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41화 (41/341)

# 41

레벨이 갑이다

41화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란셀의 의원에 도착하니 평상에 약초를 말리고 있는 란셀이 보였다.

란셀은 이서우를 보자마자 코를 킁킁거리더니 자꾸 냄새가 난다며 이서우의 아래위를 계속 살폈다.

이서우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십니까.”

“이놈아, 그분의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설마, 그분의 흔적을 찾은 것이냐?”

“와, 귀신이시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90년 가까이 약초랑 뒹굴다 보면 코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뭘 찾은 것이냐?”

“이거요.”

이서우는 대검을 슬며시 빼 들었다.

“오오! 이건 그분의 무기가 아니더냐!”

“아시네요.”

“알다마다. 전투형으로 진화시켜 보거라.”

“전투형요?”

“그래. 그분의 무기는 성장형이다. 모르지 않을 텐데. 아! 내가 실수했구나. 미안하다.”

란셀은 이서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놓고 ‘실력이 없어서 안 되는구나.’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 지금 행동이 오히려 더 가슴 아팠다.

이서우는 괜히 자존심이 상했지만 말해 뭐 하냐는 표정을 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란셀 님, 혹시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을 아세요?”

“알다마다!”

큰소리치는 란셀의 대답에, 이서우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당장은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없다고 해도 언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그때가 되기 전에 그들에 대해 미리 알아 두는 게 좋다.

“제가 아는 분이 그분들에게서 펠렌 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습니다.”

“네가 펠렌 님의 무기를 찾도록 도운 사람이겠구나.”

“네.”

“그분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건 알았지만, 그분의 흔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세상은 참 좁구나.”

“두 분도 란셀 님처럼 펠렌 님에게 도움을 받은 겁니까?”

“그래. 나처럼 아주 큰 도움을 받았지.”

“그럼 제가 펠렌 님의 뒤를 잇는다고 하면 만나 주시겠네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 그들이 널 만나 줄 리도 없을뿐더러, 괜히 그분의 이름을 꺼냈다가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특히 그들은 그분을 생각하는 게 남달랐으니 조심해라.”

“남달랐다고 하시면…….”

“이거.”

“…….”

란셀은 뜬금없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서우는 저게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펠렌 님의 여자들이었다는 소리다.”

“그게, 그 뜻이었군요.”

“물론 펠렌 님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많은 여자들이 그분을 따랐지.”

“그러니까 그 많은 여자들 중 몰리나 님과 아리아 님을 선택했다, 뭐 이런 뜻인가요?”

“이를테면 그런 거지. 그분도 남자셨으니까.”

“예뻤나 보군요.”

“말해 뭐 할까? 제국을 울릴 정도로 아름다웠지.”

란셀은 당시를 회상하는지 허공을 응시한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데, 한 분은 신관이라면서요.”

“신관은 정신을 신에게 바치는 거지 육체는 상관없다. 신이 뭐가 부족해서 인간의 육체 따위에 관심을 갖겠느냐.”

“그건 그러네요.”

일리가 있는 말이라 이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꼭 그들을 만나야 한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래요?”

이서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펠렌의 흔적을 쫓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분이 좀 나쁘다?”

“네?”

“처음부터 그분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으면 됐을 텐데, 왜 나한테는 묻지 않은 것이냐.”

귀를 쫑긋 세우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하는 말이 조금 황당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노인이었다.

“란셀 님은 이미 저에게 많은 것을 말씀해 주셨잖아요. 책까지 전해 주시고. 아마 더 하실 말씀이 있었다면 제게 미리 말을 해 주셨겠죠. 얼마나 센스가 넘치시는 분이신데.”

“험, 험. 그거야 당연하지.”

워낙 독특한 성격이어서 처음에는 대화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단순한 구석이 있었다.

“그럼 그분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아, 내가 그거 말해 주려다 말았지. 방법은 간단하다. 네 경지가 오르면 된다.”

“경지만 오르면 된다고요?”

“그래. 대검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면 되는 것이다.”

“잠재력이라면, 성장시키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비록 그분은 그 대검으로 종종 약초도 다지고 등을 긁는 데도 쓰셨지만, 잠재력은 참으로 뛰어난 녀석이다.”

“…….”

전설적인 검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다니. 이서우는 꿈에서라도 생각해 보지 못할 방법이었다.

“역시 너도 그분의 대단함에 놀라는구나. 너도 장비에 의존하지 말고, 그분처럼 순수한 능력을 키워라.”

“……네.”

이서우는 빨리 그들을 만나고 싶어 대검을 성장시킨 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이번에도 이야기가 고무줄처럼 늘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란셀은 딱 한 문장으로 말했다.

“가서 깽판 쳐.”

“깽판을 치라고요? 설마 백작가에 가서 깽판을 치라는 건 아니시죠?”

누구 죽일 일 있냐며 에둘러 말한 것인데 란셀은 남의 속도 모르고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알아보고 나올 거라나?

“만약 안 나오면요? 바쁜 일이 있으셔서 다른 데 계실 수도 있잖아요.”

“그럼 뭐, 토껴야지.”

“아아, 네.”

말을 말아야지.

이서우는 얼른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한데, 란셀이 붙잡았다.

“이 녀석아. 약초 바르기는 익혔더냐?”

“약초 바르기를 아세요?”

“알지. 내가 그분께 배운 게 있는데 그걸 모를까. 물론 나야 그분처럼 극강의 힘을 내지 못하니 그저 몸을 보호하는 수준이지만.”

이서우는 눈을 반짝이며 가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하이 레벨 특성 스킬에 떡하니 약초 바르기가 있는데 어떤 식으로 쓰는지를 몰라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우선 내 부탁부터 들어줘야겠다.”

“말씀만 하세요.”

부탁이라 함은 곧 퀘스트를 뜻한다.

이서우는 흔쾌히 수락했다.

자이언트 트롤을 생포하라

트롤들로부터 실험 결과를 얻은 란셀은 부족함을 느껴 자이언트 트롤을 생포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늙어 버린 란셀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못해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자이언트 트롤 3마리 생포.

성공 시 보상 : 5레벨 경험치, 300골드, 약초 바르기 기술 전수.

실패 시 : 7레벨 다운. 란셀과의 친밀도 하락.

“생포해 오는 건 문제가 없는데, 루테인 마을에 자이언트 트롤이 있나요?”

“경계를 조금 더 벗어나야지. 하지만 조심해라. 괜히 아르곤 산맥을 넘다가 낭패 보지 말고.”

“많이 위험한가요?”

“펠렌 님이 좀 센 놈들은 다 그쪽으로 쫓아내셨다.”

“아르곤 산맥 안쪽에 있는 몬스터들 전부를요?”

“그래. 센 놈들은 몽땅. 그러니 괜히 호기심에 기웃거리지 말고 자이언트 트롤만 잡아서 와. 약초 바르기 배우고, 조금 더 성장한 뒤에 가도 돼.”

“네.”

110레벨 이상이어도 상대할 자신은 있지만 어떤 특성을 가진 몬스터가 있는지 모르기에 란셀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참, 지난번 그 트롤들은요?”

“얻을 건 다 얻었는데, 혹시 몰라 잘 가둬 두었다.”

“혹시 결과물은요?”

“당연히 있지. 아직 완성 전인데도 꽤 훌륭해. 아마 완성이 되고 나면 멋진 녀석이 나올 거다.”

“일이 잘 진행되신다니 축하드려요.”

“녀석. 너도 약초의 길을 가다 보면 배울 수 있다. 넌 아마 훨씬 빠르게 익힐 수 있을 거다.”

“네.”

무려 90년 가까이 약초에 대해 연구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이서우는 벌써부터 돈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을 느꼈다.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서 가 보거라.”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참, 혹시 모르니 이걸 가져가라. 큰 상처에도 꽤 효과가 있을 것이다.”

“네. 감사합니다.”

이서우는 약병을 조심스럽게 받은 뒤 의원을 벗어났다.

란셀의 회복약

등급 : 영웅.

복용하면 즉시 70퍼센트의 생명력을 회복한다.

‘역시!’

비록 세 병밖에 되지 않았지만 든든했다.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물약이나 몬스터가 드롭하는 물약은 등급이 없다. 복용하면 일정한 비율로 서서히 생명력을 채운다.

즉시 회복 물약을 제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생산 기술이 고급에 오르면 가능하다.

“만들 수만 있으면 진짜 대박이다. 이건 빨리 만들어서 제대로 이득을 봐야 해.”

마나 물약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아쉬웠다.

‘아르곤 산맥을 벗어나기 전에는 꼭 힌트라도 얻고 가야지.’

란셀과 퀘스트가 이어지니 100레벨이 되기 전에 꼭 비법을 알아내리라 다짐했다.

이서우는 마을에서도 가장 한적한 곳으로 갔다. 경비대원을 만나 트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루테인 마을이 정보를 얻기는 더 좋지만 이왕 온 것이니 알아보려는 것이다.

변두리 쪽으로 가자 역시 순찰 중인 경비대원이 보였다.

마을 안에서는 그다지 큰일이 발생하지 않는지 2인 1조였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헛, 영웅님!”

칭호를 바꾸지 않았는데도 이서우를 알아보았다.

영웅이라는 소리도 자꾸 들으니 이제는 무뎌져서 그러려니 했다.

“고생이 많으신데,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가 아는 거라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시나 최고의 호의를 보였다.

이서우는 편안하게 물어보았다.

“자이언트 트롤이 있는 곳을 알고 싶어서 말이죠.”

“역시 영웅님! 최근 자이언트 트롤이 아르곤 산맥 경계를 넘어 출몰하는 횟수가 늘어나 마을에 위협이 되고 있는데, 그 소식을 들으시고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숫자를 줄이시려는 거군요. 멋지십니다!”

“아, 네. 뭐, 그렇죠.”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무슨 말을 해도 이서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했다.

“마침 총대장님이 자이언트 트롤 때문에 고민하시던데, 시간이 되시면 한번 찾아가 보십시오.”

“그래요?”

“네!”

이서우는 퀘스트 냄새가 솔솔 나자 망설이지 않고 경비대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반담이 머무는 곳으로 가는 동안 이서우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경비대원의 안내를 받아 반담의 거처로 들어갔다.

“이게 누군가. 다론 마을의 영웅이 아닌가.”

“다들 좋게 봐 주셔서 그런 거지요.”

“그래, 많이 바쁠 텐데 어쩐 일인가.”

“듣자 하니 자이언트 트롤 때문에 고민을 하고 계시다고요?”

“맞네. 이쪽으로는 얼씬도 안 하던 녀석들인데, 최근 마을과 꽤 가까운 곳까지 와서 피해를 입히고 있지. 아직까지는 그리 심각한 피해는 아니지만, 한번 맛을 봤으니 계속 해코지를 하려 하겠지. 왜? 자네가 대신 나서 주려고?”

“마침 자이언트 트롤을 잡을 일이 있어서 말이죠.”

“오, 그런가? 그거 좋은 소식이구먼.”

그렇지 않아도 이서우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탁을 해 볼까 했는데 먼저 말을 꺼내 주니 반담으로서는 기분이 좋았다.

자이언트 트롤을 처치하라

아르곤 산맥 근처에 있던 자이언트 트롤들이 다론 마을에 출몰하고 있다.

반담은 최근 자이언트 트롤의 위치를 보고받았지만 숫자가 많아 고민 중이었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자이언트 트롤 50마리 처치.

성공 시 보상 : 5레벨 경험치, 500골드, 중급 강화석 5개.

실패 시 : 7레벨 다운, 다론 마을 NPC들과의 친밀도 하락.

“트롤 처치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구먼. 하지만 수상한 낌새가 포착되었어.”

“수상한 낌새요?”

“그래. 그러니 대원들과 함께 가게.”

“괜찮습니다.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합니다.”

“자네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은 충분히 느껴지네만, 무리하지는 말게.”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알았네. 그럼 위치를 가르쳐 주겠네.”

펠렌의 대검을 얻은 뒤로는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져서 트롤 정도로는 긴장도 되지 않았다.

반담도 이서우가 강력하게 주장하니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지도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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