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레벨이 갑이다
90화
“서우 씨도 참 대단하세요. 지금까지 100레벨 희귀 장비를 착용하고 계셨다니.”
“굳이 쓸모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잘 바꾸셨어요. 160레벨 희귀 정도면 서우 씨에게 충분할 거예요.”
“고미 언니는 딱 보기만 해도 몇 레벨 장비인지, 무슨 등급인지 다 알아요?”
“알지. 관심이 많거든.”
“와, 대단하시다. 전 그냥 화려하면 아, 영웅 등급 이상이구나 하거든요.”
“보통은 그렇지. 근데 솔플로 오랫동안 그 레벨에 묶여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고.”
“그런 것치고는 정말 레벨을 빨리 올리셨네요.”
조현아의 말처럼 그녀는 방송이 없는 시간에는 늘 뉴 월드를 했다.
게임을 해야 시청자가 공감하는 방송을 할 수 있었다.
혼자 사냥을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했고, 가끔 하는 파티 사냥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경험치 위주로 진행했다.
아이템은 현질로 맞추고 선택과 집중으로 빠르게 레벨을 올렸기에 150에 오를 수 있었다.
성 입구에 도착하니 경비병이 이서우를 알아보고 문을 열어 주고 안내까지 해 주었다.
사이먼 자작이 나와 이서우를 맞았다. 그와 함께 손님방으로 갔다.
편안한 의자에 앉자 사이먼의 입을 열었다.
“새벽부터 어쩐 일인가.”
“오늘 그분들이 오신다고 하셔서 일찍부터 왔습니다.”
“허허, 이렇게 일찍 올 필요는 없었는데. 뭐, 어쨌든 왔으니 일단 앉게.”
“백작님은 바쁘신가 봅니다.”
“그분들이 오신다고 하니 준비를 하는 게지. 아무리 백작님이라도 그분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거든.”
“그분들은 어느 정도 지위를 가졌나요?”
“공작님이라도 그분들을 함부로 할 수 없네. 황제께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네.”
“대단한 분들이시네요.”
“암, 제국의 자랑이시지.”
이서우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다면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녔으리라.
“한데, 이 모험가는 처음 보는구먼.”
“아, 1명이 배신을 해서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배신을 했단 말인가?”
“네. 그곳에 대해 발설을 했습니다.”
“그런 쳐 죽일!”
“조치는 확실히 취하고 왔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렇군. 잘했네.”
“이번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이먼 자작이 살짝 염려의 눈빛을 하자 이서우는 그를 안심시켰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믿을 수 있지. 인사가 늦었군. 사이먼 자작이네.”
“고미라고 해요.”
“고미? 이름이 특이한 모험가구먼.”
“곰처럼 느려 터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허허허, 전혀 느리게 보이지 않는데 누가 지었는지 참 어리석구먼.”
“호호호. 네, 좀 그런 편이에요.”
이설아는 어릴 때부터 곰이라고 놀리며 괴롭혔던 친오빠를 떠올리며 웃었다.
하도 곰이라고 놀리는 걸로 티격태격하니 곰이 아니라 고미라고 불러 무마해 보려 했지만 도긴개긴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니 어디 가서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되네.”
“네, 걱정 마세요. 이래 봬도 입이 무겁거든요.”
“난 자네보다 서우 군을 믿는다네.”
“네.”
이설아는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백작님께 다녀오겠네.”
“네.”
사이먼 자작이 나가자 이설아가 이서우를 보며 물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이 어딘가요?”
“새로운 지역이에요.”
“설마, 패치 내용에 있던 새로운 사냥터인가요?”
“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반 유저들이 갈 수 없어요. 가도 버티지도 못하고요.”
“그렇게 강한 지역인가요?”
“제가 몰이사냥 하는 거 보셨죠?”
“네. 수백수천 마리 앞에서도 당당하게 대검을 휘두르며 싹 정리하는 모습 많이 봤죠.”
“거기는 제가 50마리 이상을 상대하기 힘들어요. 솔직히 이곳에서는 1만, 10만 마리 가운데에도 뛰어들 자신이 있어요. 한데, 거기는 50마리가 넘으면 버거워요.”
“그 정도예요?”
“네. 근데 더 황당한 건 그런 강한 놈들이 초입 부분에 있다는 거예요.”
“헛!”
이설아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초입에 그런 위험한 녀석들이 있다면 깊이 들어갈수록 엄청난 몬스터들이 있다는 뜻이다.
“설마, 드래곤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강한 녀석들이 많은 지역이라서…….”
“드래곤 숲에 있던 드래곤이 그곳으로 이주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거기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백작님은 전초기지를 만들 생각이더군요.”
“전초기지를요? 그런 험악한 곳에요?”
“그건 시작에 불과해요. 백작님은 그곳에 마을과 도시를 세우고 싶어 하세요.”
“아!”
이설아는 백작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몬스터가 그렇게 강하다면 귀한 재료나 물건이 많을 것이다. 몬스터를 강하게 만들 만한 것이 없다면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백작으로서도 욕심이 날 수밖에.
“그렇게 강한 몬스터들이 있으면 조심해야겠네요. 한데, 거기는 퀘스트가 없나요? 그런 곳이면 이왕이면 퀘스트도 함께 하면 좋은데. 제가 받았으면 공유해 드리는 건데 아쉽게도 없네요.”
“퀘스트 공유도 되나요?”
“네. 파티는 가능해요.”
“제가 받은 게 있긴 한데…….”
이서우는 퀘스트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다가 아이템까지 전부 양보해서 미안한 마음에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공유 좀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이템도 다들 양보하셨는데,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앞으로 얻게 될 아이템의 양도 엄청날 텐데 퀘스트 공유야, 뭐. 어차피 거기서 계속 생활하려면 힐러들의 레벨이 높은 것도 큰 도움이 될 거고.’
이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퀘스트를 공유했다.
“헐! 서우 씨, 이거 특수 퀘스트네요?”
“네. 보상이 꽤 좋죠?”
“꽤 좋은 정도가 아니라 대박인데요. 설마, 이런 식으로 계속 특수 퀘스트를 받은 건 아니죠?”
“맞는데요.”
“…….”
태연스러운 이서우의 대답에 3명의 힐러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유저도 특수 퀘스트를 받는다. 하지만 결코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까지 계속 받았다니.
“아, 한 열 번 정도는 자잘한 경험치 주는 퀘스트도 있었어요.”
“…….”
셋 다 지금 누굴 약 올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들의 얼굴에 미안한 마음이 보였다. 이런 엄청난 퀘스트를 그냥 받는 게 미안해서다.
“다들 편하게 비밀을 지켜 주는데 대한 대가라 생각하세요.”
“그래도 너무 대단한 거라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거기서 일반 몬스터만 잡고 말 거 아니에요. 보스급이나 레이급도 있을 텐데, 그땐 저도 힐을 받아야 하거든요. 무섭다고 도망가지나 마세요.”
“에이, 전 의리 빼면 시체인 걸요. 걱정 마세요. 제가 빵빵하게 힐 넣어 드릴 테니.”
“오빠, 저도요!”
“저도 열심히 힐 해 드릴게요.”
세 힐러 모두 호언장담했다.
그 다짐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이서우는 그때까지는 미끼를 던져 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 사이먼 자작이 들어왔다.
“백작님이 보자고 하시네. 힐러들은 남아 있고, 자네는 따라오게.”
“네.”
이서우는 급히 자작의 뒤를 쫓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펠렌의 흔적에 대한 것만이 가득했다.
“자작님은 안 들어가십니까?”
“난 혹시라도 그분들이 오시면 맞이해야지.”
“아, 네. 그럼.”
이서우는 백작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그래, 푹 쉬었는가.”
“네. 덕분에 편안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하니 그 전에 잘 쉬어 두는 게 좋지.”
“한데, 그분들은 언제쯤 오시는지요.”
“아마 정오가 지나면 오실 것이네. 얼마 남지 않았구먼.”
“그러네요.”
이서우는 이제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 만남을 기대했다.
“참, 그것 때문에 미리 자네를 불렀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분들을 잘 좀 모셔 주게. 사이먼 자작이 있지만, 그분들은 허례허식에 얽매이는 분들이 아니셔서 자네 같은 모험가가 더 편할 것이네.”
“네. 제가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만.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네. 자네는 상관없겠지만 힐러들이 자네 지인이라고 하니 미리 언질을 해 두게. 행여나 그분들에게 가르침을 달라거나 귀찮게 하지 말라고. 누군가 매달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들이시거든.”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통 초고수들이 은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귀찮은 것도 한몫한다.
활동을 하고 있으면 자꾸 와서 가르침을 내려 달라고 귀찮게 하니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잘 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럼 가서 기다리고 있네. 그분들이 오시면 부르겠네.”
“네, 백작님.”
이서우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백작의 말을 전하자 힐러들은 머릿속에 그 말을 잘 새겨 넣었다.
새롭게 합류한 이설아를 위해 이서우는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대귀족의 성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러 보다니. 남작의 성도 못 가봤는데, 서우 씨 덕분에 호강하네요.”
“앞으로 자주 겪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될 겁니다.”
“이러다가 설마 황제도 만나 보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어머, 언니. 황제를? 와, 그러면 좋겠다.”
“황제라니. 상상이 안 가네요.”
이민아도 황제를 직접 만난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다.
“또 모르죠. 정말 나중에는 황제 앞에 있을지.”
이서우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펠렌.
그의 이름을 알고 그의 후예가 되면서, 황제와 독대를 하게 되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제 이야기가 나오니 또 수다가 펼쳐졌다.
‘공주는 어떤 생활을 할까.’에서부터 ‘황제는 뭘 먹을까.’ 하는 것까지.
그러다가 여러 귀족들의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창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구원자가 나타났다.
사이먼 자작이었다.
“기다리느라 지루했겠군. 드디어 그분들이 오셨네.”
이서우는 벌떡 일어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드디어 왔다.
“다들 결코 그분들에게 결례를 범해서는 안 되네. 자칫 실수를 했다가 지금까지 쌓아 두었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네. 꼭 명심하게.”
“네, 사이먼 자작님.”
“네, 사이먼 자작님.”
대답이 흡족했는지 사이먼 자작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는 손짓했다.
“따라오게.”
저벅저벅.
숨을 죽인 채 사이먼 자작의 뒤를 따랐다.
너무 집중을 했는지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발소리가 들렸다. 마치 천둥소리처럼.
두근두근.
두근두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혼났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분들의 힘이 조금씩 느껴졌다.
‘일부러 힘을 숨기지 않으신 건가.’
강자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자신의 힘을 숨기는 것이다.
경지가 올라가면 숨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춰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에 피부가 따끔거렸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심해졌다.
하나, 문 앞에 섰을 때에는 거짓말처럼 불편한 기운이 사라졌다.
“이곳이네. 들어가세.”
“네.”
자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화려한 문이 열리자 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되기를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그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