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레벨이 갑이다
80화
‘이런 멍청한.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서우의 발 앞에 오우거가 쓰러져 있었다.
덩치는 평범한 오우거보다 더 컸는데, 6미터가 넘을 정도였다.
한데, 이서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이먼과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분명 오우거인데,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가 있지? 어쨌든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피를 볼 뻔했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닐세. 오우거라는 생각에 우리 기사들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이먼을 보며 이서우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서우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이서우는 사이먼의 요청에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하고 편하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역시나 머드 맨들을 상대했지만, 첫날보다 숫자는 적었다.
곧 머드 맨의 구역이 끝나고 평온한 숲 지역에 도착했다.
나무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고, 숲의 분위기도 약간이지만 밝아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는데 지면을 울릴 정도로 큰 발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경계를 하며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숫자가 많지 않아 그다지 긴장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항상 대비해야 해서 최상의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한데,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가 너무 의외였다.
“오우거구먼.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녀석인데.”
“그러네요. 이런 곳에서 저 녀석을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죠.”
“자네가 상대해 볼 텐가?”
“아닙니다. 저는 좀 쉬겠습니다.”
“자작님, 제가 한번 상대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한 기사가 호기롭게 나섰다.
지금까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기회가 와서 얼른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러게. 그다지 싸우기 어려운 녀석도 아니니 편하게 사냥해 보게.”
“네, 자작님.”
이서우는 싸움을 피하기는 했지만 호기심은 여전히 품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새로울 게 없는 놈인데 말이야.’
요리조리 뜯어봐도 그가 알고 있던 몬스터와 거의 비슷했다.
단지, 신장이 조금 더 크고 포악하게 생긴 것만 빼면 말이다.
같은 몬스터라도 자라 온 환경이 다르기에 생김새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즉,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는 뜻이다.
한데,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치 우유에 라면을 말아 놓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랄까.
‘뭐, 지켜보면 답이 나오겠지.’
이서우는 별문제가 아닐 거라 여기고 오우거에게 다가가는 기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우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평상시에도 모든 움직임과 감각에 마나가 깃들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효과가 십분 발휘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6미터가 넘는 오우거의 모습을 놓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놀란 것은 이서우만이 아니었다. 사이먼도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퍽!
강한 타격음이 들렸다.
오우거가 기사의 가슴을 후려친 것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기사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피해가 더 커질 것을 염려한 이서우는 대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한데, 마나를 실었는데도 불구하고 오우거가 이서우의 대검을 가볍게 받아 냈다.
‘어쭈, 이놈 봐라.’
이서우는 대검에 푸른 빛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강한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오우거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이서우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바짝 따라붙어 다리를 노렸다.
신장이 크다 보니 심장이나 머리보다는 다리가 더 공격하기 편했다.
이서우의 대검이 복숭아뼈가 있는 곳을 노렸다.
오우거는 이서우가 어디를 노리는지 알고 피하려 했지만, 워낙 빠른 공격이어서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쿠오오오오오!
상처가 나자 화가 난 오우거는 등에 있는 대형 검을 꺼내 들었다.
검날의 길이만 해도 5미터가 넘었다.
엄청난 길이의 검이지만, 휘두르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마나를 제대로 담지 않았다면 이서우도 피하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오우거가 모든 힘을 폭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서우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서우도 이전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우거의 상처가 늘면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10분 여의 전투 끝에 오우거를 쓰러뜨렸다.
-하이 레벨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270,00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3강화된 오우거의 대검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이 레벨 오우거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이 레벨 오우거의 뼈를 획득하셨습니다.
-하이 레벨 오우거의 힘줄을 획득하셨습니다.
-5골드 85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런 멍청한.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서우가 오우거를 쓰러뜨리고 놀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이 레벨 오우거.
이서우는 하이 레벨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비밀을 풀기 위해 펠렌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하나 그는 몬스터에도 하이 레벨이 존재할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인간과 몬스터가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당황스럽네요. 오우거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으니.”
“나도 마찬가지라네. 자이언트 오우거나 트윈헤드 오우거도 버거울 것 같은데, 혹여 오우거 킹이라도 만난다면…….”
이서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언트 오우거나 트윈헤드 오우거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오우거 킹은 확신할 수 없었다.
‘오우거의 레벨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하이 레벨이라는 게 더 문제네. 하이 레벨에 대해 자작님에게 말할 수도 없고.’
하이 레벨은 평범한 레벨보다 월등한 힘을 발휘한다.
레벨이 같아도 훨씬 강한데, 이곳의 오우거는 심지어 레벨까지 높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중입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끼에에에엑!
이서우의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와이번이 그들을 덮쳤다.
이서우는 매가 먹이를 노리고 활강하는 것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와이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대검에 푸른색 기운이 맺혔다.
“오러다!”
몸을 피한 기사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인 오러.
지금까지 전투를 펼치는 동안에 보였던 희미한 푸른 빛과는 차원이 다른 선명함이었다.
이서우의 기세를 느낀 것인지, 빠르게 날아오던 와이번이 갑자기 공중에서 몸을 돌렸다.
전속력으로 활강하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은 육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지만 와이번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방향을 바꾼 와이번은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몸통의 길이만도 10미터인데 꼬리도 그만큼 길어, 채찍처럼 이서우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쌔에에에엑!
무섭게 날아드는 꼬리 공격에 이서우는 몸을 가볍게 낮추며 피했다.
집채만 한 바위를 부술 듯한 기세로 날아든 꼬리가 허공을 때렸다.
찰싹!
마치 목표물을 때린 것처럼 강렬한 소리가 들렸지만 이서우는 멀쩡했다.
오히려 저돌적으로 와이번에게 접근했다.
펄럭펄럭!
와이번은 이서우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강렬한 날갯짓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적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와이번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타핫!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대검을 위로 쭉 뻗었다.
그와 동시에 이서우는 몸을 강하게 회전시켰다.
마치 드릴 날처럼 맹렬하게 육체가 회전했다.
푹!
끼에에에엑!
와이번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안심하고 있다가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직격탄을 맞았다.
비명을 지른 와이번은 날개에 구멍이 나서 균형을 잡지 못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이서우는 떨어지면서 다시 한 번 똑같은 방식으로 와이번의 반대쪽 날개를 뚫어 버렸다.
추락하던 와이번은 이서우가 공격해 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퍼드덕퍼드덕.
와이번은 날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날갯짓을 몇 번 하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와이번보다 먼저 착지한 이서우는 볼썽사납게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와이번의 목을 쳐 버렸다.
와이번은 지상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몬스터지만 이서우의 강함을 직접 경험한 터라 제힘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하이 레벨 와이번을 처치했습니다.
-375,00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와이번의 뼈를 획득하셨습니다.
-와이번의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6골드 85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역시. 이놈도 하이 레벨 몬스터였어.’
애초에 이서우가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상대를 했었다.
마나를 잔뜩 담았기에 1마리를 처치하는 데 거의 5천의 마나를 사용했다.
‘경험치도 빵빵하고 골드 보상도 좋긴 한데, 이렇게 되면 몰이사냥은 힘들겠어.’
마나 소모가 너무 크다.
운이 좋아 레벨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더 강력한 몬스터를 만나 마나가 바닥이 나면 낭패였다.
“자네 괜찮나?”
“네. 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서 돌아가는 게 좋겠네. 다음번에는 인원을 조금 더 추가하고 힐러도 데려와야겠어.”
“힐러를요?”
“우리의 목적은 몬스터들을 결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네. 일단 결계가 강화되면 그때 이곳을 탐험해도 늦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이서우는 따로 이곳을 돌아다닐까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이내 지웠다.
집단을 이룬 몬스터가 나타나면 이서우에게는 너무 불리했다.
유저들이라도 많으면 어떻게 비벼 보겠는데, 후퇴를 하다가 또 다른 몬스터를 만나고, 그것이 반복되면 지금 상태로는 절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쉽네. 좋은 사냥터인데.’
욕심이 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이서우는 사이먼의 요구대로 물러나기로 했다.
진입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몬스터와의 조우를 피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이서우는 레벨이 올라 157이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면 5레벨이 오른다.
게다가 사이먼이 다시 보강을 해서 오자고 했다.
또 다른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경상자였는데, 오는 길에 말끔히 나아 있었다.
다행히 알람은 울리지 않아 성벽 주위는 조용했다.
사이먼이 가자 성문지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신속히 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문을 여는 틈을 타고 몬스터가 들어온다면 낭패였다.
백작가에 돌아가자 자작이 먼저 독대를 했고, 잠시 후 이서우가 들어갔다.
“고생했네. 사이먼 자작에게 모두 들었네.”
-‘조세프 백작가 지원’을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급 강화석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1,0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조세프 백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사이먼 자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저에게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닐세. 자네 덕분에 아무런 피해가 없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네. 정말 고생했어.”
조세프 백작은 정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의뢰인이 좋아하니 이서우도 뿌듯했다.
“참, 자작에게 듣기로는 힐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저희들만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작과 대화를 해 봤네만, 신관을 초빙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라고 하던데.”
“신관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잘 몰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애매합니다.”
“자작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렇다면 신관은 확실히 위험할 것이네.”
“흠.”
이서우는 턱을 어루만졌다.
힐러가 없이는 확실히 더 깊숙이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웠다.
“신관에게 추천을 받아서 모험가를 구하는 건 어떻겠나?”
“아!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비밀 유지도 할 수 있겠네요. 대신 신관들과 친밀도가 높은 모험가를 구하는 게 좋겠습니다.”
“비밀을 지키려면 그게 좋겠지.”
“네!”
이서우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은 사냥터를 굳이 유저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신관에게 퀘스트를 받는 형식이라면 비밀 유지가 가능했다.
“인원은 최소화하겠네.”
“네. 굳이 많이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능력이 뛰어난 힐러 3~4명 정도가 훨씬 나을 겁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네. 그럼 자네는 가서 좀 쉬도록 하게.”
“네, 백작님!”
이서우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