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레벨이 갑이다
19화
정액 시간이 끝나자 이서우는 접속을 끊었다.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몸을 만드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을 했다.
집에 돌아와 식사부터 끝내고는 가볍게 티타임을 가졌다.
낡은 저가형 커피 머신에서 진한 커피 향이 퍼져 나왔다.
‘총대장과 인연이 있고, 나는 토벌대 대장과 인연이 있으니 가능성은 있어.’
이서우가 생각한 방법은 대규모 토벌대였다.
NPC들과 인연이 있으니 잘 설득만 하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문제는 다론 마을 경비대원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원과 외부 감시탑에 있는 인원을 합쳐도 500명이 넘지 않았다.
마을을 지킬 최소 인원을 두고 토벌대를 꾸린다면 300명이 최대였다.
하지만 이서우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족장과 부족장을 미리 처치한 게 신의 한 수였어.”
리더의 유무가 한 집단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서우는 잘 알고 있다.
40레벨 장비로 교체하고 마나를 이용해 압도적인 힘만 보여 준다면 인원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도 대승이 가능했다.
잔을 비운 이서우는 바로 집을 나섰다.
더 늦기 전에 가야 10시 전에 귀가할 수 있었다.
5시간 정액을 끊고 접속 베드에 누웠다.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다.
줄탄을 잡고 얻은 목걸이가 판매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옵션은 2개였지만 고급 등급이라는 게 아쉬웠는데, 최상급 옵션이어서 750골드에 팔렸다.
이서우는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을 싹 팔고 40레벨 희귀 등급으로 맞췄다.
희귀 등급은 옵션이 1개여도 가격이 꽤 비싸 무기와 방어구, 액세서리까지 풀로 맞추니 고작 20골드가 남았다.
얼마나 능력 향상이 됐는지 캐릭터 창을 확인했다.
이름 : 이서우
하이 레벨 : 43
칭호 : 다론 마을 명예 경비대원
*다론 마을에서 NPC들이 판매하는 모든 물건을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다론 마을에서 받은 퀘스트를 완료하면 20퍼센트 상향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명성 : 150
직업 : 노멀 마스터
레벨 마스터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모든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해당 무기의 스킬도 익힐 수 있다.
단, 필살기는 사용할 수 없고, 직접 창조만 가능하다.
*하이 레벨 특성 스킬
-???
-???
……
-???
생명력 : 10,990(+1,110)
마나 : 8,800
공격력 : 1,502
속성 공격력 ▼
물리 방어력 : 1,193
마법 방어력 : 925
근력 : 160(+54)
민첩력 : 112(+7)
체력 : 134(+28)
지력 : 20
정신력 : 26
보너스 포인트 : 31
‘마나를 늘려 주는 아이템이 없다는 게 좀 아쉽네.’
마나가 37레벨일 때보다 20퍼센트 가까이 올랐지만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력이나 생명력 등 다른 부분에서의 증가폭은 마음에 들었다.
거래 중개소를 나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험가님, 여기 계셨군요!”
“페른 님이 어쩐 일로…….”
“모험가님 덕분에 다리가 완전히 나았습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완쾌되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한데,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는지요.”
“모험가님의 동료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이서우는 페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이야기가 잘됐나 보구나.’
페른의 표정을 보면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다리가 완전히 낫고도 짧은 훈련 시간을 거쳐 아직 몸이 이전처럼 회복되지 않았을 텐데도, 의욕은 누구보다 앞섰다.
“총대장님이 토벌대를 구성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직접 나서신다더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트롤들이 총출동해 마을을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대장님도 그 점을 염려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결단을 내리셨지요.”
“…….”
그 결단 말고 다른 게 뭐가 또 있나 싶어 페른을 쳐다보았다.
페른이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결단을 내리셨는지는 대장님이 직접 모험가님을 보고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예의라고 하시면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총대장님이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 말씀이십니까?”
“네.”
“안내하시죠.”
정확히 무슨 이유로 보자고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퀘스트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이서우는 페른의 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경비대원들이 생활하는 곳에 도착하자 훈련장이 분주했다.
“총대장님이 참여하신다니 대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트롤들의 레벨이 꽤 높은데도 다들 자신만만한 얼굴이네요.”
“이번에는 5년 차 이상만 참여하거든요. 재생 능력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해도, 다들 기대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경험이 많은 대원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페른은 통나무로 된 2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총대장의 거주 공간인 동시에 업무도 함께 보는 공간이었는데, 들어가니 박제된 몬스터와 몬스터 뼈, 가죽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거실을 지나 10미터쯤 되는 좁은 복도 끝에 문이 보였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총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5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신장은 180센티미터가 넘었고 강직해 보이는 외모였다.
나이가 꽤 있는데도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 수련을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서 오게. 총대장을 맡고 있는 반담이네. 페른, 테루 조장에게 많이 들었네.”
“반갑습니다. 이서우입니다.”
“서우 군이라 부르면 되겠나?”
“네.”
“시원시원해서 좋군. 모험가들은 꽤 까다로운 자들이 많던데 말이야.”
반담은 첫 만남부터 이서우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식시귀 대왕을 죽였고, 트롤들의 족장과 부족장을 처치하는 데 공을 세웠는데도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든 것이다.
“이번에 소식 들었네. 큰 공을 세웠다고?”
“아닙니다.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닐세. 누구도 그런 일을 그냥 할 수는 없지. 자네가 명예 대원인 것이 자랑스럽네.”
-다론 마을의 경비대 총대장 반담과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한데, 절 찾으셨다고요?”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며칠 푹 쉬도록 했을 텐데, 곧 트롤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면서?”
“네. 워낙 많은 숫자가 죽어서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을에는 힘없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우리가 먼저 치기로 했네. 난 자네가 6그룹을 맡아 줬으면 좋겠네.”
“6그룹이라고요?”
“그러네. 이번 토벌대는 300명으로 했네. 50명씩 6그룹으로 나눴고, 난 자네가 그중 한 그룹을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네.”
-반담이 당신에게 50명의 대원들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토벌대에 참여하는 퀘스트일 줄 알았는데, 대원들을 이끌라고?’
어나더 월드 시절, 레이드에 참가한 횟수가 몇 번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참여했었다.
하지만 유저와 NPC는 다르다.
“단신으로 들어가 족장과 부족장을 비롯해 300마리에 달하는 트롤을 죽이고 온 자네야. 난 자네가 잘할 거라 확신하네.”
-반담이 더 간절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정확히 제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요?”
“자네가 할 일은…….”
트롤을 일망타진하라
반담은 위험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하기 원한다.
하지만 수적인 열세로 정면충돌에 대해 염려가 크다.
이에 반담은 식시귀 대왕을 단신으로 처치하고, 적진 한가운데 뛰어들어서 트롤 족장과 부족장을 처치한 당신에게 중책을 맡기려 한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트롤들의 사기를 다운시켜야 한다.
성공 시 보상 : 3레벨 경험치, 50골드, 하급 강화석 3개.
실패 시 : 5레벨 다운, 다론 마을 경비대와의 친밀도 하락.
“트롤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네. 6그룹에는 발 빠른 대원을 대거 배치해 두었네. 자네는 빠르게 이동해 후방을 치게. 자네의 힘으로 단숨에 몰아치면 놈들의 사기는 바닥을 칠 걸세.”
“흠.”
이서우는 명확하지 않은 퀘스트 완료 조건에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자칫 잘못하면 고생만 실컷 하고 욕만 먹을 수도 있었다.
“좋네. 트롤들을 처치할 때마다 내 특별히 1골드씩 지급하겠네.”
“마리당 1골드를 지급하신다는 뜻입니까?”
“그러네.”
반담이 힘주어 대답했다.
그는 큰 피해 없이 이번 일을 마무리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서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트롤들을 얼마나 흔들어 주냐에 따라 압도적인 승리가 보장되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할 수만 있다면 돈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이서우에게는 골드가 중요했다.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게 있습니다.”
“뭔가?”
“아무리 제가 명예 대원이라지만 단숨에 50명을 이끄는 위치로 가게 되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네. 그래서 식시귀 토벌에 참여한 사람들과 자네에게 호감을 가진 대원들로 뽑아 놨네.”
“한결 마음이 편하네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려면 빠른 움직임이 필수여서 총대장도 이미 조치를 취해 뒀다.
“자네가 보기에는 놈들이 오늘내일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나?”
“족장과 부족장이 한꺼번에 죽었기 때문에 당장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맞네. 아마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거야. 그래도 혹시 몰라 정찰을 보내 놨네. 출발은 내일 새벽으로 잡혀 있지만,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면 언제든 싸울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네가 서우 군을 동료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게.”
“네, 대장님.”
페른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서우는 페른의 뒤를 쫓았다.
반담의 거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잘 지어진 통나무집이 있었다.
“오늘 하루는 저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니 자리를 비우지 마십시오. 참, 그리고 내일 함께할 대원들을 잠시 후 이곳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페른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이서우를 극진히 대했다.
잠시 후, 약속했던 대원들이 왔다.
한데,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테루 님도 6그룹이십니까?”
“대장님께 모험가님과 꼭 함께하고 싶다고 매달렸지요. 페른도 참여했는데 제가 빠질 수야 있나요. 아마 이 녀석보다 제가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나한테 한 수만 가르쳐 달라고 매달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무슨 소리. 쉬는데 자꾸 와서 귀찮게 대련하자고 한 게 누군데!”
“아이고, 두 분 다 제겐 꼭 필요한 분들이시니 그만 다투세요. 후배들이 봅니다.”
“험, 험험.”
“커험.”
서로 잘났다고 우겨 대는 데 바빠 뒤에서 대기 중이던 대원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소개 좀 시켜 주시죠.”
“아, 네. 총대장님이 특별히 구성한 대원들로, 발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아마 모험가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부족하지만 여러분들을 지휘하게 된 이서우라고 합니다.”
이서우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원들과 대화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이서우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고르고 골랐다는데도 몇 명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게 눈에 보이네. 하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격이니 그럴 수도 있지.’
이상한 기운은 감지했지만 이서우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모든 대원들이 자신을 열렬히 환영했다면 뻔한 게임이라며 재미없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짓든 이서우는 대원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주의 사항에 대해 말했다.
그나마 테루와 페른이 적극적으로 이서우를 지지해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대원들이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이서우는 피해 없이 큰 승리를 쟁취하자는 말을 끝으로 그들과 헤어졌다.
권지훈 일행과 한창 지도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나온 것이라 얼른 그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