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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88화 (88/341)

# 88

레벨이 갑이다

88화

오랜만에 과음을 한 이서우는 식탁에 있는 해장국을 먹고는 가볍게 운동을 했다.

“다행히 아직은 여유가 있구나.”

조세프 백작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후가 넘어가면 그들을 만나 보지 못할지도 몰라 준비를 해야 했다.

오전 10시를 가리키는 시간.

이서우는 술기운을 날려 버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왔다.

차를 한 잔 마시고 편안하게 뉴월드에 접속했다.

부모님과의 일도 잘 풀렸고, 게임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어 행복바이러스가 온몸으로 퍼져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한데, 접속하자마자 받게 된 메시지로 인해 이서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떻게 안 거지?”

이서우는 메시지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하고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전장의 지배자 님, 안녕하세요. 이설아라고 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대화 가능할까요?

이서우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괜히 피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어떻게 날 알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결정을 내린 이서우는 그녀에게 귓말을 보냈다.

-제가 편하게 인사를 받지 못하더라도 이해를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하셨으니 물을게요. 절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문제는 만나서 말씀 드려야겠네요.

예상치 못한 이설아의 반응에 이서우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누군지 알아야 대처가 가능해. 이설아에게 말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가능성이 높아.’

이서우는 권안나가 모든 자료를 이설아에게 넘긴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서로 무슨 약속을 했는지도 몰랐고 말이다.

이설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사실을 당장 알릴 필요는 없었다.

20억이나 투자한 일인데, 조금이라도 전장의 지배자에 대해 많이 알면 그녀에게도 이익이었다.

-저에 대해 제 허락 없이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면 만나서 대화를 나눌 용의는 있습니다.

-그 점은 염려 마세요. 서우 씨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로 방송에 언급하지 않겠어요.

-좋습니다. 그러면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바쁜 일 없으신가 봅니다?

-전장의 지배자 님을 만나는 것 말고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이서우는 그녀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방송에서 어떻게든 전장의 지배자의 정체를 알아내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마치 마지막 목표라도 되는 듯 비장한 각오를 보였으니 그녀의 반응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약속 장소를 보내 드리죠.

-네.

이설아는 흔쾌히 자신의 번호를 알려 주었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주는 연락처는 아니었지만 전장의 지배자에게는 예외였다.

이서우는 자신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카페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자율 주행차로 10분이면 10킬로미터 이상은 충분히 갈 수 있을 만큼 먼 거리여서 이서우가 어디에 사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30분 이상 거리로 하고 싶었지만 오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룸 번호까지 정하고 이서우는 옷을 챙겨 입고 곧장 약속 장소로 향했다.

체인점이 아니고 개인이 하는 데여서 매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약속된 룸으로 가자 이설아가 미리 와 있었다.

TV에서만 보다가 실물을 보니, 예뻤다. 천사가 내려왔다고 여길 정도로 말이다.

외모부터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이서우도 어쩔 수 없는 남자였다.

“뭘 마시는지 몰라서 못 시켰어요. 뭐 드실래요?”

“페퍼민트로 주세요.”

“네. 잠시만요.”

차를 시킨 뒤 모자를 쓰고 나갔다가 페퍼민트를 직접 가져와 이서우의 앞에 놓았다. 사람들이 알아볼 것을 염려해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간절했답니다.”

“어떻게 절 찾은 겁니까?”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데, 거기다 대고 화를 낼 수도 없어 어떻게 찾았는지부터 물었다.

“보상금을 내걸었다는 건 아시죠?”

“네. 10억인가, 그랬던 걸로 아는데.”

“하도 소식이 없어서 20억으로 올렸어요.”

“누군가 제보를 했군요.”

“네. 맞아요. 포기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제보를 하더군요.”

“누군지 알려 주시죠.”

“누군지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그렇다면 왜 절 보자고 하셨죠?”

이서우는 살짝 기분 나쁜 음성을 내비쳤다.

마치 만나면 누가 자신에 대해 말했는지 이야기해 줄 것처럼 해 놓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이설아의 말에 이서우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누가 저에게 정보를 줬는지는 말씀 드리지 못하지만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는 말할 수 있답니다.”

“직업이 뭔가요?”

“힐러예요.”

“힐러라고 하셨나요?”

“네.”

이서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사실 이서우도 최근 함께 한 힐러들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 없이 의심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설아를 만나겠다고 결심을 했다.

어설픈 정보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때, 쐐기를 박는 말이 이설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에게 영상을 보여 주더군요. 서우 씨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요.”

“그렇군요.”

이서우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최근 함께한 힐러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조현아나 이민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권안나인가? 아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야. 접속해서 살짝 찔러봐야겠네.’

셋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누군지 특정해서 응징하는 것이다.

이서우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움을 주신 것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데, 왜 절 그렇게 집요하게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군요. 만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이죠.”

“전장의 지배자 님을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꼭요.”

“만나 봐야 실망만 하실 텐데요? 원래 팬일 때가 가장 좋은 거예요.”

“전 오히려 만나 보니 훨씬 좋은데요?”

“네?”

이서우는 이게 무슨 소리냐 싶었다.

비쩍 말라서 볼품도 없는데 뭐가 좋다는 건지.

그렇다고 이서우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쩍 마른 몸이라도 그는 자존감도 높고, 자신감도 충분했다.

단지, 객관적인 외모를 말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서우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쁜 여자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할 거라는.

물론 이설아가 좋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아, 오해는 마세요. 고백 같은 건 아니니까요.”

“아, 네.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좋을 게 뭐가 있나 싶어서요.”

“사냥하실 때의 그 압도적인 힘을 보고 있노라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이미지거든요. 근데, 실제로 만나 보니 사람 냄새가 나는걸요?”

“……그런가요.”

“네.”

이설아가 미소를 짓자 주변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뭐,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건 이설아 씨의 개인적인 느낌이시니 그런 걸로 합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절 찾은 건 아니실 거고. 진짜 목적이 뭐죠?”

“솔직하게 말할게요. 전 서우 씨가 제 방송에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저보고 사람들의 유흥거리가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서우 씨는 방송에 나오는 걸 유흥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

도도하지만 무례하지는 않다.

자부심.

방송을 하는 이설아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서우는 그녀의 짧은 말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는 나랑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내공은 장난 아니네.’

방송에서의 이미지는 상큼, 발랄, 귀여움 등이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말 한마디가 진지했고, 성의가 있었다. 이런 사람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서우는 전형적으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다.

누군가 자신을 존중한다면 이서우도 상대를 존중한다.

“설아 씨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유흥거리라는 표현은 심했지만, 방송에 나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이설아가 놀랐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 본 남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큰소리치기 바쁘다. 싸우려고 한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싸움이 났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 사과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해 살짝 당황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네요. 정말 방송은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네. 제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네요.”

“상관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보다 보면 방송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전 계속 볼 생각이 없는데요?”

“어머, 설마 제가 같이 다니기 부끄러운 사람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제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만나는 거라면 전 사양하고 싶네요. 전 그런 일적인 관계로 얼굴을 마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럼 일적인 건 배제하고 만나면 아무 문제 없겠네요?”

“…….”

선을 그으려고 한 말이었는데, 이설아의 대응이 예상외였다.

“서우 씨, 여자 친구 있나요?”

“네? 없습니다만.”

“저도 남자 친구 없어요. 그러면 그냥 편하게 만나도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이 아니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설아에게 끌려다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방송하신다고 바쁘셔서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전 거의 뉴 월드만 하거든요.”

“상관없어요. 저도 뉴 월드 좋아하거든요. 서우 씨가 어떻게든 철벽을 치시려는 것 같은데, 좋은 친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흠.”

이서우는 이설아가 백기를 들고 나오자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혹시 직업이 뭔가요?”

“네? 힐러예요.”

“그래요?”

‘누군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지만 한 사람이 빠져야 하니 차라리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이서우는 비밀 유지를 위해 그녀와 당분간 함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친구 추가 하시면 수락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번호 바꾸시면 안 돼요!”

“저 그렇게 치졸한 놈 아닙니다.”

“호호호. 네, 알겠어요.”

“참,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 정체는 제가 원할 때만 밝히셔야 합니다.”

“그러면 평생 못 밝힐 수도 있겠네요?”

“뭐, 영원한 비밀은 없다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지금도 설아 씨에게 들켰잖습니까.”

“저처럼 집요한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야겠네요.”

“네?”

“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아마 저처럼 끈질긴 사람도 드물 거예요.”

“저도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서우는 20억이나 투자해서 찾으려 한 이설아가 대단해 보였다.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꼭 돈을 써서가 아니다.

아마 정보를 얻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을 것이다.

뉴 월드에서 메시지로 접근한 것을 보아 불법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외에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같이 접속 방 가실래요?”

“네?”

“오늘 많이 놀라시네요. 원래 그렇게 많이 놀라세요?”

“설아 씨가 놀랄 일을 자꾸 만들어 주시네요. 방송 안 하세요?”

“오늘은 프리해요.”

“평소 바빠서 쉴 틈이 없으실 텐데 좀 쉬세요.”

“어머, 모르셨어요? 전 뉴 월드를 하면서 쉬는걸요. 아마 서우 씨도 저랑 똑같으실 걸요.”

이서우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뉴 월드를 하면서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 어차피 한 명을 대체해야 하니 차라리 같이 접속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하지만 그냥은 안 되지.’

이서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게임비와 밥값, 간식비 등은 다 설아 씨가 부담하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그 정도는 제가 해 드려야죠. 비싼 몸이신데.”

카페를 나온 두 사람은 근처 접속 방으로 향했다.

나오자마자 이설아는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다. 괜히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 원하지 않아서였다.

“참, 서우 씨 직업은 뭐예요?”

“약초꾼입니다.”

“네에? 약초꾼요?”

“저한테 옮으셨어요?”

“아, 아뇨. 그렇게 압도적인 힘을 내시면서 약초꾼이라고요?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요.”

이서우는 다른 대꾸는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러더니 생각난 것이 있는지 이설아에게 물었다.

“참, 설아 씨 레벨이 얼마죠?”

“150요.”

“방송하시면서 꽤 많이 올리셨네요.”

“틈나는 대로 하거든요. 방송용 캐릭터 말고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한 사람이 계정 2개를 가질 수 있나요?”

“전 뉴 월드에서 따로 방송용을 줘서 그래요. 방송용으로는 게임을 즐기기 힘들거든요. 그러니 뉴 월드 측에서도 배려를 한 거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데, 왜 그러세요?”

“아, 제가 지금 진행하는 퀘스트가 있는데, 이게 좀 비밀스러운 거라서요. 설아 씨에게 제보를 한 사람이 지금 현재 저와 함께 퀘스트를 하고 있는 셋 중 하나 같거든요. 비밀을 누설했으니 쳐 내야 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런 거라면 당연히 제가 해야죠! 저는 좋아요.”

이설아는 어떻게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그럼 일단 접속해서 친추부터 하세요. 아 참, 어느 지역에 계세요?”

“아고나 마을에 있어요. 사실, 서우 씨를 찾으려고 거기서 거의 죽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레벨이 그 모양인 거고요.”

“헛다리 짚으셨네요. 전 다빙턴 마을에 있어요. 접속하자마자 친추하시고 그리로 오세요.”

“네. 패치가 돼서 이동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시간이 없으니 빨리 오셔야 해요.”

“네.”

두 사람은 접속 방으로 가서 나란히 자리를 잡고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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