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레벨이 갑이다
94화
-쟤들 위험한 거 같은데?
-저것들이 아주 작정을 하고 왔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이제 절반 정도 했어.
-흠, 저렇게 둘러싸여 있으면 방법이 없을 텐데.
결계 보강 작업을 하던 몰디나와 아리아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을 정도로 조절은 하고 있지만, 이서우가 무너지면 자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저 개자식이 뭐? 저년들? 저거 우리보고 하는 말 맞지?
-결계를 치고 있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 우리 이야기가 맞겠지.
-결계만 완성되면 보자.
-빨리 응징하고 싶으면 괜한 흥분 하지 말고 어서 집중이나 해.
-시간 단축하자.
-설마 그 방법을 쓰려고?
-지금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잖아.
-하지만 꽤 부담될 텐데.
-그래도 결계 완성되고 나면 저놈 하나는 죽일 수 있어.
-알았어. 그럼 준비할게.
몰디나는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저년들’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번개를 다루는 걸 보니 사이클롭스렷다. 감히 이 대마법사님께 저년이라고 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보여 주마.
몰디나는 번개의 기운을 느끼고는 결계를 빨리 완성하기 위해 더욱 힘을 끌어 올렸다.
두 사람의 기운이 격렬하게 솟아나며 결계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 * *
-잠재력 순수 스텟이 500에 도달했습니다.
-잠재력이 500에 도달하여 육체 진화가 이뤄집니다.
-육체 진화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육체 진화 중에는 무적 상태가 됩니다.
-공격력, 방어력, 생명력, 마나가 100퍼센트 상승합니다.
-잠재력의 한계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마나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삑! 관찰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육체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찰력을 향상시켜 통찰력을 키우셔야 합니다.
-통찰력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능력치 향상은 70퍼센트까지만 활용이 가능합니다.
‘육체 진화에, 네 가지 능력이 모두 상승하다니. 보너스 스텟을 아낀 보람이 있어.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야.’
능력치 증가가 100퍼센트이니 진화만 완성되면 승리는 확실했다.
하지만 팽팽한 전투에서 10분은 엄청난 시간이었다.
‘젠장, 다른 것처럼 바로 적용되면 얼마나 좋아. 현실성은 이런 데서 발휘 안 돼도 된다고!’
육체가 진화하는 것이니 상식적으로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여유로울 때 이야기고, 지금은 상황이 급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려면 백호의 도움이 절실했다.
-백호야, 10분 정도 버틸 수 있겠어?
-네, 주인님. 몸에서 힘이 막 솟아나고 있어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동안 다른 놈들이 그쪽으로 갈지 몰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백호는 갑자기 느껴지는 강렬한 힘에 자신감이 수직 상승했지만,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는 확답을 하지 못했다.
-경험치 분배로 성장할 수는 없지?
-네. 이제는 주인님의 성장에 맞춰 저도 조금씩 힘이 강해지게 돼요.
-하긴. 최근부터 모든 경험치가 나한테 들어오긴 하더라.
잠재력이 높아지면서 백호도 더 강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이서우가 강해지는 것과 보조를 맞춰 동반 상승하는 것이어서 굳이 경험치가 필요 없었다.
-지금 몰디나와 아리아가 열심히 시간을 단축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10분 안에는 힘들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일단 집중하면서 버텨 봐. 최대한 빨리 도울 테니.
-네, 주인님.
지금 현재로서는 이서우에게 덤벼들던 몬스터들이 백호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
아직 이서우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파직! 파직!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두 번의 번개 공격을 연속으로 퍼부었다.
한 번으로는 이서우가 피해 버리니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한데, 번개 공격에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이서우는 멀쩡했다.
“설마 절대 방어?”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번개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자 이서우가 보호막을 생성시켰다고 생각했다.
퍽퍽퍽퍽퍽퍽!
텅텅텅텅텅텅!
우두머리 사이클롭스 외에도 수많은 몬스터들이 주먹과 발을 이용해 공격을 퍼부으며 이서우를 몰아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멈춰라!”
결국 공격 명령을 중단했다.
후방에 있던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이서우에게 다가갔다.
팅팅, 퍽퍽퍽!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는가 싶더니 주먹으로 강하게 이서우를 쳤다.
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절대 방어와 함께 행동 불능에 빠졌군. 기회다. 절반은 저놈들을 처리하고, 나머지는 모두 결계로 돌진하라!”
쿠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시켰다.
-오빠?
-서우 씨?
-서우 님!
힐러들이 이서우를 찾았다.
생명력은 줄어들지 않는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상탭니다. 8분, 아니 7분만 버티세요.
-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구해 줄 테니 7분만 버티세요.
-반드시 구해 주셔야 해요.
-네. 염려 마세요.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요.
이서우가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자 이설아는 그제야 안도했다.
조현아나 이민아도 마찬가지였다.
“언니 덕분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네요.”
“돈값을 하나 볼까?”
“네.”
이설아의 권유로 방어구를 열심히 강화했다.
꽤 많은 골드가 소모되었지만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상하의 일체형의 로브를 초월까지 하면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렸다.
이서우가 행동 불능이라면 이제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하아앙!”
백호의 포효가 들렸다.
“치욕스러운 녀석, 인간에게 붙어서 아부나 떨다니. 네놈은 내 손으로 처리해 주마!”
파직!
“으르르르르.”
번개가 내리치자 백호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털이 그을리고 말았다.
순백의 털에 그을음이 생기자 백호는 으르렁거리며 우두머리 사이클롭스에게 덤벼들었다.
“어림없다, 이놈!”
사삭, 사사삭.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힘도 매우 강해서, 순수한 힘의 대결로는 이서우도 한 수 접어야 했다.
백호도 그것을 알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8미터에 달하는 우두머리 사이클롭스의 공격은 빠르고 매섭고 날카로웠지만, 백호를 잡지는 못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녀석을 봤나!”
파직. 파직. 파지지직!
번개를 수차례나 쏘아 대며 백호를 압박했다.
프라이팬에 올려 둔 콩이 파닥파닥 튀듯 백호도 점프를 연속하며 번개를 피했다.
하지만 워낙 공격이 빨라서 어느 하나도 완전히 회피하지는 못했다.
스친 것만으로도 20퍼센트의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크항!”
백호는 포효하며 온몸에 힘을 실었다.
공격할 것처럼 매섭게 날아간 백호는 사이클롭스의 뒤로 돌아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꽈악!
백호가 우두머리 사이클롭스의 등을 물어 버렸다.
“이, 이놈이……!”
워낙 덩치가 작아서 등에 붙으니 떼어 놓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쿵!
피를 빨던 백호가 잽싸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파직! 파지직!
“헉! 이, 이놈이 어떻게…….”
백호는 바닥에 누워 있는 우두머리 사이클롭스의 머리를 향해 번개를 시전했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어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한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번개 공격을 그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백호가 능력을 흡수하고, 흡수한 능력을 일정 시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랴.
결국 자신의 번개 공격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백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번개 공격을 계속 퍼부었다.
흡수된 능력을 단기간에 많이 쓰면 빨리 소멸해 버리기에 여유를 두려 했지만, 한순간에 몰아쳐서 대미지를 최대한 줘야 시간을 끌 수 있었다.
“크으으으.”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몸을 일으키기 직전까지도 번개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려서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건재했다.
백호가 사이클롭스를 막는 동안 1천여 마리에 가까운 몬스터들 중 절반이 사이먼과 힐러에게 집중되었다.
게다가 나머지 절반은 결계로 똑바로 달려가고 있었다.
백호는 마지막으로 번개 공격을 소나기처럼 퍼붓고는 뒤로 빠졌다.
워낙 집중된 공격이어서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도 잠시 동안이지만 주춤거렸다.
정신을 차린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는 백호가 사라지고 없자 분노를 터트리며 그를 찾았다.
백호가 뒤로 빠졌다는 것을 안 사이클롭스는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쿵쿵쿵쿵쿵쿵!
워낙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땅이 흔들렸다.
심지어는 바닥이 쩍, 갈라지기까지 했다.
그만큼 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
-지금 몬스터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얼마나 남았어?
-이제 거의 다 돼 가. 조금만 더 버텨 봐!
-젠장, 빨리하라고!
-알았다니까 그러네. 네가 방해해서 더 늦어졌다.
백호는 인상만 찌푸린 채 더 이상 몰디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500마리나 되는 몬스터의 뒤를 쫓아간 백호는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수십 미터까지 올라간 백호는 몸을 격렬히 회전시켰다.
마치 미사일이 떨어지듯 몬스터가 몰려 있는 중앙으로 떨어졌다.
펑!
거대한 폭발과 함께 몬스터들이 온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대미지는 크지 않았지만 돌진을 저지하는 효과는 있었다.
쿵쿵쿵쿵쿵!
일시적으로 몬스터를 막아 냈지만 뒤를 이어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다가오자 또다시 백호는 위기에 처했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것이다.
“쥐새끼 같은 놈, 그 목을 비틀어 주마.”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수십 가닥의 번개가 동시에 백호에게 내리쳤다.
한데, 특이한 것은 번개가 백호에게 정면으로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호는 의아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번개가 자신에게 떨어질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선택했다.
괜히 움직여서 번개에 휘말리면 낭패였다.
하나 안도감도 잠시, 백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미친놈, 번개로 감옥을 만들다니…….”
백호는 머리 위와 주변이 모두 번개로 막혀 버리자 낯빛이 어두워졌다.
“흐흐흐흐흐, 이제 넌 죽은 목숨이다.”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동작과 함께 번개 감옥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감옥이 좁아지자 번개가 서로 부딪치며 강렬한 소리를 만들었다.
백호는 이리저리 피하며 번개의 파편들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거리가 좁혀지자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파지직!
“크르르르.”
번개 감옥이 좁아져 오자 여파가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이 되었다.
애써 이를 악물고 버텨 보려 했지만 고통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주인님…….”
백호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서우였다.
몬스터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서우가 도무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백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두머리 사이클롭스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나는 이대로 가지만, 나의 복수는 반드시 주인님께서 해 주실 것이다!”
“크크크, 복수? 여기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난 인간들의 땅을 주인님께 바쳐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것이다!”
우두머리 사이클롭스의 눈빛에 광기가 서렸다.
그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잔인한 미소를 짓고는 가볍게 쥔 손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