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레벨이 갑이다
30화
“먼저, 정말 고맙네.”
“별말씀을요. 도움이 되어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아들의 목숨값과 비교하면 약소한 것이지만 약속을 한 것이니 받아 주게.”
“남작님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겠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남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서우는 55레벨이 된 것을 확인하고는 남작에게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치료는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나은 것은 아니어서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다.
“미안한 말이네만 솔직히 처음에는 자네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네. 모험가들은 너무 이득에만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거든.”
“저도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닐세. 자네는 다르네. 살아온 날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보는 눈이 생긴다네.”
“그렇군요.”
남작은 이서우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보통은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려 하지 단점은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습성이다.
한데, 이서우는 오히려 자신도 똑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남작이 당신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남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아들을 낫게 한 것만으로도 친밀도가 최대치가 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직도 올라갈 게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귀족이다.
다른 귀족과 조금 다른 소탈함을 지니고 있다 해도 신분이 다른 것이다.
귀족들은 사람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들을 살려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야 끝이 없겠지만,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이거 불러 놓고 내가 다른 소리만 했군. 사실, 자네를 부른 이유가 있네.”
“혹시 제다 님이 말씀하신 지하와 관련이 되어 있는지요.”
“맞네. 그것 때문에 자네를 불렀네.”
제다가 병이 나으면 지하에 가고 싶다고 할 때부터 짐작했었다. 자신에게 뭔가를 부탁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는 남작의 옆모습만 봐서 그다지 심각한 일인지는 몰랐는데, 마주 보는 상황이 되니 알 수 있었다.
‘뭔가 깊은 사연이 있나 보네.’
그러면 그럴수록 퀘스트 보상은 좋아진다. 이서우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사실 그다지 편한 일은 아니네. 외부인에게는 아마 자네에게 처음 말하는 일일 거야.”
“제 입은 아주 무겁습니다.”
“알고 있네, 자네가 혼자 행동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이서우는 남작이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 이미 철저히 조사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한 말은 성향까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네는 혹시 제다의 엄마가 왜 없는지 생각해 봤나?”
“그러고 보니…….”
듣고 보니 의문이 갔다.
남작 부인이 있었다면 아들이 아픈데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제다의 치료만 생각한다고 의문을 가지지 못했나 보군.”
“워낙 다급했으니까요.”
“그렇지. 역시 자넨 그런 점이 좋아.”
“남작님의 부인과 관련된 일인가요?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네. 내 아내는 지금 지하에 있네.”
“…….”
이서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남작 부인이 살아 있는데, 지하에 있다?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었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일 테니 섣불리 나서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휴우, 벌써 꽤 오래전 일이구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될까…….”
남작은 과거에 대한 회상에 젖어 들었다.
좋은 일은 아닌지 표정이 어두웠고, 때론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제다의 첫 생일 때, 뭔가 특별한 것을 해 주고 싶다고 하면서 일이 벌어졌지. 그때…….”
제다가 첫돌 때면 적어도 15년은 흐른 일이라는 소리다.
시간이 지나면 보통 슬픔도 어느 정도 희석되기 마련인데, 남작의 얼굴은 진한 먹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어두웠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첫 생일 때 특별한 걸 해 주고 싶어 숲속으로 갔다가 뱀파이어에게 물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녀를 호위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구해 왔지만 이미 변이가 일어난 뒤였다.
죽이는 것은 차마 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지하 깊숙한 곳에 가둬 뒀다고 했다.
“야생동물이나 몬스터의 피로 생명은 연명하고 있는데, 고민이 크다네.”
“그랬군요.”
이서우는 주제넘다고 여겨 특별한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경청할 뿐이었다.
“그게 바로 내가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라네.”
마을 세 곳을 관리하면서도 왜 다른 곳은 신경 쓰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남작을 경험하고 그의 성품을 엿본 뒤에는 더더욱 의아해했다.
한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제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시는지요?”
“자네가 아들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 주게.”
“다른 곳이라면, 지하에 길이 여러 곳이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네. 제다는 호기심이 많아. 커 가면서 점점 왕성해지더군. 그때부터 난 이런 날이 올 걸 예견하고 대비를 했네.”
이서우는 남작의 준비성에 감탄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이라고 함부로 하지 않고 존중해 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마 다른 귀족이었다면 강압적으로 아들을 붙잡아 두려 했을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나요?”
“있네. 하지만 그걸 가져갈 수는 없네. 외워야 하네.”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동영상으로 찍으면 되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동영상을 촬영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헉!’
지도가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꼭 찍어 둬야겠다 여기고 녹화를 시작하려는데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떴다.
“왜 그러나?”
“네? 아닙니다. 그냥 조금 복잡해서 놀랐을 뿐입니다.”
“혹시라도 제다가 홀로 내려갈 것을 염두에 두고 조금 복잡하게 만들었네. 나도 외우는 데 꽤 애를 먹었지.”
“그랬군요.”
이서우도 꽤 애를 먹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핵심은 마지막 층에 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층에만 가지 않으면 되지만, 모든 층을 다 암기해야 하네. 혹시라도 밑으로 통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거든.”
“꽤 오래전부터 있던 곳인가 보군요.”
“그렇다네. 이곳이 워낙 험한 곳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비상 출구로 사용되었지. 겁이 많았던 전대 영주가 여기저기 출구를 다 뚫어 놓는 바람에 꽤 고생했다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외우도록 하죠.”
“고맙네. 자네에게 자꾸 부담만 주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닙니다.”
지하 지도를 암기하라
남작 성 지하는 미로처럼 길이 꼬여 있다. 남작은 뱀파이어가 되어 버린 아내를 아들에게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당신에게 호위를 맡기고 싶어 한다.
본격적인 일에 착수하기 전에 지도 암기가 먼저다.
난이도 : E
완료 조건 : 제다가 몸을 회복하기 전까지 지도를 전부 암기하라.
성공 시 보상 : 10골드.
실패 시 : 남작과의 친밀도 하락.
“일단 지도를 암기하고 나면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주겠네.”
“네.”
“아, 그리고 그 지도는 가지고 나갈 수 없으니 이곳에서 외워야 하네.”
“……네.”
이서우가 더 빨리 지도를 암기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남작은 이서우가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한 이서우는 지도를 펼쳐 들었다.
‘지하 1층에서도 밖으로 나가는 길이 두 군데나 되네. 제다는 분명 지하가 꽤 깊다는 것을 알 테지. 외부로 나갔다가도 다시 들어오려 할 거야.’
이서우가 꼼꼼하게 살펴야 할 곳은 지하 3층까지였다.
각 층마다 규모가 거의 수만 평에 이를 것 같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지하에 이런 거대한 장소가 있는지.
“진짜 제대로 겁쟁이었나 보네.”
이서우는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준 전임 영주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도를 외우면서 열심히 그를 씹어 댔다.
암기 시간이 길어질 것 같자 이서우는 제작을 왕창 걸어 뒀다.
중급이 되면서 하급 마나 물약을 만들 수 있었다.
제조를 걸어 놓으니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여유가 생기니 암기에도 도움이 되는지 지도가 머릿속에 서서히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이서우는 5시간이 지나서야 완벽하게 암기를 할 수 있었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일류 대학을 갔지.”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5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을 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서우는 남작에게 알렸다.
며칠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남작은 이서우가 혹시라도 대충 외운 것이 아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막힘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서야 남작은 안도했다.
-퀘스트 ‘지하 지도를 암기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1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남작은 자신과 아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당신에게 감격했습니다.
-남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보상 내용에는 없었지만 남작과의 친밀도가 상승하니 노력한 보람은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외웠구먼. 역시 자네는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이군. 다시 한 번 내 선택이 탁월했음을 느끼네.”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냥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자네는 나와 제다의 은인이네.”
면전에 대고 칭찬을 하니 약간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서 미소를 지으며 편하게 대처했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제다의 호위네. 그래서 말인데, 혼자서 괜찮겠나?”
“다른 호위 없이 저 혼자 말입니까?”
“그렇다네.”
이서우는 남작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호위 없이 귀족이 자신의 아들을 맡기려 한다?
어차피 남작의 아내를 만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안내할 것 같으면 굳이 혼자일 필요는 없었다.
“저 혼자라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있지. 일단은 그곳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괜한 희생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주된 이유네.”
“첫 번째 이유는 납득이 가는데, 희생자를 만들다뇨?”
“지하 출구로 벗어나 조금 위험한 지역으로 가 줬으면 좋겠네.”
“네?”
“다른 뜻은 없네. 자네의 실력을 믿는다는 뜻이네.”
“하지만 굳이 위험한 지역으로 갈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다는 계속해서 지하로 내려가고 싶어 할 것일세.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야.”
이서우는 남작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았지만,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실력이야 자신있다. 루테인 마을에서 그가 가지 못할 곳은 없으니까.
오히려 자신을 믿어 주는 남작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제다가 느낄 공포를 생각하니 살짝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제다는 나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네. 이 지역은 특수성 때문에 대가 끊기지 않는 이상은 계속 상속이 가능하네. 그러니 어떤 공포와 두려움도 이겨 내야 해. 이번 일로 많은 것을 깨달았겠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아버지의 길이 쉽지 않다는 건 알겠네요.”
“이해해 주니 고맙네.”
제다의 무사 귀환
루테인 남작은 아들이 훗날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아 좋은 영주가 되기 위해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기 원한다.
제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제다가 훈련되길 원해 당신에게 특별히 부탁하였다.
지하를 탐험하고, 강력한 몬스터가 있는 지역으로 가서 제다의 정신력을 무장시켜라.
난이도 : C+
완료 조건 : 지하 탐험, 80레벨 이상 몬스터 50마리 처치. 남은 몬스터 수 50.
성공 시 보상 : 3레벨 경험치, 100골드, 하급 강화석 3개.
실패 시 : 5레벨 다운, 남작과의 친밀도 하락.
“혹시라도 제다 님에게 변화가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남작이 얼른 그를 붙잡았다.
이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작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