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레벨이 갑이다
4화
‘이건…….’
이서우는 캐릭터 창에서 다음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너무도 익숙한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게 그대로 있을 수 있지?’
분명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어나더 월드가 아닌 뉴 월드를 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데, 어떻게 어나더 월드에서 만든 캐릭터가 뉴 월드에 있는 것일까.
-뉴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뉴 월드와 함께 멋지고 새로운 여행을 마음껏 즐기십시오.
-클로즈 베타 테스터 유저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오픈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모든 것이 초기화되었지만,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신 클로즈 베타 테스터분들에게 채집 숙련도에 대한 혜택을 드립니다.
-클로즈 베타 테스터 때 올리신 채집 숙련도는 초기화되지 않고 유지됩니다.
‘클로즈 베타 테스터? 설마 어나더 월드 시절에 했던 기록을 완전히 없애지 않은 건가?’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메시지를 토대로 하면 이서우의 추측이 맞다.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뭐, 어차피 다 초기화됐다니 새로 시작하는 건 다 똑같겠지.’
채집 숙련도는 금세 올릴 수 있는 것이기에 그다지 반가운 소리는 아니었다.
당장에는 쓸모도 없고 말이다.
‘저 때는 진짜 완벽한 몸매였지.’
이서우는 삐쩍 말라 버린 지금의 육체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의 모습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캐릭터는 하나만 생성이 가능합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캐릭터를 삭제해야 합니다. 기존의 캐릭터를 유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삭제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시겠습니까?
‘당연히 기존의 캐릭터를 유지해야지. 저 몸매를 어떻게 만든 건데.’
이서우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삭제하고 새로 만들면 현재의 육체 상태가 반영되기 때문에 부실하기 짝이 없어진다.
-선택한 캐릭터로 접속하시겠습니까?
‘그래.’
-다음 접속부터는 현재 캐릭터로 바로 접속됩니다.
-뉴 월드 세상이 당신의 활약을 기다립니다.
메시지와 함께 캐릭터와 동화되어 뉴 월드 세상에 접속했다.
“흠.”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주변 환경에 살짝 놀랐다.
어나더 월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현실감은 뉴 월드가 우세했다.
“후우.”
이서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모든 매체, 심지어 친구까지도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확인은 해야지. 접속 종료.’
어느 정도 불안감은 가셨지만 막상 접속을 하니 다시 걱정이 스멀스멀 연기가 되어 그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이서우는 곧바로 종료를 외쳤다.
과거 로그아웃이 되지 않아 20년을 갇혀 지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뉴 월드 세상은 언제나 영웅님을 기다립니다.
달콤한 메시지와 함께 접속이 종료되었다.
이서우는 시커먼 캡슐 뚜껑을 바라보았다.
‘된다. 돼!’
로그아웃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이서우는 한 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접속과 종료를 반복했고,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종료하지 않았다.
‘하긴 1억 명에 가까운 사람이 석 달을 했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지. 그래, 지금부터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뉴 월드가 정말로 가능성이 있는지.’
이서우는 흔들리는 마음을 완전히 씻어 내고는 각종 명령어와 시스템을 살폈다.
그리고 드디어 궁금해하던 캐릭터를 확인했다.
육체는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이미 오랜 세월을 봐 왔으니.
그가 확인한 것은 바로 상태 창의 캐릭터 정보였다.
이름 : 이서우
하이 레벨 : 1
칭호 : 무
직업 : 노멀 마스터
레벨 마스터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모든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해당 무기의 스킬도 익힐 수 있다. 단, 필살기를 비롯해 모든 스킬을 직접 창조해야 한다.
*하이 레벨 특성 스킬
-???
-???
……
-???
생명력 : 500
마나 : 500
공격력 : 71
물리 방어력 : 40
마법 방어력 : 40
근력 : 20
민첩력 : 20
체력 : 20
지력 : 20
정신력 : 20
보너스 포인트 : 0
‘하이 레벨 1? 이전에는 그냥 레벨이었는데, 뉴 월드가 되면서 바뀐 건가?’
하이 레벨이라는 표현은 생소했다.
여태 다양한 게임을 했지만 하이 레벨이라는 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뜻을 내포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계를 극복하고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말에 주목했다.
‘기존의 레벨보다 더 높은 단계라는 뜻이 되겠네. 그래서 예전 육체가 그대로 남아 있나 보구나. 근데 직업이 특이하네. 뭐, 모든 무기를 다 사용할 수 있다니 상관없겠지. 특성 스킬이라는 것도 다 물음표니 일단은 어나더 월드 시절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이서우는 추측이 가능한 정보에만 집중하고, 다른 정보는 게임을 하면서 알아 가기로 했다.
“근데, 분명 민수가 스텟을 20까지 찍어야 사냥이 좀 편해진다고 했는데…….”
이서우는 자신의 스텟이 모두 20인 것을 보고 의아했다.
하지만 곧 왜 그런지 어렵지 않게 납득이 되었다.
“하긴, 한계를 극복한 육체이니 이 정도는 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네. 잔소리로 여겼는데, 스텟 정보를 몰랐으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네. 그럼 친추하고 시작해 볼까.”
-친구 추가는 레벨 10부터 가능합니다.
“쩝, 일단 직접 부딪쳐 보고 궁금한 건 나가서 물어봐야겠네.”
이서우는 다음으로 생산 기술 창과 인벤토리를 살피고는 창을 닫았다.
가장 아까운 것은 생산 기술 레벨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마스터한 것들이 날아갔으니 아깝다고 여길 만도 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훌훌 털어 버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이제 게임을 시작할 때다.
30미터 전방에 서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NPC가 있네. 일단 대화부터 해 보자.’
이서우가 다가가자 NPC가 말을 걸어왔다.
“허허, 어서 오게나. 마을로 가는 길인가?”
“네.”
“잘됐네. 내 부탁 좀 들어주게.”
“부탁요? 뭔가요?”
“다른 게 아니라, 촌장에게 이걸 좀 전해 주면 되네.”
“네? 왜 그걸 전해 줘야 하죠?”
“허허, 자네는 좀 특이한 친구군. 대부분 보상이 뭔지부터 묻는데 말일세.”
노인이 서신을 내밀자, 이서우는 받아 들지 않고 이유부터 물었다.
노인은 예상치 못한 이서우의 질문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인공지능답게 금세 표정 관리를 하며 이서우의 질문에 대응해 해결책을 찾았다.
“자넨 우리 다론 마을이 처음이지?”
“네.”
“이래 봬도 마을이 상당히 커. 그러니 촌장님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으면 마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나. 자네도 시간을 허비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테지?”
“그러니까 촌장님을 통해 빠르고 효과적으로 마을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저에게 부탁을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것뿐이겠는가. 다양한 보상까지 더해지니 자네에게는 아주 이득이지.”
노인은 촌장에게 가면 여러 혜택이 있으니 얼른 부탁을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라면 전 괜찮습니다. 직접 살펴보는 게 더 좋거든요.”
“그래, 역시……. 응? 자네 지금 뭐라고 그랬나?”
“그냥 직접 살펴본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이서우가 당연히 수락할 줄 알고 미소 짓다가, 전혀 다른 대답을 하자 당황했다.
“아, 아니. 이보게, 젊은이. 그러지 말고 촌장에게 가서 이걸 전해 주게.”
“어르신, 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 다른 모험가들에게 부탁하세요.”
이서우는 아까운 시간을 마을이나 돌아다니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나더 월드 시절에도 이미 해 본 터라 보상도 별로고 경험치도 눈곱만큼 주는 마을 탐험 퀘스트를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박민수의 말처럼 스텟 20으로 사냥이 수월해진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사냥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이서우를 붙잡았다.
“아니, 그건 안 되네. 자네라야만 해.”
“어르신,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어찌 모험가를 이렇게 핍박하려 하십니까.”
“험험, 그게 아니라…….”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 자, 잠깐……!”
“어르신, 전 정말…….”
“좋네. 자네가 촌장님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것 따위의 하찮은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 같으니 내 다른 일을 주겠네.”
“네?”
이서우는 노인의 말에 어리둥절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간 절약을 위해 사냥부터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거절한 것인데, 새로운 퀘스트를 주겠다니.
‘이거 원래 이렇게 프로그램이 된 건가?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를 얻을 수도 있겠는데?’
지나친 밀어주기가 되지 않는 게임이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퀘스트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과거 초보자 퀘스트가 단지 길을 익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 노인의 말에서 이미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락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특별히 자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네. 어떤가?”
“일단 들어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특별한 걸 원하면서 어찌 그리 상황에 따라 선택하려는 것인가. 받기 싫으면 말게.”
‘NPC의 유형도 꽤 다양해졌나 보네.’
예전에 경험한 NPC도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만렙이 100이고 지역도 한정적이어서 NPC의 숫자 자체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뉴 월드는 레벨 제한이 없고 마을과 도시도 훨씬 크고 많아, NPC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것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동하는 이서우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모험가는 죽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배짱을 조금 더 키우게.”
“그래서, 어떤 임무입니까.”
이서우의 승낙에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노인의 부탁
노인은 특별한 것을 원하는 당신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려 한다.
마을을 어지럽히는 늑대 10마리를 잡아라.
난이도 : F
성공 시 보상 : 1골드.
*이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어떤 퀘스트도 받을 수 없다.
*중도 포기가 불가능하다.
‘헉! 뭐 이런 황당한 퀘스트가 다 있어?’
이서우는 별표가 되어 있는 설명을 보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어떻게 이런 조건이 붙은 퀘스트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가? 겨우 10레벨에서 13레벨 정도의 수준이니 자네에게 딱 맞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뭐, 그러네요.”
10레벨이 넘는다는 말에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겉으로는 절대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데, 맨손으로 잡으라는 건 아니시죠?”
“그럴 리가 있겠나. 자, 받게.”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초보자의 단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서우는 단검을 바로 확인했다.
초보자의 단검
등급 : 일반
착용 레벨 : 1
공격력 : 3
초보자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단검이다.
‘아이템 설명 보소.’
이서우는 성의가 없어 보이는 설명에 혀를 찼다.
하지만 맨주먹보다는 낫기에 품에 잘 넣어 두었다.
“언제까지 잡아다 드리면 되겠습니까?”
“언제든지 상관없네.”
“10마리 이상 잡으면 보상도 올라갑니까?”
“당연하네. 20마리를 잡으면 3골드, 30마리를 잡으면 5골드를 주겠네.”
“더 잡으면요?”
“불가능할 것이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이번에는 이서우가 노인의 자존심을 살살 건드렸다.
“좋네. 50마리를 잡아 오면 10골드를 주고, 이후 1마리가 추가될 때마다 1골드를 주겠네.”
“골드만 주신다는 겁니까? 늑대를 그 정도 죽이면 충분히 그에 합당한 다른 대가도 주셔야죠.”
“좋네. 내 특별히 초보자에서 바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치를 주도록 하지.”
“약속한 겁니다.”
“여부가 있겠나.”
-‘노인의 부탁’ 퀘스트가 변경되었습니다.
보상이 변해서 내용도 갱신되었겠거니 생각한 이서우는 퀘스트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러게.”
이서우는 더 이상 나눌 대화가 없어 마을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자 노인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꽤 많은 모험가가 사냥부터 하려 했지. 하지만 모두가 실패했지. 자네도 큰 좌절을 맛본 후 내게 와서 제발 촌장님께 보내 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리게 될 걸세, 허허허.”
초보자들은 1골드를 벌기도 힘들다. 그만큼 골드의 가치는 높았다.
하지만 노인은 이서우가 퀘스트를 절대로 완료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에 인심 쓰듯 후하게 보상을 제시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