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레벨이 갑이다
51화
경비병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았으니 가서 보고만 하면 됐는데,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본능적으로 사냥하다 보니 한 발짝 늦고 말았다.
‘아냐, 차라리 잘됐어. 좁은 입구 쪽에서 만났다면 오히려 더 큰 낭패였을 거야.’
이서우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어차피 전투를 치르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드디어 거북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은 이서우가 아니라 바닥에 배를 드러내 놓고 있는 새끼 거북이들의 사체로 향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거대 거북이들이 갑자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큰 거북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황제 거북이가 분노합니다.
-거대 거북이들의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거대 거북이들의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오호, 정예가 있었네. 이게 웬 횡재냐.’
이서우는 몬스터들이 강해진다는 메시지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했다, 아르곤 산맥 남쪽에 있는 몬스터들은 자신을 절대로 위협할 수 없다고.
그 판단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대 거북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깡!
‘무슨 놈의 껍질이 이렇게 단단해!’
이서우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 대검을 휘둘렀는데, 가장 앞에 있던 거대 거북이가 껍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결국 등껍질을 치게 되었는데, 새끼 거북이처럼 쉽게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서우의 대검은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거북이들 사이를 누볐다.
하지만 그때마다 거북이들은 껍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이서우는 한 손으로 대검을 휘두르면서 다른 손으로는 작은 병을 꺼냈다.
-공격력 증가 약초액을 펠렌의 대검에 바르시겠습니까?
‘그래.’
-공격력 증가 약초액을 신성의 목걸이에…….
-공격력 증가 약초액을…….
……
약초액을 무기와 방어구, 액세서리에까지 모두 발라 버렸다.
순식간에 1,100의 공격력이 올랐다.
이서우는 처음보다 마나를 조금 더 실어 휘둘렀다.
퍼석!
‘됐다!’
반 토막이 나지는 않았지만 껍질이 함몰되며 거대 거북이가 비명을 질렀다.
마나 물약부터 활력의 차까지 모두 복용하자, 거대 거북이들은 이서우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활력차를 안 팔길 잘했네.’
활력차를 팔기 위해 비슷한 효능을 가진 소모품 아이템을 찾아봤는데 유사한 것이 없어 보류했었다.
활력차가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니 이서우로서는 만족이었다.
-거대 거북이를 처치했습니다.
-2,45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거대 거북이 등껍질을 획득하셨습니다.
-17실버 40브론즈를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가 생각보다 쏠쏠하네.’
거북이 새끼가 너무 경험치를 주지 않아 실망했는데, 의욕이 샘솟았다.
이서우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기 위해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마나 소모를 신경 써야 했다.
이서우는 꾀를 냈다.
처음부터 마나를 대검에 싣는 게 아니라 등껍질에 닿기 직전에 밀어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마나를 절약할 수 있었다.
황제 거북이를 상대하기 위해 생각한 것인데, 의외의 성과가 있었다.
-마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밸런스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밸런스 숙련도가 4레벨이 되었습니다. 마나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에 이서우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어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응용을 하면 밸런스 숙련도가 대폭 올라가는구나.’
효과는 곧바로 느껴졌다.
이전과 똑같이 힘을 주었는데 마나가 훨씬 적게 빠져나갔다.
수십 마리를 처치했는데도 아직 4만 이상이 남은 마나를 보며 이서우는 압도적인 승리를 자신했다.
마나를 1만 정도 사용했을 때, 바닥에 널브러진 거대 거북이 숫자는 100마리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1만 마나를 사용하자 황제 거북이 곁에는 겨우 50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거대 거북이들이 벌벌 떨면서 이서우를 피하려 했다.
퍽!
화가 난 황제 거북이가 거대 거북이를 짓밟아 버렸다.
도망가는 놈은 자기가 직접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았다.
그의 의도대로 거대 거북이들이 다시 이서우에게 덤벼들었지만 공격이 날카롭지 못했다.
날카롭던 등껍질 공격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고, 독성이 담긴 침을 내뱉는 공격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결국 남은 50마리마저도 이서우의 대검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황제 거북이가 머리를 등껍질 안으로 집어넣었다.
‘저놈도 껍질 공격을 하네.’
이미 몸을 숨긴 이상, 공격을 기다리는 게 차라리 나았다.
일반 거대 거북이었다면 빠르게 접근해 대검을 휘둘렀겠지만 정예 몬스터의 껍질을 부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휘리리릭!
거대한 황제 거북이가 이서우에게 똑바로 날아왔다.
워낙 크고 단단한 껍질이어서 맞으면 상당한 대미지를 입을 수 있어, 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냥 피하지 않고 동시에 동격을 펼쳤다.
깡!
역시 생각했던 대로 등껍질은 멀쩡했다.
온전하게 공격에 집중하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닐까 해서 크게 도약해 다시 한 번 대검을 강하게 휘둘러 보았다.
깡!
‘껍질 안에 있으면 공략이 엄청 힘드네.’
대미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작 1퍼센트로, 아주 미미한 정도였다.
그마저도 금세 회복을 해 버려서 마나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이서우는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래, 저놈도 약점이 있었지.’
이서우는 황제 거북이의 행동을 보며 한 가지 어색한 점을 발견했다.
거대 거북이를 상대할 때도 나타난 부분인데, 워낙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이서우는 황제 거북이가 다시 한 번 등껍질 공격을 할 때, 무릎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굽혔다. 마치 림보를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서우가 바닥에 붙다시피 몸을 뒤로 젖히자 황제 거북이가 그의 위로 스쳐 지나갔다.
고스란히 노출된 황제 거북이의 배.
이서우가 노린 것은 바로 배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서우는 눕혔던 대검을 세웠다.
끼에에에엑!
황제 거북이가 비명을 질렀다.
설마 그 좁은 공간으로 공격을 해 올 것이라 생각지 못한 황제 거북이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서우가 대검을 쥔 채 당당하게 다가가자 황제 거북이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입구 쪽이 아니어서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약점이 드러난 상황이니 황제 거북이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방어 모드에 들어갔다.
“어쭈, 껍질 속에 숨어 계시겠다?”
깡! 깡! 깡!
마나를 잔뜩 담아서 있는 힘껏 내리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에 마나를 1만씩 담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 정도의 경지가 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황제 거북이의 등껍질을 부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서우는 천장에 있는 새끼 거북이들을 처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새끼들이 커서 또다시 마을에 피해를 입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황제 거북이의 거대한 등껍질을 발판 삼아 천장에 있는 새끼 거북이들을 빠르게 줄여 나갔다.
새끼 거북이들의 비명 소리를 들은 황제 거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니 죽임을 당할 것이고, 숨어 있자니 새끼들이 다 죽을 판이었다.
황제 거북이는 최후의 수단을 떠올렸다.
쿵!
“헉. 저놈이!”
천장에 있는 새끼 거북이를 죽이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동굴이 크게 흔들렸다.
황제 거북이가 몸으로 동굴 벽을 들이받은 것이다.
이서우는 다리에 잔뜩 힘을 줘서 흔들림에 대비했다.
가가가가가강!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충격은 예상을 깨고 계속 이어졌다.
마치 그라인더가 거대한 돌을 자르듯 등껍질이 빠르게 회전했다.
‘설마 동굴을 무너뜨리려는 건가. 하지만…….’
동굴이 무너지면 자신들도 죽는다. 한데, 왜…….
“아!”
이서우는 황제 거북이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지 깨달았다.
동굴이 무너져도 거북이들은 단단한 껍질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렇지 않았다.
생매장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흔들림에 익숙해진 이서우는 황제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막아야 내가 산다.
이서우는 온 신경을 모아 황제 거북이에게 쏟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껍질 안으로 대검을 억지로 박아 넣는 것뿐이었다.
몇 번 시도를 했었지만 대검을 넣어도 안에서 피해 버리는지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황제 거북이가 벽을 들이받으려면 몸을 살짝 빼야 한다.
가까이 다가간 이서우는 대검을 들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소리가 들리며 천장이 무너져 버렸다.
이서우는 하려던 공격을 멈추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미 동굴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는 틀렸다. 그렇다면 최대한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하지만 워낙 짧은 시간이어서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쿵! 쿵! 쿠쿠쿵!
천장이 무너지며 거대한 돌들이 떨어졌다.
시간이 없다.
이서우의 흔들리던 눈빛이 또렷해졌다.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다.
이서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힘껏 지면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천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새끼 거북이들은 황제 거북이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금세 파악하고 단단한 등껍질 안으로 몸을 숨겼다.
동굴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났다.
동굴이 꽤 깊은 곳이어서 엄청난 압력이 누르는 바람에 새끼 거북이들은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황제 거북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돌과 흙이 누르고 있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 거북이는 새끼 거북이들의 등껍질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안도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알은 다시 낳으면 된다. 지금은 적을 처치한 것으로 만족이었다.
끼에에에엑!
등껍질에서 나와 흙을 뚫고 지상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 순간 황제 거북이는 등껍질 안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서우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 공격 대신 등껍질 안으로 숨는 것을 선택했다.
그의 결정은 탁월했다. 엄청난 압력에도 황제 거북이의 등껍질은 멀쩡했다.
충격이 가시자 이서우는 황제 거북이의 몸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한 번으로는 처치 메시지가 뜨지 않아 몇 차례 더 찔러 넣었다.
그러자 원하던 메시지가 떴다.
-황제 거북이를 처치하셨습니다.
-34,67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황제 거북이의 갑옷을 획득하셨습니다.
-황제 거북이의 등껍질을 획득하셨습니다.
-2골드 70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서우는 대검으로 땅을 파내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휴우, 무식한 놈, 동굴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다니. 그래도 덕분에 레벨은 올랐네.”
이제 95레벨이다. 퀘스트만 완료하면 100레벨이 된다.
2차 전직이 과연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해하며 이서우는 포르틴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