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레벨이 갑이다
48화
포르틴 마을 근처 안전지대까지 왔을 때, 몇몇 무리가 이서우에게 다가왔다.
“이제야 기회가 왔네요.”
“네?”
“다른 분들이 계셔서 오지 못했거든요. 다론의 영웅님이시죠?”
“절 아시나요?”
“그럼요. 다론 마을 사람이라면 다 알죠.”
“그랬군요. 여기서 다론 마을 사람들을 만나네요.”
“인사가 많이 늦었어요. 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다 돕고 사는 거지요.”
이서우는 이곳에 오면서 평생 들을 고맙다는 말을 다 들은 것 같았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온 거랍니다.”
“아, 그러셨군요. 한데, 돌아갈 때는 어떻게…….”
“포르틴 마을에 이야기하면 될 겁니다.”
“다행이네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다론 마을의 영웅이세요.”
다론 마을 사람들과는 그렇게 가벼운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멀리 감시탑이 보였다.
최근 마을마다 고레벨 몬스터가 출몰해서인지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몇 발짝 걷는데, 다론 마을의 NPC들과 또 다른 NPC들이 이서우에게 왔다.
“영웅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편하게 말씀하세요.”
“혹시 루테인 마을로 가시는지요?”
“네. 포르틴 마을을 조금 둘러보고 출발할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들을 좀 데려다주실 수 있으신지요.”
마을 사람들을 호위하라
다론 마을과 루테인 마을 사람들은 죽음 직전까지 가는 무서운 경험을 했다.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있는 그들은 안전하게 루테인 마을로 가기 원한다.
마침, 다론 마을을 구한 영웅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당신이 꼭 함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10명의 마을 사람들을 루테인 마을까지 안전하게 호위하면 된다.
성공 시 보상 : 2레벨 경험치, 200골드, 명성 100
실패 시 : 3레벨 다운, 명성 하락.
“어차피 가는 길이니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마을에서 좀 쉬시다가 3시간쯤 뒤에 입구로 와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피곤할 텐데도 허리를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경비병들이 와서 마을 사람들을 안정시키고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몇몇은 따로 포르틴 마을을 관리하는 NPC에게로 가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이서우에게 요청했는데, 구하기만 했을 뿐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잘 알지 못했기에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여기도 꽤 사람이 많네.’
어디부터 돌아볼까 고민하는데 유수영이 다가왔다.
“저기…….”
“네?”
“혹시 루테인 마을로 가시나 해서요.”
“네. 마을을 조금만 둘러보고 갈 생각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우리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할 수 있는 퀘스트는 다 해서요.”
“네, 그러세요. 그럼 3시간 뒤에 이곳에서 뵙죠.”
“네, 그럴게요.”
이서우는 마을을 한 바퀴 휙 돌고는 거래 중개소로 갔다.
특별한 기대를 하고 온 것이 아니기에 둘러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아이템 올리고 이참에 인벤토리 정리나 좀 해야겠네.’
워낙 잡템이 많아서 인벤토리가 복잡했다.
계속해서 쌓아 두다가는 나중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될 판이었다.
이서우는 획득한 장비를 검색했다.
‘권갑 계열은 그리 많지 않은데도 무기라서 그런지 꽤 가격이 나가네.’
검과 도를 쓰는 직업이 70퍼센트에 육박한다.
20퍼센트는 힐러 계열인 걸 감안하면 특수 직업은 다 합쳐도 10퍼센트 정도였다.
10퍼센트여도 숫자가 엄청나지만, 검과 도에 비해 아이템 가격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뱀파이어 킹의 권갑은 암흑 계열의 직업이 사용해야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어서 가격이 다소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무기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서우는 적당한 가격에 올리고는 다른 아이템을 검색했다.
‘희귀까지는 괜찮은데, 영웅 아이템 이상부터는 계속 오르는 추세네.’
이벤트를 준비하는 유저들이 대부분 영웅 등급 이상을 선호해서 가격이 꽤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가만, 어디 보자.’
이서우는 골드 시세를 살폈다.
아이템값이 오르면 골드값은 내려가는 게 보통이었다.
아이템값이 오른다는 것은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골드가 필요한데, 이때를 노려 많은 유저들이 골드를 내놓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골드값은 떨어지니 둘 다 오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9천 원을 유지하는 게 벅차네. 일단 가지고 있는 걸 파는 게 좋겠네.’
이서우는 3천 골드를 현금화시켰다.
상당히 큰돈이었지만 다 빚을 갚는 데 쓰기로 했다.
결국 아이템 구매는 보류했고, 잡동사니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참 종류별로 정리를 하다가 특이한 아이템 하나를 발견했다.
매끈매끈한 돌
등급 : ?
아주 매끈한 돌이다. 가지고 있으면 왠지 행운이 올 것 같다.
‘이런 게 있었나. 아, 페른에게 받았던 거구나. 행운이 잘 오긴 온 것 같은데, 이걸 어디다 쓰지.’
이서우는 달걀 모양의 반질반질한 돌을 보며 어떻게 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다론 마을에 가게 되면 어르신께 한번 물어봐야겠네.’
워낙 경험이 많으니 혹시나 쓰임새를 아는지 물어보기로 하고는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정리는 그러고도 1시간 가까이나 더 걸렸다.
그동안 워낙 많은 몬스터를 잡아서 잡템의 숫자가 엄청났다.
잡템만 팔아도 아마 꽤 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서우는 언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어 사소한 것 하나도 팔지 않고 잘 넣어 두었다.
이벤트에 쓰기 위한 마나와 약초액 역시 계속 모아 두었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문으로 향했다.
“모험가님!”
“무슨 일이시죠?”
“전 포르틴 마을의 경비대장 마쿠스입니다.”
“아, 네, 마쿠스 님.”
“다름이 아니라 우리 마을 사람들을 구해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인사라면 이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십시오.”
“아닙니다. 그래도 마을을 대표하고 있는데 어찌 앉아만 있겠습니까.”
각 마을마다 촌장이 있고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몬스터 침입이 있는 곳이어서 실질적인 관리는 경비대장들이 한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아, 네. 루테인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달려온 것이고요.”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네. 남작님께 모험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가시는 길에 이걸 남작님께 좀 전해 주십시오.”
마쿠스의 부탁
마쿠스는 강한 몬스터가 점점 자주 출몰하자 마을을 비울 수 없어 어떻게 남작에게 서신을 전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당신이 포르틴에 온 것을 알고 당신을 만나기 위해 급히 달려왔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남작에게 서신을 전달하면 된다.
성공 시 보상 : 2레벨 경험치, 200골드.
실패 시 : 3레벨 다운, 남작과의 친밀도 하락.
이서우는 퀘스트 내용을 보며 속으로 ‘이게 웬 횡재냐.’며 좋아했다.
100레벨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지나가야 해서 난이도가 높게 책정된 것 같은데, 이서우에게는 정말 쉬운 퀘스트였다.
“제가 꼭 남작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중요한 서신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전달될 것입니다.”
이서우는 강한 어조로 자신감 있게 말하고는 서신을 받았다.
약속 장소로 가자 NPC들과 유저들이 있었다.
“오셨군요.”
“네. 일찍 나와 계셨네요.”
“정리할 게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다른 분도 준비되셨나요?”
“네.”
이서우는 NPC들까지 확인을 하고는 길을 나섰다.
루테인으로 돌아가는 길은 익숙해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속도를 조금 높이겠습니다.”
인원이 줄어들어서 속보로 이동해도 충분했다.
NPC들이 체력이 달릴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따라왔다.
워낙 험준한 곳에 살고 있으니 다들 30~40레벨대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90~100레벨 구간은 이서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몬스터들을 잡았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유수영과 그 친구들이 해결했다.
한가한 상황이 되자 유수영이 다가왔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친추 괜찮을까요?”
“죄송해요. 제가 사교성이 없어서 친추는 받지 않고 있어요.”
“그러셨구나. 은혜를 입어서 힐러 필요하실 때 언제든 도와 드리려 했는데…….”
“마음만 받을게요.”
“네.”
부드럽게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이서우는 일말의 고민 없이 거절했다.
유수영으로서는 거절당한 것이 무안했지만 털털한 성격답게 금세 털어 버렸다.
‘예쁘긴 예쁘네. 그래도 지금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까.’
유수영은 168센티미터의 키에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였는데, 얼굴도 이서우가 좋아하는 청순형의 미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와 사냥하면서 한가하게 보낼 때가 아니었다.
루테인 마을로 돌아가는 데는 사흘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인원이 적은 것도 이유지만 거리가 짧았다.
‘아무리 이동하면서 몬스터를 잡고 퀘스트까지 할 수 있다지만, 이동 시간이 너무 걸리네. 뭐, 이동 편의성에 대한 건 차차 패치가 되겠지.’
혼자 이동하면 하루 안에 대부분 이동이 가능하지만, 퀘스트로 NPC를 보호해야 하는 임무에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직 게임 초기이니 이동 수단에 대해서는 언젠가 변화가 생길 거라 예상하고 가볍게 넘겼다.
이서우가 선을 그어서인지 유수영은 이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마을에 도착하자 반가운 메시지가 들렸다.
-퀘스트 ‘마을 사람들을 호위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100이 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서우는 그들과 헤어져 곧장 남작 성으로 갔다.
남작 부인을 먼저 만날까 하다가 중요하다고 한 서신부터 전하기로 했다.
“어서 오게.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벌써 소문이 난 겁니까?”
“났지.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자네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있다더군.”
“그랬군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소문이 나나 싶었다.
‘하긴, 남작씩이나 되는데 비밀 연락망 하나 없으려고.’
“그래, 오늘은 어쩐 일로 온 건가. 설마, 생각이 바뀐 건가? 그래, 자네도 인제 가정을 이뤄야지.”
“아직 결혼까지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괜찮은 여자가 있나, 여쭤나 보려고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걸세. 그럼 내 불러 주겠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십시오.”
“이건 뭔가?”
아내를 부르기 위해 나가려던 남작은 이서우가 내미는 서신을 받아 들었다.
-퀘스트 ‘마쿠스의 부탁’을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소식에 미소를 짓던 이서우는 서신을 보며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남작을 놓치지 않았다.
“내 아내를 불러 줄 테니 이야기를 나누게. 난 아무래도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어.”
“네, 남작님.”
이서우는 남작의 변화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잠시 후, 남작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모험가님, 절 찾으셨다고요?”
“네. 찾아왔습니다.”
“역시, 해내실 줄 알았어요!”
이서우가 반지를 건네자 남작 부인은 떨리는 눈동자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퀘스트 ‘결혼반지를 찾아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5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이제야 마음껏 손을 보일 수 있겠어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결혼은 아직이지만 연애는 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아, 그건 따로 만나기 위한 핑계였습니다.”
“호호호, 부끄러움이 많은 분이시군요. 자고로 남자는 박력이 있어야 된다고요.”
“아, 네.”
연애 문제로 또다시 말이 이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하고 있는데, 다행히 남작이 때마침 들어왔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인 듯한데 방해해서 미안하오.”
“아니에요. 그럼 전 자리를 비켜 드릴게요.”
“고맙소.”
남작 부인은 남편의 표정을 보고 뭔가 심각한 일이 있구나 싶어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이서우는 남작이 왜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서신의 내용에 뭔가 있구나.’
남작에게는 심각한 일일지 모르지만, 이서우에게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차분히 남작이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