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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78화 (78/341)

# 78

레벨이 갑이다

78화

백작의 성으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연무장으로 갔다.

사이먼은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75킬로그램 정도의 체중으로 잘 발달된 육체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기개가 느껴졌다.

그의 걸음걸이와 행동 하나하나에 마나가 녹아 있었다.

연무장 한가운데 5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보았다.

백작이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구먼. 백작님께 들었네. 베손 남작이 자네를 아주 높게 본다더군.”

“저를 좋게 봐 주셔서 그런 것입니다.”

“그건 이제 곧 확인이 되겠지. 검을 뽑게.”

이서우는 천천히 대검을 뽑아 들었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절대 교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좋은 검이군. 먼저 공격하게.”

“베손 님도 그 말씀을 하시고 낭패를 보셨습니다.”

“허허허, 그런가? 하지만 난 좀 다를 걸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팟!

이서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챙!

“크흠, 대단하구먼. 이거 체면이고 뭐고, 나도 공격을 해야겠군. 이해해 주게.”

“별말씀을요.”

몇 수를 양보하려 했던 사이먼은 이서우의 대검을 겨우 막아 낸 후 안일하게 상대하다가는 질 수 있다는 압박감에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했다.

이서우의 묵직한 대검을 흘려 버리는 것은 힘들다고 여긴 사이먼은 몸을 살짝 뒤로 뺐다.

하지만 이서우는 이미 사이먼의 행동을 읽고 있었다는 듯 바짝 따라붙었다.

사이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다.

상대에게 신속히 접근하고 몸을 빼는 것만 잘해도 절대 지지 않는다.

거기다 상대의 눈을 교란시킬 정도의 빠른 몸놀림까지 겸비하면 거의 이길 수 있다.

사이먼은 바로 그 수법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와 대련을 하거나 전투를 하면 대부분 그의 동작을 쫓는 것도 힘들어한다.

한데, 지금은 사이먼이 이서우의 움직임을 쫓는 것을 어려워했다.

챙챙챙!

검이 거칠게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이서우의 힘이 워낙 강해 사이먼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결국 그 힘을 끌어내게 만드는군. 조심하게. 마나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네.”

“바라던 바입니다.”

지금까지는 마나를 가볍게 실었다면 이제부터는 폭발적으로 마나를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이서우는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사이먼의 기세가 변했다.

퍼석!

사이먼이 지면을 박차자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이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졌다.

평소라면 이처럼 저돌적으로 상대에게 돌진하지 않는다. 그만큼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게 굴 상황이 아니었다.

사사삭, 사사사삭!

두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무력이 꽤 뛰어난 백작도 눈으로 좇기 힘들 지경이었다.

챙챙챙챙챙!

빠른 움직임을 이용해 검을 휘둘러 보지만 번번이 이서우의 대검에 막혔다.

불꽃 튀는 공방이 한참을 오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대련은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큭.”

이서우의 대검이 깊게 들어왔다.

겨우 막아 냈지만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이서우는 마나를 한껏 실어 사이먼의 검과 함께 육체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마나를 이용해 겨우 막고 있었는데 이서우의 힘이 워낙 강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볼썽사납게 날아간 사이먼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벌떡 일어난 사이먼은 급히 손을 들었다.

“졌네, 졌어. 이러다 늙은이 골병들겠네.”

“좋은 승부였습니다.”

“나야말로 정말 좋은 승부였네.”

-퀘스트 ‘사이먼 자작과 대련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조세프 백작과의 친밀도가 높아집니다.

-사이먼 자작과의 친밀도가 높아집니다.

‘사이먼 자작도 대련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이서우는 반가운 메시지와 함께 자작에게 가서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백작에게도 예를 갖추었다.

짝짝짝짝짝.

“좋은 대결이었네. 자작을 이렇게 몰아세우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는데, 세상은 넓구먼.”

“과찬이십니다.”

“아닐세. 사이먼 자작은 제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네. 자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네.”

“감사합니다.”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웃으며 이서우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전투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네. 10년만 젊었어도 자네와 검을 섞어 보는 건데 아쉽구먼.”

“그랬다가는 전 기사님들의 살인적인 눈빛을 받아 내야 했을지 모릅니다.”

“하하하하, 이거 벌써 내 의도를 파악하다니, 한 방 먹었구먼. 어쩌겠나. 그런 식으로라도 체면은 세워야지.”

넉살 좋게 말하는 백작을 보며 이서우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백작은 자작과 이서우를 대동하고 따로 마련한 자리로 갔다.

은밀한 장소였는지 호위는 없었다.

책장에 책이 잔뜩 꽂혀 있었고, 한쪽에는 소박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백작의 집무실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이곳은 내가 생각할 것이 있으면 종종 찾는 곳이라네.”

“저에게는 여기가 더 잘 맞네요.”

“나도 이곳을 참 좋아하네. 앉게.”

백작의 권유에 이서우는 편하게 의자를 뺐다.

모두가 착석하자 백작이 입을 열었다.

“자작과의 대련은 사실 자네를 테스트해 보려고 그런 것이라네.”

“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베손 님이 추천을 했지만 직접 확인하셔야 했겠지요.”

“맞네. 난 내 눈으로 보지 않은 건 완전히 인정을 하지 않는 성격이거든. 물론 베손 남작에 대한 신뢰는 누구보다 깊네. 하지만 난 개인의 신뢰보다 제국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자리에 있다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합니다.”

이서우는 조세프 백작이 느끼고 있을 압박이 어떤 것일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은 자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어서네.”

“경청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네.”

“죽음이 찾아와도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의지를 확실히 전달하자 조세프 백작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은 서로 원하지 않을 테니 짧게 말하겠네. 자네가 가야 할 곳에는 오래전 펠렌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결계를 쳐 놓았었네.”

“저도 펠렌 님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분에 대해 들었다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지도 알겠지.”

“네.”

“신의 능력에 근접했다고 평가되는 분이지만 역시 그분도 인간이었네.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거지.”

“설마, 결계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까?”

결계가 파괴되었다면 굳이 이서우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불렀다고 해도 언제 몬스터들이 공격해 올지 모르니 이렇게 한가하게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백작이 자신을 불렀는지 쉽게 추측이 가능했다.

“그렇다네. 결계가 멀쩡했다면 몬스터들은 들어오지 못했을 것일세.”

“얼마나 손상이 된 것입니까?”

“몇 가지의 단서들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베손이 사람을 참 잘 봤구먼.”

결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면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침입해야 앞뒤가 맞다.

침입이 간헐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아직 결계가 어느 정도 유지는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줘야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구먼.”

“그만큼 심각합니까?”

“지금 당장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결계가 약해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며칠 내로 몬스터 침입 횟수가 2배로 늘어날 게야.”

“몬스터가 침입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결계를 보안하는 것이 급선무겠군요.”

“결계를 보안할 방법은 있네. 하나,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까 시간을 벌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네. 그래서 베손 남작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지.”

“실례가 안 된다면 결계를 보완할 방법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백작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자네도 알아 둬야겠지. 8서클 마법사이신 몰디나 님과 신성한 힘을 지니신 아리아 님이 이곳으로 오시기로 했네.”

“네?”

이서우는 전혀 뜻밖의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펠렌이 남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들이지만 방법이 없어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었다.

한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그들의 이름을 듣게 되다니.

이서우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백작에게 집중했다.

“자네도 그분들의 이름을 들어 봤나 보구먼.”

“네. 백작가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이가 꽤 많은 사람인가보구먼.”

“좀 그런 편이죠.”

“그분들은 내가 젊을 때 이미 제국을 위해 일하시려고 백작가를 떠났다네. 그래서 위급한 상황임에도 신속히 오지 못하는 것이지.”

‘백작가에 가서 깽판 쳤으면 엿 될 뻔했네.’

이서우는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당장 찾아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럼 그분들은 언제 도착하시는지요?”

“일주일 안에는 오실 것이네.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오실 수 있었을 텐데…….”

“이곳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미리 설치를 했어야 하지 않나요?”

“그분들은 펠렌 님을 철석같이 믿었네. 절대로 결계가 약해질 리가 없다고 하셨지. 뭐, 어차피 지난 일이니 그걸 문제 삼아 봐야 뭐 하겠나. 다행스러운 건, 이번에 오시면 게이트를 설치하고 가실 거라는 것이지.”

“잘됐군요.”

“잘된 일이지. 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시간이 문제야. 일주일 동안 결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다네.”

이서우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베손이 가라고 했을 때만 해도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아 답답했는데, 지금은 깔끔히 정리가 되어 홀가분했다.

“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만약 그분들이 결계를 보강하고 갔는데도 다시 약해지면 어찌 되는 건가요?”

“그분들은 카이젠 제국에서 가장 강한 분들이시네. 자네가 말한 일이 벌어지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라네.”

“그렇군요.”

이서우는 차마 실패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못했다.

그러나 펠렌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는데, 그보다 약한 사람들이 결계를 완벽하게 보강할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없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서우의 판단이 옳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서우의 표정에는 이미 걱정이 드러나 있었다.

백작도 그의 염려를 알고는 목소리에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8서클의 경지를 자네가 보지 못해 그런 것이네. 그리고 만약 약해지더라도 다시 오셔서 또 보강하면 되지 않겠나. 그분들도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지실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네.”

“말씀하신 대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하겠군요.”

맞장구는 쳤지만 이서우는 결계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파괴될 것이라 내다봤다.

그게 뉴 월드의 흐름이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백작의 기대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희망을 꺾어 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짓도 없었다.

‘일단 일주일 동안 버티면서 그분들이 오시기를 기다려야겠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야. 오면 반드시 펠렌 님의 장비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는 백작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서우는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고 나서야 백작과 헤어졌다.

시간이 없다는 백작의 말에, 사이먼 자작과 함께 나갈 준비를 했다.

인원이 많을 줄 알았는데 고작 50명이 전부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사이먼과 나란히 달려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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