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레벨이 갑이다
73화
아고나 마을의 영역을 지나가는 동안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백작의 영지로 가는 길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을 따라갔으니까.
큰 마차는 2열로 이동했고, 이서우는 후방을 맡았다.
길을 아는 용병 둘이 앞장섰고, 이서우는 홀로 뒤를 맡겠다고 했다.
‘용병들이 전부 유저일 줄이야. 싸울 때 조심해야겠는걸.’
이서우의 대검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없다.
동영상에서도 희미하게만 나와서 정확한 형태를 알지 못한다.
화려하지도 않고, 강화가 되지 않으니 이펙트도 전혀 없어서 평범하다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워낙 사람들의 눈에 각인이 되어 있어 알아볼 가능성도 있었다.
‘대검도 대검이지만 진짜 문제는 펫이야. 백호는 당분간 쉬게 해야겠네.’
대검은 가볍게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백호는 소환을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 따로 대검을 준비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나저나 30명이 다 유저라니. 근데 왜 15명인 소규모 용병단을 두 곳이나 부른 거지?’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아,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프랑드가 마차에서 내려 이서우에게 다가왔다.
상인들은 프랑드를 제외하고 모두 NPC다.
전투 직업 유저들은 레벨이나 아이템으로 누가 강한지 짐작할 수 있지만 상인은 그렇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애매해서 여러 사람이 있으면 의견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그것이 싫어서 프랑드는 NPC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논쟁이 없는 대신 심심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도 NPC일 뿐이었다.
“뉴 월드, 참 대단한 게임이죠?”
“그러네요.”
“사실, 제가 좀 찌질하게 살았는데 뉴 월드를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살맛 나는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프랑드 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뉴 월드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죠.”
“서우 씨도 그런가 봐요?”
“…….”
이서우는 프랑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은데, 무례하게 직설적으로 묻지 않았다.
대신 상대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고 가려는 상인 특유의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런 그의 의도를 알고 대답을 미룬 채 화제를 돌렸다.
“한데, 상인을 하시면 레벨을 올리는 게 힘들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일장일단이 있어요.”
“궁금하네요.”
이서우는 금세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수를 읽히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프랑드는 찰나지만 ‘당했다.’라는 의미가 담긴 표정을 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로 말을 이었다.
“아주 큰 거래를 따내거나 많은 이득을 보면 한 번에 10레벨 이상도 올릴 수 있어요. 물론 그렇게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저도 수많은 거래를 했고 퀘스트를 하면서, 다량의 레벨 업은 딱 한 번밖에 못 했으니까요. 심할 때는 1퍼센트밖에 오르지 않을 때도 있고, 제자리걸음일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프랑드 님은 즐거워 보이시네요.”
“물건을 사고팔 때의 짜릿함이 있죠. 나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의 생각을 읽는 과정이니까요.”
“긴장감을 좋아하시는군요. 하긴, 전투 계열도 마찬가지긴 하네요.”
“그렇죠. 어떤 방식으로 그 짜릿한 긴장감을 즐기냐만 다를 뿐, 그에 따른 즐거움과 재미는 같은 것이죠.”
이서우는 생산도 병행하고 있지만 생산직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식으로 레벨을 올리고 이득을 취하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NPC만 상대하는 것은 아니죠?”
“네. 하지만 주로 NPC 위주로 가려고 해요.”
“이유가 있나요?”
“유저들은 아무래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요. 또 괜히 어설프게 거래를 했다가 보복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상인은 어쨌든 이득을 취해야 하는데, 거래 이후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길드를 끌어들여서 해결하려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프랑드 님도 길드가 있지 않나요?”
“저는 혼자가 좋더라고요. 괜히 비위 맞춰 줄 필요도 없고, 맞지도 않는 의견을 조율해서 힘들게 게임을 진행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즐겁자고 하는 게임인데,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 짜증 나잖아요.”
상인들은 대부분 속마음을 감추지만 프랑드는 노련한 상인이다.
자신을 드러내면서 상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한 뒤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게 그가 잘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주로 사기꾼들이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기는 방법을 많이 쓴다. 프랑드가 사기꾼은 아니지만, 상인들의 방법은 그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런 수법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죠.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죠.”
“궁금한 거라뇨?”
“30명 정도면 한 용병대만 고용해도 될 것 같은데 왜 두 곳을 한 건가요? 그리고 전부 유저라는 것도 특이하고요.”
“보통이라면 서우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큰일에는 차라리 유저가 낫습니다. NPC들은 죽으면 끝이니 진짜 위기의 상황이 오면 도망가려 합니다. 위약금 따위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거죠.”
“이곳에서 일을 못 하게 되어도 신분을 숨기고 다른 지역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군요.”
“네. 하지만 유저들은 죽어도 접속 페널티만 있으니 끝까지 물건을 지키려 해요. 위약금이 상당하거든요. 또한 두 곳이면 서로 견제가 되니 뒤탈도 없고요.”
“그렇겠네요.”
이서우는 상인들이 이득을 위해 머리를 많이 굴린다는 것을 재차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위험지역에 접어듭니다. 다들 조심하세요.”
이서우의 앞에서 마차를 지키며 걷던 용병 하나가 선두의 말을 전달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크, 그럼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차에서 절대 나오지 마세요.”
프랑드는 얼른 마차로 들어갔다.
마차는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나오지만 않으면 몬스터에게 당할 일이 없다.
아주 비싼 값을 주고 산 것이어서 돈값은 확실히 했다.
하지만 마부들이 긴장을 했는지 바짝 얼어 있었다.
그들은 무력을 거의 쓸 수 없어 몬스터가 나타나도 도망조차 갈 수 없다.
그저 용병들이 강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항상 깨어 있는 감각이지만, 위험지역에 들어섰다는 말에 더욱 활성화시켰다.
‘저 여자가 왜…….’
몬스터가 오지 않고 용병대장이 이서우에게 다가왔다.
“선두에는 인원이 남아서 제가 후방으로 왔어요.”
“저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영주님께 인정받은 분이라는 건 알지만 전 당신의 실력을 본 적이 없어서요.”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 것 같은데, 서로 방해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네.”
유세나는 이서우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로 방해되지 말자고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렇게 실력에 자신 있으시다면 절대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죠.’
유세나는 위기의 순간이 와도 이서우를 돕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신경을 주변으로 돌렸다.
지금부터는 12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이 빈번히 나타나는 지역이었다.
몬스터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어서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언니!”
“앞쪽에 있지 왜 왔어?”
“힐 주러 왔지.”
“힐은 무슨. 심심해서 왔겠지.”
“헤헤, 앞쪽은 별로 재미없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그래야지.”
“됐어. 서로 잘난 척하기 바쁜데 무슨 대화를 해.”
“참, 인사드려. 영주님이 직접 추천하신 분이야.”
“어머, 그럼 엄청 대단한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 조현아예요.”
“아, 네. 이서우입니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키는 160 정도로 평균에 살짝 미치지 못했고, 체격은 보통이었다.
이서우는 신경 쓰지 않고 먼 곳을 응시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인사를 하니 받아는 주었다.
“위험지역에 들어왔으니 너도 주위를 잘 살펴.”
“힐러는 전투 감각이 꽝이라고. 그러니 언니가 알려 줘.”
“참, 너처럼 세상 편한 힐러도 드물 거다.”
“각자 주어진 일에만 전념하는 거지 뭐. 괜히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잖아.”
“그게 좋긴 하다만.”
여성으로서는 특이하게 유세나는 쌍칼을 사용한다.
그녀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는데, 워낙 능력이 특출나다 보니 탱커와 힐러가 제 역할을 못하면 서슴없이 지적한다.
물론 무턱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세 번 정도의 여유는 준다.
하지만 파티 사냥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파티원을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조현아는 성격이 완전히 반대였다.
그녀는 탱커나 딜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냥 자기 일만 묵묵히 열심히 한다.
유세나가 보기에는 자존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바보 같다고 여기지만, 조현아는 그게 재미있단다.
힐을 편하게 하라고 몇 번 대신 지적을 했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만다.
각자 게임을 즐기는 기준은 다른 법이니까.
그래도 조현아가 워낙 착하고 순진해서 유세나는 그녀와 함께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이서우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몬스터네. 숫자가 꽤 많은데?’
말할까 하다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괜히 나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이다.
몬스터들이 꽤 가까이 왔을 때다.
“몬스터들이 와요. 대비하세요!”
유세나의 외침에 사람들은 바짝 긴장했다.
인원이 많다면 일정 거리를 두고 정찰조를 운용하겠지만 30명으로는 20대의 마차를 지키는 것도 빡빡했다.
잠시 후, 100마리의 몬스터들이 일행을 덮쳤다.
‘레벨 차가 커서 경험치도 많이 안 주는 녀석들이니 마차 근처로 오는 녀석들만 잡아야겠네.’
이서우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순수한 힘으로만 몬스터를 상대했다.
그래도 여유가 있어 유세나의 사냥을 힐끗힐끗 살펴보았다.
쌍칼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몬스터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150레벨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꽤 잘 싸우네.’
이벤트로 150레벨 이상의 유저가 상당히 많아졌지만, 전체 이용자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마차 호위를 하고 있는 용병은 모두 그에 미치지 못했다.
고용에 따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일개 상인이 고용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어서 고레벨 유저는 없었다.
하지만 사냥 경험은 많은지 몬스터들을 쉽게 처리했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길을 걸어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여행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는데, 마을 주민이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곳이었다.
주로 몬스터들이 다니지 않는 장소에 이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접속 제한이 있는 유저들에게는 쉬기 좋은 공간이었다.
“역시 난 새벽이슬 맞으며 자는 건 적응이 안 돼.”
“다들 현실 시간으로 내일 오전 9시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서우도 동의를 했다.
프랑드는 물건은 NPC에게 맡겼다.
비용은 조금 들지만 재접속 기간 동안 보호가 되는 것이어서 아깝지 않았다.
마을은 거래 중개소도 경매장도 없는 곳이어서 이서우는 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다음 날, 약속된 시간에 접속했다.
한데 프랑드와 용병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