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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34화 (134/341)

# 134

레벨이 갑이다

134화

화물용 드론은 이서우와 이설아가 탄 차량을 들고는 경기도 외곽 지역까지 날아갔다.

경찰이 추적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빠…….”

“걱정 마. 이미 경호원들이 우리를 추적했을 거야. 알잖아.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거.”

“응. 알아. 하지만…….”

스마트 기기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전파를 차단시켰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경호 팀이 아무리 뛰어나도 추적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이설아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이오 추적 장치를 했어야 했는데.’

김소연이 혹시나 싶어 바이오 추적 장치를 몸속에 심자고 했다.

스마트 기기의 추적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달리 바이오 추적 장치를 먹통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추적 장치를 혼란시키는 방식 자체가 다르고, 그 때문에 기기의 가격도 달랐다.

가격 차이가 몇십 배나 나기 때문에 웬만한 재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서우도 이설아도 몸속에 이물질을 넣는 게 싫었고, 늘 누군가에게 감시 받는 기분이 들어 거절했었다.

‘그나저나 이상하네. 왜 이러지?’

납치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이서우는 이상할 정도로 냉정했다.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너무 마음이 차분해서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빠, 내려가고 있나 봐.”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를 믿어. 알았지?”

“……응, 오빠.”

이설아는 이서우의 품에 더욱 깊숙이 안겼다.

그녀가 떠는 것을 이서우는 느낄 수 있었다.

두려우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포스러우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가 지켜!’

이서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몬스터를 눈앞에 둔 전장의 지배자처럼.

차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환영한다. 이 좆같은 연놈들아!”

차가 내려앉자마자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외부 소리가 잘 차단되는 데도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리라.

이서우는 이설아를 끌어안은 채 말했다.

“차 안에서 나가지 말고 경호원들이 우릴 찾을 때까지 일단 버티는 데까지 버티자.”

“응, 오빠.”

“누군가 도와주러 올 때까지 버텨 볼 생각이겠지. 하지만 1분이면 네놈들은 내 앞에 있을 거야.”

마치 이서우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사내의 음성이 비수가 되어 두 사람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쿵! 쿵! 쿵!

포크레인 브레이커같이 뾰족하고 큰 쇳덩어리가 창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하지만 쉽게 뚫릴 것 같았던 자동차 창문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차량에 큰 충격이 전해집니다. 탑승자 보호 장치가 가동됩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가동 중지’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차량에서 맑고 안정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 대표님이 특수 차량을 지원해 주셨으니 조금만 버티면 경찰들이 올 거야. 그러니 안심해.”

“응, 오빠.”

“하! 이것들 봐라? 차에 아주 돈지랄을 해 놨네. 하여튼 돈 많은 것들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니까.”

이설아와 이서우가 안도의 숨을 토해 낼 때 바깥에 있는 홍영철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박 대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특수 설계된 안전 차량을 지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3억 정도의 최고급 세단으로 보이지만, 온갖 특수 장비들이 들어가 있어 50억이 넘는 차량이었다.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가 보급된 이후 유리창을 굳이 특수 유리로 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직 안전을 위해 만든 것으로, 휴대용 미사일에 맞아도 상처 하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100대 기업의 CEO들은 말할 것도 없고, 톱스타나 스포츠 스타들도 특수 차량을 선호했다.

그때였다. 거대한 기계가 차량을 뒤집으려 하고 있었다.

-차량에 큰 진동이 느껴집니다. 충돌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112에 신고하시겠습니까?

“신고해.”

-전파가 차단되었습니다. 비상주파수를 사용해 신고합니다.

신고가 불가능한 줄 알고 걱정을 했다가 다음 말에 안도했다.

박 대표는 특수 차량을 제공하면서 차량 매뉴얼을 보라고 권했다.

한데, 너무 두꺼워 읽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음성 명령으로 간단하게 차량 기능에 대해 들을 수 있지만 어차피 매뉴얼에 나온 내용을 읽는 것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똑같아 미뤄 뒀었다.

매뉴얼만 제대로 알았어도 비상 주파수를 이용해 신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미리 조치를 취했으리라.

-차량이 전복됩니다. 탑승자 보호를 위해 에어백이 작동됩니다.

음성과 함께 차량 내부에서 공기주머니들이 나타났다.

그때 마침 차량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에어백으로 인해 두 사람은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충격은 없다고 해도 몸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차가 데굴데굴 굴러다니자 서로 이리저리 부딪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은 견고하게 버텨 냈고, 이설아는 이서우를 놓지 않았다.

홍영철은 당황한 기색으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봤다.

뾰족한 포크레인 브레이커로 계속 충격을 주기도 했고, 계속 굴려서 벽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자 화물용 드론을 이용해 허공으로 날아가 바닥에 내동댕이도 쳐 봤다.

하지만 차량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만약 20~45억 정도의 특수 차량이었다면 지금쯤 문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박 대표가 두 사람을 생각해 50억 이상의 차량을 제공한 것이 그들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흔들리던 차가 멈췄다.

거리가 멀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해 이설아와 이서우는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밖을 볼 수는 없나.”

-카메라가 파손이 되어 밖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음성 증폭은 가능합니다. 외부 소리를 들으시겠습니까?

“그래!”

이서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외부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형님!”

“시팔, 이 새끼들 특수 차량에 타고 있다.”

“네? 아직도 못 꺼내셨어요?”

“그래. 존나게 돈지랄을 했는지 몇십 미터에서 떨어뜨려도 끄떡없다.”

“형님, 그러면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 정도 차량이면 분명 비상 연락 시스템이 있을 겁니다.”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애들은?”

“잠적하라고 하고 보냈습니다.”

“젠장!”

경호 팀이 화물용 드론을 쓸 거라 예상 못 했듯 홍영철도 이 정도의 특수 차량을 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형님, 경찰들도 드론 자동차를 씁니다. 도망가야 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이대로 가면 이제 저놈들을 절대 납치 못 해.”

“압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당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저 새끼들을 수장이라도 시켜야 직성이 풀리겠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서두르셔야 합니다.”

홍영철은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화물용 드론으로 다시 차량을 들어올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이서우와 이설아는 수장시킨다는 말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곧 차가 둥실 떠올랐다.

“남한강이 좋냐, 북한강이 좋냐?”

가까이 다가온 홍영철의 말에 이설아와 이서우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납치범들이 자신들을 수장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네놈들은 북한강으로 가라. 아예 북한으로 보내고 싶은데 돼지 새끼가 뒈지면서 거기도 돈만 있으면 살 만한 가 보더라. 그러니 강바닥에서 두 연놈이 오붓하게 지내라.”

그 말을 끝으로 차량은 5분 정도를 날았고, 북한강 어딘가에 풍덩 소리를 내며 빠져 버렸다.

“오, 오빠!”

“침착해, 설아야. 놈들이 이런 방법까지 쓴 걸 보면 분명 신고가 제대로 들어갔다는 뜻이야. 곧 우리를 찾을 테니 염려 마.”

“하지만 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걸.”

아무리 견고한 차량이지만 30분을 찍히고, 뒤집히고, 높은 허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작은 균열이 발생해 강에 빠지자 물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발이 잠길 정도로 물이 들어오자 차량 시스템은 위기라고 감지했는지 탑승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좌석 밑에 산소마스크가 있습니다. 지속 유지 시간은 1시간입니다.

그 말과 함께 밑에서 산소마스크가 튀어나왔다.

한데, 이서우의 산소통이 찌그러져 있었다. 살펴보니 산소가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오빠, 나랑 같이 쓰면 돼.”

“잠시만.”

이서우는 앞좌석으로 갔다. 운전석에는 없겠지만 보조석에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한데, 보조석에 있는 것도 파손되어 있었다.

“그래, 그 난리통에 한 개라도 건진 게 어디야. 하나로 나눠 쓰면 30분은 버틸 수 있어.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찾을 수 있으니 괜찮아.”

“응, 오빠.”

이서우가 다시 뒷자리로 가자 이설아가 그의 품에 안겨 들었다.

서서히 차오르던 물이 빠르게 들어와 무릎을 덮었다. 이대로라면 5분이 한계였다.

이설아가 갑자기 이서우의 입술을 덮쳤다.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 행동이었다.

물이 허리에 다다르자 입술을 뗐다.

이서우는 반드시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이설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물이 차오를수록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서우는 말을 해야만 했다.

“반드시 살아 돌아갈 수 있어. 그러니 걱정 마.”

“응.”

이설아는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해서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는데, 이서우와 키스를 한 뒤로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물이 머리까지 차올라 온 차량을 뒤덮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산소통 하나뿐이다.

두 사람은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천천히 호흡했다.

인간은 1분에 스무 번 정도 호흡을 한다.

한 번에 500cc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산소는 100cc정도 흡입한다. 즉, 1분에 2리터 정도의 산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행히 산소통은 위급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설치가 된 것이어서 분당 2.5리터에 맞춰져 있었다.

즉, 예상보다 15분 정도는 더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산소를 더 많이 들이마시기에 시간은 조금 더 단축될 수도 있다.

뇌는 4분에서 5분만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도 손상이 오기 때문에 몇 분을 더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산소가 바닥을 가리켰다. 구조가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믿었건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서우가 그윽한 눈빛으로 이설아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응시한 그는 마지막으로 산소를 크게 들이쉬고는 이설아에게 억지로 산소통을 넘겼다.

‘오, 오빠?’

이서우의 행동에 이설아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른 산소 흡입구를 이서우의 입에 갖다 대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빠, 제발……. 둘이 같이 살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응? 오빠…….’

그녀는 눈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서우는 끝내 산소 흡입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서우는 미소를 잃지 않고 끝까지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은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산소통에 남은 산소가 얼마 없다. 구조대가 빨리 와야 이설아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서우는 한 줌의 산소가 사라지기 전까지 오직 이설아에 대한 걱정만 했다.

반대로 이설아는 이서우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 입을 갖다 대 산소를 불어넣었지만 이서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빠, 제발…….’

간절함을 담아 끊임없이 입을 맞추고 산소를 넘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서우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렇게 3분을 버틴 이서우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이설아는 온 힘을 다해 이서우에게 산소를 주입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쉽게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쿵.

외부에서 충격이 전해졌다.

‘오빠, 우리를 구조하러 왔어. 그러니 어서 돌아와!’

간절한 바람으로 계속해서 산소를 이서우의 입을 통해 불어넣었지만 이서우는 쉽게 눈을 뜨지 않았다.

‘빨리, 빨리 구해 줘요. 빨리!’

쉼 없이 산소를 주면서 구조대가 오기를 바랐지만 워낙 특수하게 제작된 차량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구조대가 도착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때까지도 호흡을 되찾지 못했다.

* * *

“팀장님,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경찰에서?”

“네. 20분 전에 구조 신호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확인 차 연락했다는데요?”

“뭐? 시팔, 20분 전에 신호가 들어왔는데 왜 이제 연락하고 지랄이야?”

위급한 상황에서는 1분1초가 소중하다. 20분이면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팀장이 화를 내자 사내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게 저도 잘…….”

“연결해 봐.”

“네.”

1팀장은 구조 신호를 받았다는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장난인 줄 알았다나.

1팀장은 매우 중요한 인물들인데 사고라도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따지며, 구조 신고가 들어온 위치를 물었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사람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위치 전송됐지?”

“네.”

“서둘러!”

“네!”

1팀장의 얼굴에는 강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10분쯤 갔을까.

“팀장님, 이동하고 있습니다.”

“뭐? 어디로?”

“그게…….”

사내는 홀로그램 모드로 돌렸다. 그러자 팀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북한강이 있는 곳에서 멈췄다.

“이런 개자식들. 어떤 새끼인지 모르지만 특수 차량이어서 꺼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수장을 시킨 거네. 서둘러 특수 장비 신청해.”

“네!”

2톤이 넘는 차량이 물속에 빠졌다면 그걸 끌어올릴 장비가 필요했다.

뒤늦게 출발했기에 특수 장비가 도착하려면 30분 이상이 걸린다.

“팀장님, 늦지는 않겠죠?”

“응급용 산소통이 있으니 1시간씩은 버틸 수 있어. 보조석에 있는 것까지 하면 30분씩 더 버틸 수 있고.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 1팀장은 불안한 기색을 덜 수 있었다.

그랬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이서우는 의식을 잃은 채였다.

팀장은 빨리 살려 내라고 구조대원들을 닦달했지만 이서우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합니다. 당신 때문에 이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습니까?”

팀장은 얼른 병원으로 이송하라는 말을 하고는 차에 올랐다.

그렇게 앰뷸런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원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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