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레벨이 갑이다
32화
남작과 이야기를 끝낸 이서우는 남작성을 나왔다.
제다의 회복이 최소 며칠은 걸릴 테니 뱀파이어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것이다.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은데.’
사냥보다는 퀘스트가 훨씬 돈이 되지만 이서우의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퀘스트는 안정성이 부족했다. 하루에 몇 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퀘스트는 오히려 빠른 레벨 업이나 새로운 퀘스트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돈벌이 수단은 안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둬야 한다.
‘241골드밖에 없네. 아, 맞다. 물약!’
이서우는 경매장에 올려 둔 물약 판매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워낙 생각할 것도 많았고 높은 가격에 팔릴 거라는 기대감도 낮아져서 잊고 있었다.
‘역시 최하급이라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네. 하급은 좀 나으려나?’
이서우는 모조리 개당 10실버에 판매된 것을 보고 다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1골드에 팔린 탓에 기대감이 커져서 그런 것이다.
‘하급은 또 어느 정도 효과를 주는지 모르니 일단 만들어 보자. 만든 김에 나도 쓰고.’
이서우는 사냥이 하루 만에 끝나지 않을 거라 여겨 마나 물약을 제조하기로 했다.
재료는 거래 중개소에서 구입했는데,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50브론즈가 채 되지 않았다.
1천 개 분량의 재료를 구입한 이서우는 한 번에 제조를 걸어 버렸다.
제작은 마을에 있을 때나 평화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
공격을 당하게 되면 제작도 중단되지만 재료를 날릴 수도 있어, 완료되기 전까지는 마을에 있어야 했다.
이서우는 물약이 완성될 때까지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퀘스트 때문에 여유롭게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그때보다 사람은 더 많아진 것 같네.’
현실 시간으로 오후일 텐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파티쿤 가실 탱커 모십니다! 75에서 80 미만 탱커님 지원해 주세요!”
“라스라한 가실 힐러분 모셔요! 80레벨 이상 힐러님 모셔요. 쩌는 탱커 있습니다!”
“카카툴카 가실 힐러분 모십니다! 초극딜러, 쩌탱 대기 중입니다. 95 이상 힐러분 오세요!”
광장은 역시나 파티 모집을 위해 애쓰는 유저들이 많았다.
이서우도 관심이 갔지만 레벨 제한이 너무 높았다.
그렇다고 60레벨 던전을 가자니 경험치가 별로여서 내키지 않았다.
번화한 곳에서 벗어나 한적한 외곽 지역으로 갔다.
루테인 마을은 남작이 사는 곳답게 상당히 깔끔하고, 화려한 집들도 많았다.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멀리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워낙 소리가 커서 이서우의 귀에도 쏙쏙 들어왔다.
“야, 너 봤냐?”
“뭘?”
“레이드 결과.”
“아, 그거?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참인데, 결과 나왔어?”
“그걸 못 보다니. 나가면 꼭 동영상으로 봐.”
“결과 나왔구나.”
“나오긴 했지. 한데, 실패야.”
“뭐? 천하의 전신이?”
“그래. 아직 150레벨은 무리긴 해. 전신 혼자서 레벨이 높아 봤자지.”
“하긴, 혼자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서우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궁금하게 만들고 딱 끊더니, 결국은 실패했구나.’
TV를 볼 때는 이서우도 결과가 궁금했다.
최초로 사냥에 성공하면 아이템 드롭도 꽤 잘되는 편이어서 어떤 아이템을 얻었을까,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신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더라. 아주 미친 듯이 사냥한다는 소문이 있어.”
“엥? 혼자 레벨 업 하면 오히려 손해 아냐?”
“내 말이.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
“혹시 아이템 제작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제작 재료를 구해서 대장장이에게 의뢰를 한다고? 걔들 높아 봐야 중급 수준이잖아. 차라리 던전 아이템이 훨 낫지.”
“그러네. 최소 상급은 돼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하니 그다지 쓸모없긴 하겠네.”
“상급이라도 레벨을 만땅 찍어야 돼. 아님 전신 같은 고렙 유저에게는 소용도 없어.”
“혹시 NPC에게 의뢰하는 건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 운이 좋아서 대장장이 NPC와 친분을 얻었으면 가능하긴 할 거야.”
이서우의 앞을 지나가는 내내 두 사내는 대화를 이어 갔다.
덕분에 이서우는 공짜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템이 그렇게 화려하던데, 그것도 만족을 못 하고 새로운 걸 얻으려 한다고? 뉴 월드가 현실을 반영한 게임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네.’
이서우는 코웃음을 쳤다.
아이템도 물론 사냥에서 중요하지만, 가진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중요하다.
물론 게임에서 템발은 중요하지만 그건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릴 때의 이야기다.
그때는 컨트롤이 조금 떨어져도 템발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두 사내에게서 관심을 거둔 이서우는 물약 완성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거의 다 됐네. 물건 올리고 슬슬 나가 보자.’
경매장으로 이동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니 천천히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도착하고 잠시 후 완성 메시지가 떴다.
최하급이 10실버에 팔렸으니 시작가를 50실버로 하고 즉시 구매는 3골드로 올렸다.
‘아, 그렇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서우는 얼른 숫자를 고쳤다.
시작가 3골드.
즉시 구매가 5골드.
‘등급이 높아졌으니 테스트하고 싶겠지, 흐흐흐.’
자기가 쓸 양만 남겨 두고 모두 다 올려 버렸다.
최하급일 때도 처음에 1골드에 팔렸으니 이번 경우에도 사람들이 테스트하고 싶어 분명히 살 것이라 여겼다.
그렇다고 너무 비싸면 오히려 외면받을 수 있어 즉시 구매가는 5골드로 설정했다.
100개만 사 가도 이서우에게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경매장을 나왔다.
이서우는 북문으로 향했다.
위치는 남작에게 이미 자세히 전해 들었고, 지도도 보았다.
특이하게 이번에도 지도를 절대 주지 않으려 해서 외운다고 또 고생을 했다.
지하 지도에 비하면 아주 쉬운 편이었지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이서우는 지도를 떠올리며 빠르게 이동했다.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음침한 기운이 강해졌다.
“생각보다 마을이 크네.”
다론 마을에도 뱀파이어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이서우가 보는 것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트롤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거대한 성 주변으로 음침해 보이는 건물들이 많았다.
입구로 다가간 이서우는 근처에서 사냥하는 무리들을 보았다.
‘퀘스트인가.’
보통은 던전에서 장비도 맞추고 레벨 업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퀘스트와 연결을 시켰다.
이서우도 일반 몬스터를 많이 잡아 봐서 알지만 드롭되는 아이템이 거의 없었다.
이곳에서 사냥할 정도의 레벨이라면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파티까지 이뤄서 한다는 것은 퀘스트밖에 없었다.
“야, 저 사람 여기 혼자 왔네. 2차 전직 유저인가.”
“복장을 보니 아닌 것 같은데?”
“그러네. 그럼 여기 왜 왔지? 바본가?”
“야, 다 들리겠다.”
“아니, 맞는 말이잖아. 퀘스트를 받을 레벨도 아닌데 혼자 여기 온 거면, 바보나 하는 짓이지.”
“그렇긴 하지.”
사냥을 하다 휴식을 취하던 파티가 이서우의 존재를 확인하고 수군거렸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이서우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어, 저 사람 우리 쪽 보네. 끼워 달라는 건가?”
“자리도 남는데, 받아 줘?”
“아이템도 별로고, 퀘만 끝나면 가야 되는데 뭐 하러. 그냥 무시해.”
이서우는 방향을 바꿔 그들과 다른 곳으로 향했다.
사냥이 겹치면 괜한 시비가 발생할 수 있어 피하는 것이다.
-뱀파이어 지역에 입장하셨습니다.
-뱀파이어들의 공격력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뱀파이어 마을로 접어들자 메시지가 들렸다.
밤이 되면 뱀파이어들의 능력이 상승하는데, 집단적인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더욱 강력해져서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뱀파이어 넷이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입구 쪽이 시끄러워 짜증이 나던 차여서 뱀파이어들의 눈빛은 더욱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겁대가리 없이 혼자 오다니. 잡아다가 피를 쪽쪽 빨아 주마.”
“잡아 와라!”
등장한 뱀파이어 중에 레벨이 가장 높은 몬스터가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동족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고레벨 몬스터의 명령에 3마리의 몬스터가 이서우에게 덤벼들었다.
대검을 뽑아 든 이서우는 망설임 없이 뱀파이어들에게 맞섰다.
서걱!
가장 먼저 다가온 뱀파이어의 팔이 잘려 나갔다.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대검이어서 뱀파이어들은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이서우의 대검이 움직이며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심장이 뚫리고, 목이 달아나 버렸다.
-뱀파이어를 처치하셨습니다.
-1,274,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 송곳니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와의 적대감이 상승했습니다.
‘생각보다 레벨이 높은 놈들이 있네. 그렇다는 건 킹이 있다는 뜻이겠지.’
허접한 뱀파이어들은 레벨이 낮지만 뱀파이어 킹에게 속한 뱀파이어들은 평균 레벨이 높다.
이서우는 이곳에 킹이 있음을 거의 확신하고 열심히 대검을 휘둘렀다.
명령을 내리던 고레벨 뱀파이어는 이서우의 힘을 보고 박쥐로 변해 공중으로 날았다.
하지만 이서우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는지 초음파로 동족들을 불렀다.
어두운 밤하늘에 박쥐들이 날아들었다.
이서우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더니 지면을 박찼다.
공중에 있어 안심하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갑자기 이서우가 날아들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이서우의 대검이 움직이자 박쥐 3마리가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박쥐 상태가 되면 움직임의 폭은 더 커지지만 방어력이 약해진다.
-뱀파이어를 처치하셨습니다.
-1,274,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와의 적대감이 상승했습니다.
-뱀파이어와의 적대감이 일정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적대감이 높아져 뱀파이어들이 당신을 보면 필사적으로 달려듭니다.
공중에 있는 것은 소용없다는 생각에 뱀파이어들은 얼른 지상으로 내려왔다.
동시에 박쥐들이 더 많이 몰려왔다.
이서우는 살짝 뒤로 빠졌다.
뱀파이어 지역에 있으면 30퍼센트 공격력 강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이서우에게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이서우는 치고 빠지며 빠르게 뱀파이어를 처치해 나갔다.
뱀파이어들은 이서우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해 난색을 표했다.
피해가 계속 늘어 가자 그중 가장 고레벨인 뱀파이어가 동족들을 모두 물렸다.
이렇게 된 이상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고레벨 뱀파이어가 박쥐 상태로 변한 뱀파이어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성으로 보냈다.
* * *
“부르셨습니까.”
“그래. 시킨 일은 잘하고 있고?”
“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올라왔습니다.”
“로드님을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이니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염려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바쁠 텐데,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지금 입구에서 웬 날파리가 설치고 있더구나. 놈의 목을 쳐라.”
침입자를 막아라
동족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침입자가 있다. 그를 찾아 처단하라.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침입자 처치.
성공 시 보상 : 5레벨 경험치, 500골드, 뱀파이어 킹과의 친밀도 대폭 상승.
실패 시 : 7레벨 다운, 동족들과의 친밀도 하락.
‘기회다!’
유선중은 전직 퀘스트를 거의 마무리했지만, 뱀파이어 킹이 평소 워낙 깐깐하게 굴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한데, 마침 친밀도를 대폭 올릴 수 있는 퀘스트가 떴다.
침입자를 처치한 뒤 일을 마무리하면 전직도 끝내고 5레벨이나 오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맡겨 두십시오. 제가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든든하구나. 믿어 보마.”
유선중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사실 유선중은 뱀파이어로 전직하면서 처음에는 많이 좌절했었다.
몬스터를 죽여도 경험치는 얻을 수 있지만 상당히 낮은 수치여서, NPC나 유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유저를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템 드롭율도 좋고 경험치도 많이 얻을 수 있어, 이제는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100레벨이 되어 2차 전직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뱀파이어 킹이 좀처럼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굽신거리며 열심히 비비기 신공을 펼쳐 최근에서야 기회를 얻었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데, 마침 친밀도를 대폭 올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랐다.
이번 퀘스트만 마무리하면 전직은 무조건 따 놓은 당상이었다.
유선중은 박쥐로 변한 뒤 입구로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