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레벨이 갑이다
23화
트롤 지역으로 들어서자 앞장서던 권지훈이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
이서우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트롤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주변이 조용하네요.”
“편하게 살펴봐도 되겠어요.”
“네.”
권지훈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문이 있던 바로 그곳이었다.
“이곳인가요?”
“네. 일단 지도상으로는 이곳이었습니다. 전에는 이 근처에 와서 잡혀서 가까이 와 보지도 못했는데, 웅장하네요.”
30미터가 넘는 높이에 주변을 호위하듯 거대한 석상까지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주변에는 특별한 게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있는 거라고는 문이랑 석상뿐이네요. 흩어져서 살펴볼까요?”
“아무래도 규모가 있으니 그게 낫겠네요.”
문의 폭이 15미터가 넘고, 석상도 좌우로 3개씩 있어서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파티원들은 흩어졌다.
‘지도상으로는 분명히 이곳이 맞는데…….’
이서우는 문을 시작으로 꼼꼼하게 살폈다.
두드려 보기도 하고, 바닥을 발로 쿵쿵 차 보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위쪽인가?’
아래쪽에 특별한 점이 없으니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석상과 높은 건축물의 꼭대기가 보였다.
‘에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직 살펴볼 곳도 많으니 다른 곳부터 보자.’
이서우는 설마 석상이나 건축물 꼭대기에 입구를 만들까 싶어 다시 지상으로 눈을 돌렸다.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펴보겠지만, 아직은 주변에 확인할 곳이 많았다.
그는 문에 새겨진 문양과 그림까지도 매의 눈으로 각인시키듯 보았다.
석상의 발과 다리 부근, 주변 바닥까지 꼼꼼히 살폈다.
대검으로 곳곳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발바닥에 마나를 담아 꾹 눌러 가며 빈 공간이 있는지 확인했다.
마치 불량품을 찾는 사람처럼 세세하게 뜯어보았다.
‘트롤들도 이곳을 수시로 들락날락했을 텐데 못 찾았어. 그렇다는 것은…….’
몇 시간을 집중해서 살피던 이서우는 멈춰 서서 고개를 위로 뻗었다.
이제 남은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이서우는 크게 점프해 대검을 석상에 박아 넣었다.
“서우 님?”
“아무래도 아래쪽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트롤들도 알았겠지요.”
“아!”
이서우의 지적에 권지훈도 그제야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서우는 서 있는 석상은 주로 가슴과 머리를, 좌상의 경우는 다리와 가슴, 머리 위를 주로 살폈다.
그렇게 세 번째 석상에 다다랐을 때였다.
몸통, 얼굴까지 확인한 그는 머리로 올라갔다.
한데, 다른 석상들과 달리 정수리 부분에 홈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아주 미세한 홈이어서 가까이에서 보지 않는다면 찾기 힘들 정도였다.
이서우는 손을 가져갔다.
힘을 줘서 누르자 마치 버튼처럼 쑥 들어갔다.
기이잉.
기계음 같은 것이 들렸다.
이서우는 바닥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공중제비로 바닥에 착지했다.
-찾았습니다!
혹시 주변에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라 파티 채팅 창으로 말했다.
한창 주변을 탐색하던 파티원들은 이서우의 말에 얼른 그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석상 발뒤꿈치 부분에 공간이 보였고, 고개를 쑥 들이밀자 어둠 속에 잠자고 있던 계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서우는 안에 장치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문을 닫을 수 있는 버튼이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입구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숨겨 뒀군요.”
“그러게요. 발 부분도 꼼꼼하게 살폈는데, 세월의 흔적으로 덮여 있었나 봅니다. 위쪽은 바람이나 비 등에 의해 완전히 숨겨지지는 않았던 것 같고 말이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게다가 이렇게 두꺼우니 두드려도 잘 몰랐던 거고요.”
“네. 위쪽까지 살펴볼 생각을 못 했다면 영영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처음에는 서우 님이 살펴보신 석상이 지도에 나온 그림과 많이 비슷해 먼저 확인했는데, 역시나였네요.”
지도를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머릿속에 훤하게 그려지는 권지훈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이서우가 살핀 이 석상을 확인했다.
지도에 나온 그림과 너무 유사해서, 혹시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꼼꼼히 살폈어도 입구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다른 곳을 확인하면서도 계속 이 석상이 신경 쓰였는데, 그의 예감이 맞았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들어가죠.”
“네.”
파티원들이 다 들어간 것을 확인한 이서우는 버튼을 눌렀다.
미약하게 기이잉 하는 소리가 나면서 돌문이 닫혔다.
“라이트!”
힐러인 권나영이 주문을 외자 지팡이가 밝아졌다.
지하로 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분위기가 음침하네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더 그렇겠지요.”
“우리가 최초겠죠?”
“아마도요.”
계단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좌우를 살피는데 먼지가 잔뜩 끼어 있는 것이, 확실히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내려가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고대 트롤의 유산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 혜택이 적용됩니다.
-24시간 동안 경험치, 골드 보상이 2배 상승합니다.
바닥까지 내려오자 들려오는 메시지에 이서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접속하길 잘했네요.”
“보너스 유지 시간까지는 피 터지게 사냥이나 하죠.”
“……네.”
시간이 넉넉하다는 말에 이서우는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권지훈은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서우가 쉬지 않고 사냥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힘이 빠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사냥을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겠지만, 이서우는 진짜 24시간 내내 사냥을 할 사람이었다.
크고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외로 밝은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모든 파티원들이 문 안쪽으로 들어오자 거대한 문이 스르르 닫혔다.
그때였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그분의 후손이 아닌 자는 당장 돌아가라!”
“…….”
뜬금없이 들리는 음성에 이서우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분주히 살폈다.
하지만 웅웅 울려서,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쿵!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그분의 후손이 아닌 자는 당장 돌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천벌을 내리겠다!”
바닥이 크게 흔들리더니 한 문장이 더 추가되었다.
간단한 말이지만, 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안쪽 공간은 꽤 넓었다. 폭은 20미터에 달했고, 길이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 뭐가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커다란 공간이었다.
그그그그그긍!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행은 무릎을 살짝 굽혀 균형을 잡았다.
그런데 바닥뿐만이 아니라 천장도 요동치며 돌가루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전진합시다!”
“네? 네.”
리더는 권지훈이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곳에 온 터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미리 던전에 대해 알고 난 뒤에 파티를 이끈다.
한데, 지금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판단이 신속히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이서우였다.
그가 싸우는 모습을 모두가 봤기에 파티원들은 거부감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슉!
“막으면서 계속 전진합니다!”
갑자기 천장에서 기다란 창이 떨어졌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7미터 정도였는데, 창의 길이가 3미터가 넘었다.
게다가 너무 빼곡히 떨어지니 피할 곳이 없었다.
이서우는 대검을 휘두르며 창을 빠르게 걷어 냈다.
탱탱탱탱탱탱탱탱!
권지훈은 방패를 적극 활용했고, 김민철은 쌍칼을, 힐러와 버퍼도 각자의 무기로 최대한 창을 막아 냈다.
“끝이 보입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서우의 말에 파티원들은 다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끝에 있는 문을 발견한 이서우는 크게 도약해 대검을 휘둘렀다.
가가가가가강!
불꽃이 튀며 바윗덩어리가 비명을 질렀다.
이서우는 어깨로 문을 강하게 쳤다.
문이 부서지자 파티원들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살았다는 생각도 잠시, 방 안에 괴이한 생명체가 보였다.
키는 3미터 정도였는데, 하체는 분명 라이칸스로프처럼 생겼으나 상체는 오우거와 닮아 있었다.
“멍청한 인간들, 그분의 후손이 아니면 분명 돌아가라 했거늘!”
쾅!
어디서 나타났는지, 괴물의 손에 거대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괴물은 몽둥이로 바닥을 크게 내려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퀴헬른이 분노합니다.
-10분 동안 퀴헬른의 공격력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선공합시다!”
“네!”
위압감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서우에게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권지훈을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몸을 빼고만 있을 수 없어 이서우의 뒤를 바짝 쫓았다.
“어리석은 인간, 주인님의 제물이 되어라!”
후웅!
퀴헬른의 외침과 함께 방망이에서 수백 개의 뾰족한 철심이 튀어나왔다.
퀴헬른은 침입자를 응징하기 위해 몽둥이를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공격에 당할 이서우가 아니었다.
이서우가 가볍게 피해 버리자 퀴헬른은 휘두르던 몽둥이를 멈추고 그를 찾았다.
옆구리 쪽으로 돌아서 공격 기회를 엿보는 것을 확인하자 퀴헬른은 코웃음을 치며 몽둥이를 회수했다.
퀴헬른은 이서우보다 먼저 공격을 하기 위해 몸을 살짝 틀어 방망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이서우는 머리 위로 내려오는 방망이를 보며 퀴헬른의 가랑이 사이로 슬라이딩을 했다.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가 없어 공격까지 염두에 두고 한 행동이었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면서 대검을 휘둘렀다.
서걱!
마음 같아서는 급소를 베고 싶었지만 강철로 된 보호대가 있어 아킬레스힘줄을 잘랐다.
“이, 이노옴!”
화가 난 퀴헬른은 고통을 참으면서 뒤차기를 했다.
화는 나는데 이서우가 등 뒤에 있어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이서우는 공중으로 높이 점프해 퀴헬른의 공격을 피했다.
그때 마침 뒤이어 달려온 권지훈이 합류하면서 퀴헬른의 신경이 분산되었다.
이서우는 이를 놓치지 않고 마나를 이용해 계속해서 퀴헬른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퀴헬른은 재생 능력이 탁월해 피부가 깊게 잘려 나가는 정도로는 큰 대미지를 줄 수 없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이서우는 마나의 힘을 믿고, 약한 부위를 공격했다. 특히 발목과 팔목, 관절 등을 노렸다.
자꾸 재생을 해서 귀찮았지만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파티원들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권지훈은 빈틈을 노리고 수시로 검을 찔러 넣었고, 김민철도 쌍칼을 열심히 휘두르며 퀴헬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한참 공격을 하는데,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서걱!
“이, 이놈이!”
서걱!
“크아아아악!”
이서우는 퀴헬른을 공격하면서 어느 정도 힘을 줘야 재생력을 뛰어넘는 공격을 펼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어느 정도 데이터가 나오자 이서우는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잘랐던 곳을 연속해서 잘라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이었다.
생명력이 왕성할 때는 같은 곳을 정확히 똑같이 공격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생명력이 어느 정도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을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그대로 둘까 보냐!”
팔목이 완전히 잘려 나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퀴헬른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같은 곳을 서너 번만 공격해도 신체 부위를 잘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고, 이번에는 발목을 노렸다.
결국 발목까지 잘려 나가자 퀴헬른의 육중한 몸이 기우뚱거렸다.
이서우는 균형을 잡지 못하는 퀴헬른을 몸으로 들이받았다.
쿵!
“다들 집중 공격하세요!”
이서우의 외침에, 모두가 쓰러진 퀴헬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재생력이 제대로 발휘되기도 전에 집중포화를 하니 퀴헬른도 버티지 못했다.
결국 퀴헬른은 필살기를 써 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퀴헬른을 처치했습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19,48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퀴헬른의 목걸이를 획득하셨습니다.
-퀴헬른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퀴헬른의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퀴헬른의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1골드 20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휴우, 서우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힘을 합쳐서 쉽게 처리한 거죠.”
“그, 그런가요?”
“그렇죠.”
권지훈은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퀴헬른을 이렇게 쉽게 쓰러트린 것이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가 느낀 퀴헬른은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였다.
만약 그가 그동안 함께했던 파티와 왔다면 하루 종일 퀴헬른만 잡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서우는 다 같이 합심했으니 쉽게 처리했다고 말했지만 권지훈의 생각은 달랐다.
‘전력을 다한 것 같지도 않았어. 트롤들이 마을을 침략할 때 보인 활약으로 대단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럼 다음으로 가죠.”
“네? 네.”
이서우의 말에 권지훈은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아이템 분배에 대한 마찰은 없었다.
일단 이서우가 모든 아이템을 습득하고, 사냥이 종료되면 서로 합의하여 나누기로 했다.
권지훈 일행은 이서우가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다 보니 많은 것을 양보했다.
퀴헬른의 방 끝에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24시간 동안 보너스가 주어진다고 했고 1차 네임드도 쉽게 끝난 만큼, 꽤 많은 관문이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 방에 도착하자 그들은 의외의 존재와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