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레벨이 갑이다
65화
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 이서우가 가장 먼저 떠올린 방법은 무리의 리더를 찾는 것이었다.
우두머리를 찾아 그를 처치하면 구심점을 잃게 된 무리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더불어 중간 지도자들까지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총 열 곳.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땅굴까지는 중간 지도자들만 보였다.
그렇다면 가장 지위가 높은 지도자는 나머지 땅굴 중에 있을 것이다.
다섯 군데만 찾으면 되니 시간은 많이 절약했지만, 문제는 두 가지였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 그리고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핵심은 후자다.
들어가야 총대장을 처치할 수 있다.
마을로 빠져나오기 전에 핵심 전력을 처치하지 못하면 혼자서는 절대로 마을을 방어할 수 없다.
그래서 이서우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백호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백호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인님!”
“빨리 왔네.”
“네. 주인님이 경험치 분배를 많이 해 주신 덕분에 더 빨리 강해졌어요.”
“마침 잘됐네. 네가 강해져야 이번 일도 쉬워지거든.”
“뭐든 말씀만 하세요.”
“네 능력 중에 능력 흡수 있지?”
“네, 주인님.”
“그걸 좀 활용해야겠다.”
“지금요? 어떻게요?”
백호는 이서우가 무슨 생각으로 흡수 능력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했다.
“땅굴 파는 몬스터에 대해 말했었지?”
“네.”
“그 녀석의 능력이 필요해.”
“설마…….”
“그래. 할 수 있겠어?”
“가능은 해요. 하지만…….”
백호는 지금까지처럼 당당하게 말을 잇지 못했다.
땅굴을 파는 몬스터는 땅속에 산다. 문제는, 얼마나 깊은 곳에서 사느냐이다.
“조금 전 전투가 진행되는 곳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라면 성공 확률이 더 높았겠지만 지금은 너무 어수선해요. 표면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 어찌해 보겠는데, 깊이 있으면 찾기 힘들어요. 찾더라도 시간이 꽤 걸릴 거고요.”
“충분히 가능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 일단 따라와.”
“네? 네.”
이서우는 씨익 웃으며 앞장섰다.
백호는 걱정과 호기심을 동시에 안고 그의 뒤를 쫓았다.
“지금쯤이면 여기를 지나고 있겠지?”
“네.”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곳까지 가면 더 찾기 힘드니까 여기서 찾아봐. 난 할 일이 있으니까.”
“주인님?”
“걱정 말고 집중해.”
“……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와 유저의 전투로 온 사방이 시끄러웠다.
진동의 종류가 달라 집중을 하면 충분히 찾을 수 있지만, 백호로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일단 주인이 시킨 일이니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대답에 영 힘이 없었다.
“잡음이 많겠지만, 왜 널 이곳으로 데려왔는지는 곧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네, 주인님.”
이서우는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격려했다. 그러고는 곧장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백호는 대체 무슨 방법을 쓰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이서우를 믿고 얼른 귀를 바닥에 바짝 가져갔다.
청력을 최대로 높여 땅굴을 파는 몬스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이서우는 대검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볐다.
사람들 사이에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씩이지만 밀리는 상황이었는데 전장의 지배자가 나타나니 사기가 빠르게 올라갔다.
-주, 주인님, 능력이…….
-도움이 좀 되지?
-말도 마세요. 빠르게 능력이 향상되고 있어요. 벌써 주인님의 50퍼센트까지 올라갔는걸요.
-몇 퍼센트까지 성장해?
-지금은 주인님의 70퍼센트가 한계예요.
-서둘러.
-네, 주인님!
아까와는 달리 백호의 음성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이서우가 생각한 방법, 그것은 바로 백호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퀘스트로 몬스터 처치도 하고 백호까지 성장시켜 결과적으로 땅속에 있는 적들을 처치한다.
그야말로 이서우에게는 일석이조의 일이었다.
30분 정도 미친 듯이 마나를 퍼부어 가며 전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 드디어 찾았어요!
-좋아. 그럼 여섯 번째 땅굴을 공략할 테니 수직으로 바로 떨어지게 구멍을 뚫어 줘.
-네!
백호에게 힘을 몰아준다고 일시적으로 경험치 비율을 1 대 9로 해서 백호의 능력을 많이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백호를 활용해야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어 큰 불만은 없었다.
전장에서 빠져나와 백호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향했다.
승기도 어느 정도 잡아서 이서우가 빠져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유저들은 갑자기 그가 사라지자 당황했다.
하지만 온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로 인해 이서우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백호가 느껴지는 곳으로 가자 지름 1미터가 살짝 넘는 공간의 구멍이 보였다.
이서우는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지하로 내려갔다.
-유지 시간은 어느 정도 돼?
-그리 길지 않아요. 하지만 사라지기 전에 다시 능력을 흡수하면 되니 상관없어요.
-그럼 혹시 모르니 다른 땅굴로 연결되는 통로를 뚫어 줘. 높이는 대략 2미터 정도로 하고, 폭은 1미터가 조금 안 되어도 상관없어.
-네, 주인님. 최대한 빨리 진행할게요.
달려가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공간만 부탁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서우는 사냥을 하고, 백호는 열심히 땅굴을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땅굴을 파는 능력을 전이받아 적들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백호가 땅굴 파는 몬스터에게 접근하기가 힘들다.
땅을 전문적으로 파는 몬스터의 능력은 대단했다. 능력을 흡수하자마자 백호는 엄청난 속도로 땅을 팠다.
폭을 좁게 해도 되니 그런 것도 있지만, 이서우가 열심히 사냥을 한 덕분에 백호의 능력치가 많이 상승했다.
‘더럽게 넓게도 파 놨네. 뭐, 덕분에 이동은 편하지만.’
이서우는 드디어 적들이 파 놓은 땅굴에 도착했다.
1만 명이 움직여야 해서 폭이 10미터가 넘었고, 높이도 3미터나 되었다.
거리가 멀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이서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남은 마나는 3분의 2.
-백호야, 잠시 성장 속도를 조절해야겠네.
-네, 주인님. 저한테 굳이 말씀 안 하시고 조절하셔도 돼요.
-최대한 빨리 성장시켜 주마.
-네, 주인님.
백호의 대답에서는 신뢰가 가득 느껴졌다.
이서우는 비율을 8 대 2로 바꾸었다.
마나가 부족한 상황이기에 레벨 업으로 인한 마나 회복을 기대해야 할 때였다.
‘보인다!’
적의 꽁무니가 보였다.
사방이 막혀서 공기가 별로 없을 텐데도 별 영향이 없는지 걸음걸이에 힘이 넘쳤다.
하지만 적들은 이서우가 나타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비백산했다.
단 1명 때문에 도망치듯 가고 있는데 그 악마 같은 존재가 다시 나타났으니 오죽 놀랐을까.
그러나 이서우는 적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좁은 공간이어서 이서우에게 유리한 전쟁터다.
마음껏 대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도륙했다.
마나가 떨어지는 속도와 경험치가 올라가는 속도를 조절했다.
마나가 거의 바닥을 칠 때쯤 원하던 소식이 들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비율 조정 덕분에 레벨은 비교적 빠르게 올랐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두르며 적을 쓰러뜨려 나가는데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었다.
한데 이상했다.
분명 2천 마리 정도 처치한 듯한데 남은 숫자가 너무 적었다.
‘최소 5천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뭔가 잘못됐어.’
예상과 달리 남은 인원은 고작 1천이 되지 않았다.
다급해서 숫자를 착각한 것은 아니었다.
적들을 빠르게 처치하면서도 이서우는 적의 머릿수에 관심을 두었다.
이번 마을 침략에는 인간형 몬스터보다 유저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서우가 도적들을 마구 처치하면서 그의 현상금이 10만 골드까지 상승해 너도나도 덤벼든 것이다.
돈에 눈이 멀어 참여했는데, 막상 와 보니 상대가 엄청난 실력자였다.
그러니 다들 지레 겁을 먹고 로그아웃을 해 버려 인원이 대폭 줄어든 것이었다.
결국 이서우가 죽인 것은 인간형 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명성이 올랐다는 말이 한 번은 들렸어야 했다.
‘중간 지도자도 안 보이고. 완전 개판이구만.’
중간 지도자도 유저인 것을 알았기에 이서우는 혀를 차며 남은 몬스터를 처리해 나갔다.
일곱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도 이서우는 무난하게 적들을 처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유저들은 몽땅 다 나가고 몬스터밖에 없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레벨 업 속도는 점점 더뎌져 128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마지막 열 번째 땅굴은 막지 못했다.
혼자 2시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이서우는 곧장 마을로 갔다.
다행히 급했는지 적들은 출구를 마을 안쪽으로 뚫지 못하고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뚫어 놓았다.
이서우는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 몬스터들을 보며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 걸 보니 저기에 총대장이 있나 보네. 그래도 대장이 있는 곳이라고 로그아웃을 많이 하지는 않았네.’
그래도 절반 정도는 사라졌지만, 5천 명 정도면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백호야, 사냥 한판 할까?
-언제 그 말씀 하시나 했어요.
-많이 심심했구나.
-솔직히 엄청 심심했어요.
-그럼 마음껏 활보해 봐.
-네!
백호에게 의사를 전달하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이서우와 경쟁이라도 하듯 먼저 적들에게 도달하기 위해 속도를 점점 높였다.
촤악!
선공은 이서우가 먼저였다.
백호는 억울한 듯 날카로운 이빨을 벌려 산적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일인일수一人一獸.
서로 누가 더 많은 적을 처치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적을 무찔러 나갔다.
마을이 텅 비어 있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산적연합은 마을에 겨우 당도했지만 주민들이 있는 곳까지 가 보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휩싸여 우왕좌왕했다.
이서우가 휘두르는 대검에 적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극심한 공포에 결국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마을이 어수선해지면서 공포에 떨던 주민들은 승리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베손도 상당한 활약을 했지만 이서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피해 없이 상황을 마무리하자 베손이 이서우에게 다가왔다.
“고생했네. 정말 고생했어.”
“저보다 베손 님이 마음고생이 심하셨지요.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자네가 있어서 든든하다네.”
-퀘스트 ‘마을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을 막아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상급 강화석 5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1,000이 상승합니다.
-칭호 ‘아고나 마을의 영웅’을 획득하셨습니다.
-베손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서우는 길게 뜨는 메시지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베손 님, 그럼 전 몬스터들을 마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이거 자네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저는 괜찮으니 마을 주민들부터 진정시켜 주십시오.”
“알았네. 그럼 조심하게.”
“네.”
짧은 대화를 마무리한 이서우는 몬스터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곤 지면을 박차고 쭉쭉 뻗어 나갔다.
그때였다.
“아고나 영웅 만세!”
“아고나 영웅 만세!”
“아고나 영웅 만세!”
마을 주민들이 외치는 함성이 이서우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이서우는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는 마을 주민들이 보였다.
이서우가 돌아보자 주민들은 손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펄쩍 뛰며 좋아했다.
이서우는 마을 주민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여기서도 영웅님으로 불리는 거 아냐? 쑥스러운데.’
이서우는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