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레벨이 갑이다
128화
“겁대가리 없이 감히 이곳에 침입하다니.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온 것이겠지?”
“…….”
“이런 멍청한 놈들. 그것도 모르고 들어오다니, 크헬헬.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 말을 하고는 석상이 입을 닫았다.
이서우와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저게 대체 무슨 조화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시청자들도 난리가 났다.
딱 봐도 돌처럼 굳어 있는 석상이었는데 말을 하다니.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석상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어떤 이들은 못생긴 석상 주제에 진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못생긴 주제에 감히 우리 여신님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하든 못생겼다는 말은 빠지지 않았다.
이서우와 이설아, 김소연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사람의 형상처럼 생겼는데, 진짜 못생겼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생겼다는 사람을 데려다 놓아도 저 석상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한참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석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수수께끼를 내겠다.”
“정말 수수께끼를 내는 거야?”
“멍청한 놈들. 그러니 수수께끼 던전이지. 기본도 안 된 놈들 같으니라고, 쯧쯧쯧. 어이없게 죽더라도 네놈들의 멍청한 머리를 탓해라. 자, 그러면 수수께끼를 내겠다.”
석상의 말에 이서우는 당장이라도 그 못생긴 얼굴을 베고 싶었지만 던전을 통과하려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니 일단은 참았다.
“나는 사람일까, 사람이 아닐까. 제한 시간은 10분이고 기회는 단 한 번이다. 이 문제를 못 맞히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석상의 말이 끝나자마자 셋의 눈앞에 10:0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09:59로 바뀌었다.
제한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시청자들도 그 시계를 볼 수 있었다.
이설아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눈, 코, 입, 귀, 팔, 다리 다 붙어 있고 형태도 딱 사람인데 저런 문제를 낸다는 건,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
“아니지.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이 문제를 낸 건 아닐까? 자신이 너무 못생겨서 몬스터처럼 여겨지니 사람으로 봐 달라고.”
“언니, 오빠. 난 아무리 봐도 저 석상이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건 우리랑 대화가 통한다는 것밖에 없어. 저 얼굴이 사람일 리는 없잖아?”
“하지만 몬스터들도 말을 할 수 있잖아.”
“이것 참. 둘 중 하나인데, 결정하기가 쉽지 않네.”
셋은 심각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석상은 기분이 나쁜지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시청자들은 석상의 표정과 진지하게 석상이 인간일까를 놓고 의견을 나누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서우와 그의 일행은 점점 줄어드는 제한 시간을 보며 머리를 열심히 맞댄 채 해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처음 석상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이런 황당한 수수께끼를 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시청자들은 세 사람의 논의 과정을 보면서 자신들도 온갖 추측을 쏟아 냈다.
저렇게 못생긴 석상이 절대로 사람일 리가 없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는 저게 사람이면 파리나 모기도 새라면서 핏대를 세우는 이들도 있었다.
첫 문제가 나오자마자 접속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던전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5:37
어느새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5분이었다.
하지만 이서우와 이설아, 김소연, 셋 중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서우는 석상 앞으로 갔다.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석상을 꼼꼼하게 만져 보았다.
몸통은 정말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었는데, 얼굴은 도저히 두 눈 뜨고는 못 봐 줄 정도였다.
이서우가 석상 쪽으로 다가가자 시청자 중 하나가 의견을 냈다.
“오빠, 누가 가운데가 달렸는지 보라는데?”
“오, 똑똑한데.”
이서우는 곧장 석상 앞으로 가서 거기를 만져 보았다.
1억 명이 넘게 보는 상황에서 석상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것은 영 그림이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있는데?”
“헐, 진짜? 그럼 사람인가?”
“진짜 제대로 된 물건 맞아?”
“어. 와서 한번 만져 보든지.”
“아, 아냐. 됐어.”
성격이 털털한 김소연도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이서우가 시선을 이설아에게로 돌렸는데, 그녀도 역시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이서우가 진짜 중요 부위가 있다고 하자 짓궂은 사람은 옷을 벗겨 보라고 했는데, 이서우가 이미 한발 앞서서 옷을 벗기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겉옷조차도 벗겨지지 않았다.
-3:35
석상을 만지는 동안 또다시 2분이 흘렀다.
“어째 갈수록 혼란스럽냐.”
“그러니까. 이 간단한 문제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시간이 줄어들수록 초조했다.
이서우는 덤덤했으나, 이설아와 김소연이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였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초, 1초가 줄어들수록 자꾸만 두 손에 땀이 생기는지 쥐었다 폈다 하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1분 남았다. 네놈이 감히 나의 거시기를 만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네놈부터 처단해 주마.”
석상이 분노를 터트렸다.
가만히 있었지만 이서우 일행의 말과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성질을 내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사람이 분명한데. 근데, 사람이라고 하려니 뭔가 찝찝한 이 기분. 참 묘하네.”
“오빠, 이제 40초밖에 안 남았어.”
“알아.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난 너에게 결정을 맡길게. 도저히 난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야. 오빠가 알아서 결정해.”
결국 결정권이 이서우에게로 넘어왔다.
남은 시간은 28초.
‘사람이 분명해. 하지만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저런 석상의 형태로 존재할 수가 없잖아. 사람인데, 뭔가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이곳에 있는 건가?’
이서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엉켰다.
저 존재를 사람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하나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10초.
더 이상 고민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시청자들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9, 8, 7, 6…….
시간은 금세 지나가 3초가 되었다.
그때 이서우가 입을 열었다.
“대답을 하겠다.”
“좋다. 말하라.”
이서우가 대답을 한다고 하자 시청자들은 두 손을 움켜쥔 채 뚫어져라 그의 입만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데 어떤 대답을 할까.
혹시 맞힐까? 아니면 이대로 첫 문제도 못 맞히고 던전행이 끝나 버리는 것일까.
엄청난 관심이 이서우에게로 쏠렸다.
곧 이서우의 입이 열렸다.
“넌 저주받은 인간. 그래서 넌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니다.”
“뭣이!”
석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서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그걸…….”
“네놈이 왜 이곳에 있을까 생각해 봤지. 인간이라면 이곳에 있을 수 없는데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답이 나오더라고. 이 던전을 만든 존재가 널 이곳에 묶어 두었던 거야. 내 말이 맞지?”
“운이 좋은 녀석이로구나. 그걸 간파해 내다니!”
“그 말만 하고 땡이야? 보상을 줘야지.”
“크흐흐흐흐. 보상? 보상이라고?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면 회복 불능에 아무런 기술도 쓸 수 없도록 만들 수 있었는데 안타깝구나. 보상은 네놈들이 이 공간에서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전부다. 각오해라, 이놈들!”
석상의 불같은 외침에 이서우는 대검을 뽑아 들고는 전투를 준비했다.
잠시 후, 석상 주변으로 거대한 몬스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미노타우로스였다.
오우거보다 훨씬 강력한 몬스터여서, 보통의 유저였다면 크게 당황했으리라.
하지만 이서우에게는 식후 간식거리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수십 마리씩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300마리쯤 잡았을까.
석상의 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몬스터의 종류가 바뀌었다.
“오빠, 드레이크야!”
“이 못생긴 놈이 아주 피를 말리려는구나. 그래,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서우는 마나를 잔뜩 담아서 석상에 마나 탄을 쏘았다.
쾅!
마나 탄에 직격당했지만 석상엔 작은 상처도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더 많은 드레이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레이크는 300레벨이 넘는, 지상에서는 아주 강력한 몬스터였다.
날 수 없는 드래곤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부지런히 대검을 놀렸다.
“오빠, 이상해. 그렇게 잡았는데도 레벨이 오르지 않아.”
“알아. 아무래도 저놈이 뭔가 장치를 한 것 같아.”
“크흐흐흐흐, 멍청한 인간들. 이곳을 통과해야만 지금까지 잡았던 몬스터들의 경험치가 카운트되어 반영된다. 그러니 결국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는다는 뜻이지.”
“주둥이로만 떠들지 말고 직접 나서시지.”
“멍청한 놈, 내가 그따위 도발에 넘어갈 거라 생각하느냐. 정해진 놈들을 다 내보낼 때까지 난 나설 생각이 전혀 없다. 내 선까지 오지 않고 그냥 조용히 죽는 게 네놈들에게는 더 이로울 것이다.”
그만 버티고 빨리 죽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서우도 그렇고 이설아와 김소연은 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석상이 큰소리칠수록 이서우의 대검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럴 줄 알고 마나 물약과 비약을 왕창 챙겨 왔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이서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석상을 응징해야겠다는 의지의 눈빛이었다.
지루한 싸움은 1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수천 마리나 나와 더 이상 나올 숫자가 없을 것 같은데도 끊임없이 쏟아졌다.
시청하는 사람들은 이서우의 강함에 기가 눌릴 정도였다.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하이 레벨 드레이크 수천 마리를 홀로 처치하다니.
물론 김소연과 이설아도 도움이 되었지만 거의 90퍼센트를 이서우가 처치했다.
사람들은 이서우의 활약에 전율했다.
땀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제는 힘을 잃을 법도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힘이 마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이런 저주받을 놈을 봤나. 하지만 그 발악도 이제 끝이다. 죽어라!”
드레이크가 사라지고 다른 몬스터가 나타났다.
한데, 그들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설마, 데, 데스나이트?”
이설아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시청자들도 똑똑히 보았다.
견고한 갑옷을 입은 해골 전사.
바로 죽음의 기사인 데스나이트였다.
최근 전신이 일반 지역에서 잡았다고 방송이 나온 적이 있었다.
400레벨에 육박하는 녀석이어서 꽤 큰 이슈가 되었었다.
한데 그런 데스나이트가 일반 지역도 아니고 하이 레벨 지역에서 무더기로 쏟아졌다.
“오, 오빠…….”
이설아는 바짝 긴장한 채 이서우의 곁에 섰다.
김소연도 그녀가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소환수들을 뽑아냈다.
-일단 누나는 설아와 함께 뒤로 빠져 있어.
-하지만…….
-아냐, 그게 편해. 혼자서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응. 알았어. 오빠, 조심해.
-서우야, 조심해.
이서우는 십여 기의 데스나이트 앞에 섰다.
그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을 쓸 생각이었다.
마나를 끌어 올려 펠렌의 장비에 쏟아부었다.
마나 비약을 열심히 복용한 덕분에 아직은 마나에 여유가 있었다.
‘미발락에게 고마워해야겠는걸.’
그로 인해 펠렌의 장비에 마나를 주입하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이제는 마나가 바닥을 칠 때까지도 충분히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서우의 몸에서 강렬한 푸른색 빛이 새어 나왔다.
영상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갑자기 이서우의 몸에서 빛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석상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놀람은 시청자들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 어떻게 네놈이 펠렌의 기술을…….”
“펠렌을 알고 있군. 그러면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도 알겠지. 넌 여기서 반드시 죽는다.”
“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네놈은 펠렌이 아냐. 널 죽여서 그걸 증명하겠다! 죽여라!”
다행히 이서우의 모습이 너무 눈부셔 시청자들은 펠렌이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석상의 명령에 데스나이트들이 거대한 검을 내밀었고, 이내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서우는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눈이 아니라 감각으로 그들을 쫓았다.
챙챙챙챙챙챙챙챙챙챙!
십여 기의 데스나이트의 날카로운 공격을 이서우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 막아 냈다.
그리고 이서우의 빛나는 대검이 움직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대검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