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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59화 (59/341)

# 59

레벨이 갑이다

59화

수목이 거의 없는 초원 지대를 계속 이동했다.

멀리 좌우로 산들이 높게 솟아 있었다.

주로 산에 몬스터들이 많은데 몸을 숨길 수 없는 지역을 가다 보니, 사냥하는 재미는 없었다.

평소였다면 많이 아쉬웠을 텐데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광활한 초원 지대가 끝나고 숲이 우거진 곳으로 가려 할 때였다.

“응?”

이서우는 커다란 나무 아래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딱히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있을 만한 장소도 아니어서 의아했다.

‘사냥에 들어가려는 건가?’

시력을 집중하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듯 얼굴에 풋풋함을 가진 여자가 보였다.

복장만 봐도 남자는 근접 계열이고 여자는 힐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가 마치 대규모 이벤트에 당첨이라도 된 사람처럼 활짝 웃었다.

그들 앞을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남자가 이서우의 앞을 막아섰다.

“새파란 애송이였네. 바탄 놈도 늙었군.”

“뭐지?”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려? 콱, 대가리를 쪼사 버릴라.”

“갑자기 길을 막아서서는 뭐? 나 참,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주둥이 놀리는 거 보소. 바탄을 죽였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바탄? 아, 그놈? 그래서 뭐?”

“내가 죽이려 한 새끼를 네놈이 죽였으니 배상을 해야지.”

이서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잡고 있던 몬스터를 중간에 누군가 공격하면 시비가 붙는다.

그런 시시비비는 종종 벌어지지만, 단지 몬스터를 잡았다고 배상하라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너같이 제정신 아닌 놈을 상대할 시간 없으니 그만 꺼지시지.”

“못 하겠다면?”

“그럼 그냥 여기 계속 서서 발광을 하시든가.”

이서우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 여기고 그들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단검이 날아와 이서우가 가는 길 앞에 박혔다.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이딴 짓 하면 가만 안 둬.”

단검이 날아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가만히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도발도 한 번이면 족하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서우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슉슉슉슉슉!

5개의 단검이 이서우의 급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말이 좀 험하다고 유저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어 상대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다짜고짜 흉기부터 휘두르고 본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서우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팅팅팅팅팅!

5개의 단검이 대검에 의해 튕겨 나갔다.

이서우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땅을 박차며 사내에게 접근했다.

“헉!”

사내는 이서우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그저 강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서걱!

위기가 닥쳐온다는 것을 알고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공격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국 어깨 쪽이 잘리고 말았다.

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고, 반쯤 잘려 나가 덜렁거렸다.

“그레이트 힐!”

두어 발짝 뒤에 있던 여자가 얼른 힐을 넣었다.

이서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힐러가 저런 식으로 힐을 주면 답이 없다.

이서우는 여자도 적으로 간주하고 그녀를 먼저 공략했다.

탓!

“치유의 방패!”

퍼석!

힐러의 고유 방어 스킬이 시전되었지만 이서우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꺄아악!”

방어 스킬이 순식간에 파괴되자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다음 공격이 자신에게 올 것을 알지만 피할 방법이 없어 그런 것이다.

하지만 팔이 덜렁거리던 사내가 장검을 뽑아 들고는 이서우의 등을 노리고 찔러 왔다.

심장이 있는 쪽을 노린 것을 보면 한 수에 상황을 역전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이서우는 피할 생각이 없는지 대검을 옆구리 사이로 넣어 보지도 않고 뒤를 찔렀다.

“커억! 어, 어떻게…….”

장검보다 대검이 1.5배는 더 길다.

사내는 팔을 쭉 뻗어 그 길이의 차이를 만회할 수 있었지만, 이서우가 몸을 낮추면서 검이 어깨 위를 스쳐 지나갔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사내는 명치 부분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공격이 올 줄 알고 있다가 사랑하는 애인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듣자 여자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퍼, 퍼펙트…….”

푹!

여자가 힐을 사용하려 하자 이서우는 얼른 대검을 뽑아 그녀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털썩.

힐러는 워낙 체력이 약해 이서우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무리 공격력이 강한 대검 공격이라도 몇 번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지만, 무기에 마나를 씌운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지존 산적단의 부두목 이민아를 처치하셨습니다.

-70,17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12대마법사의 목걸이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현상금 7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지존 산적단이 당신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습니다.

이서우는 힐러가 죽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사내는 이미 크리티컬이 터져 생명력이 60퍼센트 이상 빠진 상태였다.

게다가 큰 부상을 입어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졌다.

사내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서우는 긴말할 것 없이 목을 그어 버렸다.

-지존 산적단의 두목 최진수를 처치하셨습니다.

-82,17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12타락한 남작의 장검을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200이 상승합니다.

-현상금 1,0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지존 산적단이 당신에게 매우 강한 적대감을 품습니다.

이서우는 이게 웬 횡재냐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목걸이와 무기 2개 다 130레벨의 영웅 등급 아이템이었다.

중요한 것은 모두 +12강화가 된 것이라는 점이다.

영웅 등급에 +12강이면 가격이 엄청나다.

이 2개로 이서우는 남들이 몇 달을 벌어야 하는 골드를 벌어들였다.

거기다 현상금까지 포함하면 엄청났다.

한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다음 순간 벌어졌다.

-‘베손의 부탁 2’를 완료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5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종급 강화석 5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헉! 뭐야. 설마 방금 그놈이 그놈이었어?”

이서우는 어이가 없어 시체가 되어 버린 산적 두목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베손과 비교하면 한 수 떨어지는 상대다. 그런데 어떻게 베손을 긴장시킬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최진수는 이서우를 얕봐도 너무 얕잡아 봤다. 당연히 쉽게 이길 거라 생각하고 상대를 했으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네. 진짜 이 길로 나가?’

명성에, 현상금에, 잠깐 사이에 순수 골드로만 2,200골드를 벌어들였다.

현상금으로만 1,700골드를 번 것이어서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에 만족하려고 뉴 월드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이서우는 죽은 산적 두목과 부두목을 뒤로하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 * *

“빌어먹을!”

“오, 오빠…….”

최진수는 접속 베드를 나오면서 욕부터 했다.

함께 나온 이민아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최진수의 눈치만 봤다.

“그 개새끼 때문에 이벤트 하루를 버렸어!”

“…….”

최진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벤트 생각뿐이었다. 한데, 죽임을 당해서 하루가 날아가 버렸다.

이제 1등은 물 건너갔고, 10등 안에도 들 수 없었다.

아니, 100위 안에는 들 수 있을까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넌 힐도 안 하고 뭐 했어? 그리고 상황이 안 좋으면 바로 필살기 썼어야지!”

“미, 미안해…….”

최진수의 호통에 이민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흥분해서 소리치는 데다 대고 대꾸를 해 봐야 싸움만 커질 뿐이라는 것을 2년 동안의 연애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개자식, 감히 날 건드려?”

“오, 오빠, 어쩌려고?”

“애들 다 불러야지.”

“다른 오빠들을 부른다고?”

“그럼? 이렇게 당했는데 가만있으라고?”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민아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듯 어려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최진수에게 빠져 뉴 월드를 하면서 1년 동안 돈을 모아 결혼하자는 말에 넘어가 지금 이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에 빠져 자신을 등한시하는 모습이 싫어졌다.

그렇다고 게임보다 날 먼저 생각해 달라고 하면 결혼은 땅 파서 하냐는 소리만 해서, 이제는 그에 대해 일절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가 되지 않으니 결혼과 관련된 것에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최진수는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그래, 형님이다. 개자식 하나가 있어 손 좀 봐야겠다.”

-어떤 놈이 우리 형님의 비위를 건드린 겁니까!

“바탄을 죽인 놈 알지?”

-아, 우리가 노리던 바탄을 죽인 그 개자식요?

“그래. 이벤트 끝나고 치려 했는데, 뺏어 갔지.”

음성 모드로만 통화를 하고 있어서 상대방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걸걸했던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 것을 보니 화가 난 것 같았다.

바탄을 벼르고 있다가 선수를 빼앗겼으니 그럴 법도 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저만 가면 되겠습니까?

“방금 내가 그놈에게 죽었다. 민아도 있었는데.”

-네? 그놈이 그렇게 강합니까?

“방심해서 죽은 거다. 그 새끼가 강해 봤자지.”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형님.

“어쨌든 난 지금 접속이 불가능하니 애들 몽땅 데리고 가라. 아니, 동맹 맺은 놈들 있지? 그놈들까지 왕창 데려가.”

-헉! 형님, 우리 애들만 데려가도 돈이 엄청 깨집니다.

“이 새끼가, 지금 말대꾸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형님. 제가 가서 확실하게 조져 놓고, 팬티까지 탈탈 털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놈 잡는 데 공을 세운 녀석에게는 내가 따로 후하게 보상한다고 하고.”

-네, 형님. 아마 동생들이 엄청 좋아할 겁니다.

“결과 보고하고.”

-네, 형님!

최진수는 꼼꼼하게 지시를 내리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이민아는 좌불안석이었다.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거 데이트나 하고 내일 접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최진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기, 오빠.”

“왜?”

최진수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제안이라도 한번 해 보려던 이민아는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니야. 그럼 나 집에 갔다 올게.”

“그래. 제한 풀리기 전에 오는 거 잊지 말고.”

“엄마한테나 다녀오려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제한 풀리면 오빠 먼저 접속해.”

“어머님께?”

“응. 요즘 통 못 가 봤잖아. 오빠도 같이 갈래?”

“혼자 갔다 와. 난 결과 기다려야지.”

“그래? 알았어. 그럼 밥 잘 챙겨 먹고.”

“어.”

최진수는 이민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

이민아는 그런 그를 쓸쓸한 얼굴로 쳐다보고는 힘없이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최진수는 이서우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고 바빴다.

아는 거라고는 생긴 것밖에 없어 이리저리 검색을 했지만 도무지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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