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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07화 (107/341)

# 107

레벨이 갑이다

107화

결국 조현아는 아침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기사가 이서우를 찾아와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은 백작 성으로 갔다.

“이럴 때는 정말 몸이 2개였으면 싶다니까.”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렇다네. 귀족이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 자네는 좀 쉬었는가?”

“적당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험한 길을 가야 하니 잘 쉬어야지. 이번에는 힐러 1명만 동행을 하는가 보군.”

“동료들은 한 달 뒤 추가 병력 파견에 맞춰 올 것입니다.”

“그렇구먼. 한데, 꼭 할 말이 있다고?”

“네. 솔직히 이걸 말씀드리는 게 죄송스러울 정돕니다.”

“무슨 일인데 시작부터 그렇게 무게를 잡는 건가?”

조세프 백작은 약간 굳은 얼굴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이서우는 덤덤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곳에는 생각보다 아주 강력한 존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건 이미 아는 바가 아닌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제가 1대1로 당해 내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가 있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네.”

“어찌 그런…….”

조세프 백작은 이서우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몰디나와 아리아를 만나고 순식간에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잘 알고 말이다.

더군다나 최근 사이먼의 서신에는 이서우가 마나 블레이드, 혹은 오러 블레이드라 불리는 기술을 사용했다고 언급이 되어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는 소드 마스터 다음의 경지로, 제국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숫자밖에 없다.

그야말로 실력자 중의 실력자라는 뜻이다.

한데, 그런 이서우가 당해 내지 못할 존재라니.

하지만 이어진 이서우의 말에 조세프 백작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그런 자가 수백수천이나 있고, 그보다 더 강한 존재도 수십이나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을 통치하는 존재가 일곱이고, 그 일곱을 다스리는 존재가 셋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종속자급을 처치하는 데도 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조금 더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그자의 실력만 놓고 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깁니다.”

이서우는 신이라고 불린 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종속자인 도비드를 직접 경험하면서 관리자나 통치자, 지배자, 절대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했지만, 신이라니.

존재 여부를 확실히 파악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추가 인원을 겨우 지원받았는데, 아예 철수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먼.”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당장 강자들이 올 확률은 희박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위험할 때를 대비해, 마을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바로 모험가들에게 개방해 버리면 됩니다.”

“그건 그러네만, 황제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네.”

“그 말씀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걸 최대한 얻겠다는 뜻이지. 물론 위기의 상황이 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모험가들에게 공개하겠지만, 그 시기가 그리 가깝지는 않을 것이네.”

이서우는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비밀을 지키기로 했기에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유저들에게 알려야 했다.

“저도 그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자칫 욕심을 부리다가는 이곳까지 밀리는 수가 있습니다.”

“결계가 있지 않나.”

“제가 볼 때 저를 상대한 종속자 10명만 있어도 결계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고, 그들 위의 존재인 관리자 그룹 중 1명만 나서도 허무하게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

백작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단 1명으로 그들이 위대한 존재라 여기는 몰디나와 아리아의 힘을 깨부술 수 있다니.

“종속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관리자는 솔직히 저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한 달만 참아 주게. 한 달 후면 황궁에서 보내는 추가 인원과 함께 자네처럼 모험가들 중 뛰어난 자들도 300명이나 합류한다네.”

“네?”

“아, 내가 너무 바빠서 소식을 전하지 못했나 보구먼. 다른 대귀족들에게도 나처럼 자네 같은 존재가 있다네. 황제께서는 그들 중 강한 모험가들을 적극 활용하라고 하셨네. 물론 철저히 비밀을 지켜야 하지. 안 그랬다가는 모든 걸 잃고 말 테니.”

이서우는 설마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그곳을 공개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300명이니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서우의 우려를 알았는지 백작이 추가로 덧붙였다.

“자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충분히 알겠네. 하지만 그들 또한 비밀 엄수를 약속했네. 괜히 발설했다가 모든 걸 잃을 수 있으니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네.”

“……네.”

뉴 월드에서는 섣불리 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들이 현실에서 떠들어 대면 낭패다.

‘분명 그런 놈들이 나올 거야. 그렇게 되면 하이 레벨 지역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야.’

이서우의 고민은 깊어졌다.

하지만 백작의 앞에서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참, 백작님. 300인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떻게 구성되는 인원인가요?”

“공작가 한 곳, 후작가 두 곳에서 각각 100명씩이네.”

“모험가들 중에서도 아주 강한 사람들이겠군요.”

“강한 집단도 있고, 우연한 기회에 대귀족과 친해져 온 곳도 있네. 그래도 모함가들 중에서는 확실히 강한 집단이기는 하지. 100명은 아마 그들 단체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들이 아니겠나.”

“그렇겠지요.”

이서우는 백작의 말에서 공작가나 후작가가 대형 길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이 레벨 지역으로 많은 유저들이 오면 길드들이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앞당겨질 줄이야.’

이번 일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모든 유저들이 알아서 한꺼번에 몰려와야 소수가 이득을 독차지하는 구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추가 지원되는 동안 자네는 거기서 사냥을 하겠지?”

“또 안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변을 살펴봐야죠.”

“꼭 그래 주게. 한 달 뒤에 육로로 올 테니 오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한 달 보름 정도가 걸리겠지. 이곳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하이 레벨 지역으로 가는 데까지는 넉넉잡아서 두 달이면 될 것이네. 그동안 자네가 있어 준다면 안심이 되지, 암.”

조세프 백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서우를 붙잡아야 했다.

300인의 뛰어난 모험가들이 더 온다고 했지만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서우뿐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추가 인원을 보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닐세. 100명 정도 보낼 것이네. 지금 밖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네. 그럼 전 그들을 인솔해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게.”

이서우는 추가 인원을 데리고 이설아와 함께 다시 하이 레벨 지역으로 넘어갔다.

이제는 머드 맨도 일절 나타나지 않아 가는 동안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중간쯤 갔을 때 이서우가 이설아를 불렀다.

“설아 씨.”

“네?”

“아무래도 알려지겠죠?”

“네. 3명이었는데도 서우 씨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300명이면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해 무조건 알려질 거예요.”

“어떤 식으로 알려지게 될까요?”

“저도 그 문제로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루트는 뻔해요. 온라인 공간이나 방송사. 파급효과가 큰 건 이 두 곳밖에 없어요.”

“개인 방송은요?”

“영향력 높은 사람이 없어요. 많아도 100만 단위인데, 방송은 천만 단위를 넘으니 게임이 안 되죠. 물론 이런 것들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그거야말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니겠죠.”

“그렇군요.”

뉴 월드에서 한 달 보름이면 현실에서는 여드레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늦어도 두 달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두 달이라고 해도 열흘 정도여서 긴 시간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 그 안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설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서우 씨 같은 경우가 발생했을 때예요.”

“저 같은 경우라뇨?”

“권안나는 결국 돈 때문에 절 찾아온 거였어요. 300인의 모험가들이 만약 이 정보를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이용하려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팔려고 하겠죠.”

“네. 아마도 방송사에 엄청난 액수를 요구할 거예요. 경쟁 방송사들이 있으니 서로 경쟁을 붙여서 최대한 비싼 값에 팔려고 할 거고요.”

“방송사들만 죽어나는군요.”

“네. 그 틈에 300인 중 몇몇은 엄청난 이득을 차지할 테고요.”

이설아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기득권층의 생리를 너무 잘 안다.

그들은 이익을 남들과 나누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데 누가 그것을 좋아할까.

이서우는 그런 자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이득을 나눠 주자는 주의도 아니었다.

그게 가능하지도 않고 말이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드 간의 반목이 심해져서 엄청 혼란스러워지겠죠. 솔직히 서우 씨나 저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특별히 상관없어요. 이래도 이득, 저래도 이득이니까요. 하지만 전 뉴 월드가 갑작스럽게 혼란스러워지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져야죠. 뭐, 그래 봐야 레벨 높은 사람이나 템발이 좋은 사람들이 더 앞서가겠지만.”

“그래도 정보라도 공평하게 알리면 엉뚱하게 이득을 보는 사람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죠. 아마 300명 중에 벌써부터 돈 냄새를 맡고 계획을 세우는 놈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놈만 차단할 수 있어도 성공한 거죠.”

“네.”

이서우는 고민이 앞섰다.

어차피 하이 레벨 지역이 알려져도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사냥하는 곳이 전혀 다를 테니 부딪칠 일이 없고, 부딪칠 일이 없으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채웠다.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 할 것 같네요.”

“네? 서우 씨가 나서다뇨?”

한참 말이 없다가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내자 이설아는 무슨 말인가 했다.

“설아 씨가 절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도움이야 드리는 거지만, 뭘 하시려고…….”

“공개해야죠.”

“방송에 나오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아뇨. 현실에서는 나갈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비밀을 누설했다가는 모든 걸 잃으실 텐데요?”

“걱정 마세요. NPC들이 먼저 알리자고 하면 문제없어요.”

“백작의 태도를 보니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

“제게 방법이 있으니 그 점은 염려 마세요.”

“그 부분을 말끔히 해결하신다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오히려 제가 바라던 거니까요.”

“네. 그럼 시기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네!”

이서우는 결국 뉴 월드에서 방송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을에 도착한 이서우는 곧장 이설아와 함께 사냥에 나섰다.

4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사냥을 했다. 정말 한시도 쉬지 않았다.

이설아는 이렇게 미친 듯이 사냥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지만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워했다.

이서우는 2레벨이 올랐고, 이설아는 4레벨이 올랐다.

마을로 와서 접속을 종료한 두 사람은 간단히 요깃거리를 먹고는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반이었다.

이후 이서우는 열심히 가상현실에서 상가 매물을 찾기 바빴다.

다음 날부터 이서우는 풀 접속 시간을 채우며 사냥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209레벨이 될 수 없었다.

이서우는 이설아와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접속 방에서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상가 매물과 집을 알아보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와 같은 패턴으로 나흘을 더 내리 사냥을 하고서야 이서우는 209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냥에 매진할 때 이서우는 사이먼 자작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공개를 설득하기 위해 일부러 아주 강한 녀석에게 갔다.

다른 종속자가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사이먼은 거의 죽을 뻔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이먼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그가 직접 백작에게 서신을 보냈고, 백작은 심각함을 느끼고 황제에게 강력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조세프 백작의 노력으로 드디어 이서우는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비밀 서약의 효력은 사라졌다.

추가 인원이 출발하기로 한 날은 현실 시간으로 하루가 남았다.

하지만 오는 데 시간이 며칠 걸리기에 사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이제 계획했던 바를 실행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야, 이설아!”

“왜?”

“너 요즘 아침 일찍 나가서 왜 자꾸 늦게 들어와?”

“그럴 일이 있어.”

“그럴 일이고 자시고, 지금 방송국에서 얼마나 쪼아 대는지 알아? 이러다가 네 입지가 와르르 무너진다고!”

“내가 말했지? 앞으로는 방송 하나만 한다고.”

“야, 지금 다른 방송국 움직임이 어떤 줄 알아? 뭔가를 계획하는지 엄청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단 말이야. 한데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눈만 껌뻑이고 있어. 이러다가 큰 이슈 터져서 시청률 뺏기면 어쩔 거야?”

“알아서 하라고 해. 내 생각은 변함없으니까.”

이설아는 이준민이 뭐라고 하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원래 애초부터 조건이 일주일에 방송 한 번이었다.

뉴 월드가 얼마나 인기를 끌지 몰랐고, 이슈가 될지 몰라 여지를 두기는 했지만, 결정 권한은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있었다.

시청률을 끌어 올리다 보니 욕심이 나서 그녀를 닦달해 지금에 이른 것이지, 그녀가 꼭 중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송을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지금 조 PD가 너 벼르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도 찾았나 봐?”

“그런 것 같던데?”

냉랭한 이설아를 긴장시키려고 이준민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하지만 이설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뭐, 알아서 하라 그래. 아니, 이참에 개인 방송을 해 볼까?”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왜? 한 1천만 명쯤 보게 만들면 되잖아.”

“헐. 1천만 명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이냐? 몇 년을 고생한 사람도 겨우 100만 단위다.”

“왜? 나도 5년 동안 엄청 열심히 했잖아.”

“방송이니까 보는 거지, 개인 방송은 다르다고.”

“다를 게 뭐가 있어. 어차피 방송은 방송인데.”

이설아도 차이점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못 할 게 뭐야 하는 마음이 강했다.

아마 1년 전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이참에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쪽으로 가야겠어. 동영상 플랫폼도 짱짱한 데 몇 군데 있으니까.”

“반짝 인기는 있겠지. 하지만 지속이 가능할 것 같아?”

“난 인기에 연연할 생각 없는데? 그냥 뉴 월드를 진심으로 즐겨 보려고. 내가 즐기는 플레이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게 더 즐거울 것 같아.”

“너 요즘 밖으로 돌더니 뉴 월드 하고 있었던 거냐?”

“그건 오빠랑 상관없는 일이야.”

“야, 너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그렇게 개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걸 지금 다 팽개치겠다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이준민은 화가 나서 그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이설아와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그가 동생에게 목소리를 높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설아가 너무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일을 하려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오빠, 난 이제 이런 아바타 같은 생활 지겨워. 남들에게만 즐거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

“그거야……. 됐다. 어차피 네 고집을 어떻게 꺾겠냐.”

이설아의 진심이 담긴 말에 이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려는 일을 인정해서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표정을 지으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끈은 남겨 두고 싶었다.

“일단 조 PD와 이야기해 봐.”

“나 시간 없어.”

“내일 아침 일찍 약속 잡아 놨으니 이야기나 해 봐. 오빠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알았어. 몇 시야?”

“9시.”

이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방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준민은 눈을 떼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말이다.

한참을 응시하던 이준민은 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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