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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4화 (24/341)

# 24

레벨이 갑이다

24화

“오호, 통재로다.”

“……?”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통탄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면에서 난 소리였는데,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곳으로 갔다.

이서우는 그가 누군지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입구에 있던 석상이 바로 당신이었군.”

“그렇다, 인간이여.”

“다론에 있는 트롤들과 어떤 관계지?”

“타오른 부족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 한데 왜 직접 부족을 이끌지 않고 이곳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군.”

“키메라의 모습으로 후손들 앞에 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인가?”

“그렇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지도자를 위해 만들었다.”

3미터 신장에 늠름한 모습을 한 몬스터는 바로 타오른 부족의 아버지인 타르타였다.

그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꿈을 이룰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한데 이곳에 들어온 존재는 그가 그토록 기다린 후손이 아니었다.

타르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지?”

“거의 괴멸 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명맥은 유지하고 있구나, 과거의 나처럼.”

절망 속에서도 타르타의 눈동자에 언뜻 희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뭔가 사연이 있었어.’

이서우는 타르타가 말을 걸어올 때부터 직감적으로 알았다,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퀘스트는 꼭 NPC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대화를 시도했다.

그에게서 퀘스트를 받지 못하더라도,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단서 정도는 입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네가 살던 때는 꽤 좋았나 봐?”

“당연하다! 멍청한 놈들은 우리를 다른 트롤과 비교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놈들과 다르다!”

“신장 차이만 있을 뿐 똑같아 보이는데?”

“모르는 소리! 그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따위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놈?”

이서우는 타르타가 미끼를 물었다 생각하고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되물었다.

화가 난 것인지, 이서우의 표정은 보지 못하고 타르타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그렇다. 그놈, 놈은 우리를 전멸시키다시피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우리의 힘을 형편없이 만들어 버렸다! 난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

타르타는 말을 하는 내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그는 복수를 꿈꿨지만 자신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

훗날 후손이 강해져서 비밀의 장소를 찾기를 기다리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런데 오라는 후손은 안 오고 인간이 왔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당장이라도 공격을 할 것 같은 기운을 풀풀 풍겼지만, 이서우는 침착하게 입을 뗐다.

“그놈이 인간인가 보군.”

“그렇다! 놈은 우리를 물건처럼 취급하고는 말했지, 복수를 하고 싶으면 자기를 찾으라고. 너무 화가 난 나는 물었다. 복수를 하고 싶어도 널 찾지 못하면 쓸모없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놈이 코웃음을 치더군.”

타르타는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입가를 부들부들 떨어 댔다.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권지훈 일행은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이서우만은 여전히 태연했다.

“결국 알아내지 못한 건가?”

“아니. 그 뒤로 놈은 비웃으며 말했다. 펠렌을 찾으라고.”

‘펠렌? 헉, 설마 반담이 말한 그 펠렌?’

이서우는 타르타의 말에 너무 놀라 눈만 동그랗게 뜬 채 그를 쳐다보았다.

펠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주변에 다른 유저들이 있었다.

굳이 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어디서 봤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야 그를 찾을 단서라도 생긴다.

‘젠장. 이래서 혼자가 편하다니까.’

이서우가 속앓이를 하고 있는데, 권지훈이 시원하게 그의 속을 긁어 주었다.

“펠렌? 네가 그자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는 걸 어떻게 믿지?”

“뭣이!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 정 의심 스러우면 ‘다스리는 자들의 대지’에 가서 놈에게 물어보면 될 게 아니냐!”

쿵!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타르타가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찼다.

수백 평에 달하는 방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서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탱커라 그런지 퀘스트 가능성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었구나. 덕분에 궁금증은 풀렸네.’

권지훈도 이서우와 같은 생각에서 몬스터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역시 분석과 관찰이 습관화되어 있는 탱커다웠다.

덕분에 이서우는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었다.

“지훈 님!”

“네!”

이서우는 더 이상 대화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대검을 타르타에게 겨누었다.

어차피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없으니 빨리 놈을 처치하고 나가고 싶었다.

이서우는 권지훈에게 공격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힘껏 땅을 박찼다.

타핫!

이서우는 선공을 타르타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르타는 마치 공격이 들어올 것임을 알았는지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데, 그의 무기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서우 님, 놈은 마법사예요. 조심하세요!”

‘헐, 근접 계열이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마법사?’

지팡이를 꺼낼 때 혹시 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 마법사였을 줄이야.

“죽어라, 인간! 네놈들을 죽이고 나의 후손들의 복수를 하겠다!”

분노와 함께 거대한 지팡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가닥이나 되는 빛줄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서우는 즉시 대검을 선풍기처럼 돌려 방어로 전환했다.

펑! 펑! 펑!

여기저기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이서우는 어렵지 않게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다른 파티원들이 걱정이 되는지 힐끗 뒤를 보았다.

‘잘 막아 내고는 있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방어만 할 수는 없어.’

네 사람이 서로 협동해서 무난하게 막고는 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이서우는 결단을 내리고 앞으로 달려갔다.

대검을 회전시키면서 이동까지 하니 마나가 이중으로 빠져나갔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서우가 다가오는 것을 본 타르타는 양손으로 지팡이를 잡고는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빛줄기가 더 굵어졌다.

“어림없다, 인간!”

펑! 펑! 펑!

이서우의 대검과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충격이 너무 커서 손이 얼얼했지만 이서우는 멈추지 않았다.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성큼성큼 다가간 이서우는 마지막 순간에 돌진해 타르타의 가슴을 베었다.

서걱!

“어, 어떻게…….”

타르타는 설마 자신의 공격을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싶어 끝까지 공격을 고집했다.

강력한 공격을 퍼부으면 충분히 이서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하지만 자만심이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강력한 공격은 큰 동작을 요구한다. 그래서 바로 공격을 멈추고 피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서우도 그 점을 알기에 억지로 버티며 다가가 대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서걱!

두 번의 공격이 연속되자 타르타도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마저 허용할 수 없어 얼른 몸을 뺐다.

재생 능력이 있으니 공격 포인트를 조금만 비껴가도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서우의 공격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날카로웠고, 깊었다.

“크윽!”

타르타는 고통에 신음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서우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검을 움켜잡고 찔러 넣었다.

푹!

찌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완전한 승기를 잡기 위해 대검을 옆으로 비틀었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데, 갑자기 타르타의 몸이 사라졌다.

“블링크예요! 뒤를 조심하세요!”

타르타는 연속으로 순간 이동을 사용해 이서우의 등 뒤로 움직였다.

“돌진. 번개 일격!”

방어에 전념하던 권지훈이 타르타의 번개 공격이 사라지자 돌진으로 빠르게 다가가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힘보다는 속도 위주의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딱 맞는 수법이었다.

타르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서우를 공격하려던 순간 권지훈의 방해를 받자 인상을 찌푸렸다.

“공간 속박! 폭발!”

갑자기 주변 공간이 무겁게 가라앉자 모두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서우는 잠깐 당황하기는 했지만 마나를 한껏 들이부어 속도를 더했다.

권지훈이 만들어 준 찰나의 순간을 잡으려는 것이다.

푹!

촤악!

“이, 이럴 수가…… 분하다.”

블링크로 도망갈 수 없게 찌르자마자 온 마나를 쏟아 몸통을 통째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곧장 다가가 대검을 타르타의 뇌에 박아 넣었다.

뇌가 터지자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타르타는 숨을 거두었다.

-타르타를 처치하셨습니다.

-25,88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타르타의 지팡이를 획득하셨습니다.

-타르타의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타르타의 책을 획득하셨습니다.

-타르타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타르타의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타르타의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1골드 60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서우는 금세 몸을 회복했지만, 권지훈과 그의 일행은 무거워진 육체를 이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타르타가 죽었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다들 ‘이게 끝이야?’라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타르타의 생명으로 유지되던 비밀 통로가 동력을 잃었습니다.

-타르타의 비밀 통로가 열립니다.

‘그러면 그렇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티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문이 3개네요. 서우 님, 어떡할까요?”

“가까운 곳부터 가 보죠.”

“네.”

탱커는 권지훈인데, 이제는 이서우에게 의견을 묻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서우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왼쪽 문부터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이 들어왔고, 안으로 들어가자 음성이 들렸다.

-나의 후손이여, 혹시 실험에 성공하지 못해 생명 연장에 실패할 때를 대비해 이 메시지를 남긴다. 부디 나의 오랜 염원을 들어주기 바란다. 나는…….

한참이나 들린 메시지를 요약하면 자신이 억울하게 쫓겨났고, 그 때문에 용맹하고 강한 타오른 부족이 힘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원수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었다.

이미 타르타가 했던 이야기지만 더 세부적인 내용까지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우리에겐 필요가 없겠네요. 다음 방으로 가죠..”

“네.”

다음 방에서도 메시지가 나왔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적을 무찌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약점은 마법이라는 말과 함께, 책장에 빼곡히 마법서가 있었다.

“이건 사람이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네요. 값어치가 없겠어요. 게다가 무기도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거고요.”

“숨겨진 던전인데, 너무해.”

“아직 한 군데 더 남았잖아. 마지막에 희망을 걸어 보자고.”

권나영과 최수연이 투덜거리자 권지훈은 그들을 다독이며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볼 게 더 남았는지 묻는 것이다.

이서우는 마지막 방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공간에서도 얻은 것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과묵한 김민철이 툭 던지듯 한마디 할 정도였다.

100골드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게임도 못하고 갇혀 있으면서 버틴 것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아이템이나 분배하고 찢어져야겠네요.”

“그러네요. 착용 가능한 사람이 가지기로 했으니 지팡이는 나영 님이 가져가시면 될 것 같네요. 저는 반지와 책자만 가져가겠습니다.”

“목걸이는 그럼 우리가 가지면 되는 겁니까?”

“네. 옵션이 여러분들에게 더 유용하겠네요.”

이서우는 가장 비싼 아이템 2개를 양보했다.

지금까지 쭉 함께해 온 그들은 미안한 마음에 괜찮겠냐며 몇 번이나 물었지만, 이서우는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만 지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미안한지 재료 아이템은 이서우에게 전부 양보했다.

보스급 몬스터에게서 나온 재료 아이템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이서우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 누구도 책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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