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레벨이 갑이다
21화
이서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네 가지 반찬과 찌개, 밥이 잘 차려진 식탁에서 든든히 아침을 해결했다.
이서우는 커피를 마시며 N게임넷을 시청했다.
돈 안 들이고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틈틈이 시청했다.
24시간 게임 관련 내용만 반복하는 채널이어서 이서우에게 유용했다.
곧 N게임넷의 간판스타인 설아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영원한 연인 설아예요! 다들 즐뉴 하고 계신가요? 네, 저도 열심히 레벨 업을 하고 있답니다. 오늘도 몇 가지 여러분들이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바로 톱 랭커들의 레이드 소식이죠. 운이 좋게도 동영상이 들어와 있네요. 일단 영상부터 보시고 시작할게요. 아시죠? 채널 돌리시면 미워할 거예요. 그럼 이따 봬요!
설아의 목소리가 끝나고 거대한 돌산이 영상에 나타났다.
마치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에어즈 록Ayers Rock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바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식 랭킹 1위부터 20위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때에는 그들 중 절반만 모습을 보였는데, 성과가 좋았는지 이번 레이드에는 상위 랭커들이 모두 참여했다.
공식 랭킹 1위 전신이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반짝거리는 무기와 갑옷을 보고 있노라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들이 가진 아이템은 전부 영웅급 이상으로, 상당히 고가의 것들이었다.
강화도 이미 10을 넘겼는지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데, 그중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는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신이었다.
붉은색은 15강이 되어야 가능한데, 영웅은 12강이 최대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착용한 무기가 유일 등급 이상이라는 소리다.
몇몇 유저들은 전설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아직은 전설 이상이 풀리지 않아 신빙성이 낮았다.
어쨌든 사람들은 전신의 모습을 보며 ‘대박, 어떻게 유일 등급으로 풀 세트를 맞추냐.’라며 탄성을 터트리기도 했고, ‘와, 저게 다 얼마야?’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그로는 제가 확실히 잡아 둘 테니 메인 힐러 두 분은 제게 집중해 주세요. 버프가 끝나면 공격하겠습니다.”
“네!”
힘찬 대답 소리와 함께 버퍼들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준비 작업이 끝나고 전신이 크게 도약하자 랭커들도 덩달아 바위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였다.
거대한 바위에서 머리와 팔, 다리가 생겨났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큰 바위 골렘은 긴 팔을 휘두르며 전신을 공격했다.
도약으로 높이 뛰어오른 전신은 몸을 무겁게 만들어 밑으로 꺼지듯 내려왔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지면을 강하게 밟은 전신은 빠르게 돌격하면서 어깨를 뒤로 한껏 뺐다.
접근하자마자 바로 찌르기 위한 동작이었다.
푹!
골렘의 몸에 대검이 끝까지 박혔다.
시청하는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며 앞으로 벌어질 전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기 위해 집중했다.
하지만 영상 우측 하단에 ‘to be continued’라는 메시지가 뜨며 끝이 났다.
“쩝, 절단 신공 쩌네. 어떻게 딱 저기서 끊냐.”
-어머, 죄송해요. 우리에게 들어온 영상은 여기까지랍니다. 레이드에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아무래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큰 바위 골렘의 레벨이 150이라는 거예요. 100레벨부터 유일 등급의 아이템이 등장했듯, 150레벨에 전설 등급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크죠. 그래서 이번 레이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네, 저도 빨리 소식을 듣고 싶답니다. 전해지는 대로 바로 알려 드릴게요. 아시죠, 저 설아는 여러분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거? 그러니 믿고 기다려 주세요!
상큼한 미소와 함께 윙크까지 하니 인형이 따로 없었다.
설아는 손 하트까지 그려 가며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더니 그녀의 옆에 남자가 나타났다.
-자, 그럼 다음 순서를 이어 갈게요. 오늘도 저를 도와주실 손님 한 분을 모셨답니다. 아마 다들 아실 거예요. 랭킹 100위이신 최태훈 님이세요.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시청자분들께 한 말씀 해 주시죠.
-뉴 월드 유저 여러분, 반갑습니다. 탱커의 자존심 최태훈입니다.
-네. 저도 최태훈 님의 활약 잘 보고 있는데, 정말 탱커를 위해 태어나신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최고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동영상 보면서 ‘저런 탱커에게 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멋져요!
-이거 설아 님께서 제 얼굴에 금칠을 해 주시네요, 하하하.
설아의 칭찬에 최태훈은 기분 좋게 웃었다.
립서비스인 것을 알지만 아리따운 여성이 칭찬을 하니 얼굴이 절로 밝아졌다.
-오늘 최태훈 님을 모신 것은 바로 100레벨 던전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인데요. 자, 준비되셨나요?
설아가 자주 하는 멘트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애교를 섞어 하는 말이었다.
100레벨 던전에 대한 이야기가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던전에 대한 정보는 아주 고급에 속하는 것으로, 제대로 알려면 큰돈을 지불해야 한다.
방송에서도 그것을 알기에 적당한 선에서 조절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요소가 없다면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방송사로서도 아주 비싼 값에 랭커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서우도 머지않아 100레벨이 될 테니 흥미를 가지고 꼼꼼하게 들었다.
-자, 이제 마지막 순서가 왔네요. 그동안 저렙 존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어 다루지 않았는데요, 바로 어제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다지요.
-네, 그렇습니다. 초보 마을 중 다론이라는 곳에 몬스터들의 대규모 공격이 있었지요. 저도 그 소식에 적잖게 놀랐습니다.
-최태훈 님도 영상 보셨죠?
-네.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헉! 뭐야. 설마 동영상으로 찍혔어?”
이서우는 다론이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랐다.
“젠장. 하긴 그 많은 유저들이 있었는데 동영상 하나 안 찍혔겠어? 제발 내 모습은 안 나타나야 하는데.”
-참, 최태훈 님, 저 장면을 놓고 사람들이 말이 많던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게 저도 조금 의외였습니다. 아마 급박하게 전투를 펼치는 상황에서 영상을 촬영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힐러 시점에서 찍은 것들도 다 흐릿한 것 같던데요.
-그런가요?
-네. 좀 이상해서 알아봤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저 유저의 동작은 다 흐리게 나오더라고요.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아마 초보자분들이시라 영상을 찍는 게 익숙하지 않아 그럴 겁니다. 보통은 1차 전직 마지막 퀘스트부터 영상을 찍기 시작하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최태훈의 말에도 설아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지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장 확인해 볼 길이 없어 그녀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시청 중이던 이서우는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휴, 저 때는 똥줄이 빠져라 고생했는데. 얼굴이 안 드러나서 다행이네.’
지금처럼 대규모 퀘스트의 경우는 초상권이라는 게 성립이 되지 않는다.
거의 강제로 받다시피 한 퀘스트여서 모두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마을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여겨 전력을 다했었다.
워낙 빨리 움직이니 초점을 잘 맞출 수 없어 흐리게 나온 것이다.
이서우는 전날의 일을 떠올렸다.
* * *
혹시라도 마을에 해가 될까 염려가 된 이서우는 전력을 다해 트롤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갑자기 이서우가 나타나자 수백 마리의 트롤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도 멀리서 봤다, 이서우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놈은 아버지의 원수다! 우리는 긍지 높은 트롤이다. 벌벌 떨지 말고 적과 맞서 싸워라!”
한 트롤의 거친 외침에 트롤들은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들었다.
검과 창, 철퇴 등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무작정 공격하지 않고 질서 있게 움직였다.
‘저놈이구나.’
이서우는 지도자가 없는데도 트롤들이 단합한 것이 바로 지금 외치는 트롤 때문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그의 목표는 바로 공격 명령을 내린 트롤이었다.
이서우는 대검을 팽이처럼 휘둘러 한 번에 8마리의 트롤들을 처치했다.
기세를 몰아 대검을 사방팔방으로 휘두르며 트롤들을 도륙해 나갔다.
머리가 잘린 트롤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팔과 다리가 잘린 트롤들은 뒤로 물러나 재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숫자가 너무 많으니 절반은 놓치네.’
팽이처럼 대검을 휘둘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계속 진행한다면 힘을 2배로 들여야 해서 이서우에게 많이 불리했다.
“제가 앞을 막겠습니다! 마음껏 집중 공격하십시오!”
그때 이서우의 앞을 막는 커다란 방패가 있었다.
바로 권지훈이었다.
이서우는 그를 방패 삼아 필요할 때만 대검을 휘두르며 정확도를 높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수십 마리의 트롤들을 처치하고 나자 반가운 메시지가 들렸다.
레벨이 오르면서 요구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제는 10마리를 처치해도 경험치 바가 그다지 많이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서우는 퀘스트 완료로 얻을 보상을 생각하며 트롤들을 처치해 나갔다.
때마침 마을에서 유저들이 대거 튀어나왔다.
트롤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던 권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우 님, 이제 좀 여유를 찾을 수 있겠네요.
-아닙니다. 더 바삐 움직여야 합니다.
-네?
-추가 보상 제대로 받아야지요.
-아!
이서우는 활력차를 마시고는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오늘 아니면 더 이상 전투가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마리당 1골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서우의 마나는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가 남긴 흔적은 놀라웠다.
권지훈과 다른 파티원들은 이서우를 서포트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럼에도 그를 쫓기가 너무 힘들었다.
권지훈은 몬스터를 몰아서 이서우에게 갖다 바쳤고, 권나영은 힐을 넣는 데 바빴다.
쌍수를 사용하는 김민철은 팔이나 다리가 잘린 트롤들의 마무리를 맡았고, 최수연은 버프가 사라지지 않게 하며 간간이 김민철을 도와 사냥에 참여했다.
사냥에 한창이던 이서우는 생각보다 마나가 오래 버텨서 신나게 대검을 휘둘렀다.
‘자연 회복 속도를 조금 높여 주는 거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버퍼가 꽤 도움이 되네.’
마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느끼던 그였다.
마나양이 거의 힐러에 버금갈 정도로 많아 자연 회복량만 높여도 상당히 꽤 도움이 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한창 사냥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승리의 함성이었다.
이제 남은 트롤은 겨우 수십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트롤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남은 마나를 박박 긁어서 끝까지 도륙했다.
사람들은 그의 끈질긴 집념에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NPC들은 마을을 지키려는 그의 간절한 의지를 보며 감동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싸! 돈 굳었네.’
그렇게 2시간에 걸친 몬스터 공격은 막을 내렸다.
이서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권지훈과 합류했다.
* * *
“다행히 내 얼굴은 제대로 안 찍혔네. 괜히 귀찮은 일 만들 뻔했어.”
이서우는 영상을 끝까지 확인하고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 그럼 가 볼까.”
감춰진 던전을 찾기 위해 오전 9시에 접속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서우는 기분 좋은 얼굴로 접속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