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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2화 (22/341)

# 22

레벨이 갑이다

22화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접속한 이서우는 캐릭터 창부터 살폈다.

어제는 퀘스트를 완료하고, 경비대원들에게 환대를 받은 뒤 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마을 전체의 이벤트여서 사람들이 너무 몰려 캐릭터 변화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종료한 것이었다.

‘캐릭터 창.’

명령어와 함께 캐릭터 창이 떴다. 이서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꼼꼼하게 살폈다.

‘완전 광폭 업을 했구나. 골드도 대박이고.’

이서우는 필요한 부분만 상태 창에서 확인했다.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7레벨이나 올려 수치의 변화 폭이 컸다.

마리당 1골드 추가 보너스로 200골드 이상을 벌어들여 현재 400골드가 넘는 돈이 인벤토리에 쌓여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이서우는 총경비대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전직 NPC가 바로 마을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 이유는 퀘스트만이라도 받아 두려는 것이었다.

경비대원들이 이서우를 볼 때마다 거수경례를 했다.

경비대 건물을 지키는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사통과였다.

그렇게 이서우는 편하게 반담의 거처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허허, 이게 누군가. 우리 다론 마을의 영웅 아니신가.”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아닐세. 자네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돼. 자네 덕분에 마을에 큰 피해가 없었어.”

“반담 님이 미리 언질을 해 주셔서 그런 겁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구먼.”

이서우의 겸손한 모습에 반담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건가.”

“테스트를 받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테스트? 자네가?”

반담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분명 유료 사이트에서는 마을을 관리하는 NPC가 준다고 했는데.’

이서우는 반담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유료 사이트에서 무려 1만 원을 주고 구매한 정보다.

1만 원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국밥 한 그릇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이서우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자, 반담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스스로 길을 찾는 자’가 아닌가. 테스트 따위는 필요가 없는데, 뭘 시험한다는 건가.”

“‘스스로 길을 찾는 자’라고요?”

“그래. 자네는 이미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노멀 마스터가 되지 않았나. 하이 레벨이 된 자를 내가 어찌 테스트를 하겠나.”

“노멀 마스터와 하이 레벨에 대해 아십니까?”

이서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아는 NPC를 만나 적잖게 놀랐다.

지금까지 어떤 NPC도 그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자네는 잘 모르나 보군. 하긴, 나도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해.”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자네에게 도움이 될 일도 있구먼. 기분이 좋은데?”

다론 마을의 영웅이 되면서 이서우의 존재감은 총대장과 비견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반담은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이서우가 겸손하게 요청을 하니 더더욱 신이 나서 아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륙 곳곳을 여행하면서 하이 레벨에 대해 들었다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어서 실제 존재하는지 몰랐는데, 자네가 전투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알았지.”

“제 전투가 다른 사람과 다른가요?”

“물론이지. 자네는 모든 동작에 마나를 담지 않나?”

“마, 맞습니다.”

“바로 하이 레벨의 특성이지.”

“아!”

“자네를 보고 많이 놀랐다네. 모험가들 중에 하이 레벨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으니까.”

“그렇군요.”

무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이서우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경험 많은 반담이 하는 말이니 확실하겠지.’

유저들 중에서 유일하다는 것이 이서우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이점이라면 이서우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하이 레벨이라도 모든 게 다 만능은 아니네.”

“혹시 큰 단점이라도 있는 건가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지.”

“그게 단점이라고요?”

“그렇다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떤 무기든 몸에 착착 감기듯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

“여러 가지에 재능이 있는 것보다 한 가지에 재능을 가진 게 더 낫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다 잘하다 보니 하나만 파지 못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높은 경지에는 오를 수 있지. 하지만 최고는 되기 힘들어.”

“반담 님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만 파면 월등히 빨리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군요.”

“당연하네! 하지만 능력이 있으면 항상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야.”

이서우는 공감이 되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원하는 무기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의 무기만 사용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쓰겠지만,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면 상황에 맞춰서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하지만 반담은 이서우가 얼마나 독종인지 알지 못했다.

어나더 월드 시절, 모두가 포기했지만 오직 그만이 모든 기술을 다 마스터했었다.

“충고 잘 새겨듣겠습니다.”

“항상 지금처럼 배우는 자세를 잊지 말게.”

“네, 반담 님.”

“참, 그리고 마법은 손대지 말게.”

“마법과는 맞지 않아 별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잘 생각했네. 강력한 한 방에 취해 손을 댔다가는 크게 후회할 것이네. 육체가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지 정신력이 경지에 든 것은 아니니 삼가야 해.”

“네.”

전직 퀘스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반가웠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이서우의 고민을 아는지 반담도 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걱정은 말게. 자네는 스스로 길을 찾게 될 것이네.”

“그러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전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까?”

“열심히 수련을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네. 아주 오래전 하이 레벨조차 뛰어넘는 존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펠렌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혹시라도 벽에 부딪치면 그의 흔적을 찾아보게.”

“펠렌이라……. 알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아닐세. 우리 마을을 지켜 준 자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하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충분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이제 자네는 이곳을 떠나겠지?”

“아무래도 더 넓은 곳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게 자네를 위해서도 좋네. 하지만 생각나면 언제든 이곳을 찾게. 맨발로 나와 맞아 줄 테니.”

“그 말 꼭 기억하겠습니다 .”

“허허허, 그 사람 참. 의외로 뒤끝이 있는 성격이구먼.”

목젖이 보일 정도로 웃는 반담을 바라보며 이서우도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이서우는 대화를 끝내고 반담과 헤어졌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권지훈으로부터 귓말이 왔다.

-서우 님.

-아, 오셨군요. 광장으로 가는 길이니 카페에 계시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네.

다론 마을 수호 퀘스트가 진행된 직후여서일까. 광장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다행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네.’

대규모 몬스터 공격 때 이서우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지만 마을에 있는 유저들과 섞여서 싸운 것이 아니라 뒤를 친 것이어서 그를 아는 유저는 없었다.

“서우 님, 여깁니다.”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네. 약속은 금이죠.”

이서우는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에 앉아 마실 것을 시켰다.

“마을 분위기가 예전보다 더 밝아진 느낌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활기가 돋더군요.”

이서우는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며 맞장구를 쳤다.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산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참, 지금 바로 가실 거죠?”

“네, 그래야죠. 정비만 끝내고 가죠.”

“우린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어제 종료 전에 미리 다 준비해 뒀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전 잠시 들를 데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다녀오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차나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서우는 거래 중개소로 갔다.

‘전직이 안 돼서 아쉽지만 장비라도 바꿔야지.’

50레벨 아이템은 40레벨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결국 이서우는 옵션이 낮은 희귀 아이템으로 싹 교체했다.

‘제길. 매번 느끼는 건데, 아이템만 바꾸면 돈이 바닥이네. 이래서 언제 모으나.’

이서우는 24골드가 남은 인벤토리를 확인하고는 란셀 의원으로 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물약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오, 우리 영웅님이 오셨구먼.”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당연하지.”

능글맞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이상하게 이서우는 란셀이 밉지가 않았다.

“재밌으세요?”

“그럼. 당연히 재밌지.”

“제가 재밌게 해 드렸으니 괜찮은 물약이나 좀 보여 주세요.”

“영웅님께서 늙은 노인네 삥 뜯으려고?”

“삥이라뇨!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살 겁니다.”

란셀은 ‘이놈이 늙은이 구박하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이건 내상에 도움이 되는 거고, 이건 외상에 도움이 되는 거다. 효과는 확실하니 유용하게 쓰일 거야.”

“그럼 5개씩만 주세요.”

“개당 1골드다.”

이서우는 옳다구나, 하고 얼른 10골드를 내밀었다.

란셀이 만든 물약은 엄청난 효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것을 단 1골드에 산다는 건 행운이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마을을 지켜 줘서 내가 오히려 고맙지.”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뭘.”

“녀석, 하이 레벨이라고 해서 교만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좋구나.”

“헛! 어르신도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싹수가 어떤 놈인지 잠시 확인해 본 거지.”

“그러셨구나.”

이서우는 일견 납득이 되었다.

100세가 가까워 온다고 했으니 경험이 얼마나 많을까.

예순 살이 채 되지 않은 반담도 아는 일을 란셀이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지금의 경지에 만족하지 말고, 항상 정진해라.”

“네, 어르신. 명심하겠습니다.”

“도시로 가도 한 번씩 찾아오고.”

“그럼요. 어르신이 만든 약, 제가 먼저 써 봐야죠.”

“너 줄 약 없다. 썩 사라지거라.”

“네.”

이서우는 미소를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말은 투박하게 해도 그 속에 담긴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볼일을 마친 이서우는 늘어난 능력치를 확인하며 권지훈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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