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77화 (77/341)

# 77

레벨이 갑이다

77화

“내일이면 도착하겠네요.”

“이제 정들 만하니 헤어지네요.”

“맞아요! 저도 너무 아쉬워요! 참, 서우 님, 분명히 약속하셨어요.”

“전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습니다.”

“헤헤. 네, 믿어요!”

셋이서 술잔을 기울인 그날 이후, 조현아는 이서우에게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부탁을 하면 대부분 들어주지만 이서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하지만 조현아는 끝없이 이서우에게 문을 두드렸다.

결국 이서우는 다음에 만나면 그러겠다고 했다.

‘다음에 만날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서우는 퀘스트를 완료하고 빠르게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영역이 달라지게 되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열흘에 걸쳐 진행된 여정은 그렇게 마지막 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정오를 살짝 넘긴 시점, 일행은 백작의 영지에 도착했다.

“좋은 값에 파시길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서우 님.”

-프랑드에게 3,000골드를 받았습니다.

“이거 액수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용병대장급으로 처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처음 계약된 조건으로만 받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나중에 제게 의뢰하실 때에는 몸값이 몇 배나 뛰어 있을 겁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죠.”

프랑드는 이서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이서우는 2천 골드를 인벤토리에 넣고는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우리 현아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다음에 꼭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 거예요.”

“잊으셔도 됩니다.”

“그럴 수는 없죠. 전 은혜는 꼭 갚는 성격이거든요.”

“네. 그럼 편안한 여행 되시길 바랄게요.”

“서우 님도요.”

뒤늦게 합류한 유세나는 이서우의 활약을 듣고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냉랭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머리를 숙일 때를 알고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았다.

“서우 님, 다음에 또 봬요! 그땐 친추도 해 주셔야 해요!”

“네. 조심히 가세요.”

이제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시끌벅적한 것도 나쁘지는 않네.’

이서우는 지난 시간을 가볍게 상기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이라면 가끔 파티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시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이서우는 거대한 성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멈춰라!”

성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는데 문지기들이 이서우를 막아섰다.

“이곳은 모험가가 들어올 수 없다. 돌아가라!”

두 경비병은 근엄한 얼굴로 주의를 주었다.

‘아고나 마을의 경비병과는 수준이 다르네. 문지기가 150레벨은 되겠어.’

베손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나 본 경비병들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다.

‘경비병들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기사들은 꽤 강하겠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돌아가라.”

“전 베손 남작님의 부탁으로 온 것입니다. 이걸 백작님께 전해 주십시오.”

“이건…….”

그들도 베손에 대해 잘 안다. 한때는 그를 동경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서신에 찍힌 인장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문지기들은 이서우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행색은 보잘것없었지만 베손의 서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속삭이더니 한 사내가 이내 이서우를 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오.”

“그러죠.”

명령조이던 말투가 그나마 한풀 꺾였다.

하지만 여전히 고압적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아직 이서우의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채 1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바뀌었다.

백작의 거처까지 워낙 멀어서 전달하는 게 느려서 그렇지, 가까웠다면 얼른 나와서 이서우를 다시 맞았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백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이서우는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백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뛰어갔으면 좋겠는데, 걸어서 가려니 30분이나 걸렸다.

‘확실히 대귀족이어서 그런지 엄청나구나.’

입구에서 저택까지 걸어서 10분씩 걸리는 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경험을 하니 놀라웠다.

축구장 몇 개를 갖다 붙여야 이런 성을 만들 수 있을까.

이서우는 화려한 분수와 넓은 정원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백작이 머무는 공간도 남작들과는 달랐다.

이곳이 백작의 성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왕국인 줄로 착각했으리라.

안으로 들어가자 조세프 백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백작님을 뵙습니다.”

이서우는 무릎을 꿇고는 인사를 했다.

귀족을 만날 때 지켜야 할 예의이기 때문에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렇게 예를 차릴 것 없네. 앞으로는 그냥 가볍게 인사만 해도 되네.”

“네, 백작님.”

“이리 가까이 오게.”

“네.”

백작의 곁에는 무장을 한 기사가 둘 있었는데, 이서우가 다가오자 그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자네들도 너무 경계할 필요 없네. 이 모험가는 베손이 친구라고 칭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네.”

“하지만…….”

“허허, 괜찮대도.”

“네, 백작님.”

이서우는 베손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높게 봐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옆에 앉게.”

이서우는 백작의 옆자리에 앉았다.

금으로 치장을 했는지, 의자가 아주 화려했다.

가운데에는 백작이 앉아 있었고 다른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기사들은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서인지 백작의 가까이에 서 있었다.

“그래, 이번 대규모 몬스터 침공 때 아주 큰 공을 세웠다고?”

“그저 작은 재주에 불과합니다.”

“허허허, 베손 남작을 다섯 수 안에 꺾었다는 걸 알고 있네.”

“베손 님께서 그런 말까지 하셨습니까?”

“아주 자세히 써 놨더군. 소드 마스터에 올랐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그를 그렇게 쉽게 제압하다니. 대단하구먼, 대단해.”

“아닙니다. 베손 님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곧 저를 능가하실 겁니다.”

“그리 겸손 떨지 않아도 되네. 베손 남작이 아무리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제 막 올랐다고 해도 제국에 그와 같은 실력자는 그리 많지 않네. 그런 그를 이겼다면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돼.”

백작의 곁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기사들이 이서우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소드 마스터를 간단히 제압했다면 그는 더욱 뛰어난 소드 마스터라는 뜻이다.

평생 꿈꾸던 경지를 모험가가 이루었다고 하니 놀라웠다.

사실 이서우는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소드 마스터와는 조금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펠렌의 후예가 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마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깨달음을 통해 올라서는 NPC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어쨌든 그들은 이서우가 소드 마스터보다 강하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남작에게 이야기는 들었나?”

“네. 필요한 말만 간단히 해 주셨습니다.”

“궁금한 것이 더 있나 보구먼. 편하게 말해 보게.”

“정확히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베손 님은 백작님을 돕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왔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게 맞겠지. 벽 너머에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들었나?”

“네. 인간형의 몬스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머드 맨mud man이라 부르네.”

“머드 맨이라면…….”

“진흙 인간이지. 그것 외에는 딱히 부를 만한 이름이 없더군. 처음에는 골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들의 지능이 높지는 않지만 그다지 낮지도 않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정을 팔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골렘이라 하지 않고 그렇게 부르게 된 거라네. 자네도 직접 싸워 보면 알겠지만 정말 진흙을 상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걸세.”

“그렇군요. 한데, 그들과의 충돌이 잦습니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지. 한데, 대규모 몬스터 침공이 곳곳에서 벌어진 이후에 횟수가 조금씩 증가했네. 아마 그들도 더 난폭해진 거겠지.”

“누가 인솔하나요?”

“사이먼 자작이네. 오후쯤이면 올 테니 만나 보게. 그를 도와 그곳에 들어가야 하니 직접 만나 보는 게 좋겠지.”

“그렇군요.”

이서우는 사이먼 자작이라는 사람이 베손보다 강한지 궁금했다.

만약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번 퀘스트는 생각보다 귀찮아질 수 있었다.

“자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아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자존심이 강해지기 마련이지. 하지만 사이먼 자작은 베손 남작보다 몇 년이나 빨리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네.”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다면 저로서도 안심이 됩니다.”

“자네가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네. 그것보다 베손 남작이 왜 자네에게 반했는지 보고 싶구먼. 어떤가, 사이먼 자작이랑 대련을 가져 보는 것이?”

사이먼 자작과 대련하라

조세프 백작은 베손 남작을 누구보다 믿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당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이먼 자작과의 대련에서 승리한다면 백작은 당신을 더욱 신뢰할 것이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사이먼 자작과의 대련에서 승리하라.

성공 시 보상 : 1레벨 경험치, 1,000골드, 조세프 백작과의 친밀도 상승.

실패 시 : 3레벨 다운, 조세프 백작과의 친밀도 하락.

“그렇게 하겠습니다.”

퀘스트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친밀도가 상승하면 더 많은 퀘스트가 주어져. 땅덩어리가 큰 만큼 퀘스트 숫자도 엄청나겠지. 여기서 200레벨까지 치고 나가자!’

전신의 레벨이 거의 190에 도달했다. 최초의 200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전설 무기를 가진 그는 지금 현재 이서우보다 조금 더 앞선 상태였다.

초월까지 해서 무기도 16강을 만들었다.

초월 강화는 실패하면 강화 레벨이 떨어지고 운이 나쁘면 파괴까지 되기에, 특수한 재료와 같이 강화를 해야만 보호가 된다.

최근까지는 보호 주문서의 존재를 몰랐는데, NPC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초월 강화를 많이 시도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 웬만큼 재력을 가지지 않고는 보호 주문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특히나 전설 등급은 강화 레벨이 높아질수록 성공 확률이 극악을 자랑해서 전신도 16강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잠시 쉬고 있게. 사이먼 자작이 오면 이야기해 주겠네. 자네 같은 고수와의 대련이라면 휴식이 필요할 테니 저녁 시간이 될 수도 있네.”

“그럼 전 도시를 조금 돌아볼까 합니다.”

“그러게. 저녁때쯤에 오도록 하게.”

“네, 백작님.”

이서우는 백작에게 직접 출입증을 받고는 성을 빠져나갔다.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게 다빙턴의 규모는 엄청났다.

도시는 철저히 NPC와 유저를 분리했다.

성 주변에는 NPC들밖에 없었지만, 대신 상점 거리가 존재했다.

이서우는 문득 궁금했다, 이런 대도시에 사는 NPC들은 어떤 물건을 팔지.

상점 거리를 지나던 이서우는 잡화 상점으로 갔다.

“어서 오십…… 자네는 모험가가 아닌가! 이곳은 모험가가 이용할 수 없는 곳이라네!”

“여기 백작님께서 직접 주신 출입증이 있습니다.”

“뭣이? 어디 보세!”

잡화상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서우에게로 다가왔다.

“허허, 이것 참. 이곳에서 평생을 지냈지만 백작님이 직접 모험가에게 출입증을 하사하신 것은 처음 보네.”

“이제 이용해도 되겠죠?”

“그렇다네. 마음껏 둘러보게.”

이서우는 편안하게 잡화점 내부를 둘러보았다.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고, 내외상약과 해독약, 전투를 보조하는 아이템 정도가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나 거래 중개소에 다 있는 것들이어서 그는 그냥 스윽 스치며 지나쳤다.

“마음에 드는 게 없나 보군.”

“보호 주문서가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당장은 필요 없는 거네요.”

“보는 눈이 있군. 모험가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팔지 않는 거라 아주 귀한 것이지. 자네는 백작님께 인정을 받았으니 언제든 와서 구입하게.”

“네.”

이서우는 보호 주문서에 시선이 갔지만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 보류했다.

어차피 펠렌의 장비는 강화가 필요없었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획득하면 초월 강화를 해서 팔까, 싶어 구입을 망설였지만 가격 때문에 그냥 다음으로 미루었다.

“더 둘러보게.”

“당장 필요한 물건은 없네요.”

“허허, 이거 특별한 손님을 위해 더 좋은 물건을 가져와야겠구먼.”

“그래 주신다면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 기억하겠네.”

“기억해 주신다면 제가 오히려 환영이죠.”

“꽤 마음에 드는 친구구먼. 난 조셉이라고 하네.”

“이서우라고 합니다.”

“서우 군이라 부르면 되겠나?”

“네, 어르신.”

“어르신이라. 듣기 좋구먼. 그럼 다음에 들러 주게.”

“네.”

소도시나 작은 마을에서는 두루 가까워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대도시에서는 꽤 오래 머물 것 같아 되도록 NPC들과의 친밀도도 높일 생각이었다.

이서우는 한참을 둘러보고는 저녁이 되어 다시 백작 성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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