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56화 (56/341)

# 56

레벨이 갑이다

56화

이벤트가 일주일 동안 있으니 미리 재활 훈련을 받고는 전자종합상가로 향했다.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물건을 구입할 수 있지만, 이서우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가상현실이나 증강 현실 접속 기기가 있으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실제 매장에 온 것과 똑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이서우의 집에는 그런 장치가 없었다.

로봇 청소기와 건조 기능이 있는 식기세척기까지 구매 목록에 넣었다.

그러고도 돈이 남아 이서우는 증강 현실 기능과 가상현실 기능을 동시에 갖춘 VR기기를 구입했다.

고급형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어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른 최신형 가전제품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배달 요청을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최우선은 빚 갚는 거고, 그다음에는 무조건 집을 옮겨야 해. 그리고 깔끔하게 풀 세트로 싹 바꿔 주마!’

부모님이 하루 종일 일하면서 청소와 설거지까지 하는 게 마음이 쓰여 식기세척기와 청소기는 꼭 필요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당장 필요하지는 않았다.

가장 급한 것은 빚을 갚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4천만 원의 빚을 더 갚았다.

‘그러고 보니 한 달도 채 안 돼서 엄청 벌었네. 저레벨일 때 아이템을 조금 더 팔았어야 했나.’

100레벨 이하일 때는 희귀 등급으로도 꽤 짭짤했는데, 고레벨이 되니 영웅 이상이 아니면 큰돈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레벨 업이 무조건 선행되어야 한다.

이서우는 아쉬움을 털어 버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물건이 왔다.

요즘은 워낙 빨라, 주문하고 몇 시간씩 걸리지 않는다.

식기세척기는 최신형이 아니어서 조금 무겁고 덩치가 있지만, 좁은 곳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귀찮은 설거지가 쉽게 해결된다.

저가형도 아주 깨끗하게 세척되고 건조까지 되니 쓸 만했다.

20년 전에는 브랜드 아파트에나 있었을 법한 것들이 10년 전부터는 빌라에도 기본적으로 다 포함이 되었다.

냉장고나 TV, 에어컨 등 대형 가전제품도 분양을 받아 미리 원하는 제품들을 맞출 수 있어 공간 활용이 유리했다.

최근 5년 사이에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제품들을 음성인식으로 통제가 가능하도록 했고, 증강 현실을 접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서우의 집은 20년도 더 된 곳이었다. 공간도 좁아 물건 하나 설치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설치 기사들이 돌아가자 베드에 누워 VR기기를 착용했다.

약간 두툼하고 큰 안경 형태의 제품이었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작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느라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가장 편한 방법은 접속 베드를 최고급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최고급형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옵션을 갖추고 있어 편리했다.

하지만 가격이 2천만 원이나 해서 당장은 바꿀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VR기기를 통해 인터넷을 열었다.

어떤 자세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고, 손으로 간단하게 터치만 하면 되니 편했다.

음성 지원도 되니 쉬면서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이서우는 뉴 월드 홈페이지에 가서 다시 한 번 이벤트 공지를 살폈다.

이벤트 추가 공지

*이벤트 시작 시간 변경 안내

뉴 월드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이벤트 날이 다가왔습니다.

온․오프라인에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오늘 이벤트를 기다리고 고대해 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을 위해 저희 뉴 월드도 정말 많은 준비를 한 만큼,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벤트 기간 중 소소한 작은 이벤트들도 진행됩니다.

불타는 금요일 밤입니다. 저녁 8시부터 시작되니 잊지 마시고 꼭 참석하세요!

*이벤트 시작 시간

저녁 8시.

*더 많은 유저들이 함께 즐기시라고 시간을 변경했으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추가 이벤트 혜택

이벤트 기간 동안 거래 중개소와 경매장의 수수료가 1퍼센트로 내려갑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참고

늦은 시간 시작하는 관계로 하루 제한 시간을 1시간 연장합니다.

단, 연속 접속 시간은 12시간으로 기존과 동일합니다.

연속 접속 시간을 채우면 1시간 이상 접속을 종료한 뒤 재접속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진 것은 썩 좋지 않았지만 하루 최대 이용 시간이 늘어난 것은 환영할 만했다.

‘응? 업데이트 안내?’

뉴 월드를 나가려는데, 눈에 확 띄는 내용이 있었다.

이서우는 내용을 확인했다.

업데이트 안내

뉴 월드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벤트 소식과 함께 또 다른 좋은 소식이 있어 미리 알려 드립니다.

이벤트가 끝나고 한 달 뒤 업데이트가 있습니다.

유저분들이 많은 불편함을 느꼈던 이동 관련 문제가 이번 패치로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것입니다.

순간 이동처럼 휙휙, 이동하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사냥터도 늘어나니, 새로운 곳을 탐험하시기를 원하는 유저분들은 도전해 보세요. 다양한 모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 레벨대에 걸쳐 사냥터는 증가할 것입니다.

자세한 업데이트 내용은 추후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뉴 월드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세를 몰아서 아주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이네. 머리를 잘 썼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있다.

이벤트의 열기가 사라지기 전에 패치 소식을 던져 놓으면 기대감이 한껏 고조된다.

어떤 패치가 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이벤트에 적극 참여해서 더 많은 준비를 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 패치가 끝난 뒤 남들보다 더 앞서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은 누구도 뒤처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뉴 월드는 이번 이벤트와 패치 소식을 통해 그 점을 노렸다.

그때, 전화가 왔다.

“어. 6시? 그래, 그럼 거기서 보자.”

박민수였다.

이서우는 시간과 장소를 조율하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아주 신이 났군, 신이 났어.”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기대가 될 것이다.

요즘은 학교든 직장이든 뉴 월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방어구가 있어 외모도 다르고 캐릭터명도 모르니,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고, 학생들은 서로 어울리기 위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닌 사람도 꽤 있었지만, 괜히 상사를 만나게 될까 봐 본명을 꺼려 하는 추세기는 했다.

이서우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어 얼른 뉴 월드에 접속했다.

거래 중개소에서 물건을 올리고 가장 큰 건물로 갔다.

‘영주가 없다고 들었는데.’

남작 성보다 조금 규모는 작았지만 성처럼 생긴 건물이 마을 중앙에 있었다.

루테인 남작의 말처럼 이곳에는 원래 영주가 없었다.

아르곤 산맥에 가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굳이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으니 영주도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작은 마을이었는데, 모험가들이 오가면서 규모가 점점 커졌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분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 기사 출신의 귀족이 개입하면서, 그가 이곳을 관리하게 되었다. 부상을 당해 휴식차 왔다가 덜컥 발목이 잡힌 것이었다.

워낙 변방이어서 이곳에 오려는 사람도 없었는데 마침 기사 출신이 등장했으니 사람들도 그를 따르게 되었다.

중앙에서는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니 묵인해 주었다.

이서우가 서신을 내밀며 용건을 말하자 성을 지키는 경비병이 아래위를 스윽 훑어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이곳 경비병들은 모험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매번 분쟁을 만드니 좋아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루테인 남작의 인장이 확실히 찍혀 있어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잠시 후, 경비병이 왔다.

“따라오시오.”

이서우는 경비병의 뒤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영주님 앞이다. 무릎을 꿇어라.”

“아아, 괜찮으니 나가 보도록.”

“네, 영주님.”

‘영주가 없다고 들었는데, 루테인 남작이 활동을 하지 않은 세월 동안 바뀌었나 보네.’

이서우는 마을 규모가 워낙 커서 영주가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여겨졌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다.

영주가 있든 없든 그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조금 더 들어가니 영주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서우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영주는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는데, 18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중후한 분위기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형님께서 서신을 보냈다고?”

“네. 여기 있습니다.”

이서우는 조심스럽게 서신을 건넸다.

괜히 귀족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서신을 받아 든 영주는 찬찬히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허, 대단하군. 형님이 이렇게 누군가를 칭찬하는 건 처음 보네. 게다가 은인이라는 표현까지 쓰다니. 반갑네. 난 베손 남작이네. 끈이 완전히 떨어져서 그다지 힘도 없으니 그냥 편하게 베손이라고 부르게.”

“네? 그래도 어떻게…….”

“괜찮네. 형님에게 은인이면 나에게도 은인이지.”

“베손 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라고.”

이서우는 짧은 대화에서 베손의 성격이 시원시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은 꾸밈이 없고 진실을 추구한다. 그래서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처음에는 묵직한 느낌이었는데, 지나치게 무게감이 있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분방해 보인다고나 할까.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자네가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네.”

베손의 말에 이서우는 오자마자 퀘스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따라오게.”

“네.”

복잡한 복도를 따라가니 중간중간에 문들이 보였다.

누군가 지키는 곳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베손이 멈춘 곳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은 문이었다.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자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가로세로 50미터는 넘는 곳이었다.

대체 뭘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일까.

호기심이 밀려왔지만 먼저 묻지는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말해 줄 테니 조급할 이유가 없었다.

“저쪽에 서게.”

베손이 가리킨 곳에 서자 그가 이서우를 마주 보고 섰다.

“무기를 뽑게.”

“네?”

“무기를 뽑으라고 했네.”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형님께서 그렇게 자네 칭찬을 하니, 대련을 해 보고 싶어서 그러네.”

“네? 대련이라고요?”

“왜? 겁나나?”

“겁이 나긴 나네요. 베손 님이 다치실까 봐.”

“하하하하하! 형님께 듣지 못했나, 내가 기사 출신이라는 거?”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를 이기실 수는 없을 겁니다.”

“소드 마스터의 문턱까지 갔다 왔네. 불의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날 이긴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라네. 자네가 그 정도의 수준이 된단 말인가?”

베손이 이서우를 도발했다.

이런 말을 듣고도 싸움을 피한다면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는다.

베손은 그 점을 노린 것이다.

베손과의 대련에서 승리하라

베손은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루테인 남작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 그런 그에게 찬사를 받은 당신을 테스트하고자 대련을 요청했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베손에게 승리.

성공 시 보상 : 1레벨 경험치, 300골드, 베손과의 친밀도 크게 상승.

실패 시 : 3레벨 다운, 베손에게서 의뢰를 받을 수 없다.

‘이기면 퀘스트가 이어진다는 뜻이군. 그렇다면 제대로 상대해 드려야지.’

이서우는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고는 대검을 스르르 뽑았다.

“좋은 눈빛이군. 선공을 양보하겠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네. 그래도 자네보다 내가 더 전투 경험이 많지 않겠나. 그러니 편안하게 생각하고 선공하게.”

“그러시다면야 제가 먼저 공격을 하도록 하지요.”

“오게!”

이서우는 그의 짧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면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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