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레벨이 갑이다
127화
“오빠, 여기 맞는 것 같은데.”
“그래, 서우야. 나도 여기가 맞는 것 같아.”
“흠,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네.”
세 사람은 거대한 유적지터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지금이 벌써 세 번째다.
처음 이서우가 지도를 봤을 때는 분명 두 군데가 표시되어 있었다.
며칠에 걸쳐 두 지역을 다 찾아갔지만 실패였다.
그때 이서우가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마나를 끌어 올리면서 지도가 변했다.
마나를 더 주입하자 새로운 지도가 나타났다.
세 사람은 그제야 자신들이 헛걸음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롭게 나타난 지도는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기가 힘들지만, 며칠을 고생한 끝에 원하는 곳을 발견했다.
김소연의 도움이 컸다.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설아와 이서우는 한 달을 뒤져도 찾지 못했으리라.
“휴우, 접속 종료 시간 다 돼 가네. 일단 입구부터 찾고 종료하자.”
“응!”
“그래, 그게 낫겠다.”
세 사람은 흩어져서 유적지를 샅샅이 뒤졌다.
이서우는 백호까지 동원해 입구를 찾았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백호가 드디어 찾아냈다.
반쯤 부서진 사람 모양의 석상 발가락 사이에 입구가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잘했어, 백호야. 그만 들어가서 쉬어도 돼.”
“네, 주인님. 나중에 안에 들어가시면 꼭 불러 주셔야 해요.”
“그래.”
백호가 애교를 부리며 들어갔고, 사람들은 입구가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확실히 입구가 맞았다.
“일단 종료하고 내일 다시 진행하자.”
“응. 난 방송 준비해야겠어. 그동안의 영상 미리 편집해 뒀으니 바로 하면 돼. 끝날 때쯤 내일 생방송으로 최초 던전 탐험을 시작한다고 해야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되는걸.”
“아마 엄청난 시청자들이 몰려들 거야. 알지, 지금 개척자 도시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이서우가 던전 입구를 찾는 동안 위성도시가 완성이 되어서 하이 레벨 지역으로 100만 명 가까운 모험가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위성도시가 안전해지자 사이먼 자작은 다시 마을을 만들 게 했고, 그것마저도 완성이 되어 간다.
일꾼들이 1천여 명 정도 달라붙으면 이틀이면 마을의 기본 틀이 완성된다.
게다가 사이먼이 모험가 기술자들도 쓰게 되면서 속도는 더 빨라졌다.
1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을은 하루면 끝이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주변에 몬스터들도 하나둘씩 나타났다.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는지,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개척자 도시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대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한데,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다.
레벨 업은 확실히 이곳이 빨라서 사냥은 이곳에서 하고, 던전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장비를 맞추기 위해 일반 지역을 찾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왜 하이 레벨 지역에는 던전이 없을까.
궁금증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던전을 반드시 찾겠다고 돌아다녔다.
특히 직업이 탐험가인 사람들이 더 난리를 쳤다.
그들은 새로운 곳을 찾는 것만으로도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된 시점에 마침 이서우가 던전을 찾았다.
그러니 내일 생방송으로 던전 탐험이 진행된다고 하면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될 것이다.
세 사람은 입구 앞에서 접속을 종료했다.
마침 오늘이 방송을 하는 날이어서 타이밍도 괜찮았다.
이설아가 방송 준비를 하는 동안 김소연과 이서우는 방송을 지켜보면서 휴게실로 갔다.
“오늘은 얼마나 시청할까.”
“난 한 8천만 정도는 볼 것 같아.”
“에계, 겨우?”
“그러는 서우는 몇 명이나 볼 것 같아?”
“난 1억 5천만 이상은 볼 것 같은데.”
“서우, 너 그새 통이 커졌다?”
“이왕이면 꿈을 크게 가져야지. 일주일밖에 안 된 동영상이 벌써 15억 뷰를 넘겼더라고. 그러니 아마 이번 방송도 꽤 많이 보지 않을까 생각해.”
“하긴, 너희들이 최초긴 해. 지금까지 누구도 일주일 만에 그렇게 조회 수를 올린 사람은 없거든. 정점에 올라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산다고 봐야겠지.”
“설아 나오네.”
이서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설아가 언제 나오나 눈여겨보았다.
이설아는 밝고 환한 미소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녀의 방송을 보고 있으면 절로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
이서우뿐만이 아니라 시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느끼는 바였다.
에너지가 넘쳐 화면을 뚫고 나와서 전달되는 기분이랄까.
이서우가 시선을 고정하자 김소연도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방송에서 자신이 나오는 건 처음이어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한 것이다.
드디어 김소연이 등장했다.
현실에서도 섹시하지만 뉴 월드에서는 섹시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어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누나, 앞으로 인기 좀 끌겠는데?”
“두 사람 덕분에 내가 덕을 많이 보네.”
“외모도 되고 실력도 있으니 사람들이 더 많이 좋아하겠지. 누나도 밖에 나갈 때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설아야 실물이 그대로 드러나니 그런 거지만, 나나 넌 게임에서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좀 다르잖아.”
“내가 다른 건 알겠는데, 누나는 비슷한 거 같은데.”
“호호호, 그거 칭찬이지?”
“당연히 칭찬이지.”
예쁘다는데 싫어할 여자가 있을까.
털털한 성격이고 평소 화장도 아주 옅게 하는 스타일이어서 외모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그녀도 여자다.
이서우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방송은 1시간 이상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빨리 흘러 이설아가 마지막 멘트를 하는데 아쉬움이 컸다.
드디어 이설아가 클로징 멘트를 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커서 방송을 더 하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이설아는 그런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드디어 준비한 멘트를 했다.
하이 레벨 지역에 던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설아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댓글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어떻게 알고 몰려들었는지 순간 시청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헐. 진짜 네 말대로 1억 5천 넘겼네. 이러다가 내일 2억 명 넘는 거 아냐?”
“난 그렇게 될 것 같은데.”
“하긴, 내일은 주말이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최근에는 집집마다 사물 인터넷과 인공지능 기능이 다 있어서 시청률을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집들도 여전히 있지만, 개인이 쓰는 스마트 워치나 스마트폰도 집계가 가능해서 대략적인 시청률이 나온다.
그래서 40퍼센트가 넘으면 초대박이라고 한다.
가구당 인원수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2천만 명 이상은 보는 것이니까 말이다.
한데 2억 명이라니.
해외 시청자들이 있다지만 엄청난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목표를 크게 잡았다.
“중국과 인도에서 오픈이 되면 20억 이상이 동시 시청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 보수적으로 잡더니, 며칠 사이에 변했다?”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 85억 이상이 되는 인구가 내 영상을 보게 만들 건데?”
“…….”
김소연은 하루가 다르게 생각의 크기를 키워 가는 이서우를 보며 놀랐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낮게 여기더니 이제는 누구도 가지 못했던 길을 가려 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여성들은 남자가 강한 포부를 가지고 남들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낼 때 멋있다고 말한다.
비록 이서우보다 나이는 많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멋있었다.
‘3년만 젊었어도…….’
김소연은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남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이서우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이설아도 그렇고, 이서우도 자신은 모르지만 이설아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방송을 마치고 이설아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오빠, 나 어땠어?”
“완전 멋졌어!”
이서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설아는 그게 그렇게 좋은지 활짝 웃어 보였다.
“고생했어.”
“나야 늘 하던 일인걸. 한데, 이번 방송으로 언니의 인기가 꽤 오를 것 같던데. 벌써부터 소환사에 대해 관심이 많더라고.”
방송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한다.
그중 괜찮은 내용들을 방송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한데, 김소연의 얼굴이 나가고부터 누구냐는 말과 함께 소환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얼음공주라는 것이 소개되고 난 뒤에는 김소연을 얼음공주라 부르며, 셋이 파티를 하니 잘 어울린다는 말과 완벽한 조합이라는 말도 많이 나왔다.
뉴 월드에서 가장 평범한 파티 구성은 탱커, 힐러, 버퍼, 딜러 둘로 구성된 조합이다.
딜 위주로 가려면 탱커와 버퍼를 제외하고 딜러를 넣는 경우도 있다.
절대 빠지지 않는 직업은 힐러와 딜러다.
지금 이서우 파티의 조합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구성은 평범한 유저들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랭커들조차도 자신들이 공략하려는 곳으로 갈 때는 탱커와 버퍼까지 반드시 끼워서 간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니까.
그렇지만 전장의 지배자가 있으니 지금 구성이 시청자들에게는 완벽하게 보였다.
이설아의 방송이 나간 이후 새벽까지 사람들은 하이 레벨 최초의 던전 탐험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치맥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안주와 함께 양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까지.
직업에 상관없이,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2명 중 1명은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다.
주말이면 보통 늦잠을 자는 게 일상이지만, 오전 9시부터 진행되는 방송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부스스한 상태로 TV 앞에 앉거나 VR기기를 착용했다.
뉴 월드와 현실의 시간 개념이 달라 특수한 장비를 착용해야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선글라스와 유사한 기기만 착용해도 방송을 시청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다들 준비됐지?”
“응.”
“들어가자고.”
뉴 월드에 접속한 이서우는 일행을 이끌고 입구 안으로 들어갔고, 이설아는 생중계로 새로운 던전에 입장하는 기분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최초로 경험하는 것이어서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들뜬 상태였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뉴 월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장의 지배자와 함께 최초로 던전을 구경하는 것이어서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을 주시했다.
한데, 모두의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오, 오빠.”
“뭐지?”
“이거 우리가 속은 거 아냐?”
세 사람은 막힌 벽을 바라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당황한 일행의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나갔다.
꽤 많은 사람들이 말만 생방송이고 실제로는 이미 한 번 클리어 한 곳이 아닐까 의구심을 가졌다.
한데 누가 보더라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 그대로 나오니, 사람들은 그제야 진짜 생방송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벽이 막혀 있어 던전이 아니라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견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시청하는 사람들 중 더러는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생방송을 하냐며 비웃었고, 상당수는 시간만 낭비했다며 방송을 꺼 버렸다.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는 세 사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야 하나 싶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빛을 교환하는데, 갑자기 바닥이 흔들렸다.
그그그그긍.
“헐. 오빠, 이거 엘리베이터 같은데.”
“그러게. 이런 장치를 해 뒀다니. 아무것도 없어서 괜히 놀랐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마법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이 던전을 만든 사람이 누구든 마법사도 분명히 있을 거야.”
마법적 장치가 작용하자 비난을 하던 시청자들의 쓴소리가 쏙 들어깄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 사람은 평소처럼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게 시청자들에게도 더 자연스럽게 비치겠다는 생각에 셋이 합의를 본 것이다.
덜컹.
엘리베이터가 흔들리자 벽을 잡고 무릎을 살짝 굽혀 균형을 잡았다.
“꽤 깊은 곳인 것 같은데?”
“그러게. 한참을 내려가네.”
쿵!
꽤 긴 시간을 내려가서야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조금 기다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서우는 대검을 뽑아 든 채 가장 앞쪽에 섰다.
“천천히 따라와.”
“응.”
처음 오는 곳이어서 이서우는 차분히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지하라서 어두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메시지가 들렸다.
-수수께끼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최초 발견자에게 혜택이 주어집니다.
-경험치가 2배 상승합니다.
-드롭 보상이 2배 상승합니다.
-최초 발견자 혜택은 던전을 빠져나가는 순간 사라집니다.
“들었어?”
“응.”
이설아는 조금 전에 나온 메시지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말해 주었다.
“오빠, 나 수수께끼에 약해. 설마, 몬스터는 없고 수수께끼만 나오다가 끝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던전 이름에서 풍겨 오는 느낌이 불안했다.
진짜 설아의 말처럼 그렇게 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누나, 소환수로 주변부터 살펴 줘.”
“응.”
김소연은 땅거미들을 풀어 주변을 살폈다.
한데,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네. 주변이 너무 조용해.”
“직접 부딪쳐 보라는 거네. 일단 바짝 붙어서 따라와.”
“응.”
이설아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서우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물컹.
이서우는 등 뒤로 이설아의 가슴이 느껴지자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기이이이이잉!
갑자기 땅속이 활짝 열리더니 석상 하나가 나타났다.
모양은 인간을 닮아 있었는데, 표정이 화가 잔뜩 난 것 같았다.
이서우는 대검을 겨눈 채 석상을 노려보았다.
바로 그 순간, 일행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