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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68화 (68/341)

# 68

레벨이 갑이다

68화

“오빠, 여기 오빠 나와!”

“시간 없으니까 얼른 준비해.”

“조금 쉬기로 했잖아.”

“하루만 참으면 돼.”

“설마 질 것 같아서 그래?”

“그런 출신도 알 수 없는 놈한테 질 생각은 없어.”

찻잔을 치우던 전신은 동생의 질문에 살짝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말이. 근데 왜 그리 서둘러? 내가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잖아. 조금만 쉬었다 가자.”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을 보고 싶은 거겠지.”

“오빠, 무슨 그런 막말을 해? 우리 기태 오빠가 얼마나 젠틀하고 매너 있는 사람인데.”

“매너 같은 소리 하네. 팩트부터 구설수에 오른 것까지 다 나열해 줘?”

“설마 우리 기태 오빠 뒷조사한 거야?”

“굳이 뒷조사 안 해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그거 다 헛소문이야. 기태 오빠를 시샘하는 사람들의 음모라고!”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 줘야겠어?”

“아, 안 돼! 우리 기태 오빠 사생활은 건드리지 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준비 안 해?”

“아, 쫌!”

“사진 찍는다?”

“치사하게 그런 걸로 협박할 거야?”

“그러니까 빨리 준비하라고.”

“알았어. 준비하면 될 거 아냐!”

박효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TV를 끄고는 접속 베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커다란 방에 맞춤형 접속 베드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주문 제작한 것으로, 대당 가격이 무려 10억이나 하는 베드였다.

“근데 오빠, 큰오빠가 연락 좀 하라던데.”

“재수 없는 인간 이야기 그만하고, 접속해.”

“계속 피할 수는 없잖아. 그래도 가족인데……. 아, 알았어. 접속하면 될 거 아냐!”

전신의 따가운 시선에 박효주는 얼른 접속 베드로 들어갔다.

전신은 쉬지 않고 사냥을 이어 갔다.

보조형 펫과 동생에게 버프를 받고, 마나 물약도 풀로 써 가며 대검을 휘둘렀다.

전신은 듣도 보도 못한 유저 하나 때문에 수많은 뉴 월드 유저들이 온통 떠들어 대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기까지 벌어지면서 비교되고 있어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주 처참하게 눌러 줄 생각이었다.

먹고 자는 잠깐의 휴식을 제외하고 하루 접속 가능 시간을 모두 채웠다.

이벤트가 종료되자마자 접속 베드에서 튀어나온 박효주는 앓는 소리를 했다.

“아오, 토 나와. 얼굴 푸석푸석한 것 좀 봐. 내일은 나 쉴 거니까 찾지 마. 피부 관리라도 좀 받고 와야지 이러다가 늙겠어!”

“엄살은. 당분간 찾을 일 없으니 푹 쉬어라.”

“그래도 우리 기태 오빠는 보고 쉬어야지, 헤헤.”

좀비라도 된 듯 흐느적거리며 걷던 박효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실로 갔다.

TV를 틀자마자 최기태가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십시오! 저분이 바로 전신 님이십니다! 200레벨이 넘는 초극강의 몬스터들도 전신 님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합니다!

“멋지게 나오긴 했네. 나도 드러낼 걸 그랬나.”

“그 순간 네 인생은 행복 끝, 고생 시작이야.”

“나도 알아. 아빠나 할아버지는 왜 벌써 시집을 가라 하시는 건지.”

“네가 맨날 놀고 있으니 그러지. 괜히 방송 타서 끌려가지 말고 조심해.”

“오빠만 아니면 그런 걱정도 없네요. 앞으로는 안 도와줄 거니까 혼자 해결해.”

“보고.”

전신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그녀의 옆에 걸터앉아 맥주를 땄다.

“오빠도 결과가 궁금하긴 한가 보네?”

“어차피 내가 1등인데 궁금하긴 뭐가 궁금해. 그냥 무슨 소리 하나 보는 거지.”

“에이, 오빠가?”

평소 게임 방송은 잘 보지 않는 전신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엑기스만 뽑아서 보는데, 이번 이벤트와 같은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만큼은 꼼꼼하게 살핀다.

“궁금하면 그냥 궁금하다고 해.”

“네 도움까지 받았는데 1등 못 하면 게임 접어야지.”

“하긴, 내가 그렇게 팍팍 밀어줬는데도 1등 못 하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그 사람도 강력한 펫이 있어서 사냥 속도가 엄청나던데?”

“처음에만 등장하고 중후반부에는 소환을 안 했어. 분배해야 할 경험치나 점수가 아까웠겠지.”

전신은 공격형 펫을 잘 활용하지 못한 이서우가 절대로 불리하다고 여겼다.

일정 부분 점수나 경험치를 떼어 주더라도 사냥 속도가 빠른 게 이득이라고 본 것이다.

1시간 동안 TV에서 전신에 대한 영상과 전장의 지배자에 대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비교 영상을 볼 때면 전신은 꼭 자신을 높이고 경쟁자를 깎아내렸다.

드디어 결과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남자는 흥분된 목소리로 뉴 월드가 발표한 결과를 전달했다.

전신은 점수 수치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압도적인 차이로 이길 거라 자신했다.

동생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돈도 많이 투자했다.

전신은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갔다.

“오빠…….”

* * *

결과 발표가 끝나고 이서우는 카페로 갔다.

친구들이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와, 대박. 축하한다.”

“나도 깜짝 놀랐다. 축하해.”

이서우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박민수와 류종명이 환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축하는 무슨. 2등 한 거 가지고.”

“야,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마 전신 본인도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알걸.”

“맞아. 객관적으로 보면 이번 승부는 전신의 패배야. 그는 게임 초반부터 돈을 엄청 쏟아부어서 모든 걸 최상으로 갖추었지만 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장비도 평균 이하였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점수를 보자마자 네가 이겼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어쨌든 결과는 내가 2등이라는 거야.”

“너랑 전신은 출발점부터가 달라. 근데 결과가 고작 1천 점 차이야. 내가 장담하는데, 전신은 어디 가서 1등 했다고 절대로 못 떠들 거야. 나 같아도 쪽팔려서 말 못 하지.”

분석을 좋아하는 류종명의 말이라 신뢰는 가지만, 그렇다고 2등을 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종명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만약 네가 그저그런 2등이었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렇게 깊게 각인되지는 않겠지. 알잖아, 우리 사회가 어떤지.”

“맞아. 어떤 분야든 우리나라에서 1등 한 사람은 알아도 2등 한 사람은 기억 못 해. 언론도 1등만 열심히 다루니까. 하지만 난 네가 이번에 활약하면서 더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해.”

“메시지라니. 난 그런 적 없는데?”

이서우는 이벤트를 하면서 아무런 메시지도 던진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사냥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류종명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달할 의사도 전혀 없는데 메시지를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보잖아. 이번 이벤트로 평범한 유저들은 희망을 봤을 거야.”

“희망?”

“랭킹 1위는 전신이고, 뉴 월드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쭉 1등만을 할 거라고 생각해. 누구도 그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출발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래. 전신은 1등이 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했어. 우리나라에서 수십수백억을 게임에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들의 머릿속에는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있다 해도 다들 나이가 많거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전신처럼 할 수 있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솔직히 전신처럼 시간도 있고 돈까지 있는데 그런 위치까지 못 올라간다는 건 말이 안 돼.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부자가 아냐. 랭킹 1만 위 안에 서민들이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

상위 10만 명 안에만 들어도 0.1퍼센트다.

1만 명이면 0.01퍼센트 안에 든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적어도 모든 장비가 영웅 등급이어야 하고, 강화도 중간 이상은 갖춰야만 한다.

골드를 살 수 없는 서민이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 뉴 월드 상황이 그래. 한데, 평균 이하의 장비를 가지고도 전신을 압도한 게 바로 너야.”

류종명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뉴 월드를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도 많았지만,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워낙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걸로 돈을 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게임을 해도 월 3~4천만 원이 그들의 한계였다.

그것도 결코 적은 수입은 아니지만 게임을 하지 않을 때도 뉴 월드에 대한 분석을 하고, 정보를 사는 데 돈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까지 생각하면 결코 많은 액수도 아니었다.

물론 팀을 이뤄 철저히 힘을 합치면 그 이상도 가능했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장의 지배자가 나타났다.

그의 존재로 인해 절대다수가 믿고 있던 한계가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것이다.

결과 발표가 나자마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전장의 지배자가 어느 정도 선방은 했을 거라 믿었지만 전신과의 점수 차이가 고작 1천 점밖에 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뭐, 난 이벤트에서 이득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니까.”

“그러고 보니 유일 장비 얻는 거지?”

“어.”

박민수는 희귀 이상은 받을 수 없다는 걸 안 뒤로는 보상에 대해선 신경을 끊었다.

그냥 순수하게 즐기면서 레벨 업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내심 10위 이상을 노리고 있었다.

“2등이니 유일 장비 중에서도 최상급 옵션 템을 얻게 되겠지.”

“이야, 유일 최상급 옵션이면 가격이…….”

“골드값이 꽤 떨어졌지만 유일 최상급 옵션은 희소성이 있어 상당히 비쌀걸. 15강짜리는 아마 수억씩 할 텐데.”

류종명의 말에 박민수는 고개를 끄덕인 반면, 이서우는 ‘그렇게까지 비싸게 팔려?’라는 표정이었다.

“유일 풀 셋은 전신밖에 없어. 무기가 유일인 사람도 별로 없고. 있어도 대부분 옵션이 평균 수준이야. 아마 전신도 최상급 옵션은 아닐걸. 게다가 5강, 10강, 12강, 15강마다 보너스 공격력이 있어. 그러니 네가 받게 될 무기를 15강 하면 5억은 되지 않을까?”

“당분간 이벤트도 없으니 가치가 더 올라갈 수도 있어. 특히 랭킹 2위는 유일 장비를 받아도 옵션이 지금 가진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네가 물건만 내놓으면 확 지를지도 몰라. 아마 무강이라도 3억 이상 받을 수 있을 거야.”

전신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어 랭킹 2위는 항상 찬밥 신세였다.

게다가 3위가 치고 올라오는 기세도 엄청나서 2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전신을 위협할 수준은 되지 않더라도 3위와의 격차를 벌이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투자를 하려 할 것이다.

거래 중개소에도 올라오는 물건이 아니어서 유일 장비에 대한 가격은 이서우도 잘 몰랐는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절로 기분이 밝아졌다.

솔직히 1등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조금만 더 점수가 높았다면 1등이었을 테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목적은 빚을 갚는 것이다.

최근 로봇 청소기와 식기세척기를 사면서 첨단 시설을 갖춘 집을 사는 걸 다음 목표로 정했지만, 일단은 빚만 갚아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질 것 같았다.

“참, 레벨 얼마나 올렸어? 아이템 지급은 유저 레벨에 따라 다르다고 했는데.”

“아, 맞다. 레벨이 문제네. 실컷 2등 해 놓고 레벨이 낮으면 말짱 꽝인데. 10레벨만 차이 나도 가격차가 엄청날걸.”

“엄청나지. 무기만이 아니라 목걸이도 걸려 있으니까.”

류종명과 박민수는 이서우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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