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레벨이 갑이다
121화
흔적을 뒤쫓고 있는데 김소연에게서 귓말이 왔다.
-서우 씨, 접속했어요.
-일단 파티 드릴게요.
-얼음공주 님이 파티에 참여하셨습니다.
-팀장님?
-네.
-캐릭터 이름이 멋지시네요.
-제 별명이랍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요.
-좀 지내다 보면 제 진면목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설아와 잠깐 대화를 나눈 김소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이서우는 급한 일이 생겨 마중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제가 직접 찾아가도록 할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서우 씨 이름을 대면 되죠?
-네.
김소연은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곧장 성벽으로 갔다.
“오늘은 입장이 마감되었소. 내일 다시 오시오.”
“이서우 씨가 절 보내셨어요.”
“지금 이서우라고 하셨소?”
“네.”
“잠깐 기다리시오.”
경비병은 얼른 상사에게 이서우를 찾아온 여인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는 급히 결계를 지키는 마법사에게 전달했고, 마법사는 사이먼 자작에게 통신을 넣었다.
-그 여자를 일단 잡아 와라.
“네? 네, 자작님.”
마법사는 경비병에게 자작의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자 기사들과 경비병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김소연에게로 갔다.
“반항하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순순히 따라와라.”
“무슨 일인가요?”
“따라와라.”
김소연은 갑자기 경비병들이 자신을 포박하자 무슨 일인지 의아했다.
얼른 파티 채팅 창을 열었다.
-서우 씨, 저 경비병들에게 포박당했는데요?
-네?
이서우는 열심히 생존자들을 쫓다가 깜짝 놀라 멈추고 말았다.
이설아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팀장님, 포박을 당하다니, 무슨 말씀이신가요?
-모르겠어요. 서우 씨의 이름을 대니 기다리라고 하더니 포박하던데요?
-다른 말은 없고요?
-네, 일단은요. 근데, 절 마을 안으로 데려가네요.
-그럼 일단 따라가 보세요. 누구에게 데려가는지 확인하시고 다시 채팅 주세요.
-네.
이서우는 다시 흔적을 쫓았다.
“오빠, 괜찮을까?”
“우리 동료라고 하면 알아들을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오자마자 신고식 제대로 하시네.”
“그나저나 추가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할 텐데.”
“적에 대한 흔적은 아직 없어?”
“생존자들의 흔적이 워낙 뚜렷해서 잘 보이지가 않아.”
이서우는 누구에게 추적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내려 했지만 도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은 소수라는 뜻이야. 적은 인원을 피해 달아났다는 건 추적자들이 꽤 강하다는 거고.”
“그러면 더 큰일이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더 이상 피해가 없다는 거야.”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나도 그 점이 의문이긴 해. 일단 생존자들을 찾으면 답이 나오겠지.”
이서우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시간을 끌수록 생존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한창 흔적을 따라가던 중 막다른 벽을 만나고 말았다.
“오빠, 여긴 호수인데?”
“뭐지? 분명 이곳으로 흔적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서우는 혹시나 싶어 호수 안까지 살펴보았지만 생존자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호수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이 주변에는 더 이상 흔적이 없어.”
“어떻게 된 걸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늘로 솟은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추적자들의 흔적은 없어?”
“생존자들의 흔적 위로 신중히 움직인 것 같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난처해하고 있는데 김소연에게서 채팅이 왔다.
-서우 씨, 사이먼 자작이라는 사람과 대면 중이에요.
-그래요? 뭐라고 하나요?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조금 전에 서우 씨를 찾는 자가 있었는데 나쁜 놈이었다네요. 돈을 노리고 서우 씨를 찾아서, 고문하고 죽였대요. 그래서 저도 그런 나쁜 년이 아닌지 확인해야겠다는데요.
김소연은 마치 남의 일처럼 너무 덤덤하게 말했다.
-팀장님, 지금 위성도시를 짓기 위해 와 있는데, 습격자가 있으니 생존자들을 찾고 싶으시면 당장 보내 달라고 하세요. 의심스러우면 기사들을 동행해도 된다고 하시고요.
-네.
김소연은 이서우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자 사이먼 자작이 놀라서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오?”
“네. 전 그대로를 전달드리는 거예요.”
“위성도시에 관한 것은 그에게만 말했으니 정말 그의 동료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아직 모든 의구심이 사라진 건 아니니 기사들과 동행하도록 하시오.”
“네.”
사이먼 자작은 습격을 받았다는 게 신경 쓰여 기사와 함께 그녀를 보내기로 했다.
5명의 뛰어난 기사들이 그녀와 동행했다.
같이 파티를 한 상태여서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꽤 능력이 좋은 기사들이었기에 이동속도가 빨라 1시간 만에 이서우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위성도시에 있었다면 30분도 걸리지 않았겠지만, 생존자를 찾기 위해 먼 길을 이동한 터라 늦어진 것이다.
“서우 씨!”
“팀장님.”
“정말 은인님의 동료가 맞네요. 한데, 어찌 된 일입니까?”
“잠시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오니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시체만 있더군요. 100여 명 정도의 시체는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뒤쫓아 온 것입니다. 한데, 보시다시피 흔적이 호수에서 끊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혹시 호수 안에 있지 않을까요?”
“안을 살펴봤는데 없었습니다.”
“바닥까지 가 보셨나요?”
“바닥까지요?”
“네.”
기사의 말에 이서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많은 인원이 호수 깊은 바닥에 어떻게 피해 있는단 말인가.
하지만 기사의 이어지는 말에 이서우는 무릎을 탁 쳤다.
“일행 중 물의 엘프들이 있으니 많은 인원이라도 몇 시간 정도는 물속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제가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서우 씨, 그럴 필요 없어요. 제 소환수를 시켜서 확인해 볼게요.”
“그래 주시면 저야 좋죠.”
“네.”
김소연은 수룡을 소환했다.
3차 전직 유저에게 부여되는 강력한 소환수 중 하나였다.
수룡에게 명령하자 얼른 호수 밑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긴장한 채 생존자들이 있기만을 기다리는데 조금 전에 내려갔던 수룡이 금세 타나났다.
너무 빨리 나타나서 ‘설마 생존자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김소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사님 말씀처럼 밑에 생존자들이 있답니다.”
“휴우, 다행입니다. 그러면 제가 가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가야 안심을 할 테니까요.”
“네.”
미소를 지으며 하는 김소연의 말에 이서우를 비롯해 모두가 안도했다.
이서우는 망설이지 않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이곳에 와서 몇 시간을 잠수만 해서 자신이 있었다.
바닥까지 내려가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물의 엘프들은 많은 사람들의 호흡을 유지시키는 게 힘든지 표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
이서우가 가자 그들은 이제 살았다는 얼굴이었다.
물속이어서 대화가 힘들어, 이서우는 괜찮다며 위로 올라가자는 손짓을 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호수 밖으로 나왔다.
모든 생존자들이 나타나자 위성도시의 대표 둘이 나와 이서우 앞에 섰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게, 다크 엘프들이 나타났었습니다.”
“다크 엘프들요?”
“네.”
“아무래도 그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네요.”
“개척자 도시로 돌아가는 게 나을까요?”
“일단은 위성도시에 계세요. 곧 모험가들이 대거 몰려들 겁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안전은 보장될 테고요. 저와 동료들은 놈들을 뒤쫓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네. 그리고 기사님들은 돌아가셔서 자작님께 모험가들을 더 받아들이라고 해 주십시오. 위성도시가 당장은 제 역할을 못하겠지만 가볍게 휴식을 취할 정도는 되니 충분히 사람들이 몰려들 겁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도 안전하겠죠.”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일단 다시 돌아가도록 하죠.”
“네.”
이서우는 그들을 이끌고 습격을 받은 마을로 갔다.
시신을 정리하고 일부는 기사들과 함께 개척자 마을로 돌아갔다.
이서우의 말처럼 곧 유저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서우는 안심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빠, 한판 제대로 벌여 보게?”
“그래야지. 이참에 한 군데 더 정리하자.”
“한 군데를 더 정리하다뇨?”
“아, 팀장님은 이곳에 대해 잘 모르시죠. 여기는…….”
이서우는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을 했다.
정보를 다뤄야 하기에 비교적 그가 아는 대로 자세히 말해 주었다.
“역시 같이 파티를 하니 더 쉽고, 제대로 알게 되네요.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시는 건가요?”
“네. 생존자들이 가지 않았던 길에서라면 놈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봐야죠.”
“저도 도울게요.”
“소환수 중에 추적에 능한 녀석도 있나 봐요?”
“네.”
“참, 그러고 보니 저도 펫이 있네요.”
“아, 그 귀염둥이 말씀하시는 거군요.”
“귀염둥이요?”
“네. 서우 씨 팬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해요. 반짝반짝 하얗게 빛나는 털을 가지고 있어서 인기가 엄청 많거든요.”
이서우는 미소를 짓고는 백호를 소환했다.
하지만 전투 상황이 아니었기에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전투 상황이 아닌 게 아쉽네요.”
“나중에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죠.”
“네.”
이서우는 백호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미안하다. 그동안 조금 바빴다.
백호의 서운한 목소리에 이서우는 얼른 그를 위로했다.
하지만 백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 잊지 않고 계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걸요.
-그렇게 말하니 더 미안하잖아.
-아니라니까요. 앞으로 자주 불러 주시면 되잖아요.
-그래, 알았다. 자주 불러 주마.
이서우의 말에 백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씨익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렸다.
-한데 주인님,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불렀다. 너 혹시 다크 엘프 알아?
-알죠, 그 썩을 놈들.
-뭔가 또 안 좋은 과거가 있나 보구나.
-네. 그 이야기는 너무 기니까 다음에 해 드릴게요.
-그래. 지금은 그들을 찾는 게 우선이야.
-네. 희미하지만 냄새가 나니 충분히 찾을 수 있어요.
-지난번에도 널 부를걸.
-추적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절 부르셔야죠.
-그래. 꼭 기억해 두마.
능력이 없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고 백호를 자주 소환했겠지만, 혼자서도 뚝딱 해내니 자꾸만 잊어버렸다.
백호가 움직였다.
“지금 제 펫이 냄새를 찾았다고 하니 따라가 보죠.”
“벌써요?”
“네. 얘가 후각이 좀 예민하거든요.”
이서우가 백호를 바짝 쫓았고, 이설아와 김소연도 그의 뒤를 따랐다.
갈수록 백호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설아도 자신의 속도를 높여 주는 스킬이 있어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가장 부러운 것은 김소연이었다.
“소연 씨는 소환수가 참 많네요.”
“네. 뒤에 타실래요?”
“그래도 돼요?”
“네. 이 녀석이 여자를 좋아하거든요.”
“수놈인가 봐요?”
“아뇨, 암놈요.”
“아, 암놈인가요? 참 특이한 소환수네요.”
“호호호, 얼른 타세요.”
이설아는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에 올라탔다.
김소연의 소환수는 치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덩치는 3배 이상 컸다.
하지만 치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서우 씨, 속도를 더 높이셔도 돼요.”
“그래요?”
“네. 제 소환수가 꽤 빠르거든요. 최대 속도로 가셔도 돼요.”
“그러면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이서우는 백호에게도 그 말을 전달했다.
그러자 백호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추적을 하는 중이어서 최고 속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빨랐는데도 김소연의 소환수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이서우도 마나를 온몸에 두르며 속도를 높였다.
-백호야, 멈춰!
-네? 아, 네, 주인님.
백호는 흔적에만 집중했지만, 이서우는 보다 범위를 넓혀서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한데, 한참을 달리는데 멀리서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오빠?”
“아무래도 저 앞쪽인 것 같아.”
“땅의 소환수가 있으니 상황이 어떤지 보내 볼게요.”
“정말 다양한 소환수가 있네요. 이렇게 활용도가 높은데 왜 소환수가 푸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3차 전직까지 키우기가 힘들어서 그럴 거예요. 진짜 노가다 캐릭터거든요.”
“하긴, 그만큼 유용하니 키우기 힘든 것도 당연하겠죠.”
“네. 그럼 찾아볼게요.”
김소연은 땅의 소환수를 소환해 명령했다.
그러자 땅 밑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산 너머에 수십의 인원이 있고, 거기서 1킬로쯤 더 가면 마을이 있다네요.”
“마을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게, 3만 명 정도 수준은 된다고 하네요.”
“본거지는 아니겠군요.”
“네, 아마도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마을을 치면 분명 본거지에 말이 전달될 것이다. 그러면 기습은 물 건너간다.
그렇다고 마을을 그냥 지나치기도 애매했다.
그들이 본거지로 가는 동안 또다시 위성도시에 쳐들어가면 낭패였다.
고민하던 이서우는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