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레벨이 갑이다
5화
마을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신규 유저들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인과의 대화는 오직 단독으로만 이뤄지나 보네. 하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잡해서 진행이 안 될 거야.’
그는 어나더 월드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NPC와 대화를 하는 방식이나 게임 시스템은 비슷할지 몰라도 완성도는 그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을에 들어선 이서우는 상점들부터 마을 광장까지 모두 살폈다.
광장은 수많은 좌판이 깔려 있었음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릴 정도로 많았고, 경매장에서도 거래가 활발했다.
인기가 있는 아이템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렸다.
이서우는 밝은 미소를 하고는 북문으로 향했다.
퀘스트를 쉽게 깰 수 있는 방도가 있어 즐거운 것이다.
단검 하나를 손에 들고 마을 앞, 토끼 지역에 들어섰다.
‘역시 NPC의 한계야. 레벨을 올리고 늑대를 잡으면 되는데, 자존심 때문에 덜컥 퀘스트를 주다니. 100마리쯤 잡아서 가면 놀라서 까무러치겠군.’
이서우는 당황하는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깡충깡충 뛰는 토끼를 바라보았다.
5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토끼들은 들판을 돌아다니고 풀을 뜯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접근한 이서우는 토끼가 공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푹!
-토끼를 처치했습니다.
-‘노인의 부탁’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아 경험치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헉! 뭐, 뭐야?’
날렵한 몸놀림으로 깔끔하게 토끼를 죽일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경험치를 얻지 못했다는 메시지에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서우는 얼른 퀘스트를 확인했다.
노인의 부탁
노인은 특별한 것을 원하는 당신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려 한다.
다론 마을을 어지럽히는 늑대를 잡아라.
50마리 이상을 잡으면 추가 보상이 있다.
단, 1레벨인 상태에서만 퀘스트 수행이 가능하다.
난이도 : C
성공 시 보상 : 10골드. 50마리 이상 잡을 시 마리당 추가 1골드 지급.
*이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어떤 퀘스트도 받을 수 없다.
*중도에 포기가 불가능하다.
*파티 사냥이 불가능하다.
*이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몬스터를 잡아도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단, 늑대로부터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미친 노인네를 봤나!”
퀘스트가 변경되었다고 해서 보상이 바뀐 줄 알았는데 말도 안 되는 조항이 걸려 있었다.
이서우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는 토끼 지역을 벗어났다.
‘일단 전투 감각이 그대로인지부터 확인하자. 레벨 차는 커도 경험을 녹여 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레이드 몬스터인 뱀파이어 로드도 혼자서 80퍼센트의 생명력을 빼 놓은 그다. 그런데 고작 늑대로 좌절을 할까.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기에 육체 능력을 테스트해 볼 필요는 있었다.
토끼 지역을 벗어나니 사슴 지역이 나왔다.
레벨 4~6까지였는데, 이번에도 이서우는 목표를 정하고 번개처럼 덤벼들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5미터 이상을 순식간에 좁혔다.
푸욱!
-사슴을 처치하셨습니다.
-‘노인의 부탁’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아 경험치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토끼보다는 힘을 조금 더 썼지만 확실히 육체 능력이나 감각은 살아 있네.’
토끼와 달리 이서우가 근접하자 사슴이 알아차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어깨를 비틀며 단검을 쭈욱 밀어 넣어 성공시켰다.
초보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수법이었다.
이서우는 6~8레벨이 있는 여우 지역에서 마지막 테스트를 하고는 곧장 늑대 지역으로 갔다.
확인은 삼세번이면 충분했다.
“야, 저 사람 미친 거 아냐?”
“어라, 그러게. 저거 완전 생초보잖아. 근데 늑대 지역으로 가는데? 한마디 해야 되는 거 아냐?”
“놔둬. 계정을 끊었는지 접속 방에서 비싼 돈 주고 사용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돈 나가지 우리 돈 나가는 거 아니니까.”
“그래도 초보자가 뭘 모르고 그러는 것 같은데, 주의는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시간이 있으면 레벨이나 올리자고. 친구들이 더 앞서가기 전에.”
“하긴. 우리도 쪼렙인데 누굴 챙기겠어.”
이서우는 그를 바라보며 나누는 다른 유저들의 대화보다 주변 경계에 더 집중했다.
‘저기군.’
늑대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현실에서는 무리 생활을 하지만 게임에서는 따로 떨어져서 돌아다니는 늑대들이 많았다.
이동 패턴을 유심히 관찰한 이서우는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레벨 차가 큰데도 전혀 긴장이 안 되네.’
장비도, 레벨도, 아무것도 갖춘 게 없는 상황이지만 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야, 자유로운 영혼이 또 하나 왔다.”
“오늘 무슨 골이 비어 버린 영혼들의 모임이라도 하나. 쌩초보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오지?”
“다른 게임 하던 버릇 때문에 그런 거잖아. 놔둬. 저러다가 뒈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긴. 죽어서 48시간 접속 제한이 걸려 봐야 아, 내가 미친 짓을 했구나, 싶겠지.”
“그러니까. 우린 피나 채우고 사냥하자.”
“물약이 더럽게 비싸니 이게 안 좋네.”
“그래도 현질 안 하려면 어쩔 수 없어.”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두 사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서우에 대한 것이었는데, 거리가 멀지 않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을 지나쳐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늑대를 향해 다가갔다.
‘저렙에 PK가 안 되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이서우는 두 사내를 힐끗 보고는 늑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서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복장은 허름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뱀파이어 로드를 잡을 때와 똑같았다.
“일부러 들리게 말한 건데, 진짜 늑대한테 가네. 심심했는데 잘됐다. 구경이나 하자.”
“돈 주고도 못 할 구경을 하네. 오늘 운 좋은데? 뭔가 득템할 것 같지 않냐?”
“그러게. 10레벨 찍고 첫 던전 가면 희귀 등급 하나는 먹을지도 모르겠는데?”
두 사내는 시시덕거리며 이서우를 지켜보았다.
이서우는 이미 늑대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일단 10레벨부터 시작해 볼까나.’
어떤 식으로 늑대를 공략해야 할지 답은 쉽게 나왔다.
전투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으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여우와는 달리 늑대는 이서우가 접근하기도 전에 이빨을 드러냈다.
늑대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도망가지 않고 맞서 오는 것이다.
“그래 주면 고맙지.”
이서우는 마주 덤벼 오는 늑대를 보며 몸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약점인 턱과 배를 노리는 것이다.
몸을 낮춘 덕분에 턱이 훤히 보였다.
이서우는 단검을 힘껏 움켜잡고는 턱 밑에 깊게 찔러 넣었다.
달려오는 속도와 더해져 늑대는 턱부터 배까지 일자로 쭉 찢어져 버렸다.
늑대는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늑대를 처치하셨습니다.
-‘노인의 부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5,500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늑대의 가죽 1장을 획득했습니다.
-10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역시 쪼렙이라서 1마리만 잡아도 업을 하네.’
이서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헉! 저, 저거…….”
“마, 말도 안 돼!”
한껏 비웃던 사내들은 늑대가 즉사하는 것을 보며 턱이 빠져라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이서우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늑대 사이를 누비며 단검을 찌르기도 하고 휘두르기도 했다.
푹!
깨갱!
서걱!
깨앵!
들리는 소리라고는 고통을 호소하는 늑대의 비명과 단검이 늑대 가죽을 뚫는 것이 전부였다.
-늑대를 처치하셨습니다.
-‘노인의 부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5,500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늑대 가죽 1장을 획득했습니다.
-10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서우는 늑대를 상대하면서 온갖 묘기를 다 부렸다.
육체의 한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는데, 손을 바닥에 대지 않고 뒤돌기를 하며 늑대의 턱주가리를 날리는가 하면, 림보를 하듯 허리를 지면에 닿을 정도로 굽혀 늑대의 다리 힘줄을 잘라 버리기도 했다.
신들린 듯 움직이는 이서우는 계속해서 들리는 늑대 처치 메시지에 더욱 흥에 겨워 종횡무진 주변을 누볐다.
-늑대를 처치하셨습니다.
-‘노인의 부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5,500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늑대 뼈 1개를 획득했습니다.
-늑대 가죽 1장을 획득했습니다.
-10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주변 일대에 더 이상 늑대가 없게 되자 그제야 이서우는 동작을 멈추었다.
“완벽해!”
널브러진 늑대들을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데, 두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서우를 안주 삼아 구경하고 있던 사내들이었다.
“히익!”
“히끅.”
이서우와 눈빛이 마주치자 너무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해 대는 사내들.
“모,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아, 안녕히 계세요!”
그들은 당장 허리를 90도로 숙이고는 늑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줄행랑을 쳤다.
“야, 저 사람 혹시 특전사 출신 아냐? 현실에서 대체 뭘 하던 사람이기에 몸이 저리 좋지?”
“최소 특전사라는 데 한 표 건다. 아니면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 왔던 사람이거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운동이나 열심히 해 둘걸.”
“레벨이 오르면 그 차이가 거의 사라진다고 하니 딴생각 말고 렙 업이나 하자.”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것 같은데 훨씬 앞서갈 것 같으니 그러지.”
“부러우면 가서 친분이라도 좀 쌓아 봐. 혹시 알아? 사냥 요령이라도 가르쳐 줄지.”
“그럴까?”
이서우를 흉보던 사내들이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 놔서인지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몇몇은 친분을 맺고 싶은지 조심스럽게 서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서우는 귀찮은 것이 싫어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시간 절약을 위해 대부분의 유저들이 늑대 지역 중 초반부에서 많이 사냥을 했다.
이서우는 이미 얼굴이 팔려 버려서 늑대 지역 중에서도 가장 외곽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늑대 지역 거의 끝부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없네. 여기서 사냥하자.’
사냥터마다 일시적이지만 안전지대가 생기는 시점이 있다. 이서우는 그 틈을 잘 노리고 움직여서 이곳까지 왔다.
‘아, 아무리 바빠도 캐릭터 정보는 살펴봐야지.’
안전한 장소를 찾아 재빨리 움직이느라 이곳에 오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1업당 스텟이 얼마나 증가하는지는 알아 둬야 했다.
‘스텟은 총 6이 올랐네. 랜덤으로는 1업당 2가 오르고, 보너스 스텟은 5가 오르나 보네.’
하이 레벨의 효과로 다른 유저들과는 달리 랜덤에서 스텟 하나가, 보너스에서 스텟 2개가 더 주어졌다.
하지만 이서우는 다른 유저들이 1업당 스텟이 얼마나 오르는지 몰랐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스텟 분배는 일단 킵해 두자.’
이서우는 마음이 바빴다.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니 어서 빨리 사냥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꽤 많아 마땅한 사냥터를 찾는 게 힘들었다.
잡고 이동하고를 반복하느라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그래도 외곽 지역으로 오니 그나마 유저들이 없어 편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5마리든 10마리든, 그는 가리지 않았다.
마치 사냥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늑대를 잡을 뿐이었다.
그런 이서우의 사냥도 13레벨이 되는 순간 끝이 났다.
보너스 골드를 얻을 수 있어서 더 잡을까 했지만, 경험치가 너무 적게 올라 비효율적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레벨 업이 우선이니, 아쉽지만 늑대는 여기까지 잡자. 슬슬 퀘스트를 완료하러 가 볼까? 노인네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네.’
이서우는 인벤토리에 모인 늑대의 가죽과 뼈를 바라보고는 휘파람을 불며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