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레벨이 갑이다
2화
‘시팔. 왜 하필 지금에 와서…….’
뉴 월드.
처음 들어 보는 낯선 이름이지만 시스템의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오픈 이벤트, 몬스터, 보상 등의 말을 종합해 보면 뉴 월드라는 게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클로즈 베타에서 오픈 베타로 넘어가면서 게임 이름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어나더 월드라는 이름은 치명적인 부작용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다.
어떤 기업이 그런 걸 안고 원래의 이름을 사용할까.
하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좋은 건 취하는 게 기업으로서도 이익이었다.
이서우는 ‘오픈’이라는 말에서 이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될 거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순간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젠장…….”
이서우가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은빛 검을 조금 더 늦게 제작했더라면.
조금만 더 인생을 즐기며 버텼더라면.
동료 중 1명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하필, 죽는 순간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다니.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꼬일 수 있단 말인가.
이서우의 눈빛에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 * *
“헉!”
이서우는 헛바람을 삼키며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된 거지? 난 분명 죽었는데…….’
몸이 싸늘하게 식어 뻣뻣해지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심장박동 수가 점점 느려지면서 서서히 생명력이 떨어지는 그 기분은 다시 떠올려도 끔찍했다.
목숨이 끊어질 때의 그 느낌이 너무도 생생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설마 죽으면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던 그 이론이 맞는 걸까.
아니다. 분명 선명하게 죽음을 느꼈다.
검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의 그 감각.
뱀파이어 로드의 손톱이 몸에 닿는 순간 경험했던 좌절.
손톱이 깊숙이 박히면서 타들어 가는 고통과 함께 뇌를 마비시켜 버린 공포.
목이 잘리면서 생기를 잃어 가는 그 더러운 기분.
그 모든 것이 너무 진짜 같아서 오히려 지금이 꿈을 꾸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윽.”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 무기력해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집단 구타라도 당한 듯 온몸이 뻐근했다.
“이게 대체…….”
이서우는 자신에게 달린 이상한 줄들과 삐삐거리는 소리를 뒤늦게 인지했다.
죽음의 공포로 오감이 마비되었다가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감각이 돌아오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어머, 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어요!”
이서우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가 호들갑을 떨며 의사를 불렀다.
곧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이서우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청각과 시각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환자분, 괜찮습니까?”
“괘……”
“5년 만에 깨어난 거니 억지로 말할 필요 없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
이서우는 5년 만에 깨어났다는 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내가 5년 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아!’
테스터 때, 어나더 월드는 현실과 게임 시간이 4배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정신을 차려 보려 했지만, 지금은 당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뉴 월드 안에서는 무적이라고 할 정도로 건강했었기에 이서우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5년 동안 식물인간이었다니…….
“이서우 씨!”
의사가 목소리를 조금 더 높이자 이서우는 살짝 놀라 몸이 움찔했다.
이서우가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의사는 동공 반응부터 손톱을 누르는 등 몇 가지 확인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이서우는 마치 전원을 빼 버린 로봇처럼 천장을 응시한 채 멍하게 있었다.
의사는 몸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과 몇 가지 당부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동안 답답하셨죠. 가족에게는 알렸으니 곧 오실 거예요.”
‘아, 어머니, 아버지…….’
다정하게 말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이서우는 애써 정신을 차렸다.
혼란스러워한다고 모든 일이 명확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 했다.
간호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부르려는데, 바쁜지 몇 가지 체크만 하고 나갔다.
‘5년 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겠구나. 어머니, 아버지. 어서 빨리 몸을 회복해서 제가 더 효도할게요.’
이서우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애써 참았다.
괜히 슬픈 모습을 하고 있으면 부모님이 더 괴로워하실까 봐 얼른 감정을 조절했다.
잠시 후, 복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그리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아이고, 서우야! 내 새끼, 억지로 말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깨어났으니 됐다. 깨어났으니 됐어.”
한정옥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 이갑수는 조용히 말없이 이서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잘 견뎌 줘서 고맙다, 우리 아들. 장하다, 장해.”
‘어머니, 아버지. 못난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으셨죠? 죄송해요.’
이갑수는 평소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감정의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서우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는 행동과 그의 목소리에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서우는 힘겹게 손을 움직여 한정옥의 손등에 포개었다.
“서, 서우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한정옥은 아들의 손길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따스한 아들의 눈을 바라보니 그녀도 모르게 울컥했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다고 그러세요. 오히려 제가 미안하죠. 5년 동안 마음고생하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한정옥은 미소까지 띤 아들의 모습에 또다시 흐느껴 울었다.
병원비는 글로벌사의 새 대표가 도의적으로 당연히 책임지겠다고 해서 문제가 없었다.
이서우에게 들어가는 돈은 간병인을 쓰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1년에 4천만 원 이상이 들어가다 보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절약하면 감당할 정도는 되었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이 더 힘들었다.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한다기에 이갑수는 아들을 참으로 대견스럽게 여겼다.
일과 공부를 다 해내려는 의지를 불태우며 노력하는 아들이 어찌 기껍지 않을까.
하지만 아들이 임상 실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글로벌사는 뇌 관련 실험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했다.
자신들은 단지 관련 기관에 의뢰를 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갑수는 그런 글로벌사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뇌를 속이는 부분이다. 뇌에 관한 문제는 게임 개발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없는 실험이어서 뇌 연구 기관과 함께 테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글로벌사는 돕는 입장이지 테스트를 주도적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갑수는 그게 말이 되냐며 글로벌사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이갑수는 돈을 많이 준다며 달콤한 속삭임으로 실험을 자행한 글로벌사에 크게 분노했다.
결국 이갑수는 아들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글로벌사와 법정 다툼까지 벌이게 되었다.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서 도저히 손만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공룡을 상대로는 싸우는 게 아니라면서 말렸다.
하지만 이갑수와 한정옥은 끝까지 싸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법정 다툼을 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갑수가 명예퇴직을 당했다.
비싼 변호사 선임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아들의 간병은 한정옥이 도맡아 하면 되지만, 시간이 길어지니 변호사를 쓰는 데 드는 비용이 엄청났다.
그때부터 집을 담보로 빚을 지기 시작했다.
공기만 마셔도 한 달에 빠져나가는 돈이 1천만 원이 넘었다.
중산층의 끝자락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어 재산이 그리 많지 않아, 5년을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집은 넘어갔고, 월 20만 원의 다 무너져 가는 단칸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병원비는 이미 다 지불되었으니 재활 훈련까지 열심히 받아라.”
“아버지…….”
아들이 깨어난 것에 환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서우는 아버지의 얼굴에 언뜻 드러난 그림자를 보았다.
이갑수의 축 처진 어깨와 야윈 얼굴이 이서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5년 동안 병원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이서우는 부모님이 자신의 병원비 때문에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병원비가 어디서 났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갑수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가장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그저 하루빨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길이었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를 식물인간으로 보냈지만, 게임에서는 많은 경험을 했다.
그 경험들이 지금은 침묵하는 게 낫다고 말하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났다.
재활 훈련을 통해 무던히 노력한 결과 근육이 어느 정도 붙어서 이제는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걸음걸이가 어색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재활 훈련을 하면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삐쩍 말라 버린 자신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다.
대부분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바빴을 텐데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친구들이 이서우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으로 이서우는 더욱 재활 훈련에 매진했고, 3개월 만에 드디어 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퇴원 날이지만 이갑수는 일을 쉴 수가 없어 오지 못했다.
한정옥은 아들과 함께 택시에 올랐다.
부축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혼자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아들은 극구 사양했다.
자율 주행이 도입되면서 자격이 부여되지 않은 사람은 직접 운전할 수 없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해킹과 관련해서 말이 많지만 3중, 4중에 걸친 보호로 해킹 염려는 크게 없었다.
운전자가 없으니 탑승자는 편했다.
넉넉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좌석 조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서우야, 편하게 누워 있어.”
“아니에요. 허리에 힘을 키우려면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게 좋아요. 그나저나 많이 변했네요.”
“겉보기만 그렇지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으니 금세 적응할 수 있을 거야.”
“네, 그래야죠.”
이서우가 멀쩡할 때만 해도 자율 주행은 지금처럼 완벽하게 구현이 되지 않고 과도기 단계였다.
다른 부분은 아직 경험을 하지 않아 얼마나 변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율 주행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역시 이사를 했구나.’
이서우는 가는 방향이 달라 한정옥의 옆모습을 힐끗 보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재활 훈련 동안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집으로 돌아와서 알아보기로 하고 부모님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회복에만 전념한 것이었다.
-시대를 바꾼 가상현실 게임, 뉴 월드! 오픈 세 달 만에 전 세계 동시 접속자 수 7천만 달성! 그야말로 센세이션입니다. 아직도 뉴 월드를 안 해 보셨다고요? 당장 접속 베드를 주문하세요! 당신도 영웅이,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데 초고층 빌딩들에 있는 광고 스크린에 하나의 영상이 떴다.
처음에는 이름도 모를 남자가 떠들어 대더니 화려한 복장을 한 다섯이 보였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긴 대검을 뻗었다.
검 끝이 향하는 곳에 이서우도 익히 알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저건, 뱀파이어 로드잖아.’
확실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름을 바꾸고 부작용을 보완한 뒤 오픈을 한 것이다.
다섯의 무리가 뱀파이어 로드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힘겹게 승리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모습이 화려하게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이서우가 있던 지역에서는 최강의 몬스터였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정도로 매달렸으니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행인들과 자율 주행에 몸을 맡긴 탑승자들은 그 영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뉴 월드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유저 간에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것도 가능! 플레이 영상을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려 중계료를 받는 것도 가능! 수많은 정보들이 돈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수천만 원을 넘어 수억대의 수익을 거둔 유저들 역시 한둘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시대에 뒤처지실 겁니까? 당장 접속하세요!
‘저 게임이 저렇게나 돈이 된다고?’
영상에 나오는 아이템이 있으면 뱀파이어 로드는 이서우 혼자서도 훨씬 쉽고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실패한 것은 100레벨 콘텐츠밖에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이서우가 곧 고개를 흔들었다.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멍청한 놈, 그렇게 당해 놓고도 또!’
재활 훈련을 하면서 어나더 월드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서우가 당한 일이 게임 때문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게임과 연동해서 실험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게임 개발 뒤에 그런 엄청난 것을 숨기고 실험을 했다니. 그런 줄 알았으면 그때 사인도 안 했을 텐데.’
뇌 관련 실험을 주도하던 박사의 자백까지 있어, 자신이 왜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당시 뇌 관련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을 하면서 이것저것 동의서를 지나치게 많이 작성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을 어기면 큰 피해를 볼 거라며 강조하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당시에는 회사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걸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 했다니.
‘그렇다고 그와 관련된 일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어.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한 개인이 그 공룡 같은 기업의 공격을 받고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5년 만에 자신이 깨어나서 즐거워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또다시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택시는 곧 멈췄다.
한정옥은 부끄러운지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 쓰러져 가는 주택 건물로 들어갔다.
‘아아.’
이서우는 말로만 듣던 달동네를 보며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지어진 지 30년은 된 듯한 낡은 집을 보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우야?”
“네? 아, 죄송해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부축을 한다고 해도 고집을 피우더니.”
“괜찮아요. 잠시 쉬니까 다시 힘이 생기네요. 얼른 들어가세요.”
“그래.”
크지는 않지만 25평에 살면서는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10평도 채 되지 않는 집으로 들어가니 답답함이 느껴졌다.
집이 좁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5년 동안 마음고생을 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다.
“피곤할 테니 방에서 좀 쉬어라.”
“네.”
“식탁에 밥 있으니 먹고. 폰 살려서 네 방에 뒀으니 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하렴. 엄마는 일하러 가 봐야겠다.”
“……네.”
거실이라고 보기도 힘든 작은 공간에 식탁 하나가 놓여 있으니 꽉 찬 느낌이었다.
거실 내부를 힐끗 보던 이서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작았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아직 그는 부모님이 쉬는 날 없이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일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들이 걱정할까 봐 재활 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서우는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침대 생활을 해 왔으니 불편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하지.’
아직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니 일을 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몸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때, 이서우의 방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세요?”
다시 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휴대폰이다.
그런데 전화가 오다니…….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어둡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였다.
-이서우 씨죠? 이미 다 알고 전화했으니 아니라는 말은 안 통합니다.
“그래서요?”
-당신 부모님과는 말이 안 통해서 말입니다.
“무슨 말이죠?”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이서우의 목소리가 살짝 굳어졌다.
-부모님이 당신 때문에 돈을 아주 많이 빌렸어요. 그러니 당신에게도 갚을 의무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빌렸는지 모르지만 그 돈 제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런 의지,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랬다면 당신 부모님들이 이자를 갚는 데 급급했을까요?
“…….”
굳이 묻지 않아도, 말투만으로 전화를 건 상대가 대부업체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서우는 부모님이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곳까지 손을 뻗었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무 그렇게 낙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서로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당신이 글로벌사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사 보상금을 신청하세요. 그러면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돈을 받으려면 채무자에 대한 정보는 필수다.
언론에 보도되기로는 식물인간 사건이 글로벌사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기업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글로벌사가 아무 잘못도 없다면 식물인간이 된 테스터에게 그 비싼 병원비를 주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정확한 정보가 아닌, 추측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이서우에게 돈만 받으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주 강력한 비밀 엄수 조항에 사인을 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이서우는 계속해서 꼭 갚겠다는 말을 반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서우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가 집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힐끗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좁고 볼품이 없었다.
유난히 깔끔하고, 벌레만 봐도 기겁하던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어하셨을까?
재활 훈련 동안 어나더 월드에 대한 정보를 살피면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빚에 대한 것은 전혀 몰랐다.
이를 악물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급히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뉴 월드의 안정성.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 꼼꼼하게 살피며 뉴 월드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알아보았다.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 속에서 20년을 갇혀 지냈으니 그의 신중함은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한데, 몇 시간 동안 검색을 했지만 결과는 이서우가 우려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클로즈 베타부터 오픈 세 달 동안 그 어떤 사고도 벌어지지 않았고, 각국 정부로부터 완벽한 검증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나더 월드 시절을 경험하고 더욱 완벽해졌다.
‘정말 완벽하게 해냈구나.’
과거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지금은 3년만 지나도 세상이 달라진다.
5년의 세월이니, 어나더 월드가 더 완벽하게 바뀐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서우는 다시 한 번 자신 때문에 몰락한 집안을 생각해 봤다.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대출금을 다 갚고 돈 모으는 재미에 한창 빠져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노후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제는 빚에 허덕이는 삶이 되고 말았다.
‘무엇도 가릴 때가 아니야. 나에게 남은 건,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