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레벨이 갑이다
42화
아르곤 산맥은 대륙의 남단에 위치해 있고,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형성되어 있다.
남단에 있는 지역은 대륙 전체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지만 아르곤 산맥으로 인해 남북은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아르곤 남쪽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점점 북쪽으로 이동해, 현재는 3개의 마을만이 남아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르곤 산맥 남쪽에는 12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몬스터가 그렇고, 정예는 105레벨, 필드 보스급 몬스터는 100레벨 이하만 있었다.
세 마을 중 가장 안전한 곳은 다론 마을이었다.
60레벨대 몬스터가 가장 강한 몬스터여서 마을은 비교적 안전했다.
하지만 최근 자이언트 트롤들이 출몰하면서 마을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숫자가 많지 않아 큰 동요는 없지만 계속 반복되면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걱정과 염려의 씨앗이 싹트려는 그때, 마침 다론의 영웅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반담과 만남을 가졌다는 이야기까지 빠르게 퍼져 나가자 사람들은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그리고 드디어 영웅이 자이언트 트롤을 처치하기 위해 마을을 나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람들은 이제 모든 상황이 정리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만큼 다론 마을의 영웅인 이서우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서우는 자이언트 트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마을 북쪽 200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200킬로 지점부터는 오히려 몬스터들이 별로 없다고 하더니 진짜네.’
200킬로미터 지점에서 아르곤 산맥 근처까지는 꽤 많은 몬스터들이 있다.
특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몬스터가 집단을 이룬 곳이 많았다.
‘자이언트 트롤은 원래 50마리씩 몰려다는 녀석들이 아니라고 했는데.’
반담은 그 점을 이상히 여겼다.
오크나 트롤이라면 몰라도, 자이언트 트롤은 대형 몬스터에 속해 홀로 생활한다.
“머리가 아예 없는 놈들은 아니니 규모를 늘린 거겠지?”
이서우는 자이언트 트롤의 집단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뭔가 불리한 상황이 됐으니 뭉쳐 다니는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로서는 오히려 많이 몰려다녀야 사냥을 하기 좋았다.
하지만 이서우가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 * *
“설아야, 정말 괜찮아?”
“뭐가?”
“장소.”
“오빤 별로야?”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볼 게 없기는 하지.”
“그런데도 거길 덜컥 선택한 거야?”
설아의 매니저는 친오빠다. 오빠가 나서서 하겠다고 해서 설아도 그러라고 했다.
이준민은 이번 뉴 월드 이벤트로 설아가 내린 결정에 불만이 있었다.
“오빠, 원래 기회는 그런 곳에서 나오는 거야.”
“기회라니. 기회는 부족하고 없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이설아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빤 지금에 만족해?”
“지금이 어때서.”
“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갈증이 나.”
“지금도 넌 이 바닥에서 톱이야. 널 모셔 가려고 다들 난리라고.”
설아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재방송도 10퍼센트 이상을 찍는다.
방송사가 그녀를 모셔 가려고 애를 쓰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그녀는 인성까지 갖추고 있어 장수할 거라는 평가가 많았다.
방송사로서는 아주 이상적인 인물인 것이다.
“근데 정작 내가 재미를 못 느껴. 다 좋은데, 나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
“그래서 그런 곳을 선택한 거야? 별다른 이슈가 생기지도 않을 그런 곳을?”
“오빤 내가 그런 식으로 막 행동하는 애로 보여? 방송국의 사활이 걸렸는데?”
“그럼 대체 이유가 뭔데? 네가 거기서 시작해서 그래? 어차피 너도 거기 재미없어서 바로 벗어났었잖아.”
“그랬지. 하지만 최근에 아주 재밌는 소문을 들었거든.”
“재밌는 소문이라니?”
“다론에 영웅이 나타났다는 거.”
“영웅?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다고. 거긴 고작 1차 전직 전까지만 머무는 곳이야. 그런 곳에서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따지면 글로벌사의 안재훈은 누구나 될 수 있지.”
“그건…….”
안재훈은 망한 게임사를 인수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인 중 1명으로 꼽히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글로벌사를 인수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욕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뒤집고 젊은 나이에 전설이 되었다.
그걸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없기에 이준민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네가 안재훈은 아니잖아.’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번 이벤트는 그런 변두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아. 주 무대는 어차피 중앙이야.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다론의 영웅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네가 더 잘 알잖아, 레벨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도 알아. 하지만 다론의 영웅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그 사람 갑자기 등장했어.”
“당연하겠지. 몬스터가 그렇게 대규모로 마을을 공격한 적이 없을 테니까.”
“절반이 넘는 몬스터를 그가 처치했다는 것도 잊지 마.”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당시 이서우는 파티 중이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을 그가 잡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 봐야 60레벨대라고 뉴 월드 측에서 그랬다면서. 곧 몬스터들이 이상행동을 보일 거라고. 그러니 그 유저는 이슈를 못 만들어. 너도 냉정하게 받아들여.”
“난 그가 뭔가 특별한 걸 얻었다고 생각해.”
“아무리 특별한 걸 얻었어도 이건 온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가장 레벨이 높은 지역이 관심을 받게 되어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자 결국 이준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설아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뉴 월드 측은 공평한 평가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다고 했어. 그 말은, 레벨보다 다른 게 중요하다는 거야.”
“다른 거 뭐?”
“몬스터들 위에 군림할 정도로 강한 뭔가를 뿜어내는 그런 사람 말이야.”
“거기서 네가 말하는 뭔가가 안 터진다에 1년 치 월급 건다. 절대 거기서는 네가 원하는 그런 그림이 안 나온다니까.”
“정말 1년 치 월급 걸 거야?”
“당연하지.”
“좋아, 그럼 나랑 내기하자.”
설아의 말에 이준민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차피 동생을 설득할 수 없다면 내기라도 이겨야 나중에 ‘거봐, 내 말 안 듣더니.’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다.
“난 1년 치 월급 걸었어. 넌?”
“나도 똑같이 하면 되지. 1년 동안 월급 2배로 줄게.”
“좋아. 근데, 생각해 보니 조금 약한 것 같아. 하나 더 추가하자.”
“뭔데?”
“네가 지면 내가 소개해 주는 남자 만나고, 내가 지면 반대고.”
“그건 오빠만 좋은 일이잖아!”
“왜? 자신 없어?”
“소개팅은 싫어.”
“왜? 이제 와서 쫄려? 그러면 다시 말해서 지역 바꿔.”
“아,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냐! 하여튼 치사해.”
설아는 자신이 있었기에 흔쾌히 내기를 받아들였다.
“곧 몬스터들이 이상행동을 보일 테고, 그럼 이벤트도 금세 다가올 거야. 이번 승부는 내가 무조건 이겨.”
“그건 오빠 생각이고. 나중에 지고 나서 월급 달라고 울지나 마.”
“사나이 갑바가 있지, 울긴 왜 우냐?”
이준민의 연봉은 2억 가까이 된다.
매니저들 중에도 억대 연봉자는 여럿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연봉이 날아가면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 * *
“이것들 봐라.”
10킬로미터를 더 가자 오우거의 뼈들이 보였다.
단독 행동을 하니 집단을 이룬 트롤에게 잡아먹힌 듯했다.
한데, 조금 더 이동하자 피부가 따끔거렸다.
살기다.
하지만 이서우가 놀란 것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살기 때문이 아니었다.
발밑에서 난 ‘찰칵’ 하는 소리 때문이었다.
이서우는 그제야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몬스터들이 살기를 드러내는 건 이서우가 함정에 빠졌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여유 만만이었다.
단지, 몬스터가 파 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게 짜증이 날 뿐이었다.
“발을 떼는 순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거야.”
“자이언트 트롤들을 끌고 온 게 너냐?”
“마을 대표가 누군지 몰라도 머리를 잘 썼군. 일부를 유인하고 뒤통수를 치려 했는데 이렇게 달랑 1명만 보내다니 말이야.”
“뭐?”
자이언트 트롤들이 포위망을 형상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유독 덩치가 큰 자이언트 트롤이 몇 발짝 앞으로 다가와 이서우를 위협했다.
이서우는 놀란 표정으로 덩치 큰 자이언트 트롤을 쳐다보았다.
‘이것들 50마리가 전부가 아니었어? 그럼 반담 님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런 행동을 취할 줄이야.’
겨우 50마리로는 경비대원들을 유인하고 마을을 칠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대장으로 보이는 자이언트 트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널 죽이면 조사하기 위해 인간들이 알아서 오겠지.”
“오는 인간들을 죽여서 또 오게 만들고?”
“멍청한 인간은 아니군.”
“넌 멍청하군. 내가 살아 돌아가면 모든 게 꼬일 텐데 말이야.”
“클클클, 희망 사항인가?”
이서우가 대검을 빼 들었다.
자이언트 트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노리는 수많은 창들을 보았다.
발을 떼는 순간 모든 창이 자신을 향하겠지만, 그 전에 피하면 그만이다.
“너무 억울해 말아라. 그분께서 이 일대를 모두 수복할 테니 혼자 저승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공격을 펼치려는 순간, 자이언트 트롤의 말을 듣고 잠시 미루었다.
‘그분? 수복? 이놈이 대장이 아니었나. 그리고 수복이라면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는 건데, 대체 이것들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3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처치하려던 이서우는 생각을 바꾸었다. 물어볼 게 많았다.
이서우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툭.
이서우가 발을 떼자 바닥에서 뭔가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수백 개의 창이 이서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서우는 앞으로 공중제비를 돌면서 대검을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파파파파팟!
수많은 창이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자이언트 트롤 대장은 이서우가 창에 관통당해 시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그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 이런…….”
철석같이 이서우가 죽을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창들이 힘 한번 못 써 보고 잘려 나가고 말았다.
대장은 이서우가 빠르게 다가오자 얼른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쳐라!”
“쿠랄! 쿠랄!”
“쿠랄랄랄!”
이서우를 포위하고 있던 50마리의 자이언트 트롤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1차 전직을 하지 못했을 때도 강한 힘을 발휘하던 이서우다.
이제는 1차 전직도 하고, 펠렌의 대검까지 얻었다.
마나도 2만 5천에 육박해, 50마리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서우는 신들린 듯 대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대검이 움직일 때마다 자이언트 트롤들의 사지 중 하나가 반드시 잘려 나갔다.
운이 없는 트롤들은 목이 잘려 나가 즉사하고 말았다.
-자이언트 트롤을 처치하셨습니다.
-1,177,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자이언트 트롤의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자이언트 트롤의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7실버 40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다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자이언트 트롤을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이서우의 대검이 쉴 틈 없이 움직였고, 자이언트 트롤의 피는 마치 폭죽이 터지듯 온 하늘을 수놓았다.
대장은 부하들이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당하는 것을 보며 갈등했다.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남아서 싸워야 하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이언트 트롤의 숫자가 20마리로 줄어들었을 때, 대장은 몸을 돌렸다.
“어딜!”
이서우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대장의 앞에 떨어졌다.
“그냥 가면 섭섭하지. 물어볼 것도 많은데 말이야.”
“어, 어떻게…….”
이미 자이언트 트롤들도 전의를 상실했는지 자신들의 대장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어기적거렸다.
이서우는 움찔하는 대장의 팔과 다리를 한쪽씩 자르고는 남은 트롤들을 마저 처치했다.
결국 제대로 된 공격이라고는 해 보지 못하고 45마리의 트롤들이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남은 자이언트 트롤들은 벌벌 떨며 무기를 떨어뜨렸다.
이서우는 남은 자이언트 트롤들을 잘 엮어 대장에게로 갔다.
이제 막 팔다리의 재생이 끝났는지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놈 또한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지를 결박한 뒤 한자리에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