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레벨이 갑이다
129화
펑펑펑펑펑펑펑펑펑펑!
강렬한 폭발음이 들리며 데스나이트들이 폭발했다.
팔이 떨어져 나가거나 다리가 터져서 너덜너덜해졌다.
심한 녀석들은 머리가 떨어져 나가 버렸다.
단 한 수로 열 기의 데스나이트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비틀거리던 데스나이트들이 석상 근처로 갔다.
그러자 엉망이 되었던 몸이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좀비가 따로 없네.”
이서우는 회복된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강렬한 폭발음이 다시 한 번 들렸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이서우는 화가 잔뜩 났다.
“아예 회복도 하지 못하도록 가루로 만들어 주마.”
이서우는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크기였다.
이서우는 다시 한 번 데스나이트들 사이로 들어가 대검을 휘둘렀다.
검의 궤적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마나 블레이드가 지나간 자리에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대검이 움직였다.
이서우는 회복할 틈 없이 데스나이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결국 열 기의 데스나이트는 기술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압도적인 무력.
지금 이서우가 보이는 능력은 그야말로 그 어떤 유저보다도 막강했다.
하지만 이런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어서 절대 무적은 아니었다.
단지 아직까지는 이서우의 약점을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 뿐.
“네놈, 어떻게 그 힘을…….”
“이제 알았으니 쫄따구들은 그만 보내고 네놈이 직접 나서지?”
“그렇지 않아도 내 손으로 직접 네놈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힘 빼 놓고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크흐흐흐흐, 멍청한 놈.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렇게 죽은 듯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더나. 난 네놈의 약점을 모두 파악했다.”
“…….”
이서우는 석상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겉으로는 어떤 약점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다는 것일까.
설마 허풍인가?
아니, 허풍으로 치부하기에는 그의 말이 갖는 무게감이 컸다.
만약 허풍이 아니라 진짜 약점을 발견한 것이라면?
그렇게 되면 이서우가 전적으로 불리했다.
석상의 말에 시청자들은 정말 전장의 지배자의 약점을 발견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만약 진짜 그렇다면 이건 정말 큰 이슈였다.
시청자가 이미 2억 명을 넘겼다.
너무 급박한 순간이어서 따로 영상을 끊지 못하고 중간중간 광고를 한쪽 화면에 넣어 두었다.
이서우가 미친 듯이 대검만 휘두를 때는 사람들도 집중력이 떨어져 광고에 눈이 갔지만, 석상이 나올 것 같자 모든 신경이 이서우에게 쏠렸다.
이번 광고로 대박을 친 것은 생맥주집이었다.
긴장감이 높아져서인지 잠깐 나왔던 광고였는데, 주문이 폭주했다.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면서도 계속해서 영상에 집중했다.
드디어 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딱하게 생기가 없던 석상에게 생명이 들어갔다.
얼굴은 살짝 붉은빛을 띠었고,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석상이 생명을 얻자마자 외친 소리는 이서우도 익히 아는 것이었다.
“헬파이어!”
“헉!”
“오, 오빠!”
이건 너무 뜬금이 없어서 아무도 예상을 못 했다.
워낙 입을 놀리던 성격이니 이서우 앞에서 뭐라도 떠들어 댈 줄 알았다. 한데, 갑자기 8서클의 강력한 마법을 시전하다니.
이서우는 온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불덩어리가 날아오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마나를 잔뜩 실어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십수백 발의 마나 탄이 헬파이어를 향해 날았다.
이서우는 몰디나가 쓴 헬파이어를 떠올리며 항상 나라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다.
예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3차 전직 후 마나 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서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지금 이서우가 사용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서우의 마나 탄이 헬파이어와 부딪쳤다.
처음에는 태양 앞의 반딧불처럼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니, 마나 탄의 숫자가 더해지니 헬파이어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저, 저럴 수가…….”
이설아도 김소연도, 그 어느 때보다 이서우의 활약에 놀랐다.
함께 사냥을 하던 사람도 이럴진대 시청자들은 오죽할까.
너무 놀라 맥주를 마시다 말고 입을 떡하니 벌려서 질질 흘린 사람이 수두룩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내가 불리해. 한 방에 가자.’
이서우는 마지막 마나까지 쏟아부어 석상을 처치하기로 결정했다.
“가라!”
이서우의 외침과 함께 기존의 마나 탄보다 몇 배나 큰 마나 탄이 석상을 향해 날아갔다.
“이, 이놈이…….”
헬파이어로 충분할 거라 여겼는데, 마나 탄으로 밀어내더니 마지막 순간에 엄청난 힘으로 마나 탄까지 쏘았다.
그러자 석상은 당황해 블링크를 펼쳤다.
석상이 대형 마나 탄을 피해 버리자 이서우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도 많이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검을 사선으로 올려쳤다.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석상은 ‘공격에 실패하더니 드디어 저놈이 미쳤구나.’ 싶어 강력한 공격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대형 마나 탄이 방향을 바꾸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대형 마나 탄을 맞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석상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서둘러 보호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이서우가 그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땅을 박차 가까이 접근해 마나를 머금은 대검으로 심장을 찔러 버렸다.
털썩!
석상이 힘없이 쓰러졌다.
-제1관문지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퍼펙트 힐!”
이설아가 다가가 얼른 힐을 시전했다.
헬파이어를 가볍게 막는 것 같았지만 이서우도 피해가 있었다.
이설아의 힐로 순식간에 생명력이 차올랐다.
“고마워.”
“아니야. 난 별로 한 게 없는걸.”
“한 게 없다니. 네가 있기 때문에 생명력이 빠져나가도 안심하고 싸울 수 있었던 거야. 뒤가 든든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제 실력을 발휘 못 했을걸.”
이서우의 미소에 이설아도 미소로 화답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마음이 든든하면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지금처럼 위기의 순간에는 그 차이가 엄청나서, 이설아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여러분, 아무래도 우리는 10분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아요. 채널 고정, 아시죠? 광고 보고 10분 뒤에 다시 돌아올게요.”
이설아의 멘트와 함께 방송이 일시 중단되었다.
“오빠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네. 답은 어떻게 알았던 거야? 그거 몰랐으면 스킬을 전혀 못 썼을 테니 위험했을 거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놈이 왜 이런 곳에 있을까, 하고. 평범한 인간 같으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서, 이 던전을 만든 사람의 의도가 뭔지 생각해 본 거지.”
“근데, 석상이 오빠보고 펠렌의 후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빤 약초꾼이라면서.”
“헐! 설아야, 서우 직업이 약초꾼이야?”
“응. 아, 언니는 몰랐겠구나. 오빠 약초꾼이야. 놀랍지?”
“응. 완전 속았네. 난 전설의 기사나 전설적인 인물인 줄 알았거든.”
“전설적인 인물이 맞기는 해. 펠렌이라는 사람이 그런 존재니까.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펠렌이라는 사람이 약초꾼이었다고 하더라고.”
“헉, 완전 반전이다.”
“천하제일 약초꾼이지, 호호호.”
김소연은 황당한 얼굴을 했고, 이설아는 천하제일 약초꾼이라는 말이 재밌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휴우, 일단 좀 쉬자. 이번엔 진짜 대위기였어.”
“그러게. 보는 나도 조마조마했으니까.”
“내 말이. 싸운 건 서운데, 너무 긴장을 했더니 온몸의 근육이 뭉쳤네. 10분밖에 없으니 푹 쉬자.”
“난 쉬지도 못해. 사람들 반응도 봐야 해서.”
“반응 좀 어때?”
이설아의 접속 베드는 방송 모드가 가능해서 사람들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 보고 있어. 근데, 완전 난리가 났는데? 최고 시청자 숫자가 3억 가까이 됐어.”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엄청 본다는 거네?”
이서우의 말에 이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 사용자 인구가 2억이 채 안 되니 당연한 추측이었다.
“내가 볼 땐 이번에 중국과 인도에서 많이 보는 것 같아. 걔들 이제 오픈이 얼마 안 남았잖아.”
“확실히 정해진 거야?”
“뉴 월드 측에서는 아직 확실한 이야기는 안 하는데, 거의 오픈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된 것 같아.”
“그래? 제대로 된 정보 맞아?”
“그럼. 이번에 뉴 월드 측에서 너희들 영상을 중국과 인도에서 사용하겠다고 연락이 왔거든.”
“아! 그러면 확실히 오픈하겠네.”
김소연은 정보를 담당하기로 한 그 순간부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정보를 모았다.
그러다가 박 대표로부터 넌지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직은 동영상을 활용하겠다는 말만 나왔지 언제, 어떤 영상을 쓸지는 정해진 것이 없어 이설아와 이서우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휴식 시간이 금세 가네. 2관문으로 가 볼까?”
“응.”
“이번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기다리고 있을까?”
“가 보면 알겠지. 가자고.”
“참, 오빠, 백호는?”
“아, 맞다. 너무 집중해서 잊고 있었네. 서운해하겠는 걸.”
“얼른 소환해.”
“알았어. 백호야.”
“주인님, 부르셨어요? 사냥하실 거죠?”
“응? 응. 당연하지. 지금 사냥하러 가는 중이야.”
“헤헤. 제가 다 쓸어 버릴 테니 염려 마세요.”
“그, 그래.”
이서우는 1관문에서 백호를 부르지 못한 게 못내 미안했지만 괜히 서운해할까 봐 벌써 1관문을 지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 그만 가자.”
“응.”
이서우는 새롭게 길이 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이설아가 방송을 다시 ON 시켰다.
사람들은 이서우의 발걸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길이었다.
* * *
“이놈이 확실한 거겠지?”
“네, 형님. 전장의 지배자라면 돈을 엄청 벌었을 게 틀림이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서우라는 이름을 가진 놈 중에 최근 들어 벼락부자가 된 놈은 이놈이 유일합니다.”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겨우 깨어난 놈이라 믿지 않았거늘.”
“그러게 제가…….”
“그래서? 지금 나에게 따지겠다는 거냐?”
“아, 아닙니다, 형님.”
홍영철이 윽박지르자 사내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한데, 이놈에게 경호가 붙었다고?”
“네. 아주 짱짱한 놈들로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거 알아낸다고 돈을 엄청 썼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네 돈이냐, 내 돈이지.”
“그게, 형님, 제가 대부업체에 대출받아서 마련한 겁니다. 이번 일 잘 마무리되면 꼭 챙겨 주셔야 하지 말입니다.”
“이 새끼가 누굴 사기꾼으로 아나. 잘되면 그깟 빚 정도는 인마, 내가 다 해결해 준다. 얼만데?”
“3억이지 말입니다.”
“3, 3억?”
“네. 형님. 3억 정도는 형님에게 껌이지 말입니다.”
‘헉, 이 새끼 무슨 빚을 그리 많이 냈어? 1억만 주고 팽해야겠네.’
홍영철은 자신 있게 말한 것과는 달리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이 새끼가 말끝마다 말입니다, 말입니다네. 내가 그 말 짜증 난다고 쓰지 말랬지?”
“죄, 죄송합니다, 형님. 습관이 돼서…….”
“까는 소리 말고, 그놈의 약점이나 잘 찾아봐. 잡아서 돈 좀 뜯어내야지. 그놈 때문에 노다지 땅인 신규 지역으로 가지도 못하니 짜증 나서, 원.”
“염려 마십시오. 제가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번 일만 제대로 해라. 그럼 진짜 평생 먹고살 돈을 안겨 주마.”
“네, 형님!”
사내는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태도에 홍영철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그의 표정이 사악하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를 보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