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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8화 (18/341)

# 18

레벨이 갑이다

18화

뿌우우! 뿌우우! 뿌우우!

뿌우우! 뿌우우! 뿌우우!

짧지만 강렬한 뿔피리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여러 차례 끊어서 내는 방식은 트롤들이 비상시에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소리가 이어질수록 힘이 점점 빠지는 듯했다.

줄탄의 거처에서 뿔피리 소리를 듣던 이서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줄탄은 초록색의 낯빛이 시커멓게 변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갑자기 등장한 이서우를 보며 줄탄은 공격을 하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족장이라고 다른 트롤들보다는 조금 천천히 효과가 나타나나 보네.”

“이, 인간, 대체 무슨 짓을…….”

줄탄은 급기야 침을 질질 흘렸다.

이서우는 책상에 있는 지도부터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쇠줄을 꺼냈다.

줄탄이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팔을 뒤로 하여 묶었다.

안전장치로 쇠줄을 바느질하듯 팔목에서 이두박근까지 꿰매 버렸다.

수차례 꿰매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자 그제야 매듭을 묶었다.

“아주 좋은 물을 먹더군. 지능이 높아서 설마 했는데 진짜로 우물을 쓸 줄은 몰랐어.”

“설마! 하지만 우리는 매일 확인을…….”

이서우는 유저들을 구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

바로 죽음의 꽃이었다.

그는 란셀에게 죽음의 꽃으로 대상의 신체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는 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문명이 발달했다면 먹는 물을 따로 신경 쓸 테니 말이다.

직접 트롤들의 영역을 확인한 이서우는 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밀히 다가가 란셀이 만들어 준 약을 부었다.

줄탄의 말처럼 그들은 매일 우물을 확인한다.

아침을 먹고 사냥을 나가야 하니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절차였다.

하지만 이서우가 탄 것은 독이 아니라 단지 근육을 일정 시간 동안 둔화시키는 것이었다.

게다가 란셀이 어떤 사람인가. 의원이자 약초의 달인이었다.

아무리 트롤들의 문명이 발달했다지만 란셀이 만든 약을 발견할 만큼 특출나지는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 독을 풀었는지는 모르지만 넌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알아,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 하지만 그 약을 만든 분은 너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경지가 높으신 분이야. 설마 내가 그런 것도 생각 못 했을까 봐?”

이서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란셀은 누구보다 트롤들의 재생 능력을 잘 안다. 그러니 당연히 그에 맞게 약을 만들어 주었다.

“어허, 자결은 못써.”

이서우가 철저히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줄탄은 자기 때문에 동족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아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고 있었고, 이서우가 그를 제지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형제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 과연 네 말이 맞나 한번 보자고.”

마지막 힘을 짜내듯 독기 어린 눈빛으로 이서우를 바라보았지만, 김빠진 콜라처럼 그의 목소리는 밋밋하기만 했다.

이서우는 줄탄의 앞으로 다가가 목줄을 움켜잡았다.

힘을 주자 2미터에 달하는 줄탄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신장 차이는 20센티미터 이상 났지만 힘은 오히려 이서우가 더 강했다.

줄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보다 더 굴욕적인 상황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

줄탄을 앞세워 밖으로 나가자 트롤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겨우 서 있기만 할 뿐 무기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흐느적거렸다.

이서우가 줄탄의 목줄을 움켜잡고 나오자 분노한 트롤들이 애써 무기를 고쳐 잡았다.

“어어, 안 움직이는 게 좋을 텐데.”

“커억!”

가만히 둬도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겠지만, 이서우는 줄탄의 목줄을 잡은 손에 힘을 줘서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이다.

트롤들은 분노 어린 얼굴을 하면서도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지하 감옥에 있는 인간들을 데려와라!”

“아, 안……. 컥.”

이서우는 다시 손에 힘을 줘 줄탄의 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1분 준다. 서둘러!”

“아, 알았다. 기다려라. 데려오겠다!”

타오른 부족의 부족장이 눈짓을 하자 트롤들은 힘겹게 지하 감옥으로 갔다.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짜증이 났지만 족장의 안위가 달려 있어 억지로 움직였다.

“데려왔다. 이제 족장님을 놓아주어라!”

“누굴 바보로 아나. 지금 놓아주면 네놈들은 우릴 다 죽이려 할 거잖아?”

“아, 아니다.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

이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유저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네. 한데 누구신지…….”

“볼일이 있어 왔다가 묶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파티의 리더인 권지훈이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탄성을 터트렸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권지훈입니다.”

권지훈은 이서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그쪽이 리더겠죠?

-네. 그렇습니다.

-친구 추가를 했으니 파티 주십시오.

-네.

마침 4명이어서 이서우까지 합류하니 풀 파티가 되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족장을 놓아주겠다. 일단 저들을 풀어 주어라.”

“아, 알았다.”

이서우는 지시를 하면서 파티를 수락하고는 파티 채널을 열었다.

-상황이 급하니 인사는 나중에 하죠. 지금 저들은 근육이 경직되어 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오래 버텨 봐야 30분이니 포박이 풀리면 놈들을 치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무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인벤토리에 두지 않으셨습니까?

-벗기 전에 이미 당하고 말았습니다.

-흠.

이서우는 생각지 못한 변수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아, 퀘스트 아이템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레벨이…….

-몇 렙제죠?

-35레벨에 쓰던 겁니다.

-그거라도 일단 착용하시고 곧장 공격을 펼치세요.

-네? 하지만…….

-지금이 기회입니다. 30분이면 꽤 많은 수의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습니다.

-오빠, 난 찬성이야.

-형님, 저도 찬성이에요.

탱커인 권지훈은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둘러싸고 있으니 오히려 당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했다.

철저한 방어형 탱커여서 더 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라는 이서우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다른 파티원들도 그렇게 생각해서 동의를 하고 나선 것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근육이 경직된 트롤들의 행동은 느렸지만, 네 사람의 대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포박이 풀리자 결정이 내려졌고, 자유를 찾은 권지훈과 그의 동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퀘스트 아이템을 착용했다.

이미 아이템을 다 빼앗았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던 트롤들은 갑자기 인간들이 무장을 하자 크게 당황했다.

“꾸에에엑!”

“꾸에에엑!”

“이, 이놈!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줄탄의 눈동자가 분노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형제들이 죽어 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서우는 줄탄의 가슴을 뚫어 심장을 터트려 버렸다.

“난 다른 트롤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널 놓아준다고 했지 죽이지 않겠다고도 하지 않았고.”

털썩.

아무래 재생력이 뛰어나도 심장이 터지면 소용이 없다.

결국 줄탄은 힘없이 쓰러졌다.

-줄탄을 처치하셨습니다.

-487,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줄탄의 목걸이를 획득하셨습니다.

-줄탄의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3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줄탄을 시작으로 이서우는 권지훈 파티와 합류했다.

그가 나서자 사냥 속도는 무섭게 빨라졌다.

30분, 아니, 이제는 25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서우는 마나를 아끼지 않고 대검을 휘두르며 폭풍처럼 몰아쳤다.

사냥을 하던 권지훈과 그의 일행은 이서우의 대검에 픽픽 쓰러지는 트롤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제 빠져야 합니다!”

300마리 가까이 처치했는데 레벨 업 소식은 딱 두 번밖에 들리지 않았다.

레벨에 필요한 요구 경험치가 갈수록 증가했고, 획득하는 경험치도 줄어들어서 그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기회가 왔을 때 싹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수백 마리가 있었고, 경직 정도가 심한 녀석들은 후방에 빠져 있으니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빠집시다!”

“네!”

아쉬움에 몇 마리를 더 처치했지만 이서우는 이제 빠질 때라는 것을 알았다.

권지훈과 그의 파티원들도 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서우를 따라 후퇴했다.

원래의 장비만 있었다면 조금 더 많은 몬스터를 처치했을 거라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사라진 후 트롤들은 서서히 경직된 근육이 회복되었지만 이서우를 뒤쫓지는 않았다.

이미 때를 놓쳤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이끌 지도자도 죽어 버려서 통솔할 트롤이 없었다.

족장과 부족장을 잃은 트롤들은 형제들을 수습하는 데 집중했다.

한편, 트롤들의 영역에서 빠져나온 이서우와 권지훈 일행은 마을과 가까운 곳까지 와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이쯤이면 안전할 것 같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닙니다. 다른 유저라도 저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홀로 누가 그런 용감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맞아요. 오빠 말처럼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권지훈을 비롯해 모든 파티원들이 진심이 우러나오는 얼굴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이서우는 이런 상황이 어색했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감사 인사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지도를 분석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들과 헤어져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시간도 단축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서우가 그들을 구한 게 지도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

이서우는 괜히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홀로 풀어 가려 했다.

그때, 권지훈이 그를 붙잡았다.

“생명의 은인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식사라도 대접을 해야 우리 마음이 편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진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서우가 거듭 거절 의사를 밝히자 권지훈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그냥 말씀드려.”

“분위기를 좀 갖추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자꾸 거절하시니 그럼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서우는 그가 왜 자신을 붙잡았는지 대충 짐작은 했지만 짐짓 모른 척을 했다.

“서우 님, 혹시 우리가 왜 그곳에 갔는지 아시는지요?”

“사냥이나 퀘스트 때문이겠지요.”

이서우는 가장 평범한 대답을 했다.

유저가 몬스터 지역을 가는 이유는 그 두 가지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들이 그곳에 있었던 이유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 때문이었습니다.”

“발견되지 않은 던전요?”

“네. 보셨다시피 다론에 사는 트롤은 지능이 아주 뛰어납니다. 거의 사람과 비견될 정도죠. 그런 그들의 선대 족장이 남긴 보물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비밀 장소를 저희는 우연히 찾게 되었습니다.”

“우연히라…….”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게 이서우의 지론이다.

현실도 그럴진대, 뉴 월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이서우의 표정을 본 권지훈은 대화를 더 진행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다론 마을의 총경비대장과 인연이 닿아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지도를 주시면서 그러시더군요, 끈끈한 관계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해야만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이죠.”

“아!”

이서우는 그제야 어떻게 그들이 트롤들의 영역으로 오게 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동참해 주십시오. 지도가 없어서 공략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클리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파티라…….”

권지훈이 붙잡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 대충 짐작은 했다.

‘솔로 플레이가 가능한 곳이었다면 NPC가 굳이 동료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이서우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자신이 취할 행동을 정리했다.

정리가 끝난 이서우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트롤들의 숫자가 여전히 많습니다.”

“서우 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을 서너 차례만 쓰면 될 것 같은데요?”

“놈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그리고 필요한 재료도 이젠 구할 수도 없고요.”

식시귀 대왕이 매번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고, 처치한다고 죽음의 꽃이 잘 드롭되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이서우의 부정적인 대답에 권지훈 팀은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이서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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