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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26화 (126/341)

# 126

레벨이 갑이다

126화

“오빠!”

“서우야!”

멀리서 이설아와 김소연이 달려왔다.

이서우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가 계속 빠지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놈의 영역에 갇혀서 방어력이 제로가 됐었어.”

“헛! 그러고도 무사했단 말이야?”

“아슬아슬했지.”

“종속자마다 기술이 다른가 봐.”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각각의 개성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확실히 중앙으로 갈수록 강해.”

“그러게. 두 번째 놈은 어렵지 않게 처리했는데.”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자. 괜히 다른 놈들이 올지도 모르니까.”

“근데, 그냥 가기에는 좀 아깝네. 이럴 때 확실히 밀어 버려야 하는데.”

김소연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서우라고 모를까.

하지만 지금은 휴식을 취할 때였다.

“다음에 와서 쓸어버려도 돼. 어차피 며칠 만에 다른 놈들이 와서 차지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다 밀어 버린다고 해도 우리가 이곳을 차지하기는 힘들 거야. 결국은 다른 종속자한테 넘겨야 한다는 소리지. 뭐, 관리는 그 밑에 있는 전투노예 중의 하나가 하게 되겠지만.”

“그때도 또 지금처럼 종속자를 도발하면 되려나?”

“원래 자기 땅이 아니었으니 안 통할걸.”

“하긴, 어차피 다른 종속자에게 먹힐 거라면 굳이 목숨 걸고 나서지는 않겠지.”

김소연은 여전히 아쉬운 얼굴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시간만 조금 더 넉넉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였다.

셋은 안전한 곳까지 멀리 벗어난 뒤에야 접속을 종료했다.

“또 저녁이 되고 말았네. 그래도 이번에는 8시 전에 종료했네.”

“밥부터 먹자.”

이서우는 출출한 배를 어루만지며 식당으로 갔다.

이번에는 둘만의 시간이 아니라 김소연도 동참했다.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오늘 하루는 신세 좀 질게.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야.”

“에이, 언니! 언제든 같이 먹어요. 여럿이 함께 먹으면 좋죠.”

“봐서.”

“하여튼 쿨한 언니라니까.”

각자의 음식을 가져와 식탁에 앉았다.

사람이 1명 더 늘어서 음식의 양도 더 많았다.

하지만 김소연의 현란한 수저질에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배가 조금 차니 살 것 같네.”

“언니, 밖에서도 그렇게 먹어?”

“응. 왜?”

“아니. 복스럽게 잘 먹어서.”

“게걸스럽게 먹는 거겠지. 배가 심하게 고플 때만 그래. 평소에는 평범하고.”

“언니, 남자들에게 인기 많지 않았어?”

“왜?”

“보통 남자들, 털털한 성격의 여자를 좋아하잖아.”

“아냐. 너처럼 얌전한 스타일을 좋아해.”

“에이, 아니야. 난 별로 인기가 없었는걸.”

인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남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어린 날에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남자가 접근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방송 일에 뛰어들면서 이성과 만날 시간을 아예 가지지 못했다.

‘이런 걸 보고 바로 재수 없다고 하는 거구나.’

천천히 밥을 먹던 이서우는 외모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두 사람이 서로 인기가 없었다고 하는 것을 보자 황당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가식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있었기에 이서우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수많은 남자들이 두 사람을 눈여겨봤겠지만 정작 둘 다 일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된 거겠지.’

설아도 어린 나에게 성공을 했고, 김소연도 젊은 나이에 그 정도 스펙을 쌓으려면 연애할 틈이 없었으리라.

“참, 이번에 영상 제대로 잡혔어.”

“어머, 정말?”

“응. 특히 서우가 건물들을 때려 부수는 장면은 진짜 영화에서도 나오기 힘들 정도로 멋졌어. 몸은 날렵한데, 헐크가 빙의된 것 같았다니까.”

“와, 빨리 영상 보고 싶네.”

이설아는 본능적으로 영상에 군침을 흘렸다.

그 와중에 영상미를 살리면서 동영상으로 담은 김소연이나 그 영상을 어서 보고 싶어 하는 이설아나, 둘 다 직업병이 확실했다.

그런데 여기에 직업병에 걸린 사람이 또 있었다.

“참, 나 지도 하나 얻었거든.”

“지도?”

“어. 미발락을 죽이고 얻었는데, 이게 아주 물건이야.”

“정말? 뭔데?”

“내가 볼 때는 던전 지도 같아.”

“뭐? 던전?”

“그래, 던전.”

김소연은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인가 했지만 이설아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이 레벨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던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근데 던전 지도를 구한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언니, 여태까지 거기서 던전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뭐? 한 번도?”

“응. 진짜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던전은 코빼기도 못 봤다니까.”

“뭐 그런 곳이 다 있지?”

“내 말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놀라는 거지.”

“놀랄 만하네. 근데, 종속자 정도 되는 녀석이 떨군 거라면 꽤 센 곳이겠네.”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면 풀 파티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언니는 오빠가 얼마나 강한지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아, 하긴. 서우가 있었지.”

지금까지는 가끔 파티를 해도 이서우처럼 강한 유저는 본 적이 없어 자연스럽게 풀 파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 정도로 강한 유저가 있다면 지금 조합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오빠, 그럼 내일은 그 지도 살펴볼 거야?”

“일단 미발락이 다스리던 도시부터 살펴보고 가야지. 다른 종속자들이 손을 뻗지 않았으면 싹 정리해 버리게.”

“우두머리가 없으면 쉽게 경험치도 얻고 좋겠네. 그나저나 지도에 있는 던전은 어떤 곳일까?”

“아직 확실한 건 아냐. 던전이 아닐 수도 있어.”

“던전이 아니라고 해도, 종속자가 가지고 있을 정도면 분명 가치가 있는 걸 거야.”

“나도 설아 말에 동의해. 그런 놈이 그냥 허접한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얼마나 욕심이 많은 놈인데.”

김소연은 미발락이 다스리는 곳을 똑똑히 보았다.

건물부터 도시의 형태까지,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굳이 화려하게 만들 필요도 없는 건물들까지 그렇게 지어 놨으니 욕심이 많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일단 내일 확인해 보면 알겠지. 난 집에 가서 옷가지를 챙겨 올 테니까 두 사람은 마저 대화 나눠.”

“응. 그렇지 않아도 언니가 담은 영상을 보려던 참이야. 다녀와, 오빠.”

“그래.”

이서우는 식사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에게는 당분간 일이 바빠서 회사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아들이 취직을 하고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아 부모님은 그가 하려는 일을 반대하지 않았다.

이서우는 부모님을 두고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김소연의 말을 떠올리고는 집을 나섰다.

자율 주행 택시에 올랐다.

부아아아아아아앙!

택시가 출발하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이서우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쯧쯧쯧, 저러다 큰 사고 나지.”

자율 주행 차들 사이로 슈퍼 카 한 대가 스쳐 지나갔다.

환경보호를 위해 규제가 심해지면서 전기 자동차가 보편화되었다.

스포츠카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고육지책으로, 스포츠카 회사들은 사운드를 최대한 과거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직접 엔진 소리를 들으며 달렸다.

다운사이징이 유행이 되면서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인공음을 가미했지만, 폭발적인 엔진음을 들으며 달리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엔진에서 직접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그때의 그 소리를 잊어 갔다.

물론 각종 동영상을 통해 아직까지 자료들이 남아 있지만, 어쨌든 그것조차도 스피커를 통해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래서 방금 지나간 슈퍼 카의 소리도 인공음이었다.

내부에서만 들리도록 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도 똑같이 들리도록 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벌금 좀 맞겠네. 뭐, 저 정도 타고 다니려면 몇천만 원 정도는 껌이겠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싱가포르처럼 벌금이 엄청나다.

게다가 미국처럼 소송이 빈번해지면서, 예전처럼 돈이 있다고 해서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벌금을 더 많이 부과하기 때문에 도로 교통을 어지럽히는 지금과 같은 행위는 엄격히 다뤄진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서우는 자율 주행 차 안에서 혀를 차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방송에 나가고부터는 수시로 기사나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보게 되었다.

대체로 좋은 반응들이 많았다.

‘인원 제한 때문에 아쉽다는 반응이 많네. 위성도시를 빨리 만들어야겠어.’

미발락도 처치했으니 이 기회에 도시를 만들어 빨리 안착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미발락이 다스리던 지역이 넘어가면서 힘들어질 수가 있다.

K사에 도착한 이서우는 전용 입구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도시가 다 보였다.

화려한 조명들이 온 도시를 수놓은 장면을 보니 이서우는 새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깨달았다.

‘그동안은 이런 야경을 볼 여유도 없었지만 앞으로는 여행도 다니고 그래야겠어.’

사무실에 도착하자 이설아와 김소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영상 본다더니.”

“중요한 부분만 봤지. 근데 언니 말처럼 진짜 제대로 나왔더라. 이거 방송 나가면 또 한 번 난리 나겠던데?”

“그래?”

“응. 오빠도 볼래?”

“그럴까?”

이서우는 두 사람이 왜 들떠 있는지 궁금해서 영상을 보기로 했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수락한 것이다.

“헉, 이게 진짜 내가 한 거라고?”

“응.”

“이렇게 보니까 느낌이 진짜 많이 다르네. 근데, 이거 완전 괴물인데?”

“오빠가 보기에도 그렇지?”

“어. 건물이 펑펑 터지는 게, 인간 같지 않게 느껴지긴 하네.”

“사람들은 이런 거에 환호한다니까. 제대로 편집해서 멋진 장면 하나 만들어 낼 테니까 기대하라고.”

이설아는 의욕이 무럭무럭 자라는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최초로 하이 레벨 지역에서 던전을 발견하면 어쩌려고?”

“그러네. 이러다가 방송 시간 엄청 오버되는 거 아닌가 몰라.”

“던전 발견해서 괜찮은 곳 같으면 아예 생방송으로 보내는 건 어떨까?”

“생방송?”

김소연의 제안에 이설아는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최초로 발견된 던전을 생방송으로 다 같이 즐긴다?

시청자의 입장이라면 꼭, 반드시 보고 싶은 장면이 될 것 같았다.

“서우는 어때?”

“생각해 보니 나도 괜찮을 것 같아. 일단 정말 던전이 맞는지부터 찾아보고 결정하자.”

“응. 오빠 말대로 일단 먼저 찾자.”

세 사람은 의견 일치를 보았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찾아보고 싶지만 오늘은 이만 잡시다. 누나도 얼른 들어가야지.”

“나? 나도 당분간 여기서 지내기로 했는데.”

“헐, 그래?”

“응. 설아가 괜찮대. 왜, 싫어?”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여자들끼리 시간을 보낼 테니 서우는 얼른 가서 자.”

“지금 나 왕따 시키는 거지?”

“눈치가 아주 없지는 않네.”

“호호호! 언니, 그러다 오빠 삐치겠어.”

“삐치긴. 두 분이서 아주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그럼 전 갑니다. 아침에 보자고요.”

이서우가 안 하던 존댓말을 갑자기 하자 뒤에서 “에이, 서우 삐쳤네, 삐쳤어.”라는 말이 들렸지만 이서우는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여자들 틈에 끼면 괜히 정신만 사납지. 그나마 둘이니 다행이지, 셋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잘 준비를 했다.

아직 잠이 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몸이 나른했다.

샤워까지 끝내고 푹신한 침대에 눕자 잠이 스르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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