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레벨이 갑이다
3화
20년 동안 갇혀 지냈던 공포 때문에 많이 망설였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당연히 할 수 없고, 간단한 일도 6개월이 지나야 가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나 누워서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택시를 타고 오면서 봤던 뉴 월드였다.
결심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조사는 필수였다.
정보를 얻기 가장 쉬운 방법은 인터넷이다.
이제 막 접속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서우야, 짜식, 집에 도착했구나.
“아, 민수냐?”
-그래, 인마. 형님이시다.
“형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근데 어떻게 알았냐?”
-어머님이 퇴원 시간 알려 주셨다. 네 전화도 살린다고 하셨고.
“그래? 근데, 뭔 일 있어?”
-우리가 뭔 일 있어야 연락하는 사이냐?
“그건 아니다만.”
-그러지 말고 나와라. 얼굴 좀 보게.
“지금?”
-그래. 오늘 널 위해 이 형님이 반차 썼다.
“반차도 되냐?”
-이래 봬도 복지는 끝내주는 곳이잖냐.
“어디로 가면 돼?”
-내가 지금 그리로 갈 테니 기다려라.
“됐어. 우리가 자주 보던 곳에서 보자.”
-그래, 알았다. 그럼 거기서 보자.
이서우는 전화를 끊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친구에게 자신이 사는 집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아차,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문 안 닫았으려나.”
이서우는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했고, 아직 장사를 한다는 대답을 듣고는 집을 나섰다.
대학 2년 동안 자주 갔던 곳인데, 수제 맥주와 커피를 비롯해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를 함께 파는 곳이었다.
이서우가 도착하니 이미 박민수가 와 있었다.
“데리러 간다니까. 하여튼 고집 하고는.”
“됐고. 시켰냐?”
“그래. 곧 나올 거다.”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음료를 가져왔다.
“요즘 향수에 젖은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이런 곳도 많이 생기더라.”
“그래?”
“그래. 주문부터 제조까지 기계가 하는 곳은 영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도 대면을 안 하니 좋잖아.”
“요즘은 오히려 대면을 하는 게 대세야.”
“하긴 5년이 지났으니 유행이 바뀔 법도 하지.”
이서우는 즐겨 마시던 토피넛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네, 오늘도 뉴 월드에 푹 빠져 계신 유저분들에게 반짝반짝, 반짝이는 멋진 소식을 전해 드릴 설아예요. 다들 뉴 월드 세계에서 즐거운 모험을 하고 계시나요? 오늘은 아주 눈이 번쩍 뜨일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머릿속이 맑아질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벽면에 붙은 스크린에서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너도 뉴 월드 잘 알아?”
“당연하지. 요즘 저거 모르면 간첩이다. 나 같은 직장인에게는 사치지만, 스트레스 받으면 접속 방에 가서 즐기곤 해.”
다시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리면서 화면이 바뀌었다.
5명의 파티가 거대한 몬스터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화려한 영상과 함께 소개되었다.
“이야, 쟤들 기어이 레이드에 성공했구나. 설아 양이 들뜰 만도 하네.”
“설아 양?”
“그래. 뉴 월드 방송으로 유명해진 진행자야. 무명이었다가 뉴 월드 덕분에 엄청나게 뜬 사람이지.”
“뉴 월드가 아주 여럿 먹여 살리나 보구나.”
“그럼. 전문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야. 현금 거래를 막지 않으니 다크 게이머들이 양지로 나오면서 아주 활발하게 거래가 되고 있으니까. 몇 년 안에 나라를 먹여 살릴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야.”
“에이, 그건 좀 오버 아냐?”
“그렇지도 않아. 너 진성이 알지?”
“그 싸가지없는 놈?”
이서우는 배진성의 이름이 나오자 얼굴을 찌푸렸다.
2년 정도의 대학 생활에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동기였다.
“그래. 걔가 아주 그쪽으로 나가면서 재미 좀 보고 있거든. 아마 월 2천만 원은 벌어들일걸.”
“헐, 설마.”
“진짜라니까.”
2033년에도 2천만 원은 상당히 큰돈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스물일곱 살이 쉽게 만질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그럼 너도나도 게임한다고 설칠 텐데?”
“그게 또 그렇지 않아. 진짜 폐인 생활을 해야 해서 쉽지 않아. 현실 세상은 석 달이지만 게임에서는 18개월이나 흐르거든. 하루 접속 시간이 1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게임에서는 사흘이고. 현질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풀로 접속을 해야 겨우 중상 정도의 위치가 돼. 게임에서 그 짓을 18개월이나 한다고 생각해 봐.”
박민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이서우는 ‘해 볼 만한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서우는 어나더 월드 시절과 달리 현실과 게임 시간의 비율이 1 대 4에서 1 대 6으로 늘어난 것이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어차피 취직해 봐야 박봉이잖아.”
“모르는 소리. 요즘은 억 소리 나는 직업이 얼마나 많아졌는데.”
‘억대 연봉을 받는 직업이 아무리 많아져도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진행하는 게 가능성이 높겠어.’
무슨 일이든 결심을 했다고 섣불리 진행하는 사람은 없다. 진짜로 성공하려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망설이기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기회가 왔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면, 도전하는 것이다.
이서우는 박민수에게 여러 정보를 얻으면서 그런 확신이 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안심이 되었다.
“근데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 거냐?”
“왜? 관심 있어?”
“그냥 물어보는 거야.”
“게임이야 뻔하지. 하지만 뉴 월드는 조금 특이하긴 해. 직업군에 대한 설명 정도만 공개가 되어 있어서 모든 정보를 사고팔 수 있어. 특히 던전에 대한 정보는 꽤 돈이 돼. 그 외에는 다른 게임과 비슷하고.”
“정보도 돈이 된다고?”
“그래. 난이도가 어려운 퀘스트를 쉽게 클리어하는 방법 같은 것도 비싼 값에 팔리니까.”
“돈 나올 구멍이 많다는 거네?”
“쉽게 말하자면 그렇지.”
이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 나올 구멍이 많다는 점에서는 환영이었다.
하지만 늦게 시작하는 만큼 자리를 잡기는 더욱 힘들 수도 있었다.
‘나에겐 20년의 경험이 있어. 비록 어나더 월드와는 다른 시스템이겠지만 뱀파이어 로드를 보면 심하게 바뀐 건 아닐 거야. 클베라서 100레벨까지만 플레이했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오랜 경험이 있으니 빠르게 적응할 수 있어.’
“너, 아무래도 수상하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해 보기는 해야지.”
“야……. 아니다. 네 말대로 요즘은 뭐든 다 가상현실과 연관이 있으니까. 심지어는 면접에서도 단골 질문으로 나오니 미리 대비를 해 두긴 해야지.”
민수는 몸도 성하지 않은데 괜찮겠냐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요즘은 가상현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이어서 접속을 해 보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면접에서도 물어봐?”
“그래. 가상현실에 대한 것뿐 아니라 뉴 월드 시스템에 대해서도 물어본다니까.”
“세상 많이 변했네.”
이서우가 취업을 할 때만 해도 게임 회사가 아니라면 면접에서 게임에 대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면서 질문의 내용들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 차라리 같이 접속 방에 가 볼래?”
“접속 방?”
“요즘 뜨는 자영업이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데도, 접속 베드 값이 최하 500만이어서 장사도 잘되고.”
“500만 원이나 해?”
“그것도 가장 저렴한 게 그래. 고급형은 1천만 원이나 하고, 최고급형은 2천만 원, 스페셜형은 3천만 원 이상이다.”
“뭐가 그리 비싸?”
“침대도 2천만 원 이상 하는 게 있는데 접속 베드 값으로는 그리 비싼 것도 아냐. 그래도 비싼 만큼 확실히 그 값을 하나 보더라. 오래 누워 있어야 하니 이왕이면 편안한 게 낫기도 하고.”
“하긴, 한번 사면 꽤 오래 써야 하니 그럴 수도 있겠네.”
비싸다고 생각은 했지만 침대도 몇백만 원이나 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늘은 네 기분 맞춰 주려고 보자고 한 거니 접속 방이나 가 보자. 촌놈에게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 주고.”
“야, 이 형님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너 따위는 그냥 따라잡거든!”
“퍽이나. 턱도 없는 소리 말고 일어나기나 해.”
박민수도 이서우가 게임 속에 갇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뇌 관련 실험에 참여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알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근처 접속 방으로 향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이 접속 베드 방이어서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이용료가 꽤 세네?”
“강남에는 1시간에 2만 원이 넘는 곳도 있다.”
“금이라도 발라 놨냐. 뭐가 그리 비싸?”
“고급형으로 쫙 배치해 둔 곳인데,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게임하는 데도 대우받는 느낌이 드니까.”
“별걸 다 회원제로 하네.”
“야, 모르는 소리 말아. 서로 가입하겠다고 난리야.”
“게임 덕분에 대박 치는 사람 꽤 많겠네.”
“그러니까 다들 뉴 월드에 그렇게 덤벼드는 거지.”
이서우는 생각보다 뉴 월드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더럽게 많네.”
“여긴 3층까지 있는데, 평일 낮에도 70퍼센트 이상 돌아가니 장난 아니긴 하지.”
“돈을 그냥 갈퀴로 끌어모으네, 끌어모아.”
사용 중인 접속 베드를 볼 수 있는 모니터에는 불이 들어온 곳이 별로 없었다.
접속 베드 방은 최하 50대부터 300대 이상까지, 규모가 상당했다.
100대 이상인 곳은 평수가 넓어 투자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가지만, 2년이면 본전을 뽑고도 남기 때문에 너도나도 창업을 하는 추세였다.
“1~2시간으로는 사냥도 몇 번 못 할 테니 3시간 끊을래?”
“현실 시간보다 6배 더 길다면서?”
“그래도 3시간은 해야 초보는 벗어날 거야.”
“렙 업 하는 게 꽤 힘든가 보네.”
“그런 편이지.”
“그래, 그럼 3시간으로 끊자.”
3시간 정액을 끊으면 2만 원이니 저렴하지는 않지만, 게임 시간으로는 18시간을 이용할 수 있어 큰 부담은 없었다.
이런 장치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미친 듯이 접속 방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붙어 있는 자리를 겨우 찾아 반투명의 둥근 아크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급형부터는 베드 안에서 반투명 막이 올라오는데, 보급형은 영 구려.”
“그래? 게임을 안 할 땐 뚜껑이 안 보이니 완전 침대 같겠네.”
“말이 좋아 그렇지 완전 관짝이야, 관짝.”
“뭐, 모양이야 어떻든 편하면 장땡이지.”
“하긴, 고급형은 진짜 편하긴 해. 게임에 좀 적응되면 다들 고급형으로 가더라.”
“오래 하는 사람에게는 좋긴 하겠다.”
딱딱한 침대에 기대니 확실히 몸을 제대로 감싸지 못해 불편했다.
“보급형이라도 음성 모드나 생각 모드가 되니 사용하기에는 편할 거야.”
“잠시 이용하는 거니 기본적인 것만 되면 되지 뭐.”
이서우는 뉴 월드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이지 이곳에서 미친 듯이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다.
“참, 뉴 월드는 마을에서 마을로 순간 이동하는 기능은 없으니 너 혼자 알아서 해야 되는데, 괜찮겠어?”
“처음부터 도움받으면 무슨 재미로 하냐?”
“하긴.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지.”
“근데 넌 몇 렙이냐?”
“이 형님은 1차 전직인 50레벨을 넘겼다.”
“어깨에 힘주는 걸 보니 만렙이 얼마 안 되나 봐?”
“뉴 월드는 만렙 개념이 없어. 현재 최고 레벨은 백 얼만데, 숨은 고수가 있다는 소문도 있어서 정확한 건 몰라.”
“그런데 그렇게 힘을 잔뜩 줬냐.”
“이제 1렙인 주제에 그런 말이 나오냐?”
“네 렙 정도는 금세 따라잡아 주마.”
“말이나 못하면. 참, 내 아이디는 호크아이다.”
“호크아이?”
“그래, 궁수야. 근데 넌 근접 계열로 해라. 다른 건 진짜 키우기 힘들다. 오죽하면 랭커의 70퍼센트가 다 근접 계열이겠냐. 초반에는 근력이 20은 되어야 사냥이 편해. 랜덤 스텟이 잘 올라 주면 4렙에도 근력 수치는 맞출 수 있으니까 레벨 업으로 얻는 보너스 스텟은 전부 근력을 찍어.”
“일단 접속해 보고 천천히 결정하련다. 친추는 해 두마.”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가면 잔소리만 늘어날까 봐 이서우는 얼른 뚜껑을 닫았다.
-머리를 헤드 부분에 고정시키세요.
-홍채 인식을 통해 계정을 확인합니다.
‘방식이 좀 달라진 것 같네.’
어나더 월드와 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더욱 안도했다.
아픈 경험을 했는데 그때와 같다면, 불안해서 접속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다시 메시지가 들렸다.
-하나의 계정이 있습니다.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하시려면 명령어 ‘접속’을 육성으로 말씀하시거나 접속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셔도 됩니다.
-뉴 월드의 각종 명령어는 ‘명령어 정보’를 통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모든 명령어는 말과 생각으로 실행이 가능합니다.
어나더 월드 시절과 명령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똑같아서 크게 어색한 건 없었다.
한데, 뉴 월드를 처음 접속하는데 계정이 있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지? 내가 뉴 월드 계정을 만들었었나?’
이서우는 뉴 월드에 처음 접속을 했기 때문에 계정이 없어야 했다.
“접속해.”
일단 확인이라도 해 볼 생각으로 접속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