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레벨이 갑이다
55화
‘레벨이 꽤 있는 녀석들 같은데?’
어설픈 행동을 보며 저레벨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움직임을 보니 레벨이 높아 보였다.
이서우는 대검을 부드럽게 잡고는 머리를 반 토막 낼 듯 무서운 기세로 내리치는 도를 막았다.
깡!
마나를 실었는데도 거친 소리가 들렸다.
‘어쭈, 이것들 봐라.’
팔에 전달되는 힘이 상당히 묵직했다.
뒤이어 덤벼드는 도적의 거대한 도를 보며 이서우는 다리에 마나를 실었다.
사사사삭!
빠르게 도적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등 뒤로 갔다.
“뒤다, 멍청이들아!”
대장의 외침에 도적은 얼른 뒤로 돌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푹!
돌아보자마자 대검이 심장에 꽂혔다.
“커억!”
붉은 피와 함께 고통에 찬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레벨 차가 있어서 한 수로는 죽지 않았다.
이서우는 대검이 꽂힌 상태로 가로로 힘껏 휘둘렀다.
“크아악!”
갈비뼈가 잘리자 그제야 도적이 쓰러졌다.
-바탄 도적단의 도적을 처치하셨습니다.
-7,017,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견고한 강철 도를 획득하셨습니다.
-47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헉! 경험치가 장난이 아니네.’
1마리를 잡았을 뿐인데 0.4퍼센트 정도 올랐다.
일반 유저라면 이 정도 경험치가 오르면 필드에서 죽치고 사냥을 하겠지만, 이서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를 잡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 정도였다.
1레벨이 오를 때마다 요구 경험치가 상승하는 폭이 너무 커서 퀘스트를 받는 게 훨씬 나았다.
이서우는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마나를 아끼지 않고 애를 썼다.
10명의 도적단이 순식간에 피 칠갑을 하고는 바닥에 볼품없이 쓰러졌다.
이서우의 압도적인 힘에, 바탄 도적단의 우두머리 바탄은 처음과 달리 잔뜩 긴장했다.
“꽤 하는구나. 뭐 하느냐, 어서 놈을 처치하지 않고!”
“네? 네, 형님!”
“너도 썩 나가, 이놈아!”
“하지만…….”
“내 손에 죽고 싶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갑니다, 가요!”
부두목인 호리호리한 사내 또한 하는 수 없이 검을 들고 나갔다.
그는 다른 도적들과는 달리 장검을 사용했다.
이서우의 능력을 봐서인지 이번에는 20명이 덤벼들었다.
‘이럴 때는 펫을 활용하면 좋은데 아쉽네.’
백호가 생각났지만 아직 전투에 활용할 수는 없었다.
피를 두 번 더 빨아야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금 백호는 성장을 위해 펫이 머물 수 있는 공간에서 쉬고 있었다.
이서우는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대검에 잔뜩 마나를 실어 도적들을 상대해 나갔다.
호리호리한 사내는 최대한 이서우의 공격을 피하면서 빈틈을 파고들려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막히고 말았다.
스피드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서우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도적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피식피식 힘없이 쓰러지는 부하들을 볼 때마다 두목과 부두목은 점점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그 많던 인원이 이서우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둘만 남았네.”
“마, 말도 안 돼.”
“말이 되는데?”
“빨리 공격하지 않고 뭐 해!”
“야, 이 돼지 새끼야! 뒤에서 명령만 하지 말고 네가 와서 공격해 봐!”
“뭐, 뭣이!”
“에이, 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돼지 새끼야!”
“이, 이놈이…….”
호리호리한 사내는 죽는 마당에 못 할 말이 뭐가 있나 싶었는지 그동안 쌓여 왔던 것을 다 뱉어 냈다.
당황한 바탄은 대도를 뽑아 들고는 호리호리한 사내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열을 내는 사이 이서우의 대검은 조용히 움직였다.
서걱!
호리호리한 사내의 몸통이 반 토막이 났다.
-바탄 도적단의 부두목을 처치했습니다.
-8,217,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매우 견고한 강철 검을 획득하셨습니다.
-52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서우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곧장 두목을 노렸다.
챙!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도와 이서우의 대검이 강렬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꽤 묵직한 힘이 느껴졌지만 그리 많지 않은 마나로도 충분히 버틸 정도는 되었다.
“대장 자리를 내기로 딴 건 아닌가 보네.”
“이놈, 갈기갈기 찢어 주겠다!”
-바탄이 분노합니다.
-바탄의 공격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바탄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후욱!
메시지가 뜨는 순간 바탄이 온 힘을 다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도를 휘둘렀다.
이서우를 통째로 날려 버리려는 심산이었다.
“큭!”
하지만 이서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작용에 의해 바탄은 오히려 심한 대미지를 입고 말았다.
이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검을 비스듬히 눕혀 바탄의 도를 흘려 내면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푹!
이서우의 대검이 바탄의 복부에 깊이 박혔다.
“커억!”
바탄이 고통에 신음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안 바탄은 억지로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서우도 같이 움직였다.
“크아아악!”
대검이 복부에 박힌 채 움직이니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생명력이 폭포수처럼 콸콸콸 쏟아져도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바탄이 이서우의 대검을 움켜잡았다.
“어림없지!”
이서우는 대검을 옆으로 비틀었다.
“커억!”
바탄의 입으로 피가 꾸역꾸역 올라왔다.
입가가 이미 검붉게 물들어서 얼굴의 절반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서우는 다시 대검을 세웠다.
비틀어 놓은 대검이 다시 움직이니 고통스러운지 참지 못하고 바탄은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이서우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대검을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촤악!
바탄의 상체가 세로로 잘려 나갔다.
털썩.
억지로 버텨 보려 했으나 결국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바탄을 처치했습니다.
-95,42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바탄의 대도를 획득하셨습니다.
-5골드 70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아르곤 북쪽 일대의 모든 도적단과 약탈단, 습격단, 산적 등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표적? 주변에 산적들이 많나 보네.’
마지막 메시지에 이서우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알아서 찾아와 준다면 환영이었다.
이서우는 획득한 아이템을 확인했다.
‘다 일반 등급이고, 두목이 겨우 고급 하나 줬네. 어째 고레벨 아이템이 저레벨보다 더 싸구려니, 원.’
그동안 몬스터를 잡아도 아이템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5개나 얻었다.
비록 일반 등급이지만 그래도 몇 골드는 받을 수 있었다.
100레벨 이상부터는 일반 등급은 거의 헐값에 팔렸다.
2차 전직 레벨쯤 되면 다들 돈은 어느 정도 있으니 고급 등급까지도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뉴 월드로 밥벌이하는 유저들이 고급을 많이 찾아서 가격대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된 것이지, 그마저도 아니었다면 100골드도 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로 이서우는 꽤 여러 차례 전투 기회를 얻어 1레벨을 더 올렸다.
하지만 마을 가까이 도착했을 때는 예상 시간을 오버해서 종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서우는 접속 종료를 하기 전, 백호를 소환했다.
“주인님, 부르셨어요?”
“휴식 잘 취하고 있어?”
“네, 주인님. 생각보다 더 빨리 회복해서 주인님을 도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털의 빛깔도 그렇고, 꽤 변한 것 같네.”
덩치는 갓 태어난 새끼 같았지만 펄이 들어간 것처럼 반짝이는 흰색 털이 상당히 우아하게 느껴졌다.
“참, 한 번 더 가능하겠어?”
“네. 그렇지 않아도 주인님께 부탁하려고 했어요.”
“그래? 그거 잘됐네. 그럼 시작해.”
“네, 주인님.”
두 번째지만 역시나 피가 빨리는 것은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피를 다시 받는 과정에서 힘이 불끈 솟아나니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퍼센트 상승합니다.
-잠재력이 1퍼센트 상승합니다.
“휴우, 엄청 배가 불러요. 아마 다음번에는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주인님!”
백호가 어깨 위에서 이서우의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평소 애완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백호가 애교를 부리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이서우는 펫을 소환 해제하고 접속을 종료했다.
늦은 저녁을 먹은 이서우는 스트레칭을 하고 설거지와 청소까지 마무리했다.
남들은 다 식기세척기와 로봇 청소기를 쓰지만, 이서우는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다.
‘내일 빚 갚고 남은 걸로 필요한 거 몇 가지 사야겠다.’
저가형도 꽤 쓸 만해서,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드디어 내일인가.”
어느새 이벤트를 하루 앞두고 있었다.
미친 듯이 레벨 업을 해서 102까지 찍었다.
결정적으로 2차 전직을 완료하고 엄청난 능력치 증가를 이루었다.
이 정도라면 마나를 잘만 활용해도 한 번에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난 100레벨 희귀 장비를 차고 있어서 훨씬 이득이야.”
장비 수준과 몬스터와의 레벨 차, 처치한 몬스터의 숫자 등이 점수에 반영된다고 했으니 이서우에게는 상당히 유리했다.
100레벨 이상의 유저 중 희귀 등급을 쓰는 사람들은 드물다.
밥벌이로 하는 유저들도 아이템에 투자를 해야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기나 액세서리 정도는 영웅 등급으로 맞춘다.
소위 작업장이라고 하는 곳에서나 고급이나 희귀를 사용하지, 개인은 영웅을 선호한다.
영웅으로 풀 세트를 맞추지는 못해도 절반 정도는 갖추는 추세였다.
이서우는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부모님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 * *
“오빠, 안 지겨워? 난 이제 지겨워. 내일 하루는 쉬자, 응?”
“이벤트 시작 시간까지는 바짝 달려야지.”
“하지만 우리 일주일 내내 데이트도 못 했잖아.”
“데이트하고 있잖아, 뉴 월드에서.”
“이게 무슨 데이트야? 그리고 직업도 산적이라서 사람들하고 섞이지도 못하잖아.”
“열심히 잘 섞이고 있는데 왜 자꾸 불평이야? 그럴 거면 그냥 종료해.”
“그, 그게 아니라…….”
늘씬한 몸매에 꽤 예쁜 얼굴을 가진 여자는 남자의 높아진 목소리에 기가 죽어 자신의 주장을 더 이상 피력하지 못했다.
사내는 근접 계열이었고 여자는 힐러였다.
둘은 다른 사람과 골드를 나누지 않기 위해 전직도 산적으로 했다.
알려지면 비난받을 직업이었지만 그 덕분에 중산층 이상의 여유를 누리고 있어 큰 불만은 없었다.
그때였다.
-바탄 도적단이 와해되었습니다.
-바탄 도적단을 와해시킨 자를 찾아 응징하시겠습니까?
“오빠!”
“그래, 나도 들었다. 퀘스트 보상도 꽤 좋네. 이거 빨리 끝내면 오후에 잠시 데이트하자. 어때?”
“정말?”
“그래.”
“좋아!”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내와 함께 거처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