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86화 (86/341)

# 86

레벨이 갑이다

86화

“와이번 떼입니다.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달리라고 전달하세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조용히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이서우의 말을 들은 사이먼 자작은 급히 뒤로 말을 전달했다.

그러자 기사들은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않는 것을 보니 역시 노련한 기사들이라 할 수 있었다.

“백호야, 잘했어.”

“헤헤, 별말씀을요.”

밤중인데도 와이번 떼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호 덕분이었다.

시야가 좁아졌지만 소리는 더 커져서 백호의 청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와이번들도 백호의 존재를 몰랐기에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게다가 기사들이 달리고 있음에도 와이번들은 그들이 도망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와이번들도 눈치를 채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놈들이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막을 테니 전력으로 달리세요!”

이서우의 외침에 기사들은 있는 힘껏 달렸다.

이서우가 막아 준다고 하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오빠!”

“괜찮으니 어서 가. 그래야 편하게 싸울 수 있어.”

“네, 조심하세요.”

조현아는 방해되지 않으려고 다른 힐러들과 함께 얼른 달렸다.

대검을 꺼내 든 이서우는 마나를 잔뜩 담았다.

푸른 빛이 깊은 밤을 깨웠다.

와이번들도 이서우의 대검을 보았다.

한밤중에 그렇게 환한 빛이 나는데 못 보는 게 이상했다.

“백호야!”

“네, 주인님.”

“놈들의 나는 능력도 흡수할 수 있어?”

“물론이죠. 똥 싸는 능력도 흡수가 가능해요.”

“그, 그건 좀…….”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헤헤.”

“그럼 가서 능력을 흡수하고 나한테 전이해 줘.”

“혼자서는 힘들고, 주인님께서 좀 도와주셔야 해요.”

“던져 주면 돼?”

“네.”

이서우는 백호를 붙잡고 와이번 떼가 날아오는 곳을 향해 던졌다.

휘익!

백호는 날아가면서 목표를 정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덥석!

끼에에에엑!

털이 하얀색인데도 이서우의 대검에서 빛나는 빛이 워낙 위협적이어서 미처 백호를 보지 못했다.

백호는 기회다 싶어 잽싸게 피를 빨면서 능력을 흡수했다.

바닥으로 가볍게 착지한 백호는 얼른 이서우에게 갔다.

“받으세요, 주인님!”

“큭.”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서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근데, 방법이 꼭 이것밖에 없냐?”

“…….”

능력 전이가 진행 중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능력 전이가 끝나자 백호가 말했다.

“주인님이 펠렌 님의 능력을 더 깨우시면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해요.”

“그럼 펠렌 님의 흔적을 찾는 게 시급하네.”

“네, 그렇죠.”

“일단 저놈들부터 처리하자.”

“네, 주인님!”

와이번들이 거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이서우는 과연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먹으니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이거 어떻게 방향을 잡으면 되지?”

“이동하고 싶은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면 될 거예요.”

“오, 되네.”

그때 마침 와이번이 이서우를 물어뜯기 위해 큰 입을 벌리고 덤벼들었다.

이서우는 재빨리 머리를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누가 당기기라도 하듯 몸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마나까지 실어서 그런지 속도가 엄청났다.

이서우는 조금씩 이동에 적응했다.

적응이 빨리 될수록 와이번을 상대하는 게 훨씬 쉬웠다.

와이번의 약점은 날개.

이서우는 10미터가 넘는 커다란 날개를 공략했다.

강력한 몬스터지만 약점이 너무 분명해서 오히려 미노타우로스보다 더 상대하기가 쉬웠다.

끼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엑!

이동에 적응이 되자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와이번의 날개를 찢어 버렸다.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와이번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안 되겠다 여겼는지 와이번들 중 일부가 도망가는 기사들 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어림없다, 이놈들아!”

이서우는 빠르게 날아 와이번의 뒤를 쫓았다.

“주인님, 시간 다 돼 가요!”

“큭, 어쩔 수 없지. 한 번 더 가자.”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어쩌겠어.”

“네. 그럼 한 번 더 부탁드려요.”

이서우는 허공을 날았고, 백호는 지상에서 열심히 그와 보조를 맞춰 달리고 있었다.

날아가고 있는 이서우에게 점프하자, 그는 백호를 와이번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다시 한 번 능력을 흡수한 백호가 이서우의 목덜미를 물었다.

“이건 진짜 적응 안 된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더니 와이번의 능력이 복구되었다.

이미 적응이 되어 더 많은 와이번을 처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이서우의 활약으로 기사들은 피해 하나 없이 안전하게 성벽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와이번을 처치한 이서우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마리에 억 단위의 경험치를 주는데도 200마리 이상을 잡아야 레벨 업이 가능했다.

“휴우, 정말 십년감수했군. 자네가 마법까지 쓸 줄은 몰랐네.”

“네? 아, 마법은 아닙니다.”

“그럼 주문서를 쓴 거냐?”

칸달이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네. 이를테면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마나 소드 배리어에 이어 플라이 마법까지 시전하는 줄 알고 순간 ‘이러려고 마법사를 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품었던 칸달이었다.

하지만 이서우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마법을 썼다면 난 그냥 마법사 포기하려 했네.”

“네? 에이,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 아닐걸. 칸달은 한다면 하는 인간이거든.”

“…….”

칸달의 기행을 이미 수도 없이 봐 온 사이먼이기에, 그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쨌든 그들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위기를 잘 넘기고 웃으면서 성문을 지나갔다.

사이먼이 이끄는 동안에는 꽤 많은 피해를 입었다.

머드 맨을 상대할 때에조차 기사들이 부상을 입는 일이 허다했다.

한데,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졌다.

사망자는 아예 없었고,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이로써 사이먼의 머릿속에는 이서우라는 존재가 깊이 각인되었다.

사이먼이 먼저 백작을 만났고, 뒤이어 이서우가 들어갔다.

몬스터 재료를 건네자 반가운 메시지가 들렸다.

-퀘스트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급 강화석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3,0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조세프 백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친밀도가 최고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조세프 백작은 당신을 한 식구로 여길 것입니다.

“고생했네. 이번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들었네.”

“운이 좋았습니다.”

“아닐세. 전장은 운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네. 어쨌든 정말 수고했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이서우는 여전히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보기 좋은지 조세프 백작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참, 사이먼 자작에게는 들었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다음 조사 일정 말이네.”

“아, 네.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네 혼자라도 보내고 싶지만 자네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네. 그러니 며칠만 참아 주게. 그분들이 오시고, 몬스터의 생각을 읽기만 하면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네.”

“물론입니다. 당연히 기다려야지요. 다만, 제가 그분들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당연하네. 그분들도 영지를 위해 노력한 자네를 보고 싶어 할 것이네.”

“어떤 분이신지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잘되었네요.”

“누구나 그분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나도 자네 마음을 아네.”

조세프 백작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동안 무엇을 할 생각인가?”

“미뤄 뒀던 일들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좀 쉬면서 기다리게.”

“네, 백작님.”

이서우는 가벼운 대화를 조금 더 나누고는 백작과 헤어졌다.

밖으로 나가니 조현아와 다른 힐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당분간 가지 않는다는데, 들었어요?”

“어.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길이다.”

“언제쯤 간대요?”

“정확한 시간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빠를 아주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런 것도 말 안 해 줘요? 피, 치사하게.”

조현아는 백작이 이서우를 이용해 먹을 만큼 이용해 먹고 정보도 주지 않는 악덕 NPC라고 생각했다.

‘얘는 감정이 겉으로 다 드러나네. 뭐, 그게 오히려 좋은 건가?’

거짓말을 싫어하는 이서우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세상은 너무 착한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이서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난 그만 나가 봐야겠다.”

“접속 종료하시게요?”

“그래야지.”

“히잉, 조금 더 같이 사냥하시지.”

“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사냥해서 생각 없어.”

“그럼 다음에 같이 사냥해요.”

“봐서.”

이서우는 확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절대로 마주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도 만났으니 조심하는 것이다.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서우 님.”

“네, 그럼.”

이서우는 다른 힐러와도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마을로 가서 접속을 종료했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였다.

늦은 점심을 먹은 이서우는 나갈 준비를 했다.

“가게에서는 식사도 대충 하실 테니 오늘은 오랜만에 저녁 준비를 제대로 해 볼까나.”

신선한 재료를 몇 시간 안에 집에서 받아 볼 수 있지만 운동도 할 겸 직접 가서 구입하기로 했다.

나갈 준비를 하면서 메뉴를 떠올렸다.

“뭐가 좋으려나…….”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머릿속에서 갖가지 음식을 떠올렸다.

요즘은 어떤 요리를 한다고 하면 마트에서 직접 편하게 할 수 있게 손질을 해 준다.

웬만하면 혼자 하겠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모든 요리가 가능하다 보니 메뉴를 선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회에, 소주를 좋아하시기는 하는데…….’

회는 그 자리에서 바로 떠서 세팅까지 깔끔하게 하기 때문에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낚시를 간 지도 오래됐네.’

평소 두 분의 취미가 낚시여서 주말에 한 번씩 바다로 강으로 떠나곤 했다.

그때가 떠오르는지 이서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회는 금방 살 수 있으니 나간 김에 집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

어디로 이사를 갈지는 부모님과 상의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정보는 있어야 어디가 좋은지 의견을 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서우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준비를 마쳤다.

* * *

“언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보자고 한 거야?”

“일단 마실 것부터 좀 시키고.”

조현아는 강남의 한 카페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유세나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외모가 뉴 월드와는 조금 달랐다.

갑옷을 벗어서 그런 것인데, 조현아는 조금 더 여성스러워보였고 유세나는 날카로운 이미지가 거의 없었다.

아이스커피를 가져온 조현아는 유세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언니, 궁금한 게 있는데…….”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뜬금없이 왜 갑자기 부르고 난리야.”

“그러니까 지금 이유를 말하려고 하잖아. 끊지 좀 마.”

“계집애, 하여튼 성깔은. 그래서?”

“퀘스트를 하나 받았는데, 이게 좀 페널티가 세.”

“뭔데?”

“퀘스트에 대한 내용을 발설하면 그동안 이뤘던 게 다 날아간다더라고.”

“헐, 그걸 미리 알고도 받았단 말이야?”

“대신관님께서 직접 부탁하신 거라 했지. 그래도 한 번에 5레벨이나 올랐어.”

“그거야말로 진짜 헐이네. 그런 퀘스트가 다 있어?”

“응.”

“어떤 퀘스튼데?”

유세나는 호기심에 물었지만 조현아는 우물쭈물 말을 하지 못했다.

“페널티 때문에 그래?”

“어. 기껏 올렸는데 다 날아가면 안 되잖아.”

“그거 게임에서만 적용되는 거 아냐? 지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알고.”

“앗!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럼 현실에서는 괜찮으려나?”

“그렇겠지?”

“에이, 그래도 안 돼. 오빠랑 약속했단 말야.”

“오빠? 무슨 오빠?”

“응? 아, 그게…….”

조현아는 아차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다.

하는 수 없이 이서우를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고?”

“응. 신기하지?”

“신기하긴 하네. 근데, 아까 그 얘긴 뭔데?”

“아냐. 그냥 말 안 할래. 오빠랑 약속했으니까.”

“열녀 났네, 열녀 났어.”

두 사람은 친자매보다 더 친한 사이로, 서로 비밀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세나는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계집애, 아예 말을 꺼내지 말 것이지. 섭섭하게.’

속마음은 그랬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조현아와는 달리 약속 따위는 헌신짝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 * *

-설아 씨 부탁해요.

“무슨 용건으로 우리 설아를 찾나요?”

-설아 씨에게 직접 말해야 해요.

“저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용건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잠깐만요! 전장의 지배자와 관련된 거예요.

“네? 전장의 지배자라고요?”

“뭐? 전장의 지배자? 이리 내! 네, 설아예요. 말씀하세요.”

-정말 설아 씬가요?

“네. 제가 이설아 맞아요. 영상통화로 할까요?”

-아니에요. 거기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따로 만나요.

“전장의 지배자와 관련된 거라고 하던데, 무슨 일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전장의 지배자의 정체를 알아요. 20억 보상으로 거셨던데, 맞는 거죠?

“전장의 지배자가 확실하다면 무조건 지급할게요!”

-확실해요!

“그럼 만나죠. 만나서 얘기해요. 약속 장소는…….”

이설아는 상기된 얼굴로 전화를 건 사람과 대화를 이어 갔다.

약속 장소는, 혹시 사기꾼이나 범죄자가 아닐까 해서 아예 설아의 집으로 잡았다.

이준민은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하자 상대방도 흔쾌히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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