한 피와 두 구의 시체만 있었다. 아마도 서로 동귀어진을 한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론 황제의 비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 같았다. 아이리도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인지 얼굴을 돌렸다.

혹시 리얀과 가티스도 잘못된 건 아닐까. 난 가티스의 방으로 갔다.

“설마, 잘못된 건 아니겠지?”

아이리가 말했다. 그녀에겐 소꿉친구와도 같으니. 나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티스의 방문을 열자 피 냄새가 진하게 났다. 난 순식간에 불안을 넘어 공포에 사로잡혔다.

황제의 방은 비서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도 됐지, 가티스의 방은 드나들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티스가 황제와 가테스가 죽고 난 이후로 내성적인 성격으로 방 안에 갇히게 됐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피의 냄새는 누구 것인지.

무엇보다 빠르게 확인해야 할 사항이었지만, 내 발은 느리게도 움직였다. 인간의 인식이란 참으로 웃긴 것이었다. 내가 찾지 않는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명확한 결과를 두고 ‘생존 가능성’에 기대려고 하자 내 나약함이 실감이 났다.

“가티스?”

난 가티스를 불렀다. 가티스의 방은 방 안에 방 하나가 더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채린이가 그냥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래, 얜 원래 이런 성격이었지.

내 눈앞에 보인 건, 리얀과 가티스가 서로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양새였다. 문 앞에는 심장이 칼에 찔린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에퍼리.”

가티스와 리얀은 주저앉아 있었다. 가티스는 꽤 무심한 표정이었고, 리얀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리얀은 손과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문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인 모양이었다. 아이리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달려가서 리얀을 안아 주었다. 그녀의 몸에 피가 묻건 말건. 비극적인 상황이었음에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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