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레벨이 갑이다
62화
이서우는 이벤트 시간을 20분 정도 남겨 두고 접속했다.
“헛!”
이서우는 접속하자마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하루 유동 인구가 수백만에 이르는 대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야, 그 사람 이 마을에 나타나는 거 확실하겠지?”
“설아 양이 그렇다고 했으니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너무 압도적이었잖아. 그런 유저가 왜 이곳으로 오겠어?”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그 사람, 여기에서 이벤트를 치르지 않을까?”
이서우는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여기저기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괜히 쑥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와, 쩔지 않냐? 난 진짜 그 유저 싸우는 거 보고 지렸다니까!”
“말도 마라. 그거 멍 때리면서 본다고 이벤트 시간도 놓칠 뻔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혹시 비공식 랭킹 1위 아닐까?”
“그러게. 그러고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침을 튀겨 가며 말하는 사람, 흥분해서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는 사람.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이서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장 바닥에 온 것처럼 어수선했지만, 이서우의 청력이 너무 뛰어나서 시끄러운 중에서도 목소리가 또렷하게 구별이 되었다.
‘비공식 랭킹 1위라. 하이 레벨이 깡패라지만 레벨 차가 60이나 나니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마나에서는 확실히 내가 유리해.’
마나 회복 물약에, 마나를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전신을 완전히 앞질렀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벨을 조금만 더 올리면 무조건 유리하다는 거지.’
동렙이면 무조건 이길 수 있고, 레벨이 조금 낮아도 하이 레벨이기에 충분히 승리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난 동반자가 있으니까. 아차!’
이서우는 접속하자마자 백호를 소환한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한적한 곳을 찾아 이동했다.
게임 시간으로 2시간이면 이벤트가 시작이니 서둘러야 한다.
‘헉, 이런…….’
하지만 마을 곳곳을 둘러봐도 한적한 곳이 없었다.
‘아오, 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거야?’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표정이 밝아지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이서우가 간 곳은 바로 영주 성이었다.
그가 도착하자 베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조용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대신 대련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이서우의 레벨이 오르고 능력치 향상 폭도 꽤 커서 어렵지 않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복기 시간도 30분으로 마무리되었다.
1시간 이상은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이벤트를 조용히 준비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백호부터 소환했다.
“주인님!”
“오오! 또 변화가 있구나. 드디어…….”
“아직은 아니에요. 한 번 더 피를 흡수해야만 돼요.”
“그래? 그럼 또 잠드는 건가?”
“아니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얼른 빨아.”
“네!”
세 번째쯤 되니 익숙한지 이서우는 활짝 웃으며 백호에게 목을 내밀었다.
백호는 더 길어진 송곳니로 이서우의 목을 힘껏 물었다.
‘큭, 더럽게 아프네.’
기분 좋게 목을 내밀기는 했지만 막상 피가 빨리니 힘이 쭉 빠져나갔다.
앞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회복되는 속도도 빨랐다.
-전체 공격력과 방어력이 3퍼센트 상승합니다.
-잠재력이 3퍼센트 상승합니다.
이서우는 충만한 힘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기분 좋은 메시지를 듣고는 활짝 웃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퍼센트 단위로 증가하니 갈수록 능력치 상승폭이 커지네. 좋았어!’
이벤트 직전에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주인님, 즐거워 보이시네요.”
“그럼, 당연히 즐겁지.”
“다행이에요.”
백호는 더욱 빛깔이 고와진 흰색 털을 이서우의 볼에 비볐다.
크기는 여전히 30센티미터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펄이 잔뜩 들어간 것처럼 털이 반짝였고, 송곳니도 가운뎃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로 길어져 있었다.
이서우는 백호의 송곳니를 보며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저 상태에서 빨렸으면 바로 사망이었겠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서우는 정신을 차리고 백호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거야?”
“네. 주인님이 원하시면요.”
-펫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펫 기능을 설정해 주십시오.
이서우는 얼른 펫 창을 열었다.
백호의 생명력과 공격력 등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이름 : 백호
별명 : 없음.
*별명은 소유자가 변경할 수 있다.
생명력 : 55,175
마나 : 38,750
공격력 : 10,291
물리 방어력 : 3,410
마법 방어력 : 3,508
근력 : 225
민첩력 : 215
체력 : 153
지력 : 55
정신력 : 80
관찰력 : 58
잠재력 58
백호 고유 기술
-능력 흡수.
-능력 전이.
-능력 상승.
-능력 감소.
-???
-???
……
백호 고유 기술은 밝혀진 것만 4개였고, 물음표로 도배되어 있는 것은 너무 길어서 세다가 포기했다.
페이지를 넘겼다.
-백호는 기본적으로 소유자의 능력이 발전하면 함께 성장합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을 위해 경험치 분배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분배는 사냥 경험치에 한하며 퀘스트 경험치는 공유하지 않습니다.
‘경험치를 공유하나 보네. 뭐, 몬스터를 잡아서는 어차피 레벨을 많이 올릴 수는 없으니 상관없나?’
퀘스트 경험치까지 공유한다고 했으면 이서우는 아마 백호에게 경험치를 거의 분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냥 경험치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경험치를 분배하기 전, 이서우는 백호에게 물었다.
“참, 백호야.”
“네?”
“네가 쓰는 기술,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 거야?”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알아야 적재적소에 활용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백호가 얼마나 유용한 기술을 쓰는지에 따라 경험치 분배율을 다르게 할 생각이었다.
백호는 이서우가 자신에게 질문을 해 준 것이 기쁜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능력 흡수는 말 그대로예요. 주인님을 포함해 모든 모험가들, 그 외 모든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어요. 그리고 흡수된 힘을 일시적으로 제가 사용할 수도 있고요.”
“와, 정말?”
“네. 보여 드릴까요?”
“그래, 한번 보여 줘 봐.”
푹!
“읔.”
갑자기 목이 따끔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당한 터라 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백호는 피를 한 번만 빨고는 곧바로 이빨을 뽑았다.
“능력 흡수가 피를 빠는 거였냐?”
“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능력을 흡수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구나. 앞으로는 그런 중요한 문제는 미리 말을 해 주렴.”
“네, 주인님!”
“그나저나 흡수했으면 보여 줘.”
“그게, 주인님은 기술이 없으신데요?”
“…….”
아아, 그러면 왜 피를 뽑았단 말인가.
“아무래도 아직 펠렌 님의 기술을 익히지 않으신 것 같네요.”
“어쨌든, 기술이 있으면 흡수가 가능하다는 거지?”
“네, 주인님.”
“그럼 능력 전이는?”
“흡수한 능력을 주인님께 이전하는 거예요. 그러면 일정 시간 동안 주인님도 그 기술을 쓸 수 있게 돼요. 물론 주인님께서는 적의 기술을 굳이 쓰지 않아도 강하시지만요.”
“그래도 상황에 따라 꽤 유용하겠는데?”
“도움이 된다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백호는 펠렌과 함께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이서우가 얼마나 강해질 것인지 알고 있다.
지금은 이서우의 경지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몰라 아는 정보를 전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서우에게 칭찬을 받았다 생각했는지 백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능력 상승은 더 좋아요. 주인님의 능력을 일정 시간 동안 증폭시켜 주거든요.”
“오, 그건 더 좋네. 그럼 능력 감소는?”
“그건 주인님을 적대시하는 놈에게 해당되는 거예요.”
“너 알고 보니 엄청난 녀석이구나!”
“헤헤, 고맙습니다, 주인님.”
이제는 백호의 애교가 적응이 되는지 이서우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단 네 가지 기술이었지만 잘만 활용하면 엄청난 이점을 가질 수 있었다.
“나머지 능력도 꽤 많은 것 같은데, 그건 언제쯤 얻을 수 있어?”
“그건 주인님이 펠렌 님의 유산을 얻고 더 많이 발전하셔야 해요. 아니면 주인님께서 분배해 주신 경험치로 저 스스로 성장을 해야 하고요.”
“네가 성장하는 게 빠르긴 하겠구나.”
“네. 하지만 펠렌 님의 유산을 얻지 못하면 한계가 있어요.”
“결국 너나 나나 펠렌 님의 유산을 얻어야 하는구나.”
“네.”
어차피 찾을 생각이었지만, 당장 얻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럼 지금 분배할 테니 경험치로 발전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면 말해.”
“네, 주인님.”
경험치 낭비를 막기 위해 미리 언질을 했다.
능력 흡수 기술을 보여 주던 상황을 떠올리며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이서우는 경험치 분배율을 5 대 5로 설정했다.
이런 능력을 지닌 펫이라면 경험치를 퍼 줘도 아깝지 않았다.
사실 이서우로서는 사냥 경험치를 주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지금까지 사냥으로 올린 레벨은 퀘스트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이벤트 때는 경험치를 기존보다 2배 더 얻기에, 5대5로 설정을 해도 큰 손해는 없었다.
‘백호의 상승된 능력만 잘 활용해도 이번 이벤트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겠어.’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경험치 분배율을 알게 된 백호는 너무 기뻐서 이서우의 어깨에서 껑충 점프를 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열심히 발전해서 네 몫은 해야지.”
“네! 열과 성을 다해 주인님을 모시겠어요!”
또다시 부드러운 털로 애교를 부리는 백호였다.
“그럼 이제 슬슬 사냥을 하러 가 볼까나.”
“와! 주인님, 드디어 사냥을 가시는 거예요?”
“좋으냐?”
“그럼요! 너무 오랫동안 굶었어요.”
“너 내 피 많이 먹었잖아.”
“그거야 제가 사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이었고요. 열심히 물어뜯어야 빨리 강해지죠.”
“그래. 열심히 뜯어라.”
“네, 주인님!”
백호는 아무래도 사냥에 특화된 펫 같았다.
몬스터 잡으러 간다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20분을 남겨 두고 이서우를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이보게!”
“베손 님?”
문을 막 빠져나와 밖으로 나가려는데 자신을 부른 것이다.
이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만 기다리게.”
“무슨 일인데 그리 급히 오시는 겁니까.”
“큰일 났네.”
“네?”
“지금 아고나 마을 반경 400킬로미터 안쪽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네!”
이벤트까지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반경 400킬로미터라니!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온단 말인가!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요?”
“2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네.”
반경 400킬로미터 안에 있는 몬스터가 다 몰려온다면 수천만 마리를 상대해야 된다는 뜻이다.
‘몸이 하나니 모든 방향을 막아 낼 수는 없어. 마을이 쑥대밭이 되면 이벤트는 하나 마나인데.’
이서우는 특수 퀘스트로 레벨을 빠르게 올리고 있었다.
다론과 루테인 마을을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는 더 많은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한데, 이제 고작 2개를 받았는데 마을이 사라지면 이서우로서는 큰 손해였다.
‘이럴 때는 동영상이 풀린 게 잘된 건가.’
마을의 규모가 크지만 워낙 변두리여서 이번 이벤트에 5만 명이나 모일까 싶었다.
2차 전직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다들 파티를 맺고 더 강력한 몬스터를 잡아 고득점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인원을 보니 수십만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적당히 밀리면서 마을을 지켜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오히려 약간 밀리는 형국이어야 이서우가 더 많은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다.
유리하다 판단이 되니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이어진 베손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네.”
“네? 더 큰 문제라고요?”
“그러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어.”
베손의 얼굴이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