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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96화 (96/341)

# 96

레벨이 갑이다

96화

정비를 끝낸 일행은 개인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전 볼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겠네요.”

“저도 식사 시간이어서 나갔다가 들어올게요.”

“그럼 저도 잠시 실례할게요.”

“저도요.”

반나절 정도를 사냥했을 뿐인데 다들 피곤한지, 접속을 종료하는 분위기였다.

파티는 맺어 둔 상태로 두기로 하고 하나둘씩 게임을 나갔다.

“와아, 서우 씨, 정말 대단했어요!”

“일단 나가죠.”

“네.”

이설아는 주변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른 이서우의 뒤를 쫓았다.

접속 베드에서 나오자마자 소리를 쳤으니 사람들이 힐끗 쳐다본 것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딱 게임 폐인의 모습이어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두 사람은 접속 방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혹시 알레르기나 못 먹는 거 있으세요?”

“아뇨. 잡식성이에요.”

“그럼 약선 음식 먹으러 가죠.”

“약선 음식요?”

“네. 음식이 아주 깔끔하고 좋아요.”

“그건 아는데, 20대가 잘 찾을 음식은 아닌 것 같아서요.”

“전 깔끔한 걸 좋아해서요.”

“네. 어차피 제가 쏘기로 한 거니 서우 씨 드시고 싶은 걸로 해요.”

스테이크나 파스타 종류를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메뉴를 말해 이설아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근처에 잘하는 데가 있으니 그리로 갈게요.”

“자주 가는 곳이 있으신가 봐요?”

“그렇지는 않고요. 그냥 몇 번 가 본 정도예요.”

“그러셨구나. 한데, 죄송하지만 입맛이 좀 까다로운 편이세요?”

“아뇨.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먹어요. 단지, 조미료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소량을 쓰는 건 어쩔 수 없는데, 퍼붓는 식당이 꽤 많아서 탈이 잘 나더라고요.”

“아, 그러셨구나. 그럼 편식을 하시는 건 아니네요?”

“네. 없어서 못 먹죠.”

“호호호, 맞아요.”

이설아도 딱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았다.

방송을 위해 몸매를 유지해야 해서 고칼로리 음식이나 인스턴트를 잘 먹지는 않지만 가끔 당길 때는 별 고민 없이 찾는다.

괜히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당에 도착한 두 사람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이설아가 요청한 것인데, 종업원은 연인이어서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안쪽 방을 내주었다.

“죄송해요. 트인 곳에서는 혹시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요.”

“잘하셨어요. 식사할 때라도 편해야죠. 괜히 눈치 보면서 먹으면 체해요.”

“네. 고마워요.”

두 사람은 메뉴를 선택하고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주문을 했다.

그들이 고른 것은 장수 세트였다.

연잎 밥과 대나무 밥 두 종류가 있었는데 이서우는 연잎을, 이설아는 다른 것을 시켰다.

새싹삼이 먼저 나오고 잠시 후 음식이 하나씩 들어왔다.

“오랜만에 먹는 건데 역시나 속이 편안해서 좋네요.”

“정말 맛이 깔끔하네요. 방송을 하다 보면 김밥이나 간단한 걸 종종 먹게 되는데, 이 가게를 방송국 앞으로 가져가고 싶네요.”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사실 이런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스무 살 때 제가 탈이 난 적이 있었어요. 먹으면 화장실로 직행하곤 했는데, 그때 부모님이 절 이곳으로 데려오셨죠.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속이 어찌나 편안하던지. 그때부터 이런 곳을 좋아하게 됐죠.”

“그러셨구나. 하긴, 음식이 약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약선藥膳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음식만 잘 먹어도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죠.”

“앞으로는 이런 곳으로 서우 씨를 데려와야겠네요.”

“그럴 기회는 없지 싶네요. 앞으로는 집에서만 주로 게임을 할 생각이니.”

“가끔씩 바람도 쐬어 주고 그래야 스트레스도 안 받고 피로도 풀려요.”

이설아가 여지를 두려 하자 이서우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참, 하이 레벨 몬스터라고 뜨던데 정말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더라고요. 서우 씨가 보기에는 얼마나 강한 것 같아요?”

“적어도 일반 몬스터보다 5배는 강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5배씩이나요?”

“그것도 동렙 기준일 때 그런 거예요. 그곳은 더 레벨이 높아서 훨씬 강할 거예요.”

“오우거나 미노타우로스도 그 정도라면 다른 몬스터는 엄청나겠네요.”

“그렇겠죠. 데스나이트나 드레이크 같은 놈들은 아마 일반 몬스터가 네임드 수준일걸요.”

“평범한 유저들은 가지도 못하겠네요.”

이설아는 하이 레벨 지역을 겨우 문 앞까지만 갔을 뿐인데도 크게 놀랐다.

일반 몬스터가 그 정도라면 랭킹 10위 안에 드는 유저들이 가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런 곳을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네요.”

“아마 시간이 조금 더 흘러야 공개할 수 있을 거예요.”

“조세프 백작 때문이겠죠?”

“네. 일단 그곳에 자리를 잡고 나야 유저들을 허락하겠죠.”

“시간 꽤 걸리겠군요.”

“황제나 대귀족들만 아니면 최대한 느리게 진행되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조세프 백작에게 크게 신임을 받아서 제약 없이 얼마든지 사냥이 가능해요.”

“저나 다른 동생들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괜찮아요. 언제 그런 곳에서 사냥할 기회가 있겠어요.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 둬야죠.”

이설아도 모험심이 강해 위험하다고 해서 쉽게 피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식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야기는 쉬지 않고 이어졌는데, 주로 뉴 월드에 관한 것들이었다.

“권안나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게임에서는 몰라도 현실에서 떠벌리고 다니면 곤란할 텐데.”

“다른 방송사에서도 제 정체를 알고 싶어 하겠죠?”

“그럼요.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있는걸요. 그나마 제가 원본 영상과 카피본까지 싹 회수했지만, 말만 퍼져 나가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

“어차피 영원한 비밀은 없겠죠. 어느 시점이 되면 저 스스로 드러내야죠.”

“그때는 저와 방송하는 거 아시죠?”

“조건만 맞으면요.”

“역시 서우 씨는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으시네요. 좋아요, 어떤 조건이라도 맞춰 드릴게요.”

당장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레벨이 오르고 사람들에게 노출이 잦아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알려지게 된다.

‘그때가 오면 화려하게 방송에 등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방송이라…….’

이서우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유명 방송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률 40퍼센트를 넘어선 방송의 진행자가 눈앞에 있으니 실감이 났다.

“제가 무슨 조건을 걸 줄 아시고 다 맞춰 준다고 하시는지. 그러다가 덤터기 제대로 쓰는 수가 있어요.”

“뭘 제시하려고 그렇게 겁을 주세요?”

“시청률 40퍼센트 이상이면 광고비가 엄청나겠죠?”

“그렇죠. 글로벌 시대니 엄청나죠. 게다가 중국과 인도,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뉴 월드가 퍼져 있으니 30초 광고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얼마나 많기에 설아 씨가 그런 이야기까지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시청자가 몰릴 시간은 50억 이상이에요. 사용자가 늘어나면 무조건 100억은 넘을걸요.”

“헐, 그렇게나 많나요?”

“어휴, 벌써 15년 전 미국 슈퍼볼 광고 30초에 65억 이상을 쓰기도 했는걸요. 그에 비하면 아직 적은 편이죠. 제가 보수적으로 잡아서 그렇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이거 너무 자세히 말씀해 주는 거 아닌가요?”

“방송사가 광고비로 엄청 남겨 먹는 거 아시죠? 거의 다 남는 장사라 보면 돼요. 그러니 이왕이면 좀 많이 요구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설아의 직설적인 말에 이서우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저는 솔직한 게 좋아요. 어차피 서우 씨의 비밀은 저만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우 씨에게 숨기는 게 있으면 불공평하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저도 편하네요.”

이서우는 차진 연잎 밥을 뜨며 잠시 침묵을 이어 갔다.

조용한 가운데 수저가 오가는 소리만 들렸다.

식사가 끝나고 식혜가 나왔다.

점원이 나가자 이설아가 말했다.

“제가 한 가지 팁을 드릴게요.”

“무슨 팁을 말씀하시는 건지…….”

“계약하실 때 팁요.”

“아, 그 이야기였군요. 말씀하세요.”

이서우는 식사를 하면서 그에 대해 잊고 있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들어 둬서 손해될 것은 없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회당 출연료는 저와 똑같이 달라고 하셔도 될 거예요.”

“설아 씨가 꽤 센 걸로 아는데요?”

“솔직히 서우 씨라면 더 받으셔도 돼요. 하지만 중요한 건 광고 수익이에요. 출연하면 무조건 30퍼센트를 제시하시고, 시청률이 오르면 그에 따라 퍼센트도 올라가도록 하세요.”

“시청률 40퍼센트면 수익의 40퍼센트, 50이면 50퍼센트, 뭐 이런 식으로요?”

“네.”

“하지만 지금도 시청률 40퍼센트가 나오잖아요.”

“그것도 다 서우 씨 덕분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30퍼센트대로 떨어질 거예요. 경쟁사들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 이야기가 잘 안돼서 서우 씨가 다른 방송사로 간다고 하면 20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반짝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설아가 전장의 지배자의 정체를 반드시 알아내겠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시청률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받아들이려 할까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서우 씨의 플레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마력이 있어요.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무조건 요구하는 대로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감히 단언하건대 서우 씨가 나오면 그날은 시청률 60퍼센트 이상 찍을 수 있어요.”

“그렇게나요?”

“요즘엔 드라마도 가끔 50퍼센트를 넘곤 해요.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게임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단 한 번 같이 파티를 했을 뿐인데, 저조차도 벌써 서우 씨에게 빠졌는걸요. 서우 씨의 플레이를 보면 사람들도 반할 수밖에 없어요.”

이설아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전신이 나타나도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할 것이다. 하물며 그보다 더 큰 이슈를 만들어 낸 전장의 지배자는 오죽할까.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바로 인도와 중국 시장이 열릴 거라는 거예요. 아마 내년 초에는 열릴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인도와 중국 시장 모두가 열린다고요?”

“네. 그 두 시장만 열려도 단숨에 이용자가 7억 명까지는 빠르게 늘어날 거예요. 내년 하반기에는 10억 명을 가뿐히 돌파하겠죠.”

“그렇게 빨리 늘까요?”

“이번 이벤트와 패치 소식으로 벌써 1억 5천만이 넘었어요. 빠르게 사용자가 증가하고 있고요. 그런 상태에서 몰입도가 강한 두 나라가 합류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성인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뉴 월드를 해요. 인도와 중국이라고 다를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30억이 넘는 인구 중 10억 이상은 분명히 뉴 월드를 할 거예요. 인구가 많은 나라에도 계속 퍼져나가면 2년 안에 20억 명은 충분히 끌어모을 수 있어요. 그중 절반만 서우 씨가 나오는 방송을 시청해도 광고로 얻는 이득은 가히 천문학적이 되겠죠.”

이서우는 그녀가 그리는 그림을 따라가는 것으로도 벅찼다.

20억 명이라니.

뉴 월드의 인기 이후 각 나라에서 가상현실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게임에만 올인한 것이 아니어서 뉴 월드와 비견될 정도의 게임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뉴 월드는 독보적인 위치를 향해 가고 있어 많은 유저들을 끌어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설아도 그런 배경에서 사용자의 숫자를 추측하는 것이었다.

“20억 명이 광고를 본다라……. 정말 엄청나긴 하겠네요.”

“그럼요. 그러니 당당하게 요구하셔도 돼요. 사실, 저도 서우 씨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광고 수익의 20퍼센트를 요구할 생각이에요. 50퍼센트 이상을 찍으면 40퍼센트까지도 요구할 거고요.”

“시청률 80퍼센트 찍으면 방송사는 손가락 빨아야겠는데요?”

“호호호, 손가락, 발가락 다 빨아야 될걸요. 서우 씨와 제 출연료까지 줘야 하니 말이죠.”

“그 소리 들으니 승부욕이 돋는데요?”

“지금까지 배 많이 불려 줬으니 좀 토해 내게 해야죠. 저도 처음에는 뭘 모르고 계약을 하면서 광고 수익은 신경을 많이 못 썼어요. 3년을 그렇게 계약하면서 만료될 때를 기다렸죠. N게임넷도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할 거예요. 제가 신인일 때 뭘 믿고 장기 계약을 하냐며 3년을 제시한 거거든요. 뭐, 그 덕분에 지금은 광고 수익이 훨씬 많아졌지만요.”

“그동안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가져갔네요.”

“네. 그래도 전 다행히 노예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안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게 이 바닥이에요.”

이서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들만 더 큰 부자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왔으니 이설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다.

부가 대물림되듯 가난도 그렇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나마 뉴 월드 덕분에 중산층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게임 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의 양상은 뚜렷해지고 있어,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제가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면 오늘 설아 씨의 말, 꼭 명심할게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바쁜 분을 괴롭힐 수 있나요.”

“하긴, 방송 중이면 힘들긴 하겠네요. 그땐 메시지를 남겨 두시면 되죠.”

“그렇게 할게요. 이제 그만 일어나요.”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뉴 월드 접속하실 거죠?”

“네. 설아 씨는요?”

“저도 저녁때까진 하려고요. 결계 보강도 끝냈고, 백작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 봐야죠.”

두 사람은 접속 방으로 향하다 말고 카페로 갔다.

지금 접속하면 너무 시간이 일러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가볍게 차를 마시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추측해 보았다.

‘백호가 말한 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조사를 하러 가 봐야 하나.’

이서우는 접속을 해서 결정을 내리기로 하고 접속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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