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레벨이 갑이다
67화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마을 분위기부터 살폈다.
대규모 몬스터 1차 침공이 있었을 때, 이서우를 비롯한 많은 유저들이 잘 막아 냈다.
불리하다 여겼는지 몬스터들은 후퇴를 했고, 마을은 일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서우는 뉴 월드에서 하루 온종일 사냥하면서도 아쉬워 사냥을 더 할까, 하다가 시간이 되어 종료했다.
이서우와 달리 상당수의 유저들은 진이 빠져서 종료를 했다.
이벤트 시작 전에는 몇 날 며칠을 사냥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사람들도 너무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경험치를 빠른 속도로 얻을 수 있어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른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뉴 월드 홈페이지에 항의 글들이 쏟아졌을 것이다.
제발 체력 안배를 감안해서 이벤트를 하라고.
어쨌든 이벤트를 치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평가가 좋은 덕분에 아이템 가격이 역주행해서 좋네.’
이서우는 24시간 동안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처치했다.
백호의 성장이 멈춘 뒤부터는 홀로 사냥을 해 더 많은 경험치를 얻게 되었다.
경험치가 아니더라도 이미 백호의 존재가 드러나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대놓고 소환을 할 수가 없었다.
이서우는 남작 성으로 갔다.
시간이 촉박해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고 종료해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서우가 왔다는 소식에 베손은 열 일을 제쳐 두고 왔다.
“하하하, 우리 영웅님이 오셨군.”
“베손 님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아닐세, 아니야. 마을 사람들은 누가 영웅인지 이미 알고 있다네.”
이서우는 다론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가는 곳마다 영웅님이라며 환대를 받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될 줄이야.
‘쩝, 이러다가 뉴 월드 영웅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영웅이라 불리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를 즐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이 흘러간 것뿐인데, 영웅이라니.
‘그래. 어차피 이것도 게임의 한 부분인데, 그냥 즐기자.’
한번 경험을 해서인지 금세 상황을 받아들였다.
“참, 내 정신 좀 보게. 이렇게 큰 활약을 해 줬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퀘스트 ‘마을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막아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상급 강화석 5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베손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접속하자마자 7레벨이 오르니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하지만 그의 귀를 더욱 즐겁게 하는 말이 들렸다.
“자네가 한 일에 비하면 보상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아네. 하지만 정찰병에게 듣기로는 아직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살아 있다고 하더군. 그러니 부디 위기가 사라질 때까지는 고생해 주게.”
반복 퀘스트 : 계속되는 위협
1차 침공은 무사히 넘겼지만 베손은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몰려올 것이라 믿고 있다.
대규모 몬스터 공격으로 정찰 인원을 2배 이상 늘리면서 정보를 얻고 있어 확신하는 것이다.
이에 베손은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질 때까지 마을을 지켜 줄 것을 당부한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몬스터 10,000마리 처치.
*처치 몬스터 10,000마리마다 보상이 자동으로 지급된다.
성공 시 보상 : 1레벨 경험치, 500골드, 상급 강화석 1개, 명성 300.
실패 시 : 3레벨 다운, 베손과의 친밀도 대폭 하락.
“맡겨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네가 그리 말해 주니 든든하구먼.”
이서우는 보상이 비록 기존의 퀘스트보다 약하지만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 유저들에게 1만 마리는 며칠을 고생해도 처치하기 힘든 숫자지만 이서우에게는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이벤트는 뉴 월드 시간으로 한 달 넘게 지속될 테니 퀘스트만으로도 7레벨 이상은 충분히 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골드 보상이 생각보다 높아 더더욱 불만이 없었다.
베손과 헤어진 이서우는 거래 중개소로 갔다.
일반 아이템부터 고급까지, 인벤토리에 너무 많아 정리를 하려는 것이다.
아이템 가격은 오르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영웅 등급 이상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영웅 등급을 하나 먹어야 대박인데.’
잡템만 팔아도 수천 골드는 될 정도로 많았지만, 영양가 없는 아이템 수십 개보다 양질의 영웅 등급 1개가 훨씬 나았다.
하지만 엄살을 피우는 것과 달리 아이템을 팔지 않았는데도 소유 골드가 벌써 1만 골드가 넘었다.
골드 가격이 7천 원 정도로 떨어졌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5천 원 이하로 떨어져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서우에게는 훨씬 유리했다.
1골드에 1만 원은 너무 비싸다는 말이 많았다.
그래도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골드를 사지만, 그건 최소 중산층 이상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사람들은 골드가 너무 비싸서 고레벨이 될 때까지 열심히 모아 장만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었다.
중산층 이상의 비율이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으니 골드값이 적정 수준을 유지해 그들도 활발하게 사고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정리를 마친 이서우는 캐릭터 창을 한번 살펴보았다.
‘대검이 계속 진화를 하니 공격력이 대박이네. 밸런스 숙련도도 1레벨 더 올랐고.’
뉴 월드에서 24시간 풀 사냥으로 얻은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일까.
이서우는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벤트 기간 동안 몇 레벨이나 올릴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이서우는 몬스터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아고나 마을을 나섰다.
언제 쳐들어올지 상황을 미리 파악하면 대처하기가 쉽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 온 사방을 누비며 사냥을 하고 싶지만, 수백만 마리 단위로 모여 있으니 혼자서는 불리했다.
이서우는 익숙한 남문으로 갔다.
영웅님이라며 환호하는 소리에 화답을 하고는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이벤트가 쉼 없이 계속 진행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연일 뜨거워, 곳곳에서 뉴 월드 이야기가 넘쳐 났다.
이벤트가 이어지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시작은 설아였다.
그녀는 단순히 전장의 지배자라 불리는 이서우의 활약을 사람들의 피부로 와닿도록 전달하기 위해서 그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빅5라 불리는 방송사들이 모두 동참했고, 이제는 과연 누가 승자가 될지 궁금해했다.
설아가 시작한 것은 바로 이서우가 몇 마리의 몬스터를 잡느냐였다.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분석해 백 단위로 카운트를 했다.
이를 위해 N게임넷은 분석전담 팀까지 두며 게임 내에서 영상을 빠른 속도로 쉼 없이 돌려 보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수많은 유저들 틈에서 활약하는 이서우를 잡아내야 해서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생한 분석 팀은 결과로 보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제 매시간 이서우가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처치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해서 40퍼센트를 넘어섰다.
게임은 15세 이상 가능하지만 시청은 그 이하도 가능해서 나타난 수치였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시청률은 거의 전 세대를 다 조사하기 때문에 40퍼센트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이에 경쟁 방송사는 회심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바로 전신이었다.
전신의 활약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전장의 지배자보다 조금이지만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곧 전장의 지배자가 전신을 제쳤다.
이런 일이 매시간마다 반복되니 시청하는 사람들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야, 오늘 자정까지 전장의 지배자가 앞선다는 데 건다.”
“어림없지. 난 무조건 전신한테 건다.”
“어제 내가 이긴 거 알지?”
“솔직히 전장의 지배자는 비교적 레벨이 낮은 곳에서 사냥하잖아. 그러니 운 좋게 이긴 거지.”
“무식한 놈, 전신의 장비 모르냐? 걔는 유일로 도배를 했잖아. 하지만 전장의 지배자 님은 다 희귀야, 희귀. 게임이 되냐.”
“야, 전신은 걔고, 전장의 지배자는 님이냐?”
“그런 식으로 몰아가시겠다? 왜, 질 것 같아?”
“무슨 소리! 오늘은 무조건 전신 님이 이겨!”
술을 마시며 서로 다른 게임 채널을 시청하고 있는 사내들의 대화였다.
이런 대화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저녁이면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 온 매장이 발 디딜 틈 없이 후끈 달아올랐다.
당사자인 이서우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레벨을 보며 오직 사냥에만 집중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게임을 종료하고 접속 베드를 나왔다.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또 생중계해 주려고 전화했냐?”
-어때? 사냥 좀 할 만해?
“너 설마 또 나한테 걸었냐?”
-야, 지금 회사가 난리다. 진짜 이런 거 보면 설아 양이 대단하다니까.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열광할지 너무 잘 안단 말이야.
“어차피 아직 남은 시간이 있어 식후 가볍게 운동만 하고 재접할 생각이다.”
-그럼 오늘은 무조건 이기겠네, 크하하하하.
“크게 걸었나 보다?”
-그럼. 일주일 치 밥값에, 커피값까지 걸었지. 아주 비싼 걸로 먹어야지. 흐흐흐.
기분이 좋은지 수화기 너머로도 들뜬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다.
술집인지 음성만 지원해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이서우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너 한 방에 훅 간다.”
-재미있으면 되지, 뭐.
처음 이서우를 따라잡아 보겠다고 열심이던 박민수는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포기하고 시청자의 입장이 되었다.
도저히 쫓아갈 수 없어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전화했냐?”
-몸 상하지 말라고 전화했지.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병원에서 칭찬하더라.”
-다행이네. 나랑 종명이는 솔직히 좀 걱정했거든. 네가 또 오기가 좀 세잖아. 경쟁심도 있고.
“게임을 경쟁하려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뭘. 걱정 말고, 얼른 술이나 드셔.”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여튼, 끝까지 힘내라. 팟팅!
박민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술기운에 한 말이지만, 말을 하고 보니 부끄러운 것이다.
서로 마음으로는 늘 걱정하고 보이지 않게 챙기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말을 한 적은 별로 없어 쑥스러울 법도 했다.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1등이라…….”
이서우는 고개를 젓고는 식사를 했다.
가볍게 집 주위를 산책하고는 다시 접속 베드에 누웠다.
* * *
드디어 이벤트 종료까지 1시간이 남았다.
종료가 되자마자 결과는 나오지만, 발표는 1시간 후다.
사람들의 이목은 과연 누가 1등이냐 하는 것에 쏠렸다.
며칠 동안 치열하게 1, 2위 다툼을 하며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러나 전신을 지지하는 굳건한 지지층이 꽤 많아, 6 대 4로 전신이 1위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하지만 전장의 지배자의 팬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장비나 레벨 등 모든 것을 다 감안해서 점수를 산정한다던 뉴 월드 측의 공지 문구였다.
전장의 지배자는 이벤트 시작부터 끝까지 희귀 아이템으로 사냥에 임했다.
그런 이유로 전장의 지배자의 팬들은 전신이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이벤트는 종료되었고, 드디어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