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81화 (81/341)

# 81

레벨이 갑이다

81화

“휴우, 힘들다.”

“아직도 신전에서 허드렛일하고 있어?”

“신관들이랑 친해져야 스킬 하나라도 얻을 수 있으니 별수 없잖아.”

“그러지 말고 레벨을 올리지 그래?”

“레벨을 올리면 스킬 배울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려. 딜러들에 비해 스킬도 적은데 하나라도 더 배워야지.”

“그러니 사람들이 힐러를 점점 안 하려고 하지.”

“얄밉게 그러면서 맨날 힐, 힐, 하잖아.”

조현아는 투덜거리며 아이스커피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하여튼, 전투 센스도 없으면 맨날 힐이 늦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니까.”

“그러게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말하라니까. 안 하고 쌓아 두니 지금처럼 한 번씩 터지지.”

“말해 봐야 뭐 하겠어. 괜히 싸움만 나는걸.”

조현아는 유세나처럼 기가 센 스타일도 아니고 귀여운 이미지여서 다른 사람들이 얕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은 건 말하지만, 웬만해서는 그냥 넘기는 유형이었다.

그게 편할 때도 있고, 지금처럼 쌓이다 보면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

“그럼 계속 신전에서 잡퀘나 할 거야?”

“잡퀘라도 지금은 신관들과 교류 중이니 무시하지 마시라!”

“오, 수련 신관에서 신관으로 변화는 있네.”

“그럼, 당연하지!”

“그러면 뭐 해. 그래 봐야 잡퀘인데.”

“히잉.”

정식 신관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유세나는 사냥과 관련된 퀘스트가 아니면 뭐든 쓸모가 없는 퀘스트로 여겼다.

조현아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지만 그녀에게는 스킬이 그만큼 중요했다.

“그렇게 힘 빠져 하면 내가 괜히 미안하잖아. 레벨도 올랐으니 뭐라도 하나 주겠지.”

“언니,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어.”

“우쒸.”

조현아는 남은 아이스커피를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고 봐. 꼭 스킬을 배우고 올 테니까.”

“그래. 언니도 응원할게. 힘내.”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던 조현아는 투덜거리며 다시 신전으로 갔다.

“모험가님, 오늘도 여전히 오셨군요.”

“네. 제가 좀 진득한 면이 있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신전 안에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열심히 하신다고.”

“그런가요?”

신관의 칭찬에 조현아는 미소를 지었다.

“참, 대신관님께서 찾으세요.”

“네? 대신관님께서요?”

“네.”

“그럼 얼른 가야죠.”

“절 따라오세요.”

순백의 옷을 입은 신관이 차분한 걸음으로 대신관이 머무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참아 주었네요.”

“아닙니다. 신전에서 받아 주셔서 저도 열심히 마음의 수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말이네요.”

대신관의 기품에 조현아는 압도되고 말았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제가 왜 모험가님을 불렀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저도 잘…….”

“치유사의 길을 가는 모험가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예요.”

“무슨 부탁이신지…….”

“그 전에 먼저 한 가지 약속을 해야 될 일이 있어요.”

“약속이라고요?”

“네.”

“무슨 부탁을 하실지 듣지도 못했는데요?”

“약속을 하셔야 들을 수 있는 일이에요. 원치 않으시면 돌아가셔도 좋아요.”

“아니에요. 약속할게요.”

“그럼 지금부터 듣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시면 안 돼요. 그 순간 모험가님은 모든 것을 잃게 되실 거예요.”

“모든 것을 잃는다고요?”

“네.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것을요.”

대신관의 말에 조현아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토록 심각하게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보상이 엄청 좋은 퀘스트라는 뜻이잖아. 이런 건 꼭 받아야 돼.’

조현아는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며 의지를 다졌다.

대신관은 주신 앞에서 맹세하라 말했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관의 말이 이어졌다.

* * *

접속을 종료한 이서우는 벌써 한밤중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경매가 끝나네. 과연 얼마에 낙찰이 됐을까.”

이서우는 식사를 끝내고 호기심에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가 가입한 사이트에서도 경매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경매 관련 카테고리를 터치하자 동영상과 함께 글자들이 떠올랐다.

“헉!”

이서우는 메인 화면에 떠 있는 영상을 보며 헛바람을 삼켰다.

자신이 올린 무기가 떡하니 영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이서우는 현재 아이템의 가격이 70억까지 올라간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영상이 흘러나오는 화면 하단에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보였다.

-골드만땅 : 와, 미친! 이거 진짜 대박이네. 전장의 지배자가 올린 거라는데, 평생 쓸 돈을 아이템 하나로 다 버네. 몇 달 지나면 똥값 될 아이템인데, 누군지 몰라도 현질 진짜 쩐다.

↳게살몽땅 : 게임하면 꼭 이런 놈들이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전자제품이나 VR기기는 어떻게 사냐? 한 달만 지나도 값이 떨어지는데.

↳뱃살몽땅 : 그러게요. 꼭 돈 없는 것들이 몇 달 지나면 어쩌고저쩌고 따진다니까요. 솔직히 전신 님이 아이템 팔 게 아니면 이게 최고 아이템인데, 100억은 우습죠.

↳재벌18세 : 70억에 내가 올렸다.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근데 썩을, 누가 또 가격 올릴 것 같다. 아, 저거 차고 PK 오질나게 해야 하는데…….

-현질러 : 와, 안 그래도 이벤트 끝나고 레벨 업 졸라 안 되는데 갖고 싶다 ㅠㅠ

↳음모론 : 젠장, 진짜 레벨 업 피똥 싼다. 현질을 안 할 수가 없네. 이러니 아이템값이 미쳐 날뛰지. 근데 이건 비밀인데, 저거 전신이 사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다. 아무도 자기 못 따라오게.

↳ 무개념끝판대빵 : 다들 뉴 월드 상술에 잘 속고 있네. 무슨 놈의 아이템이 70억이나 하냐. 저거 분명 일본이나 미국에서 가격 처올렸을 거야. 그리고 음모론 씨발라마, 전신이 미쳤다고 저걸 사냐? 쓰지도 않는 걸? 하여튼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이서우는 페이지를 넘겨 가며 댓글을 봤지만 너무 많아서 결국은 포기했다.

“무슨 놈의 댓글이 몇백만 개나 달리냐. 장난 아니네.”

아이템에 대해 찾아보는데, 설아의 동영상도 보였다.

이서우는 익숙한 얼굴이어서 처음부터 플레이해서 봤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방송을 때렸구나. 이때부터 관심도가 쭉쭉 올라갔네.”

이서우는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 설아라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인기라면 충분히 화제를 불러 모을 수 있었다.

“수수료가 얼마더라…….”

억 단위가 넘어가면 수수료가 조금 내려간다.

VIP로 여겨 앞으로 많은 거래를 하라고 혜택을 주는 것이다.

“1퍼센트 내려가네. 이게 어디야.”

이서우는 돈이 굳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70억에 팔린다면 1퍼센트는 7천만 원이다.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았는데도 남들 연봉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100억 이상 거래하면 VVIP라고? 머지않았네.”

VVIP가 되면 수수료는 1퍼센트만 지불한다.

경매장 측에서는 무려 2퍼센트나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로 인해 얻는 이득이 더 많기에 혜택을 흔쾌히 주는 것이다.

“집부터 알아봐야 하나?”

70억이면 모든 것을 갖춘 집을 살 수 있다.

이서우는 25~30평형대의 아파트로 갈 생각이었다.

서울 외곽이어도 가격이 꽤 많이 올라 10억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물 인터넷이 잘 갖춰져 있어 사용이 편했다.

물론 딱 평균 수준이어서 추가해야 할 게 많지만, 지금 사는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한데, 아이템 가격이 이 정도로 껑충 뛰었다면 조금 더 통을 키워도 된다.

“프리미엄 저택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이서우는 2층짜리 저택을 떠올렸다.

50억 정도면 대지 300평에 연면적 150평 정도 되는 규모의 저택을 살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어서 비싼 곳은 그보다 몇 배나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만, 그런 곳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쩝, 이래서 로또 맞은 사람들의 삶이 결국은 엉망이 되는 거구나. 집 문제는 넌지시 부모님께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 이참에 독립하는 것도 좋겠지.’

고급 주택을 열심히 알아보던 이서우는 피식 웃으며 가상현실에서 빠져나왔다.

돈이 생겼다고 흥청망청 쓸 생각부터 하다니.

물론 집을 사는 건 미래를 위해서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내 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나니까.

하지만 이서우는 지나치게 큰 집보다는 부모님이 살기 좋은 곳을 알아보고 자신은 독립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위치는 어디가 좋을지 알아보면서 집값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살폈다.

검색 삼매경에 빠져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지만 이서우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이서우가 그러는 중에도 아이템값은 조금씩이지만 계속 올라갔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올라갈 아이템은 아니었다.

하지만 150레벨 이후부터 레벨 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퍼지면서 랭커들이 최강의 아이템을 구입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이서우는 그것도 모른 채 잠자리에 들었다.

* * *

아침 일찍 일어난 이서우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부모님을 붙잡았다.

아침 장사는 정리를 한 것으로 아는데 일찍부터 채비를 하고 있으니 궁금한 것이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볼일이 좀 있다.”

“오늘 저녁에 일찍 들어오세요. 상의드릴 게 있어요.”

“그래, 알았다. 밥해 놨으니 챙겨 먹고, 운동 빠트리지 말고.”

“네.”

한정옥 여사는 이서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섰다.

“뭐 좋은 일 있으신가?”

평소보다 더 표정이 밝아서 의아했지만, 빚을 갚아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아침을 먹었다.

가볍게 운동을 끝내고 접속 베드에 누웠다.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경매장으로 향했다.

골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낙찰을 받기로 되어 있어 직접 가야 했다.

“헉!”

이서우는 낙찰된 가격을 보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100억.

나중에 내야 할 세금까지 포함하면 로또 대박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엄청난 액수였다.

이서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돈을 수령했다.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이 이서우의 계좌로 바로 들어간다.

100억에 팔려 VVIP가 되면서 수수료를 2억이나 절약했다.

내년 5월이 되면 30퍼센트 정도가 세금으로 사라지겠지만, 70억 만으로도 이서우는 만족이었다.

앞으로 바뀔 삶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이서우는 백작의 성으로 갔다.

가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꽃길을 걷는 것처럼 온 사방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대박을 터트린 사람들 중 행복한 삶을 지속해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들이 끝까지 행복을 유지한다.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제부터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최고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지금이 뉴 월드의 진정한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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