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레벨이 갑이다
11화
“식시귀 대왕이 나타났다! 다들 철저히 방어 형태를 취하고, 부조장들은 앞으로 나서라!”
착착착, 착착착!
경비대원들은 대장의 명령에 즉시 움직였다.
창병들은 식시귀를 상대할 때보다 한 걸음 뒤에 섰다.
공격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모험가님, 식시귀 대왕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방패병 뒤로 가 계십시오.”
테루는 이서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토벌대 부대장과 대장까지 포함해서 12명이 식시귀 대왕을 막아섰다.
식시귀 대왕의 신장은 3미터 정도였고, 체격은 호리호리했다.
낯빛은 회색에 가까울 정도로 차가웠으며, 팔이 빠진 사람처럼 길게 늘어뜨린 채 경비대원들과 대치했다.
‘희생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뜻이군. 아마 공격조가 위험하거나 빈틈이 생겼을 때 창병들이 나서겠지.’
모두가 나선다고 전투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인원이 각자 맡은 바를 잘 수행하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구오오오올!”
“모험가님! 식시귀들의 처치를 부탁드립니다! 방패병과 창병은 모두 모험가님의 명령에 따라라!”
“네!”
식시귀 대왕을 상대하려면 숙련자 12명으로도 빡빡하다.
그렇다고 식시귀들을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식시귀 대왕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자칫 식시귀들을 소홀히 해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숙련자 외에는 경비병 경력이 3년 이하여서 지금과 같은 전투를 지휘하기 힘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이서우였다.
토벌대 대장은 이곳까지 오면서 보여 준 이서우의 전투 장면과 테루의 말을 떠올렸고, 고민 끝에 그에게 부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경비병들도 이서우의 활약을 보았기에 힘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식시귀나 상대하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타핫!
이서우가 지면을 힘껏 박찼다.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른 그는 대장에게 소리쳤다.
“식시귀 대왕을 제가 맡을 테니 식시귀들을 처치하세요!”
“안 됩니다! 혼자서는…….”
토벌대 대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서우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이미 식시귀 대왕에게 대검을 내려찍고 있었다.
“구오오오올!”
이서우의 대검은 식시귀 대왕의 팔에 가로막혔다.
육체가 워낙 단단해서 잘라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식시귀 대왕의 팔에 상처가 났다.
분노한 식시귀 대왕은 이서우를 공격했다.
‘대미지가 크게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네. 네임드라 이건가.’
일반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이서우의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가 흘러넘쳤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이서우는 식시귀 대왕의 공격을 피하면서 캐릭터 창을 열었다.
한눈팔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아, 생각했던 바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서우가 떠올린 방법은 바로 보너스 스텟을 올리는 것이었다.
혹시 몰라 전부 올리지는 않았다.
근력과 민첩력에 25개를 올리고, 체력에 15개를 찍었다.
공격을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판단에, 체력에는 많이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스텟을 찍자마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2개도 아니고 65개나 올렸으니 변화가 즉시 나타는 것은 당연했다.
온몸에 힘이 불끈 솟아나는 동시에 스피드가 빨라졌다.
식시귀 대왕은 갑자기 빨라진 이서우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지금이 식시귀 대왕의 생명력을 빼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오랜 전투 경험이 있는 이서우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서우는 모든 힘을 쏟아 대검에 불어 넣었다.
훅, 훅, 후욱!
“구오오오오오오오올!”
식시귀들을 부를 때나 화가 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고통에 찬 비명 소리였다.
하지만 처음보다 조금 더 깊이 상처가 났을 뿐, 치명적인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뇌를 노리고 공격을 한 것인데 두개골이 워낙 단단해서 깊숙이 박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공격을 계속 몰아치자 식시귀 대왕이 뒷걸음질 칠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바짝 긴장한 채 식시귀를 상대하던 경비대원들도 사기충천되어 함성과 함께 몬스터들을 몰아쳤다.
그때였다. 뒤로 물러서던 식시기 대왕이 갑자기 돌변했다.
찰나지간에 나타난 변화였지만 이서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식시귀 대왕의 팔이 갑자기 쭉 늘어나더니 이서우를 덮쳤다.
다행히 미리 예상을 했기에 대검을 들어 막을 수 있었다.
식시귀 대왕의 강철 같은 뼈와 이서우의 대검이 부딪치며 시커멓게 죽은 피가 여기저기 튀었다.
식시귀 대왕은 회심의 공격에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크게 당황했다.
얼마나 놀랐으면 썩은 동태눈 같은 안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서우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식시귀 대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약간의 대미지를 입기는 했지만 체력에도 투자한 덕분에 피 통이 4천 이상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대단하다…….”
“멋져.”
“어, 어떻게 식시귀 대왕을 혼자서 상대하지?”
경비대원들은 50마리가 넘는 식시귀를 절반 가까이 처리한 후에야 여유가 생겨 이서우의 전투를 틈틈이 확인하고 있었다.
보지 않으려 해도, 워낙 화려하고 인상이 강렬하게 남는 모습이어서 눈이 절로 갔다.
하나같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식시귀 대왕 정도 되는 몬스터는 총경비대장 외에는 상대할 수가 없다.
그만큼 1대1로 싸운다는 것은 경비대원들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 페른을 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식시귀를 처리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 큰 활약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손발이 잘 맞을까 염려하는 경비대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활약을 해 주고 있었다.
이서우가 식시귀 대왕을 홀로 상대하면서 12명의 숙련자들이 식시귀를 막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토벌대 대장은 식시귀 대왕이 50마리가 넘는 식시귀들을 부르자 어느 정도 피해를 각오했는데, 이서우로 인해 몇몇의 가벼운 부상으로 이번 토벌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한눈팔지 말고 식시귀들을 모조리 처리하라!”
“네!”
토벌대 대장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은 우렁차게 대답하며 검과 창을 치켜들었다.
20마리 정도 남은 식시귀를 상대하는 데 방패는 필요 없었다.
방어는 최소화하고 공격 위주의 작전을 펼쳤다.
경비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 주자 이서우도 편안하게 식시귀 대왕을 상대했다.
어느새 절반의 생명력이 빠진 식시귀 대왕은 식시귀들이 거의 대부분 쓰러지자 전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식시귀들이 모두 죽으면 수많은 칼날이 자신을 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패배는 필연이었다.
패배가 거의 확실해지자 자연스럽게 행동은 둔화되었다.
이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팔다리의 관절을 노리며 늪에 빠진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모든 식시귀를 처리한 경비대원들은 조용히 이서우의 전투를 주시했다.
지금 상황에서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어 토벌대 대장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이미 승리가 결정된 상황에서 무리한 끼어들기는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비틀거리는 식시귀 대왕을 바라보며 모든 경비대원의 긴장이 한풀 꺾였다.
“놈이 최후의 공격을 할 겁니다. 다들 방패를 드세요!”
긴장이 많이 완화된 상태에서 이서우는 경비대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러자 재빨리 방패를 들고 완전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물론 경비대원들과 달리 이서우는 방어에만 전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검을 움켜잡고 최후의 공격을 맞을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식시귀 대왕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구오오오오오오오올!”
처절한 비명 소리와 같은 외침과 함께 식시귀 대왕의 살점이 알사탕 정도의 크기로 떨어져 나와 비산했다.
온 사방을 덮친 살점은 강력한 힘을 담고 있어 나무, 바위, 묘지 등 할 것 없이 초토화시켜 버렸다.
하지만 이서우는 대검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휘두르며 식시귀 대왕에게로 한 발짝씩 다가갔다.
팅팅, 팅팅팅!
강철보다 더 단단하게 변해 버린 살점들이 대검에 부딪치자 마치 강철 벽을 향해 수많은 쇠구슬을 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깡깡깡, 깡깡깡깡!
이서우의 뒤쪽에서도 수많은 살점이 방패에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식시귀는 뇌가 파괴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식시귀 대왕의 경우에는 재생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재생 후 1시간 안에는 같은 스킬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 공격이었지만, 위력은 파티 전원을 전멸시킬 수도 있을 만큼 막강했다.
그래서 식시귀 대왕을 처음 상대하는 파티들이 많이 전멸을 한다.
하나,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만나도 한참이나 잘못 만났다.
이서우는 대검을 빠른 속도로 휘두르며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잠깐 사이에 이서우는 식시귀 대왕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필살기 공격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 반격을 펼쳐야 한다.
이서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기회를 엿보았다.
‘지금!’
대검을 잡은 손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이야아압!”
강렬한 기합성과 함께 대검을 횡으로 그었다.
양팔을 오른쪽으로 힘껏 젖혔다가 다리와 허리, 팔의 힘을 이용해 전력으로 휘두른 것이다.
서걱!
강력한 필살기일수록 동작이 크거나 시전 뒤 잠깐이지만 틈이 생긴다.
이서우가 노린 것도 바로 그 짧은 순간의 빈틈이었다.
하지만 식시귀 대왕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서우의 칼날은 자신의 뼈를 잘라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리라 여겼다.
식시귀 대왕은 그렇게 확신했지만, 불행하게도 이서우가 노린 곳은 가장 약한 부위인 목이었다.
툭!
잘려 나간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서우는 재빨리 다가가 대검을 뇌에 찔러 넣었다.
-식시귀 대왕을 처치하셨습니다.
-2,03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죽음의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20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파티로 잡아야 할 몬스터를 홀로 잡은 터라 경험치가 엄청났다.
이서우는 3레벨이 순식간에 오르자 치열이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방패를 든 채 바짝 몸을 낮췄던 경비대원들은 갑자기 조용해지자 방패 틈 사이로 식시귀 대왕이 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했던 일인데 정말로 홀로 식시귀 대왕을 처치해 버린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어리둥절해 있던 경비대원들은 이윽고, 너 나 할 것 없이 함성을 내질렀다.
무려 100여 마리의 식시귀와 식시귀 대왕까지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자는 전무했다.
경상자가 몇 명 있었지만 그리 큰 상처가 아니어서 가벼운 처치만으로도 충분했다.
토벌대 대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이렇게 피해가 적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전리품을 확인하듯, 이서우는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로 죽음의 반지 옵션을 확인하고 있었다.
죽음의 반지
착용 레벨 : 40
등급 : 희귀
공격력 : 20~30
추가 옵션 : 근력 +10, 암흑 속성 대미지 +100, 암흑 속성 방어력 : +100
*암흑 속성 대미지가 누적되면 상태 이상 ‘쇠약’효과가 나타난다.
*쇠약 : 30초 동안 초당 5의 생명력을 감소시키고 이동속도를 감소시킨다.
‘헐, 대박. 희귀 등급인데 옵션이 3개라니.’
아이템을 확인한 이서우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찢어졌다.
거래 중개소에서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응? 뭐지?’
식시귀 대왕의 시체 근처에서 찰나의 순간이지만 반짝임이 느껴졌다.
이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식시귀 대왕의 시체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