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레벨이 갑이다
10화
접속한 이서우는 습관적으로 캐릭터 창부터 확인했다.
이름 : 이서우
하이 레벨 : 21
칭호 : 무
직업 : 노멀 마스터
레벨 마스터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모든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해당 무기의 스킬도 익힐 수 있다. 단, 필살기는 사용할 수 없고, 직접 창조만 가능하다.
*하이 레벨 특성 스킬
-???
-???
……
-???
생명력 : 3,390(+370)
마나 : 2,810
공격력 : 359
물리 방어력 : 255
마법 방어력 : 223
근력 : 47(+10)
민첩력 : 36(+5)
체력 : 42(+10)
지력 : 20
정신력 : 20
보너스 포인트 : 100
‘보너스 스텟이 꽤 많이 찼네. 올려야 하나.’
강력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전투 감각이나 상대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레벨과 스텟, 장비도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레벨은 시간이 지나야 오르는 것이고, 보너스 스텟은 한번 사용하면 되돌릴 수가 없다.
이서우는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거래 중개소로 갔다.
경매장은 워낙 사람이 많아 마을 변두리에 있는 거래 중개소를 선택한 것이다.
주변을 구경하며 이동하는데, 류종명에게 귓말이 왔다.
-친추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귓말 보내라.
-그래, 알았다. 근데 너 마법사냐?
-게임은 원래 한 방이야, 한 방! 얼른 업해서 같이 사냥하자.
-따라잡히지나 말라니까.
-나 따라잡으면 형님이라 부른다.
-지금 그 말, 딱 캡처해 놨다. 나중에 딴소리나 하지 마.
-네, 네.
친구 목록 창을 닫은 이서우는 거래 중개소로 들어가 창을 열었다.
아이템을 구입하기 전에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변동 추이는 어떤지 꼼꼼하게 따져 봐야 했다.
먼저 20레벨 고급 장비 중에서 근접 계열을 검색했다.
순식간에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목록이 나타났다.
너무 양이 많아서 단검, 장검, 대검만 추렸는데도 수백 페이지나 되었다.
‘흠.’
가장 싼 것은 단검이었으며, 20골드였다.
장검은 최하가 25골드였고, 대검은 그보다 2골드가 높았다.
이서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시세 추이를 살펴보았다.
한 달 전에는 2배 이상 높은 가격을 보였지만 최근 일주일 전부터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어떤 아이템을 구입해도 빠르게 교체한다면 큰 손해는 없었다.
‘스피드는 자신이 있으니 대미지가 가장 좋은 대검이 낫겠네.’
이서우는 대검으로 가닥을 잡고 다시 검색 항목에 대검만 체크했다.
“그새 몇 개 팔렸네.”
순식간에 대검이 팔려 나가는 것을 본 이서우는 근력 스텟 +5 옵션이 있는 대검을 구입했다.
+7짜리도 있었으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적당한 것으로 선택한 것이다.
순식간에 30골드가 빠져나갔다.
이어서 방어구까지 구입하자 80골드가 사라졌다.
82골드 조금 넘게 있었는데 갑자기 텅 비어 버리자 인벤토리 전체가 썰렁해진 느낌이었다.
쓰는 건 쉽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아깝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어떤 일을 하건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서우는 착용된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확인했다.
‘그나마 외형은 봐 줄 만하네.’
10레벨 장비를 착용했을 때는 상당히 허접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나마 초보티는 벗은 모습이었다.
이서우는 박민수에게 받은 10레벨 무기와 방어구 세트를 우편으로 보내며 고맙다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이서우는 소모품과 재료 아이템, 각종 장비를 훑어보았다.
마치 업무 내용을 파악하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신입 사원처럼 열정을 보였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나.’
아이템 종류가 워낙 많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친구들과 게임 방송을 보며 20분 정도를 보냈으니 이제 곧 약속한 시간이 다가온다.
이서우는 남문으로 갔다.
50명 정도의 경비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 안에서는 특별히 큰 사고가 없지만 외곽 지역은 항상 몬스터의 침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경비대 전체가 참여할 수는 없었다.
“모험가님, 오셨군요. 모험가님은 저와 함께 움직이시면 됩니다.”
“네.”
“각 조장은 대원들의 상태를 살펴라! 10분 뒤 출발한다!”
이번 토벌대 대장의 외침에, 경비대원들은 마지막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다론 마을 경비대원은 군대가 아니다.
마을을 관리하는 영주가 있지만 제국 전체를 놓고 보면 너무 작은 마을이어서 욕심 많은 영주는 이곳을 내팽개쳤다.
질서와 규칙이 희미해져 버린 다론 마을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총경비대장이 오고부터였다.
그는 뛰어난 무력으로 경비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결집이 되었다.
하지만 작은 마을이어서 한계는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모험가들이 많아지면서 마을이 더욱 안정되었지만, 그들은 경비대원들과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서우는 이미 페른의 병을 고쳐 준 모험가라는 것을 알기에 경비대원들의 눈빛이 달랐다.
“모험가님, 이쪽이 이번에 함께할 대원들입니다. 우리는 후방을 맡게 될 테니 크게 신경 쓸 일은 많지 않을 겁니다.”
“후방을 맡게 된다고요?”
“네. 하지만 식시귀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셔야 합니다.”
“네.”
이서우는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데는 취미가 전혀 없었다.
아직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무조건 식시귀를 처치하는 데 나설 생각이었다.
토벌대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대장이 앞장서고, 전력이 강한 조 순서로 이동했다.
숫자가 적을수록 통제가 쉽다. 통제가 잘되어야 제대로 된 힘이 나오기 때문에 총경비대장은 한 조를 최대 10명으로 제한했다.
즉, 총 5개의 조가 이번 토벌대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남문을 벗어났지만, 1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자 점점 이동속도가 느려졌다.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이동해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나 봅니다.”
“네. 남문에서 대략 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시간 안에는 갈 수 있겠군요.”
“아마 예상보다는 조금 더 빨리 도착할 겁니다.”
“반가운 소리군요.”
이서우의 대답에 테루는 그가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모험가님. 혹시 식시귀에 대해 알고 계신지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노파심에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새겨듣겠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는 걸로 봐서는 어나더 월드 때와 거의 유사하겠지만 아직 확신을 할 만큼 비교를 많이 하지 못해 기쁜 마음으로 귀를 열었다.
“일단 녀석의 급소는 뇌입니다. 목은 잘라도 소용없고, 뇌를 파괴해야만 죽습니다. 힘과 스피드도 엄청나서 혼자서 사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이서우는 자신이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지만, 테루는 자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미 알고 계실 텐데도 저토록 진지하게 들어 주시다니. 페른의 말대로 확실히 겸손하신 분이야.’
“조장님, 곧 몬스터들이 공격을 해 올 겁니다.”
“알았다.”
테루는 이서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선두조에서 전달된 내용을 대원들에게 말해 주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어서 주변 몬스터를 도발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다.
잠시 후, 앞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횃불은 오히려 몬스터를 도발하기 때문에 달빛에 의지해 걷고 있었지만, 경비대원들은 생각보다 먼 거리를 볼 수 있어서 싸우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낮보다는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경비대원들은 둥글게 뭉쳐 서로를 엄호했다.
이서우는 뛰어난 오감으로, 몬스터가 다가오면 거침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20레벨대 지역이어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제1 묘지에 도착하기까지 세 차례나 반복되었다.
이서우는 세 번째 상황에서 레벨이 올랐다는 소리를 듣고도 10퍼센트나 경험치를 올릴 수 있었다.
이서우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목적지가 바로 앞입니다. 지금부터는 식시귀가 튀어나올 테니 조심하십시오.”
중간중간 식시귀에 대한 이야기는 테루로부터 들었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식시귀는 좀비와 유사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지루해할 걸 알고 다양한 형태가 소개되었다.
손을 나란히 뻗은 채 인간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는 형태부터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좀비, 냄새나 소리에 민감한 좀비도 있었다.
하지만 뉴 월드의 식시귀는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었는데, 바로 땅속에 숨어서 먹잇감을 기다린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유저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식시귀에게 상당히 많이 당하고 말았다.
긴장을 했는지 경비대원들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은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1차 전직인 50레벨까지만 이용하는 곳이다. 40레벨 중후반대면 대부분 더 큰 마을로 간다.
그러니 경비대원들의 레벨도 그에 맞춰져 있었다.
비록 식시귀가 30레벨 중후반대로 형성되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경비대원들도 있어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의 얼굴은 경비대원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낚시꾼이 대어를 잡아 올린 듯했다.
‘아이고, 귀여운 내 경험치들.’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약점이 분명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기에 어느 때보다 자신이 있었다.
“식시귀들이다. 방패 준비하고, 창병들은 공격에 집중해라!”
토벌대 대장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착착, 착착착.
방패가 아치형을 그리며 3열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리고 그 뒤에 창병들이 긴 창을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후방은 테루 조가 맡았는데, 장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테루는 이동하면서 싸움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 이서우에게 말해 주었다.
조 단위로 각자 싸움을 하는 것과 대형을 이루는 방법.
이서우는 개인적으로 전자를 원했지만 숫자가 많기 때문에 대장은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서우는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없어 방패 뒤로 몸을 뺐지만 다른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모험가님!”
“전 괜찮으니 테루 님도 조원들을 챙기세요.”
“하지만…….”
“전 괜찮습니다!”
“네. 그럼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 순간, 수십 마리의 식시귀들이 땅속에 튀어나와 경비대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패와 창이 집중된 곳에서 싸우던 식시귀들은 공격 성공률이 낮다는 것을 알고는 후방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서우는 가장 취약한 지점에 서 있었기에 식시귀들을 다른 경비대원들보다 많이 상대할 수 있었다.
후웅, 후웅!
이서우의 대검이 바람을 갈랐다.
어찌나 강력한 힘으로 휘둘렀는지, 마치 수박이 잘리듯 식시귀의 머리가 반 토막이 나 버렸다.
-식시귀를 처치했습니다.
-‘식시귀를 토벌하라’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87,5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92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기분 좋은 메시지와 함께 이서우의 대검도 더욱 경쾌하게 허공을 누볐다.
거친 춤사위가 식시귀들 사이를 누비는가 싶더니 어느새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대검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어김없이 식시귀들의 갈라진 비명 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부드러운 이서우의 대검은 쉬지 않고 허공을 수놓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순식간에 레벨이 올랐지만 이서우의 대검은 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들리는 반가운 소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뭐지?’
미친 듯이 오르는 경험치를 보며 신나게 대검을 휘두르는데, 갑자기 식시귀들이 사라졌다.
어떤 일이든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이 깨지자 이서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이서우의 머릿속을 울렸다.
-식시귀 대왕이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