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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6화 (16/341)

# 16

레벨이 갑이다

16화

스텟 분배를 모두 끝내고 관련 정보를 숙지한 이서우는 루테인 마을을 둘러보았다.

넓은 지역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레이드 모집부터 각종 던전 인원 모집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인원이 듣도 보도 못한 곳을 가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들이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서우는 하루빨리 이곳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도시로 가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니까.’

어나더 월드 시절에는 100레벨까지만 플레이를 했었다.

난이도는 뉴 월드에 비해 훨씬 높았지만 콘텐츠 확장이 되지 않아 이곳에 거는 기대감은 더욱 컸다.

재료 아이템을 모두 창고에 맡긴 이서우는 남문으로 향했다.

하루빨리 루테인 마을로 오려면 레벨을 올려야 한다.

마을 어디에도 37레벨을 받아 준다는 외침은 없었으니까.

이서우는 돌아가는 시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해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전투를 피할 생각이었다.

‘오우거는 한 번 더 잡아 보고 가자.’

단독 행동을 주로 하는 몬스터여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는 데다가 얼마나 능력이 상승했는지 알고 싶었다.

홀로 움직이니 오우거 지역까지 가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마나를 이용해 이동하니 스피드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2천의 마나가 소모되었지만 남은 마나는 거의 5,500에 달했다.

언제든 싸울 수 있었고, 불리하면 피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동에 마나를 투자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동만 했는데도 밸런스 숙련도가 올라갈 줄이야.’

이서우는 전투와 관련된 행위로만 밸런스 숙련도가 올라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빠르게 달린 것만으로도 1퍼센트가 올라가 있었다.

드디어 오우거 지역에 들어섰다.

신장이 큰 오우거의 영역답게 굵고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5미터나 되는 오우거가 나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였으니 얼마나 크고 웅장한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이서우는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영역 표시에 한창인 오우거를 주시했다.

‘너로 정했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였지만,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도 승리했다.

마나를 깨달은 지금은 오우거를 보다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서우는 다리에 힘을 잔뜩 불어 넣은 채 무릎을 굽혔다.

탓!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마나가 쑤욱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20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서걱!

크아아아앙!

오우거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서우의 대검이 등을 갈랐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오우거의 비명 소리가 온 숲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레벨 81의 오우거의 맷집은 역시 셌다.

심각해 보이는 부상인데도 버텨 내며 오히려 분노에 차서 이서우에게 덤벼들었다.

사사삭!

오우거가 온 힘을 다해 공격했지만 그는 아주 쉽게 피해 버렸다.

마치 원래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오우거의 등 뒤로 재빨리 움직였다.

이서우의 대검이 다시 한 번 오우거의 등을 갈랐다.

피부가 벌어져 상처가 난 곳을 재차 공격했기에 오우거의 비명 소리는 더욱 처절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오우거가 비틀거렸다.

이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검을 폭풍처럼 몰아쳤다.

순식간에 다섯 번의 공격이 이어졌고, 드디어 원하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1,324,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오우거 뼈를 획득하셨습니다.

-오우거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9실버 40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 ‘초보 오우거 슬레이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밸런스 숙련도가 1퍼센트 상승했습니다.

이서우는 순식간에 오우거를 처치하고는 잠깐 동안 석상이라도 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꽤 고전하면서 잡았는데, 마나를 사용하니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사냥을 끝낼 수 있었다.

“헉!”

정신을 차리고 마나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확인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빠져나갔다.

“이래서 밸런스가 중요한 거구나. 사냥 속도는 조금 느려지더라도 마나를 잘 조절해야겠네.”

차라리 잘됐다고 여겼다.

마나 사용의 장단점을 알았으니 앞으로 보안해 나가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이서우는 오우거 지역을 벗어나 다론 마을 끝자락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것을 깨달아 더 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란셀에게 받은 퀘스트가 먼저였다.

장애물도 몬스터도 무시하고 직진으로 왔기 때문에 6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나가 바닥을 치고 있어 안전한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대부분의 마나가 소진되었지만 밸런스 숙련도는 겨우 3퍼센트만 증가했다.

하지만 마나 회복 속도가 빨라 큰 불만은 없었다.

마나를 채운 이서우는 다시 차분히 움직였다.

이동에 마나가 깃드니 소음이 대폭 줄어들었다.

조금 더 속도를 높였지만 역시나 소음은 많이 들리지 않았다.

전투에서 은밀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이서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트롤을 찾기 위해 감각을 넓히며 수색해 나갔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수색했을 때였다.

‘흠, 저곳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예상과는 너무 다른데.’

나무로 된 거대한 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문은 마치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투알개선문처럼 크고 웅장했다.

주변으로는 높이 30미터 이상의 거대한 석상이 있었는데, 마치 문을 지키는 수호석 같았다.

거대한 문과 석상 주위에는 초소로 보이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안이 보이지 않지만 생각보다 커서 수십 명은 충분히 머물 수 있는 규모였다.

그 외에도 무장한 트롤들이 3명씩 조를 이뤄 순찰을 돌고 있었다.

‘지능이 높다고 해서 그냥 개나 돌고래 정도의 수준인 줄 알았는데,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언어도 있다는 뜻인데.’

이서우는 적잖게 당황했다.

트롤이 어차피 같은 트롤이지 다론에 있는 트롤은 뭐가 다르겠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지능이 높으면 생포 작업이 힘들어질 수 있었다.

‘어쩐지 보상을 많이 주더라니. 일단 며칠은 놈들의 생활 패턴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야겠네.’

이서우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퀘스트만 완료해도 3레벨이 오르니 느긋하게 사냥을 하면서 공략법을 연구해 볼 생각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응? 뭐지?’

은밀히 트롤들의 영역이 어디까지 되고, 순찰은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며, 어떤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는지 살피려는데 갑자기 몬스터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이서우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소리에 호기심을 갖고 천천히 움직였다.

‘경계 한번 살벌하네.’

둘레만 해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데도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이서우는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아래가 안 된다면 위로 가야지.’

이서우는 트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나무를 찾았다.

적의 침입 때문인지 마을 경계 지역에는 감시초소를 제외하고는 높은 지형지물이 없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종족이기 때문에 나무를 전부 다 베어 낼 수는 없었다.

그중 가장 가까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이서우는 미리 봐 둔 곳으로 점프했다.

경계 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빈틈을 노린 것이다.

수십 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렸는데도 마나를 사용하니 부드럽게 착지에 성공했다.

혹시라도 트롤들이 접근할 것을 우려해 착지하자마자 어둠으로 숨어들었다.

“우오오오오오오!”

“호! 호! 호!”

“호! 호! 호!”

울부짖는 듯한 소리 외에도 짧은 기합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조금 더 다가가자 수십 마리의 트롤들이 모닥불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이서우는 건물 위로 은밀히 올라가 트롤들의 행동을 살폈다.

‘저건…….’

이서우는 거대한 문이나 석상을 보았을 때보다도 더 크게 놀랐다.

모닥불 주변, 사형대처럼 생긴 높은 대 위에 꽁꽁 묶여 있는 유저들이 보였던 것이다.

“풀어라.”

모닥불 옆에 있는 트롤의 명령에 한 트롤이 포박되어 있던 유저들을 풀어 주었다.

2미터가 넘는 것으로 보아 명령하는 트롤이 무리의 대장 같았다.

‘인간의 말을 하네. 차라리 잘된 건가.’

고유의 말을 쓰면 알아듣지를 못하니 차라리 지금이 나았다.

이서우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풀려난 4명의 유저들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대형을 유지했다.

“형제들 앞에서 이실직고해라. 그러지 않으면 끔찍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뭘 말하라는 것이냐!”

“이곳에 온 목적.”

“사냥을 위해 왔다.”

“크할할할할! 고작 4명, 아니, 돌아오지 않는 놈까지 다섯이서 우리 영역에 사냥을 하러 왔다고?”

“…….”

트롤 대장은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정신 줄을 놓지 않은 이상은 5명이서, 1천 명이 넘게 군집 생활을 하는 트롤들을 사냥하겠다고 덤비지는 않을 것이다.

“원하는 걸 토해 내지 않으면 오늘부터는 아주 고통스러운 날들이 될 거야. 이 지도에 표시된 붉은 점, 이곳에 뭐가 있는 건지 말하라!”

“트롤들의 터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뭣이? 아직도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도리어 따져 묻는 유저의 모습이 불만이었는지 트롤 대장이 다른 트롤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10여 명의 트롤들이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몽둥이로 열심히 패기 시작했다.

‘지금 나서는 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거야.’

맞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서우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혼자서 모든 트롤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저들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저 지도에 뭐가 있는 거지?’

유저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자연스럽게 관심은 지도로 쏠렸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비밀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대장 트롤이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구타가 멈췄다.

대장은 그 손을 유저들 중 1명에게로 뻗었다.

손끝이 닿는 곳에 있던 유저를 2명의 트롤이 대장 앞으로 끌고 왔다.

“말하라.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말한다고 해도 죽일 것이 아니냐. 맘대로 해라.”

“아니다. 나 줄탄은 트롤들의 우두머리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빠, 말하지 마. 죽어도 상관없어!”

“나영아…….”

게임에서 죽는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죽음을 달가워하는 유저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지도의 비밀을 힘들게 알아냈다. 그러니 차라리 말하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나았다.

“닥쳐라!”

짝!

줄탄이 권나영의 뺨을 올려쳤다.

파티의 리더인 권지훈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는데, 그녀의 방해로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줄탄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죽는 게 소원인가? 그러면 난 너희들을 죽이지 않고 평생 이곳에 가둬 두겠다. 어디 그래도 침묵을 지킬 수 있는지 보자.”

“…….”

모든 파티원들이 일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벌써 강제 종료만 몇 차례인가.

재접속을 해도 여전히 이곳에 갇혀 있어, 이미 1명은 포기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나머지 파티원들도 자살을 선택할까 했지만 힘들게 받은 퀘스트가 날아가 버리는 게 싫어서 72시간까지는 버텨 보기로 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서 사흘을 버티면 자살하지 않아도 페널티 없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게임을 즐길지 유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게 해서 이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무모하게 뛰어든 것도 본인 탓이니 말이다.

권지훈은 생각 끝에 한 가지 수를 떠올렸다.

“좋다, 말하겠다.”

권지훈의 말에 줄탄은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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