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레벨이 갑이다
122화
-팀장님, 육해공군 다 갖추고 계시네요?
-네. 3차 전직을 하니 소환 가능 숫자가 엄청 늘더라고요. 종류도 다양해지고요.
-파티가 필요 없겠네요.
-그렇지는 않아요. 숫자가 많은 대신 키우기가 힘들어서, 초반부터 함께 행동한 녀석들 빼고는 레벨이 아직 높지 않거든요.
-어쨌든 위성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니 참 편하네요.
-퀘스트 할 때 특히 유용하긴 해요. 앗, 찾았나 봐요.
마을 주변까지 접근한 터라 되도록 채팅 창을 이용해 대화 했다.
어떻게 마을을 살펴볼까 했는데 의외로 답은 쉽게 나왔다.
김소연은 높은 상공에 떠서 정찰이 가능한 소환수를 불렀다.
빠르게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지도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필수였다.
다행히 김소연의 활약으로, 위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어디인가요?
-가장 중심부에 있네요. 경계가 만만치 않다는데요?
-규모는요?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건물에 수천 명이 있다고 해요.
-숫자가 꽤 많네요. 다크 엘프는 보이나요?
-주로 인간들이고, 다크 엘프는 못 찾았어요. 아직 레벨이 낮아서 여기까지가 한계네요.
-흠, 그러면 팀장님이 소환수를 이용해서 마을을 좀 흔들어 주시겠어요? 그 틈에 제가 은밀히 접근해 볼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혼자라면 지옥이라도 들어갔다 나올 수 있어요.
-네. 그럼 신호를 주시면 소환수를 대거 풀어놓을게요.
-대거라면 얼마나…….
-그리 많지 않아요. 한 100마리쯤 되나?
-헉, 엄청난데요?
-레벨이 그리 높지 않아서 잠깐 시선을 끄는 정도일 거예요.
-그런 정도로도 충분해요. 그럼 위치를 잡고 신호를 드릴게요.
-네.
-오빠, 조심해.
-알았어. 너도 조심하고.
-응.
이서우는 조용히 자리를 떠 마을 근처로 이동했다.
주변에 감시자들의 눈이 꽤 있었지만 누구도 이서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이에요!
-네!
이서우의 신호에 김소연은 100여 마리의 공격용 소환수를 불러냈다.
그러자 마을이 난리가 났다.
이서우는 경계 인력이 마을을 지키려고 몰려 나간 틈을 타서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유저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자유도시가 아니고 몬스터들만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게다가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다들 그곳에 집중한 터라 이서우는 의외로 쉽게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붕으로 갈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위쪽은 적에게 발각되면 숨을 곳이 없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누비며 미리 언질을 받은 대로 마을 중앙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가면서 몇몇 감시자들을 만났지만 소리가 나지 않게 깔끔히 처리했다.
-서우 씨, 얼마나 남았나요?
-거의 다 왔어요.
-오래 버텨야 10분이에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네.
이서우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저기구나.’
딱 봐도 지도부가 사는 곳처럼 보였다.
화려하게 지어진 성으로 접근한 이서우는 가볍게 벽을 넘었다.
마을 안에 있다 보니 경계 인력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설마……!’
성안으로 들어온 이서우는 복잡한 복도를 누비고 있었다. 한데,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이서우는 그 기운을 따라갔다.
‘다크 엘프가 이곳에도 있을 줄이야. 여기에 대체 무슨 볼일이 있는 거지?’
가까이 갈수록 어둠의 기운이 확실히 느껴졌다.
‘지키는 놈들이 없다라……. 뭔가 은밀한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이서우는 혹시나 방을 지키는 자들이 있을 것이 염려되어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방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작업 진행률은 어떻지?”
“네. 그게,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느려. 조금 더 속도를 높여.”
“하지만 최근 이상한 놈들이 출몰한다는 보고에, 경계 인력을 많이 뺀다고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그 문제는 지금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니 넌 지체 말고 모든 인력을 다 작업으로 돌려라!”
“……네.”
“작업이 진행 중인 곳을 한번 봐야겠다.”
“바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인님의 위대한 업적에 쓰일 물건이니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내해라.”
“네.”
이서우는 두 사내가 나오려는 것을 알고는 얼른 복도로 숨었다.
두 사내는 아무 의심 없이 나와서 어디론가 향했다.
이서우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따랐다.
다행히 그들이 가는 곳에는 경비병이 없었다.
끼이잉.
쿵.
거대한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서우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정도 마을 규모면 종속자들이 소유하겠지. 그러면 주인은 종속자를 뜻하는 건데, 대체 뭐가 있는 거지?’
이서우는 어떻게 문을 열까 고민하다가 그냥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대검을 뽑아 들고는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고는 문의 크기와 똑같은 모양으로 전체를 잘라 내어 버렸다.
대검을 우측 중앙에 꽂아 넣었다.
진한 푸른색의 마나 블레이드가 맺혀 있어 대검이 쉽게 박혔다.
이서우는 마나를 거두고 대검을 손잡이처럼 이용해 철문을 강제로 열었다.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조심히 열자 1톤 정도의 묵직한 무게를 가진 문이 서서히 열렸다.
이서우는 안으로 들어가 다시 같은 방법으로 대검을 꽂아 넣고는 천천히 닫았다.
지하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앞서간 자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음침한 기운이 느껴져 따라가는 것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끝가지 내려가니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이서우의 피부에 닿았다.
‘뜨겁네. 용광로라도 있나.’
횃불이 주변을 밝히고 있어 사물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데, 뜨거운 기운 외에는 그저 넓은 동굴에 지나지 않았다.
이서우는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깡깡! 깡! 깡깡! 깡!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 같은데?’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희미하지만 분명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채굴량은 어느 정도지?”
“현재 1톤 정도 됩니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으니 아까 말한 대로 양을 더 늘려라. 그러면 주인님께서 네게 큰 은혜를 베풀 것이다.”
“네!”
목소리가 들리자 이서우는 걸음을 멈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설마, 여기가 광산이었어?’
외부에 갱도가 있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편해서 이렇게 따로 지하를 파 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곡괭이 휘두르는 소리와 망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서우는 행동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느끼고 마나를 온몸에 돌렸다.
“누구냐!”
이서우가 마나를 일으키니 다크 엘프가 알아차리고 살기를 쏘아 보냈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누구냐?”라고 외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이서우의 몸은 그들 앞에 있었다.
서걱!
다크 엘프를 노린 것인데, 그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 굽신거리던 사내의 목은 확실히 끊어 놓았다.
“이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악의 소굴이라는 건 다 알고 왔으니 걱정 마.”
“뭣이!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다크…… 큭.”
주문을 외우려 하자 이서우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서우가 워낙 빠르게 공격을 해 온 터라 다크 엘프는 피하기 위해 몸을 심하게 비틀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고통스러워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마나가 잔뜩 담긴 대검을 피하는 것이 먼저였다.
“설마, 소드 마스터냐?”
“네놈 목줄이나 걱정하시지.”
탓!
이서우는 다시 빠른 접근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크 엘프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이서우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대검을 휘둘렀다.
다크 엘프는 거리가 5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 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다.
“다크 필…… 크악!”
여유가 생겨 얼른 다크 필드를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푸른색 구슬이 빠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이미 늦어 버려서 피할 수가 없어 결국은 허용하고 말았다.
그 대가는 컸다.
오른쪽 팔 전체가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다.
“큭, 네, 네놈!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구나.”
승기를 잡은 이서우는 여유롭게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자살을 했던 다크 엘프를 떠올리고는 마음을 바꿔 서둘렀다.
“역시, 자살을 시도하려 했군.”
“어떻게…….”
“너처럼 자살한 놈들이 있었지.”
“설마, 네놈이 나의 형제를 죽인 놈이더냐.”
“형제라……. 악질적인 놈들에게도 형제가 있기는 있구나. 난 죽어 마땅한 놈을 죽였을 뿐이다.”
“이, 이놈, 주인님께서 결코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걱정 마. 네 주인도 곧 너처럼 만들어 줄 테니까.”
“크하하하하, 주인님을 나 같은 하찮은 것과 비교하지 마라. 넌 주인님의 한 수도 받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네 주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 수 있겠지?”
“그건…….”
자신만만해하던 다크 엘프는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입을 닫아 버렸다.
“말과 행동이 다르네. 방금 네가 그랬잖아, 난 네 주인의 한 수도 못 받아 낸다고. 난 지금 혼자야. 나 혼자서 쳐들어가겠다는데도 어디에 있는지 말을 못 해 준다면 네가 한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잖아. 안 그래?”
“…….”
다크 엘프는 이서우의 유도신문에 말려들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이서우가 자신의 주인을 상대할 정도로 강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말을 하면 주인의 위치를 발설해 버린 것이 된다.
심각하고 고민을 하던 다크 엘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의 주인님은 너 따위에게 절대로 당하실 분이 아니다. 가서 그분의 힘 앞에 비굴하게 굴복해라. 크하하하하하!”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보자고. 아, 넌 그 장면을 못 보고 죽겠네. 다음 생에는 네가 주인으로 태어나서 열심히 부려 먹으라고.”
“이, 이놈! 어디서 그런 망언을……!”
“시끄럽고. 어서 말이나 하시지.”
“주인님은…….”
결국 다크 엘프는 자신의 주인이 있는 곳을 말했다.
주인의 위치를 발설하는 것보다 그가 하찮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주인이 최고라는 확고한 신념이 이 같은 오류를 만들어 냈다.
이서우는 다크 엘프를 죽이고 광산을 살폈다.
‘금광이네. 1톤이라면 엄청난 건데.’
혹시나 싶어 인벤토리에 넣어 보려 했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이서우는 일꾼들에게 이곳의 지도자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발설했다가는 혼란만 가중시켜 몬스터들에게 발각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모든 몬스터를 처치할 수도 없었다.
안쪽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동안 도망가는 놈들이 생겨서는 안 된다.
어차피 다크 엘프나 그 하수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겠지만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 몬스터를 확실히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안쪽에서 놈들을 처리할 테니까 혹시 밖으로 빠져나가는 놈들을 처리해 줘. 팀장님도요. 절대 빠져나가는 놈이 있어서는 안 돼요.
-응.
-네.
생각했던 것보다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쉬웠다.
침입자가 적다고 생각했는지 도망가지 않고 덤비면서 일이 수월해진 것이다.
중앙 건물에 있는 수천의 병사들과 외부에 있는 병사들을 모두 처치하는 데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서우는 이번 사냥으로 3레벨이 올랐고, 둘은 무려 7레벨이나 올랐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그제야 이서우는 포로들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갈 곳이 없다면서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이서우는 이곳에 있으면 다른 놈들이 와서 변을 당할 거라고 경고를 했지만, 그들은 어딜 가도 죽는다면 차라리 이곳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 중 꽤 많은 인원이 전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서우는 포로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곳을 그들에게 맡기고는 마을을 나왔다.
“종속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일단 그곳으로 가요. 거리가 좀 있으니 근처에 가서 종료하는 걸로 하고요.”
“응.”
“네.”
이서우가 앞장섰고, 치타를 닮은 탈것을 탄 두 여인이 그를 쫓았다.
하루를 꼬박 이동하고서야 멈추었다.
-진짜, 놈이 제대로 말한 게 맞네. 주인이 최강이라는 명제가 절대적인가 보네.
-아무래도 세뇌가 됐을 테니 그렇겠지.
오직 주인이 최강이라는 생각이 머릿속 깊숙이 박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었다면 다크 엘프는 이곳을 결코 알려 주지 않았을 것이다.
밤이 늦어 그들은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접속을 종료했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셋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결국 이야기가 길어져서 10시 반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이서우는 집으로 가는 내내 종속자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두 놈보다 확실히 강한 것 같기는 한데, 어느 정도일까?’
3차 전직을 하고부터는 종속자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무수히 많은 종속자 중에 단둘이다.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 죽을 수도 있지만 이서우는 오히려 강한 자극을 받았다.
그동안은 너무 쉽게 적을 처치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확실히 이서우라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서우는 내일 있을 전투를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