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레벨이 갑이다
106화
‘이런 미친. 아이템 하나 가격이…….’
이서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격에 조각상이라도 된 듯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목걸이는 무기보다 더 비싼 값에 팔렸다.
유일 장비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지만 최상급 옵션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무기와 달리 액세서리는 모든 딜러들이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 더 심해져 비싼 값에 팔린 것이었다.
이서우는 1퍼센트의 수수료를 제외하고 모든 금액을 계좌로 쏘았다.
118억 8천만 원.
목걸이가 팔리고 이서우가 얻게 된 돈이었다.
아이템 2개로 그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생각을 바꾸자. 아끼는 것도 좋지만 쓸 때는 써야 해. 그러려고 돈 버는 거잖아?’
처음 돈이 생겼을 때는 필요한 것만 사고 부모님의 의견대로 진득이 모아 둘까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돈이 없어 하지 못했던 것, 아이쇼핑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들을 해 보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돈을 흥청망청 쓰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원하던 것을 누리고 싶은 욕구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게다가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여력이 되는데 말이지.’
이서우는 지나치게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건 해 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경매장 창을 닫았다.
‘아차차, 비약도 올려놔야지.’
이서우는 하급 마나 비약을 올렸다.
시작가는 5골드. 경매 시간은 현실 시간으로 하루.
10골드 이하가 되면 팔지 않도록 설정해 두었다.
시험 삼아 파는 것이어서 100개만 올렸다.
볼일을 끝낸 이서우는 약속 장소로 갔다.
“일찍 와 계셨네요?”
“네. 장비 수리 좀 하고, 전투 보조 아이템만 사고 바로 왔거든요.”
“아, 장비 수리 깜빡했네요. 잠시 다녀올게요.”
“네. 가까우니 얼른 다녀오세요.”
이서우는 가죽 공예사를 찾아가 말끔히 수선을 했다.
“혹시 휴대할 수 있는 수선용 도구는 없나요?”
“가죽 수선 키트가 있기는 해요. 가격은 좀 비싸지만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죠.”
“그거 10개만 주세요.”
“어디 멀리 장기 여행을 가시나 봐요?”
“넉넉히 사 두려고요.”
“아, 그러셨구나. 1천 골드예요.”
“헉! 그렇게나 비싼가요?”
“휴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죠. 어디를 가시는지 모르지만 수선할 수 없는 곳일 텐데, 다시 돌아오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요?”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그렇게 주세요.”
“네. 특별히 수선비는 빼 드릴게요.”
“네. 수고하세요.”
수선 키트는 정가가 형성되어 있어 어디에서 사나 마찬가지였다.
이서우는 이설아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이거 한 잔 드세요.”
“잘 마실게요.”
“한데, 현아가 안 오네요.”
“일단 주점에서 좀 기다리죠.”
“네.”
새벽 시간이어서 둘은 주점으로 갔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안쪽 자리에 앉았다.
“약속을 어길 애는 아닌 것 같았는데, 집에 다른 일이 있는 거겠죠?”
“다른 약속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별다른 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백작 성에서 소식이 오기 전까지 안 오면 그냥 우리끼리 출발하는 걸로 해요. 나중에 민아와 같이 오라고 해야죠, 뭐.”
“네. 약속은 약속이니 그렇게 해요.”
두 사람은 의견 일치를 보았다.
둘 다 약속을 중요시하기에 쉽게 합의가 된 것이다.
“참, 설아 씨, 길드에 대해 좀 알려 주세요.”
“길드요?”
“네. 제가 혼자서만 사냥을 하다 보니 길드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요.”
“드디어 서우 씨도 길드에 관심을 가지시는 거예요?”
“아뇨. 전 쭉 이런 식으로 플레이할 거예요. 단지 나중에 하이 레벨 지역이 공개될 때를 대비해서 알아 두려는 거죠.”
“미리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혹시 궁금한 거 있으세요?”
이서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물었다.
“랭킹 1위가 어딘가요?”
“가장 강력한 길드는 뭐니 뭐니 해도 헤라클레스예요.”
“헤라클레스요?”
“네. 이름처럼 아주 강력한 집단이에요.”
“전신이 길드 마스터인가 보죠?”
“아니에요. 전신은 잠깐 길드에 몸담았다가 지인들과 같이 파티만 해요. 레이드 몬스터만 그룹으로 사냥하고, 대부분 홀로 지내죠.”
“그렇군요. 그래도 랭킹이 높은 유저들이 꽤 많이 모여 있겠네요.”
“네. 2위부터 100위까지 중 절반 가까이가 헤라클레스인걸로 알아요.”
“강한 이유가 있네요.”
“하지만 최근 너무 랭커 위주로 지원을 한다는 비난을 사서 신규 유저들이 가입을 꺼려 하죠. 그 기회를 틈타 스페셜 길드가 바짝 추격 중이에요. 고렙, 저렙 할 것 없이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어요. 파티 사냥 위주로 던전만 공략하면서 길드원들에게 장비도 팍팍 지원하고 있고요. 하지만 장비만 지원받고 튀는, 일명 먹튀를 하는 사람은 살생부에 올라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길드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고가의 장비를 풀 세트로 지원하는데 배신을 하면 누구나 열 받죠. 그리고 두 길드는 경쟁이 치열해서 신경전도 장난이 아닌 걸로 알아요. 언젠가 한 번은 길드전이 벌어질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니까요.”
“아직 올릴 레벨도 많은데 벌써부터 전쟁이라니.”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어리석은 일이죠. 그나마 본인들도 그걸 어느 정도는 인지하는지 꾹 참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3차 전직 유저가 많이 나오면 깨질 거예요. 피 터지는 혈투가 벌어질걸요.”
이서우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먼데 치고받고 싸울 생각부터 하는 길드들이 한심해 보였다.
“그 외에 주목해야 할 길드는 없나요?”
“3등부터는 조금 차이가 나서……. 문제는 전신이에요. 랭킹 1, 2위 길드가 점점 성장해 3차 전직 유저를 대거 배출하면 전신도 혼자서는 힘들 거예요.”
“길드 단위로 견제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아직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여튼 두 길드 모두 전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1등은 언제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렇긴 한데, 그것보다 전신의 행동 때문에 그래요.”
“행동요?”
“네. 전설 장비를 먼저 가지겠다고 길드를 협박한 걸로 알아요. 레벨이 낮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전신에게 굽신거렸지만, 3차 전직 유저만 좀 생겨도 전신이 불리해요.”
“이벤트 때 전설 무기와 목걸이를 얻어서 웬만해서는 전신을 이길 수 없을걸요.”
“네. 그들도 그걸 알죠. 그래서 전설 무기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요. 아마 조만간 중간 옵션의 전설 장비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할 거예요.”
“3차 전직 이후에는 아마도 풀리게 되겠죠.”
“네.”
이서우는 두 길드의 이름을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길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뉴 월드도 갈수록 길드 위주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길드의 동향에 대해 미리 알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맥주잔을 기울이며 새벽이 깊어질 때까지 대화의 꽃을 피웠다.
* * *
“후작 각하, 부르셨습니까.”
“그렇소. 내 긴히 이야기할 것이 있어 오라고 한 것이오.”
“경청하겠습니다.”
“그대가 모험가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소.”
“후작 각하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구합니다.”
“나와 비교하기 위함이 아니오.”
화려한 자리에 앉아 근엄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카이젠 제국의 쿠아노 후작이었다.
“어느 정도인지 말해 보시오.”
“쓸 만한 인재는 1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꽤 되는구려.”
“과찬이십니다, 후작 각하.”
“뭐, 어차피 모험가가 10만이든 100만이든,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상관없소.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그러오.”
“부탁이라고 하시면…….”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게 있소.”
“말씀하십시오.”
“만약 내 부탁을 듣게 된다면 비밀은 반드시 지켜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그대와 나 사이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날 것이오. 또한 지금까지 얻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오.”
“결코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대는 믿지만 그대를 따르는 자들도 과연 믿을 수 있다고 여기시오?”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추리겠습니다.”
“몇 명이나 되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100명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오.”
쿠아노 후작은 미소를 지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조세프 백작에 대해 아시오?”
“스치듯 들은 기억은 있습니다.”
“조세프 백작의 영지에는 대귀족 몇몇만 알고 있는 비밀 지역이 있소.”
“비밀 지역이라고요?”
“그렇소. 그곳에서 최근 놀라운 발견을 했다더군.”
“놀라운 발견이라면…….”
“외형은 같은데 이곳에 사는 몬스터보다 몇 배, 혹은 몇십 배 강한 녀석들이 있다고 하오.”
“네?”
“나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소. 하지만 그분들이 직접 하신 말씀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소.”
“그분들이라면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헤라클레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배상철이었다.
170레벨을 넘기면서 후작과 인연이 되어 이렇게 독대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이서우가 광렙을 하는 사이 전신은 벌써 200레벨에 도달했고, 배상철도 190레벨대가 되었다.
레벨이 잘 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찰나 쿠아노 후작의 호출이 와서 서둘러 달려온 것이었다.
한데,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이야기를 후작은 꺼내고 있었다.
공작이나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했으니 신뢰도는 확실했다.
‘대박 퀘스트 하나 받는 건가. 100명 정도 참여시키면 1인당 1만 골드 정도만 받아도 50억은 되네. 퀘스트 내용에 따라 금액을 올리면 한 번에 100억 이상을 벌어들일 수도 있어. 그리고 이걸로 방송사와 딜을 한다면……. 흐흐흐,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배상철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후작의 말이 이어져서 얼른 웃음기를 지웠다.
“그분들께서 언급하셨다면 확실하다는 뜻. 그래서 그대를 부른 것이오. 약 한 달 뒤 그곳으로 1천여 명의 병력을 지원하기로 했소. 하지만 워낙 강력한 몬스터들이 사는 곳이기에 평범한 실력을 가진 자들은 결코 보낼 수가 없소. 황제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은밀히 나를 포함해 셋에게만 언질을 하셨소.”
“추가 병력으로 보낼 인재들을 뽑으라는 말씀이셨겠군요.”
“바로 그렇소! 하나, 엘사둔 제국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많은 병력을 보낼 수가 없다는 게 문제요. 황제께서는 500명의 소드 익스퍼트 초급 이상의 기사들을 보내라고 하셨소.”
“소드 익스퍼트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인재들인데, 500명이나 지원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만큼 위험한 곳이어서 그렇소. 사실 그 2배의 인원을 보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모험가들을 포함시키기로 한 거요. 가능하겠소?”
“무슨 일이든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아주 좋은 대답이오. 그럼 철저히 준비를 하시오. 가야 될 때가 오면 일러 주겠소.”
“네, 후작 각하.”
“참, 다른 모험가도 참여할 수 있으니 마찰이 없도록 하시오.”
“세 분께 은밀히 말씀하셨다면 저를 포함해 세 곳이겠군요.”
“그렇소. 규모도 비슷할 것이오.”
“아무 마찰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럴 거라 믿소.”
배상철은 깊이 몸을 낮추고는 조심스럽게 후작의 거처를 빠져나왔다.
돌아가자마자 그는 곧장 길드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일단 간부들에게 스페셜 길드와 명품 길드의 동향을 철저히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후작이 한 이야기를 20명의 핵심 간부들에게만 말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핵심 간부들은 배상철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믿을 만한 녀석들로 다섯 사람씩만 추천하라고 했으니 추천권을 장당 5억 정도에만 팔아도 대박이겠어. 그리고 방송사에 이 정보를 팔면 수십억도 내려고 하겠지. 이참에 한몫 단단히 잡아야 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를 비롯해 핵심 간부들은 돈 벌 궁리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