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레벨이 갑이다
101화
-서우 씨, 아무래도 저 엘프, 갈수록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네요. 차차툼바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서 더 그러네요.
-역시 아무래도 뭔가 세뇌를 당한 것 같아요.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특정한 상황이 되면 발동하는 그런 세뇌 말이죠.
-일리가 있네요. 아무래도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이서우는 동료들과 대화를 끝내고 피욘을 바라보았다.
“피욘 님, 아무래도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쉬고, 내일 다시 대책을 논의하죠.”
“아닙니다. 저는 어서 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한번 눈빛이 변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쉬자는 이서우의 말에 피욘은 거의 눈이 뒤집힐 정도로 돌변했다.
자꾸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자 이서우는 그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다.
퍽!
“윽.”
피욘이 기절했다.
이서우는 열심히 피욘을 살폈다.
‘마법사가 아니니 어떻게 세뇌를 푸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혹시 물약 제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약 제조가 상급이 되면서 다양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많아서 마나와 관련된 물약 외에는 살피지 않았는데, 피욘을 깨우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다.
‘이거 괜찮으려나?’
이서우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는 물약을 제조했다.
가장 핵심 재료가 활력차여서 다행히 만들 수 있었다.
완성이 된 뒤 그는 피욘을 깨워 활력차와 함께 청명단을 복용시켰다.
“으으으. 여기가 어디…….”
“정신이 듭니까?”
“누, 누구십니까? 아아아, 내 머리. 머릿속에 있는 이걸 좀……. 차차툼바 님, 죄인을 용서하시옵소서!”
퍽!
정신을 차리려는 것 같아 지켜보았는데, 또다시 세뇌가 발동한 것인지 차차툼바를 찾았다.
어쩔 수 없이 이서우는 다시 그를 기절시켰다.
“정신을 맑게 하는 약이었는데 소용이 없네요.”
“세뇌가 너무 강한 것 같아요. 그래도 힌트는 얻었네요.”
“머릿속에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까?”
“네.”
“방법이 있나요?”
“힐러들의 필살기 중에 모든 상태 이상을 낫게 하는 게 있어요. 그 어떤 독이나 정신이상 상태도 해결할 수 있죠. 머릿속에 뭔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분명 약물을 이용해 세뇌를 시켰을 거예요. 일단 한번 시도해 볼게요.”
이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설아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낮게 읊조렸다.
“정신을 속박하고 구속하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아라. 완전한 청명!”
주문과 함께 약간의 이 이설아의 손에서 생성되더니 피욘의 몸을 뒤덮었다.
밤이 어두워 멀리까지 빛이 보이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꽤 멀리 벗어난 터라 큰 문제는 없었다.
모든 정신계 이상을 치유해 주는 주문이 끝나자 이서우는 다시 그를 깨웠다.
“으으으으.”
피욘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여기는……. 헉! 누, 누구냐?”
“진정하세요. 제가 당신을 구했습니다.”
“구, 구했다고요? 으으, 머리가…….”
“심호흡을 하시고, 천천히 기억해 보세요.”
“마, 맞아요. 전 차차툼바의 종에게 붙잡혀서…….”
피욘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를 했다.
잠시 기다리자 피욘은 온전히 정신을 차렸다.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차차툼바의 종들이 우리 마을을 덮쳐 모두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세뇌를 당했죠.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돌아가야 합니다.”
“이대로 가시면 또다시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살아남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동료들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도 저기 있는 몬스터를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같이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정말, 정말 그렇게 해 주실 겁니까?”
“네. 그러니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네!”
이서우의 말에 그늘진 피욘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음이 진정되자 이서우가 말을 꺼냈다.
“저곳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요?”
“24시간 내내 운영이 되는 곳입니다. 2교대로 일을 하는데…….”
“2교대라면 다른 사람들이 더 있다는 건데, 어디에 있죠?”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곳의 감시는요?”
“워낙 고된 일을 하기에 감옥에 있는 시간에는 거의 잠만 잡니다. 감옥 자체도 워낙 튼튼해서 감시자가 별로 없습니다.”
피욘의 말을 들은 이서우는 힐러들을 쳐다보았다.
-설아 씨, 혹시 방금 사용한 스킬, 그거 단일 개체에만 적용되는 건가요?
-아니에요. 필살기여서 범위 스킬이에요.
-잘됐네요.
-하지만 밖에 있는 분들 모두에게 쓰기에는 부족할 텐데요.
-쿨 타임이 얼마죠?
-1시간이에요. 아,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언니, 설마…….
-그래, 그 스킬을 쓰면 돼.
-방법이 있나요?
-네. 쿨 타임을 없애 주는 필살기가 하나 있거든요. 그걸 쓰면 돼요.
-좋습니다. 그럼 1시간 뒤에 움직이는 것으로 하죠.
-네.
대화를 끝낸 이서우는 피욘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전달한 뒤 기다렸다.
피욘은 과연 이서우가 말한 방법이 통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청명의 재시전 시간이 돌아오자 이서우는 피욘을 따라 지하 감옥이 있는 곳으로 갔다.
“미처 말씀을 못 드렸는데, 입구가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빠져나올 시간은 충분합니다. 일단 가시죠.”
“네.”
피욘이 조심스럽게 앞장섰고, 다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저곳입니다.”
“제가 먼저 들어갈 테니, 동료들과 바로 따라 들어오십시오.”
“네.”
목소리를 죽인 채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이서우는 속전속결로 마무리하기 위해 대검에 마나를 잔뜩 쏟아부었다.
쉬익!
이서우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바람 소리가 가볍게 났을 뿐인데, 그의 몸은 이미 지하 감옥의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푹! 푹!
대검으로 급소만 노려 2미터가 넘는 몬스터를 처치했다.
생긴 것은 오크와 비슷했으나, 돌연변이였다.
시스템 메시지가 돌연변이 오크라는 것을 친절히 알려 주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돌연변이 오크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벽에 세워 두었다.
혹시라도 다른 몬스터가 멀리서 봐도 의심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일시적인 것이겠지만 잠깐의 시간을 버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거대한 감옥이 있었다.
수천 명을 가둬 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감시자들이 몇 명 보였다.
이서우는 또다시 바람처럼 다가가 일격에 돌연변이 오크를 처치해 버렸다.
감옥 문을 모두 따고는 포로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엘프도 있고 인간도 있었다.
더러는 키가 인간보다 20센티미터 정도 작은 근육질의 사내들도 있었는데, 피욘은 그들을 드워프라고 했다.
최대한 한곳으로 모은 뒤 힐러들이 자리를 잡고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어리둥절한 상태였던 포로들이 괴로워하며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목을 옥죄고 있는 자물쇠들을 풀었다.
넷이서 하기에는 벅찬 일이었지만 정신이 돌아온 이들이 돕자 금세 마무리되었다.
이서우는 신속히 그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그럼 이들을 인솔해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움직이세요.”
“네!”
피욘은 포로들을 데리고 미리 피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그때였다.
뿌우우우우! 뿌우! 뿌우! 뿌우!
절반 정도가 빠져나갔을 때였다.
“오빠, 놈들이 알아차렸나 봐.”
“걱정 마. 반 이상 빠져나갔으니 시간은 충분히 있어.”
“하지만…….”
“걱정 마시고 얼른 벗어나세요!”
“네!”
주춤거리는 이들을 다그치자 포로들이 속도를 높였다.
이서우는 힐러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현아와 민아 씨는 저들을 보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오빠!”
“놈들은 분명 도망자들을 따라갈 거야. 힘을 어느 정도는 찾았지만 그동안 워낙 고된 일을 해서 상대하기 쉽지 않아. 그러니 어서 서둘러! 민아 씨도요!”
“네? 네. 부디 조심하세요. 언니도요.”
“오빠, 언니, 조심해야 돼!”
조현아와 이민아가 포로들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이설아가 이서우에게 말했다.
“물귀신 작전 제대로시네요.”
“물귀신이 되기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포로들과 합류하셔도 됩니다.”
“에이, 그럼 섭섭하죠. 한바탕 놀아 봐요, 우리!”
“좋죠.”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는 이서우를 보며 이설아는 이 재밌는 상황을 왜 내팽개치냐는 듯 대답했다.
이서우는 몬스터들에게 달려가며 백호를 소환했다.
-백호야, 주변에 사냥감들 보이지?
-네. 아주 바글바글하네요.
-그동안 굶주렸으니 실컷 놀아 보자.
-제가 더 많이 잡으면 주인님 피 한 번 빨게 해 주시나요?
-아직도 나에게 줄 게 남았어?
-아뇨. 그냥 주인님 힘 한번 써 보려고요.
-난 손해 보는 짓은 안 한다.
-역시 주인님이셔.
백호와 농담을 할 정도로 이서우는 여유가 있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들과 싸워서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서우는 몰려드는 몬스터에게 뛰어들었다.
거침없이 대검을 휘두르며 돌연변이 오크들을 쓸어 갔다.
한창 전투에 매진하는데, 이설아가 귓말을 보냈다.
-서우 씨, 독을 쓰는 놈들도 있어요.
-오크 주제에 별 희한한 놈도 다 있군요.
말하기가 무섭게 독 안개가 이서우와 이설아를 덮쳤다.
“모든 상태 이상을 치유하라. 정화!”
이설아의 주문과 함께 일시적으로 독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둘은 서둘러 독 안개를 벗어났다.
기세등등하게 적을 맞았던 돌연변이 오크들은 시간이 갈수록 절망감에 빠졌다.
뿌우! 뿌우우! 뿌우!
또다시 뿔피리 소리가 허공을 때렸다.
그러자 돌연변이 오크들이 갑자기 후퇴하기 시작했다.
“서우 씨!”
“네, 봤어요. 가죠! 백호야, 서둘러!”
“네, 주인님.”
패배를 직감한 돌연변이 오크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질 것 같으니 노예들을 다 죽이려는 것이었다.
이서우는 미친 듯이 내달렸다.
하지만 후방에 있던 돌연변이 오크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아!”
포로 중 몇몇이 돌연변이 오크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러자 지켜보던 이설아는 탄식을 터트렸다.
이서우는 대검을 움켜쥔 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뒤쫓았다.
언제든 공격할 수 있게 마나를 잔뜩 담은 채였다.
한데, 평소와 달리 온몸에 마나가 충만한 기분이었다.
은은한 빛이 이서우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그러고 잠시 후, 이서우는 뭔가에 홀린 듯 허공에 대검을 휘둘렀다.
뒤를 바짝 쫓던 이설아는 대체 이서우가 뭘 하려는지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을 바짝 쫓아도 모자랄 판에 왜 허공에다가 공격을 하는 것일까.
의문도 잠시,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 저게 대체…….”
이설아는 똑똑히 보았다, 이서우가 허공에 휘두른 대검이 어떤 놀라운 일을 만들어 냈는지를.
너무 놀란 이설아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서우가 보여 준 놀라운 광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